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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복을 거쳐 근본적인 집착을 발견하다

글/ 지린성 대법수련생

[명혜망] ‘명혜주간’에서 근본적인 집착에 대한 동수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나 자신에게 물었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을 당시 내가 가졌던 근본적인 집착은 무엇이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당시 대법의 위대함은 인간이 신으로 되기 위한 수련이고, 육도 윤회에서 벗어나 인간세상의 일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원만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수련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이러한 목적은 내가 인생에서 찾던 것들이고 나의 목적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매 번 동기가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찾기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집착을 내면에 감추고 있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꿈에서 본 계시가 나를 점화시켜주었고, 나를 수련으로 끌어들였던 가장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내게 하고, 이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제거했다.

꿈속에서 수련 전에 내게 있었던 신체와 정신적 아픔, 특별히 정신적 고통, 외로움, 상처와 무력함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꿈에서 빨리 고통을 끝내려고 열망했으며, 꿈에서 깨어나서도 생생한 상황을 기억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 후 내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나는 대법수련생이며 모든 고통은 과거에 속한다. 나는 대법에서 인생을 새롭게 했다. 내가 왜 그것을 생각하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내가 왜 과거의 모든 고통을 회상했을까? 이것이 우연일까?’

‘나는 아주 행운아야’라는 생각을 검토해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이것이야말로 내가 수련 시작에 가져왔던 진정한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 꿈에서 사부님의 점화로, 이것이 명백하게 폭로되었다. 나는 행복을 추구했고,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했고, 원만과 자만심을 추구했다. 이런 집착심은 어떻게 온 것인가? 그것들은 나의 후천관념인 ‘명,리,정’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배경 깊은 곳에는 개인-이익과 나(私)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개인 이익에 이끌려 다녔다. ‘명,리,정’에 대한 추구가 특별히 강했다. 중공 문화에 오염되어, 이러한 개인이익은 더욱더 지배적이 되었다. 나는 종종 개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매번 성공할 때마다 심하게 앓았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보상이 있을 때마다, 점점 더 많은 병이 생겨났다. 이런 병들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내가 목적에 도달한 기쁨과 행복을 훨씬 더 어둡게 만들었다.

나의 추구는 엄청난 업을 만들었다. 추구는 내게 진정한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반대로, 나의 인생을 거의 파괴했다. 직장에서, 나는 사악한 중공이 추구하는 ‘중요’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입당하여 ‘좀 더 나은’ 장래를 마련하려는 강한 욕망을 가졌다. 나의 남편은 입당하려는 나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중요 후보자’ 명단에서 빠져나오라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나는 실망했고, 몇십 년을 그와 싸웠고, 항상 그가 나의 ‘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그를 무시했고 비웃기까지 했다. 나의 상관, 동료, 친구들과 가족들이 나를 비판하면, 나는 속이 상했고 공정치 않다고 느꼈다. 나의 ‘명성’은 내 가족의 논쟁으로 파괴되었다. 나의 명성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더욱 나빠졌다. 각종의 병으로 매일 고통뿐이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기 죽는 것이 낫다. 대수술을 받은 후, 나는 거의 식물인간이 될 뻔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서 살아난 후 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명,리.정’일까? 이러한 추구는 내게 어떤 행복과 평화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대신에, 끝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추구는 나를 죽음의 문턱으로까지 이끌었다. 사람들은 왜 살고 있는가? 과거에 무신론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부처를 신봉하고 수련하는 것을 비웃었고, 그런 사람들을 미신 짓거리를 한다고 비웃었다. 지금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나는 수련하려고 한다. 남편이 내게 일부 불교 서적들을 가져다주었다. 일부를 읽은 후, 특별히 나의 정황에 맞는 것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한 기공을 수련했는데, 꽤 많은 돈을 쓰고 나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의 돈을 추구했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나는 또 나의 ‘사부’를 찾으러 사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불자가 되었지만, 내가 찾은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1996년 겨울 ‘전법륜’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나의 마음은 깊이 진감 되었다. 마침내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을 찾았구나! 대법은 내가 진정으로 찾던 것이었다.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한 후 나는 많은 법리를 깨달았다. 심성을 제고하는 것과 동시에, 신체의 병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의 안색은 장미빛이 되었고, 시력도 좋아져 안경도 벗어버렸다. 흰 머리칼이 다시 검어지기 시작했고 등도 펴졌으며, 나는 젊은 아이들처럼 빠르게 걸었고 힘도 굉장히 증가됐다.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50kg의 감자나 쌀을 3층까지 피곤한 줄 모르고 숨도 헐떡거리지 않고 날랐다. 이웃들은 믿을 수 없어하며 놀라서 말했다, “이 할머니는 대단하네. 이 파룬궁이 정말 강력하구나.”

수련은 내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가족생활도 조화로워졌다. 나의 남편도 내 변화에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나의 영향하에 그 역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담배를 끊었다. 비록 표면적으로 내가 일부 집착심과 욕망을 버리고 ‘명,리,정’이 가져다준 해로움을 인식하고 일부를 제거했지만, 깊이 뿌리내린 ‘자아 이익과 자신을 위하는 마음’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기쁨, 행복,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원만을 추구하는 마음은 정법과정 중에서 더 많은 해로움을 만들었다. 이러한 추구는 아직도 나의 현 수련과정에서 나를 방해했고, 크나큰 손실을 가져왔으며 몹시 나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사부님, 저는 당신을 실망시켰습니다. 저는 아주 부끄럽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되고 타인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내 것 앞에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어떠했는가?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나는 행복, 명예, 이익과 정을 추구했다. 내가 이런 목적을 성취하는데 실패한 후 나는 내게 더 큰 행복을 주는 대법으로 향했다. 나는 신이 되기를 원했고, 마음에 평화를 원했고, 크게 해탈하여 큰 영광을 얻기를 원했다. 나의 의도는 얼마나 더러웠던가! 나의 욕망은 얼마다 탐욕스러웠던가! 나는 대법을 이용해서 나의 개인 이익을 성취시키려고 했다. 이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은폐된 것이다. 낡은 세력의 심태와 다른 점이 별로 없다. 나는 완전히 자기 중심적이었는데, 이것은 낡은 우주에 속한 것이었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오늘 이것을 막 깨달았다.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나는 전에 가져 본적이 없는 마음의 평정과 행복을 얻었다. 자연적으로 나는 대법을 나의 ‘정신적 보증’, ‘정신적 양식’, 그리고 장래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로 보았다. 나의 집착의 체현은 순수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많은 고난과 고험에서 나는 법에 따라서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종종 넘어지고 우회했다. 법을 읽을 때 나는 많은 인간 관념과 추구를 뒤섞었다. 첫 몇 번은 크게 주의하며 법을 읽었다. 내가 똑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신선함과 법리의 내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나는 점차로 초점을 잃었다. 내가 여전히 두 눈과 입으로 읽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이완되어 잠에 떨어졌다. 인간의 심태로 법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최고의 존경심으로 대법을 대하지 못했다. 대법은 나 자신의 상태를 되돌려주었다. 더는 아름다운 상태의 명상이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깊은 뜻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대법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법공부를 원만에 도달하기 위해 ‘정신적 보험’으로 대했다. 나는 ‘책을 더 많이 읽으라, 원만에 가깝다’의 뜻을 잘못 이해했고, 양과 속도에서 나 자신을 강제했다. 책을 읽기만 하면, 나의 수련은 법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하루종일 그리고 밤의 반을 책을 읽는데 보냈다. 할 수 있는 한 집안일을 멀리했다. 지금 나는 이런 일종의 극단적인 행동이 아주 나빴다는 것을 인식한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대법제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바로 속인 속에서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는 이런 형식으로 수련하고,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되며, 바로 이렇게 평온하게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대법제자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속인의 상태에 부합하고, 모든 환경에서 바른 일을 하고 매 하나의 언행을 모두 바르게 해야 한다는 사부님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위반했고 대법의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때로 나는 강한 집착심을 따라 나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했다. 한 번은 남편이 매우 화가 나서 술을 잔뜩 마시고 나와 큰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서 싸워봐라. 나는 나를 돌봐주실 사부님이 계시다. 내게는 공부할 대법이 있다. 그런 나쁜 행동으로, 누가 당신을 돌봐주겠는가? 대법을 수련하기 전이라면 나는 당신과 다투었겠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나아졌다. 누가 수련하면 누가 혜택을 받는다. 수련을 계속하는 한, 나는 당신의 비평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했던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았다,

“… 당신의 눈은 늘 밖으로 향해 보며 안을 향해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래도 수련인인가?”

비록 매번 나의 남편이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안을 향해 내 문제를 보지 않았고 내 방식대로 나갔다. 법에 근거해서 나의 심성이 제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 고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항상 모순과 교란이 존재했다. 나의 남편은 소리질렀다, “당신들 수련생들은 다만 이런 식으로 수련하는 거야? 당신의 사부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어? 어디에 진선인(眞, 善, 忍)이 있는가?” ‘당신 사람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자동으로 자신을 수련생들로부터 떼어냈다. 이것은 나의 불순한 관념과 나쁜 행동이 그를 대법수련에서 밀어냈던 것이다.

나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의 영향하에, 다만 찬미하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수련하는 표면 형식에만 주의를 돌렸다. 나는 마음에서 견정하게 수련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중생을 위해서도, 그리고 대법을 위해서도 수련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대법을 이용해서 고통 없는 원만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성취하려고 했다. 나는 자식들이 모두 결혼해서 분가한, 두 사람만의 가족의 일상 집안일을 역시 대법수련으로 구제되어야 할 남편에게 떠맡겼고, 그를 대법에서 밀어내고 위험한 변두리로 밀어냈다. 지금 나는 일의 심각성을 인식한다.

나의 근본집착이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게 하였고 대법의 명예를 더럽혔다. 강한 집착 때문에 그리고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심성 고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악은 나의 집착을 이용했다. 한 편으로는 나의 집착을 악화시켰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남편을 통제하여 그로 하여금 알코올 중독이 되고, 싸움을 벌이며, 허튼소리를 하게 했기 때문에 그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를 교란하며 대법에 손상을 입혔다. 이것은 또 낡은 세력이 대법수련생들을 박해하는데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사부님께서는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낡은 세력이 대법제자에 대한 교란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나의 제자이며 누구도 관리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이용하고 대법제자에게 강압해서 그들의 목적(目地)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나의 제자를 훼손시키려는 음모가 이루어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교란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당신들의 집착과 부족함을 잡고 있기 때문이며 게다가 역사적으로 남은 업력을 더하여 이 한 차례 박해 역시 모두 이러한 요소들에서 나온 것이다.”

사부님께서 ‘2004년 미국 서부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가서 수련할 수 있지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어떤 마음도 없고,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으면, 수련이 빠르며, 제고가 빠르며, 마난(魔難)이 적다. 오직 집착이 있기만 하면, 수련은 더디게 된다.”

1999년 7.20 사악한 자들이 미친 듯이 대법수련생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남편은 그가 수련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 이후로, 내게 집에서의 난은 거의 매일 일어났다. 사악들은 나의 남편을 통제하여 그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게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계속 외치고 고함을 질러 이웃들까지도 아주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각종의 세뇌 책략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교란했다. 한 번은 내 목에 칼을 갖다대는 위협까지 했고, 내게 강제로 수련을 포기하게 했다. 그 순간 내게는 두려움이 없었고 아주 평정한 느낌이었다. 다만 그가 불쌍했다. 사악의 통제 하에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것이다. 사악은 그로 하여금 대법에 죄를 짓게 했다. 얼마나 사악한가! 그들은 그를 파괴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사악을 제거하신다는 단 한 생각으로, 나는 이 고난을 통과했다. 남편이 술에서 깨어난 후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언급하면,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는 그의 주원신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7년이 지속되는 교란을 마주하고도 나는 내면에서 찾지 못했고, 나의 심성은 제고되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근본집착은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나는 항상 환경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며, 나 자신의 수련을 서둘러야 하고, 고해에서 탈출하고, 가능한 빨리 원만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알코올에 중독됨으로 나는 더 이상 그가 수련의 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이미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자신이 쓰라린 결과를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수련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와 더는 다투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비록 내가 집을 떠나 있으면서 모순을 피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이 화를 묻어두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법에서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아무 쓸모없고 내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고 그를 원망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대로 였다,

“… 생활 중의 고생을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겨 많은 사람이 척척 떨어진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의 일은 천상의 이치와 반대라고 ‘전법륜, 제4강의’에서 말씀하셨다,

“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며 어떻게 잘 살고 편안히 지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연공인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서, 우리는 속인이 얻으려고 하는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으며, 우리가 얻는 것은 속인이 얻으려 해도 수련을 하지 않고서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하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 그러나 실제 수련 중에서 고통이 왔을 때, 모순이 심금을 충격할 때, 특히 일단 사람의 그 완고한 관념을 충격할 때면 여전히 관을 견디기가 몹시 어려우며 심지어 고험(考驗)임을 뻔히 알면서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나의 근본적인 집착 형성에 나쁜 원인이 되었던, 명리, 인간관념에 대한 추구는 나로 하여금 정법시기 수련에서 끊임없이 비틀거리며 넘어지게 했다. 2000년 봄, 바로 대법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지 몇 개월 후, 사악들은 비밀 요원들을 동원하여 사회에서 그리고 대법수련생들 중에서 대법 책들을 내놓게 하는 속임수를 썼다. 고통 없는 삶과 원만을 추구하는 인간 관념에 이끌려, 나는 사악한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남편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물리치고, 나는 괴롭지만 갖고 있던 대법 책들을 내주었다. 비록 단 하루 만에 잘못을 깨닫고, 방법을 찾아 대법 책들을 되찾기는 했지만 대법 책을 내주었던 것은 나의 수련에 큰 오점을 남겼다.

나중에 나는 극심한 후회와 미망(迷茫) 상태에 떨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강한 근본적인 집착은 나로 하여금 항상 흔들리게 했다. 오랫동안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나를 더 이상 보살피지 않으시고 원만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대법 책을 잡고 울었다. 만약 사부님께서 각종 암시를 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깨어나기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2000년 9월, 많은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나도 원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갔다. 뒤쳐지고 원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 두려운 나의 심태는 불순했고 기점이 바르지 못했다. 결과는 도중에서 차단되어 사악에 의해 강제적으로 행정 구치소에 15일간 갇혔다. 그런 다음 세뇌반으로 보내져 더욱 박해를 받았다.

당시 직업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집착을 단단히 붙잡고 법에서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고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사악한 자들의 요구에 응하고 ‘보증서’를 썼다. 그래서 나는 맨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다.

집에 돌아오자 병업이 다시 표면에 나타났다. 세뇌반에서의 바르지 못한 행동은 실제로 정법시기 수련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물론 법에 오점을 남겼다. 나는 사부님의 구도에 보답하지 못했다. 나는 극히 후회했다. 후회하는 마음과 병업은 나로 하여금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할 정도의 고통을 만들었다. 하늘로 돌아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나는 매일 울었다. 절망에 빠져있는 동안,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벽에 홍음에 나오는 신과 부처의 영상을 나타내주심으로 내게 다시 점화해 주셨다. 나는 힘을 모아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선서했다! 나는 맨 처음부터 수련을 다시 시작하여 끝까지 수련을 할 것이며, 내가 만든 손실을 만회하겠다고 선서했다. 내게서 정념이 나왔을 때, 나는 사부님의 사진 앞에서 나의 강한 의지를 표시했다. 사부님께서는 곧 나의 병업을 제거해주셨다.

2001년 11월 나의 언니와 나는 법을 실증하기 위해 다시 베이징에 갔다. 내가 톈안먼 광장에서 외치고 현수막을 펼친 후, 내게 만족에 대한 집착 등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곧 나를 체포했다. 지역 연락소로 호송된 후 나는 사악의 소굴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사악들은 내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큰 압력과 손상을 가져오게 했다.

근본적인 집착은 움직일 수 없는 돌과 같았고 우리 수련의 길에 놓인 산과 같았다. 우리는 이것을 제거하고 파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우리의 정진을 방해하고 인간 층차에 머물게 할 것이다. 정법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의 근본집착은 많은 인간집착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소침해지고, 게으르며 지쳐버리고, 나로 하여금 편안하고 빈둥거리게 하며, 때로는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이 멋대로 날뛰는 나쁜 상태로 빠지게 한다. 이것은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려는 것을 방해한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지금 나는 마침내 근본 집착을 찾아냈다. 이를 본 후, 추구하려는 이 집착의 뿌리를 찾기 위해, 나는 ‘넝쿨'(명,리,정)과 이의 ‘가지들'(이로부터 나온 여러 인간의 집착)을 쳐냈다. 내가 뿌리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대한 집착)를 뽑아내고자 했을 때 모든 것이 뽑혔다. 정법 수련 중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내가 한 사전의 서약을 충실히 하는 중에,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개변하고 시정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우주에서 각자(覺者)들이 가져야 할 상태, 무사무아(無私無我)와 선타후아(先他后我)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쓰는 과정 역시 법을 인식하는 제고라는 것을 인식했다. 특별히, 이것은 나 자신을 검토하고 시정하며 ‘움직일 수 없는 돌’을 제거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여기서 나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내게 점화해 주시고 나를 구도하시는데 아낌없는 노력을 해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대법제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이 더욱 정진하여 수련하는 것이다.

발표일자: 2006년 5월 22일
원문일자: 2006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3/11/122521.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5/22/73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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