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중팡츙
[명혜망 2006년 5월 21일] 필자 주해–나는 내가 쓴 글이 세인들이 진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부 동수들은 그 글을 본 뒤 부면적인 작용을 일으켜 감히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거나 중생구도를 하지 못했고, 일부 수련생은 이를 숭배하거나 질투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 박해 받은 이유와 법리에서 다시 새롭게 인식한 것을 쓰기로 했다. 상술한 동수들에게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반 년 전에 완성했던 글로써 그때 나는 이기적인 기점(밖으로 향으로 구했지 안으로 찾지 않았다)에 입각하여 썼다고 생각되어 줄곧 투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쑤자툰 폭행이 폭로된 후, 일부 동수들 사이에 다소 파동이 일었다. 그러므로 내가 직접 받은 박해 이유를 법리상에서 교류하며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1999년 3월 법을 얻은 이후 나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매일 부지런히 법공부, 연공, 홍법을 했으며 기타의 책과 신문, 잡지, 영화, 텔레비전마저 보지 않고 심지어 매일 식사시간마저 다그쳤다. 그렇지만 장사에 신경을 쓰다보니 매일 책읽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게다가 책 읽는 속도가 늦다) 운전을 하며 매일 사부님의 설법을 많이 들었고 단체로 법공부를 하는 외, 99년 연말 북경에 갔을 때까지 『 전법륜 』을 네 번 밖에 읽지 못했으며 사부님의 이전 설법들은 읽을 시간이 없었다.
1999년 7.20 이후, 나는 더욱 견정하게 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였으며 일체 위험을 무릅 쓰고 진상을 알리면서 중생을 구도했는데 이치대로 말하면 법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30여 차례나 불법 감금되고 왜 반복적으로 잔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두 차례는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뻔 했던가? 사부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셨단 말인가?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으로 나의 당시의 관념과 행위를 대조해 보도록 하겠다.
1, 마음이 바르지 않아 사악을 불러들였다.
사부님께는 『 전법륜 』에서 “내가 방금 말한 것은 바로 연공인(煉功人) 자신이 자신을 정확히 대하지 못함으로써 일부 번거로움을 조성한 것으로 말하자면 마음이 바르지 않아 초래한 번거로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사람으로 마음이 바르지 않아 번거로움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몇 십 차례나 불법감금 당하는 번거로움을 초래했다. 왜냐하면 당시에 나는 매년 원단, 설날 5월 1일, 10월 1일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나자신이 법에 대해 견정하고 명, 리, 정을 내려놓은 진수제자이며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제 노동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기간에 사부님께서 『 전법륜 』에서 말씀하신 “진정하게 티베트에 가서 법을 구하는 사람은, 한 번 가면 아마 그곳에 박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인 즉, 이는 진정하게 수련(眞修)하는 사람이다.” 이 한 단락의 법을 가지고 자신을 격려했다.
이런 크게 잘못된 일념지차로 낡은 세력에게 약점이 잡혀 오래동안 반복적으로 감금되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에서 또 “우리 우주 중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그 자신이 추구하고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일반 정황에서는 간섭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또 “나는 예전에 말했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법공부를 하였으며 심지어 이런 법을 마음속에 아로 새겼다. 그러나 법공부와 나자신의 일사일념, 일거일동, 일언일동을 갈라놓고 연계시키지 못했다. 법속에 용해되지 못하고 해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수련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實修)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한 문제에서 나는 여전히 속인인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나자신은 감옥에 들어가고자 하는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관념이 낡은 세력에게 부합하고 법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줄곧 낡은 세력이 배치한 거대한 고비, 거대한 재난의 길을 걸으며 반복적으로 불법 감금되고 박해를 받은 것이다. 예를 들면
(1) 1999년 연말 북경에 청원하러 갔을 때, 나는 가게를 모두 정리했으며 심지어 재무 담당에게 주면서 “당신은 모든 장부를 마무리 짓도록 하시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참말을 한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되오.” 라고 말했다. (그때 아직 사부님의 경문「이성(理性)」발표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부님의 법과 상반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 일념이 스스로감옥에 들어가도록 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감옥에 들어간 것은 내가 구하여 초래된 것이었다.
(2) 사부님께서는 『 전법륜 』에서 “ 사람은 모두 자신이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초래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북경에 가기 전 날, 북경에 도착한 수련생이 나에게 돈을 많이 가져오지 말고 차비만 갖고 오라는 전화를 했다. 왜냐하면 북경주재 사무처에서 돈을 모두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서 그대로 따랐다. 결국 그런 관념이 나도 모르게 낡은 세력에 부합되어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 북경 시외 연장장에서 불법연행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3) 2000년 두 번째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을 때, 민원사무국의 긴 골목길에는 경찰과 사복경찰이 많이 있었다. 나는 당시 “사부님, 저를 민원사무국에 들어가 서류를 바친 후에야 저를 잡아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가소롭고 황당한 일념인가, 결국 붙잡힌 후 구류소와 간수소에 들락거리도록 초래했다. 이것은 나자신이 구하여 잡혔던 것이 아닌가? 나는 그동안 나자신의 오성이 너무 좋지 않았음을 원망했고 몇 년 간 줄곧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 인신의 자유를 잃은채 중생을 구도해야할 귀중한 시간을 잃은 것을 원망했다. 사부님의 법신과 호법신은 조급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집착을 더 없애자》경문에서 “제자들이여! 사부께서 마음이 조급하여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당신들은 왜 속인의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가려고 하지 않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북경에 청원하러 간 것이 죄가 된단 말인가? 공안이 나를 잡을 자격이 있는가? 나를 잡을 자격이 없다! 왜 부정하지 못했는가? 왜 법에 서서 사고하지 않았는가? 쉽게 말하면 여전히 사람이 대법에 대한 견정함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시는 것은 수련인이지 속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사람은 대법 중에 있었지만 나의 씬씽(心性)과 행위는 여전히 사람 중에 있었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시는 것은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그 일체는 나자신이 법공부를 깊이 하지 못하여 오성이 너무 낮아 일사일념이 법에 부합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낡은 세력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2, 관념상에서 낡은 세력에 부합되어 이지적이지 못해 극단으로 가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이성(理性)」중에서 “ 이지(理智)로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서 진상(眞相)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서 홍법(洪法)과 세인을 구도(救渡)하자.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威德)을 세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1999년 신문사에 진상을 하러 갔을 때, 직원을 찾아 대법이 우리들에게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텔레비전, 신문의 일방적인 왜곡 보도에 대해 똑똑히 말하면서 신문사가 파룬궁의 진실한 정황을 정면으로 보도하기를 희망했다. 직원은 듣고 나서 선의적으로 우리에게 떠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한 수련생이 편집장을 만나서 도리를 따지겠다고 아주 강경하게 나섰는데 나는 당시 법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으로 수련을 대했다. 그가 선하지 않고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막아 나서지 않았다. 모두 같이 왔다는 생각에 동수들에게 그 자리를 뜨자고 말하지 않아 결국 경찰이 와서 몽땅 구속당했다.
2002년 어느 하루, 갑자기 친구가 전화로 나에게 빨리 집을 떠나라고 했다. 고향의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불법 심문 중, 내가 그에게 자료를 주었다고 자백하여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오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당신은 안심하오,” 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 차례 사악의 박해 앞에서 발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하여 나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사라지게 하고 잠재의식 중에 과시심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곧장 앉아서 입장한채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가족의 동료가 왔다. (이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 CD를 틀어주다가 결국 경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알고는 파출소에 오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파출소의 사악을 해체시키겠다는 생각으로 파출소에 갔다. (역시 법에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2001년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 “어떤 환경이든지 막론하고 사악의 요구, 명령과 시킴에 다 협조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몇 십 차례 불법감금될 때 그 경찰들 모두 있었다. 매 번 나는 선의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기실 그들도 속으로는 진상을 알고 있었다.
사악에게 협조했기 때문에 사부님의 법신과 호법신은 조급했지만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향과 현지의 610, 국안, 공안분국과 현지 파출소에서 우리 집 재산을 몰수하는 악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경찰은 불법으로 녹화하고 자료는 큰 손실을 보았으며 나도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간수소에 들어간 후에야 나는 나자신의 누락을 찾고는 일사일념을 대법으로 바로 돌아갔다. 단식과 파괴성적인 음식물 강제투입, 사인상(死人床)에서 잠자기, 족쇄차기, 수갑차기 등 고문을 당하는 가운데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번했는데 보름이 지나서야 사악을 제거하고 정법의 거센 흐름 속으로 돌아왔다. 일부수련생이 나를 특무로 의심한 적도 있었으며 어떤 수련생은 나를 만날 때마다 여러 번 피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내가 반면으로 나가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내가 공안국을 본가 드나들듯 하므로 나에게 그렇게 강한 정념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당시 그 말을 듣고서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우리 어떤 수련생은 병원에 가서 남의 주사 바늘을 몇 개나 구부려 놓고 마지막에 그 약을 모두 뿜어버렸어도 찌르지 못했다. 그는 알게 되었다 ― 아이쿠, 나는 연공인(煉功人)이잖은가, 나는 주사를 맞지 않겠다. 그는 그제야 생각나서 주사를 맞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왜 늘 붙잡힌 후에야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 박해를 부정하고 집에 있을 때는 정념을 느슨히 했는가? 그것은 자신의 관념이 감옥에 갇혀야 만이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우리 이 인간 세상 역시 무형의 감옥인 것이다!
2002년 연말, 내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어느 날 오후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려서 볼록렌즈로 보이는 문밖을 보니 낯선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 서있었다. 그들 모두 젊은 사람이었는데 남자는 한쪽으로 비켜 서 있었기에 집을 떠날 때에야 발견했다. 경비원이 그들에게 나를 왜 찾느냐고 물으면서 전화번호라도 남겨놓고 가라고 하자 그들은 거칠게 경비에게 말하기를 “당신과 상관없소.” 라고 했는데 1층에는 경찰차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자들은 나쁜 마음을 먹고 온 것이 분명했다. 당시 나의 집에는 3명의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남자 수련생은 그곳을 떠나자고 제의했다. 한 여자 수련생은 말하기를 “가상이니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고 했다. 나도 법에 서있지 않아 상황이 좋지 않으니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또 동수들이 나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말할까봐 그녀의 생각대로 따르면서 가상이라고 잘못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형식으로 남자 수련생을 떠나게 했던 것이다.( 타지방에서 온 동수에게 사람 마음이 비교적 많았기에 나는 최대한으로 그를 도와주었지만 그래도 제고가 매우 늦었다. 당시 나는 이기심으로 그가 우리 자료점에 남아 있어서 법을 실증하는데 영향을 줄까봐 두려웠고, 그가 마음을 버리지 않아 사악을 불러올 까봐 두려웠으며 자료점에 사고가 날까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결국 남자 수련생은 그날 오후 안전하게 떠났으나 나와 다른 여자 수련생은 이틀 후에 납치되었고 집은 수색당했다. 그 때 우리에 대한 박해 역시 사악하기가 그지없었다. 비록 단식하여 한 달 후 마의 소굴에서 뛰쳐나왔지만 신체는 박해로 인해 마비되어 반 년 뒤에야 회복되었다. 반 년 시간이라, 세인을 구도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손실을 주었는가.
그 당시 일들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두렵다. 불법적인 박해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라 낡은 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결국은 모두 나자신이 이지적이지 못해 조성된 것이었다. 매 번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다. 사부님께는 『전법륜』에서 “나의 법신이 당신을 저지할 것이며 당신을 점화(點化)해 줄 것인데 당신이 늘 이런 것을 보고는 당신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다. 수시로 자신을 신으로 간주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은 나의 책을 손에 들고 거리를 걸어가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 리(李) 스승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자동차에 부딪힌다 해도 두렵지 않다. 이것은 대법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런 사람은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기실 진수(眞修)제자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과 다를 바 없다. 두려움과 이지(理智)적은 딴 개념이다. 이지는 인심과 다르며 이지는 두려움이 아닌 것으로, 오로지 법 중에서 이지적이어야 만이 안전하며 또한 이지적이어야 만이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할 수 있다.
3,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지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기적으로 불법 감금당하는 것이, 법에 대해 매우 견증하여 굴복하지 않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거나, 개인의 제고와 개인 원만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모두 감옥에 들어 간다면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누가 한단 말인가? 아직도 법리상에서 똑똑하지 못하다.
박해를 심하게 받은 것은 수련을 잘 한 것이 아니고, 감옥에 있던 시간이 긴 것도 수련을 잘한 것이 아니며 수련을 잘하지 못한 표현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자》평어 중에서 “가장 돌출한 것은 허다한 수련생들이 박해를 가장 심하게 받은 것 역시 자신의 사람 마음이 과중하고 정념이 부족함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서 우리들의 마음은 반드시 법에 있어야 한다. 내가 박해 받은 사실을 써낸 다음 사부님께서 평어를 쓰신 후, 어떤 동수들은 나에 대해 숭배하는 마음이 생겼고 또 어떤 수련생은 나에 대해 질투심이 생겼다. 이런 것들은 모두 법에 있지 않는 표현이며 모두 개인과 정체의 조화를 교란하며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근원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제때에 법 중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이란 극히 간고하며 매우 엄숙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전법륜』 동수들이여! 우리는 더욱 잘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중공의 생체장기적출 폭행을 이용해 사악한 당의 본질을 폭로하며 중생구도를 더욱 잘 합시다. 우리는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동시에 우리의 수련생을 더욱 잘 구원합시다.
타당치 않은 곳이 있으면 동수께서 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완성: 2006년 5월 15일
문장발표: 2006년 5월 21일
문장갱신: 2006년 5월 20일 22:14:09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5/21/1279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