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백악관 외침사건에 대한 깨달음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29일】왕원이(王文怡) 수련생이 백악관에서 부시와 후진타오 회담중에서 외친 사건이 속인 사회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대법제자들 중에서도 광범한 토론이 일어나서, 이 문제에 대하여 개인인식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바이다.

물론 토론 중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다른데, 서로 다른 층차에서의 인식이 이미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 있는 바, 그것은 바로 이 사건이 바른 면의 영향도 있고 부면(負面)적인 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왕 수련생은 나와서 제일 먼저 개인의 행위라고 강조하며 성명을 발표하여 세인과 매스컴이 파룬궁과 대기원에 대한 부면적인 견해를 해소하려고 했으나 그 영향을 해소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법에서 깨달을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일부 큰 사건에서 일부 부면(負面)적인 영향을 조성한데다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환경에서라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만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부면적인 영향을 해소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되게 할 수 있는지 깊이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1. 백악관 외침은 천안문에서 법을 실증하는 것과 다르다

어떤 동수들은, 왕원이 동수의 이번 백악관에서의 외침이 그 해 대륙 동수들이 천안문에 가서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는 것과 유사한 장거라고 한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그 기점과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지 명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땅히 더욱 이지적이고 성숙되게 최후의 길을 잘 걸어야만 비로소 법속에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해에 대륙동수들이 천안문에 가서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친 것은, 지극히 사악한 박해 환경하에서 진행된 것이다. 낡은 세력과 사악이 대법제자와 중생을 훼멸시키려고 하는 특수한 정황하에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는 수승(殊勝)한 장거이자 대법제자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대법을 실증하는 위대함이다. 표면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바로 대법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생명을 버릴 수 있는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고자 하는 그런 장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이 것은 한 수련중의 사람이 정념이 강할 때 사부와 대법의 힘이 그를 통해 펼쳐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해 관건적인 시각에 가장 사악한 국면을 신속히 전환시키는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한 기점은 법에 있으며, 그 당시에는 지극히 필요했던 것이다.

대륙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던 동수들은 똑똑히 볼 수 있다. 바로 대법제자의 이런 장거 때문에, 비로소 사악한 집단의 파룬궁을 소멸시키려는 환상이 파괴되었고, 대륙민중으로 하여금 파룬궁을 알게 하였으며, 세계로 하여금 파룬궁의 억울함을 보게 하였고, 공산집단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초기에 강행하던 ‘연공을 해서는 안 된다’ 에서 ‘민원을 전달하러 가지 않기만 하면 집에서 연공하는 것은 괜찮다.’는 이런 큰 전환점이 있게 하였다. 그 해 설령 대륙에서 일지라도 강씨집단마저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장거를 가지고 거의 문제로 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성들마저도 굉장히 큰 억울함을 당한 사람만이 비로소 감히 천안문에 가서 ‘억울함을 외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외침사건 사건은 다르다. 평화적인 환경에서나, 민주·자유·법치(法制) 국가에서는 정면으로 우리의 호소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 우리 파룬궁이 세인들에게 펼쳐보여 주어야 하는 것은 한결 같은 이념, 즉 평화와 이성이다. 비록 중공수용소라는 큰 배경이 있지만, 우리가 법리에서 말한다면, 왕동수의 이런 거동은 부적절한 것이며 과격한 행위다. 몇 년 이래 해외 대법제자들의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이 세계로 하여금 파룬궁은 평화적 선량한 단체이며 속인사회 중에서 법을 준수하는 단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지지를 얻었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외침이 정말로 그렇게 필요한 것인가? 과격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에 부합되지 않을뿐더러, 게다가, 그렇게 함으로서 사부의 정법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어떤 좋을 점이 있는가?

2.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는 사명을 파악하고 정법이 사람을 구하는데 있어서 감정에 의해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되며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대법제자가 인간세상에서 단지 개인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부님의 정법을 도우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사명이다.사부님께서는 전 우주의 거대한 난을 감당하셨다. 무엇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난을 감당 하셨는가? 전부 소멸하면 안 되는가? 다 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이 거대한 난을 감당하셔서 중생을 구도하고 우주를 구원하려는데 있다. 대법제자도 인간세상에서 역시 이 여러 해 동안 큰 난을 감당했다. 비록 우리는 이 번 마난(魔難)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우리는 마난중에서 확실이 대법 眞善忍(쩐싼런)의 원칙을 실천하였으며 대법제자의 풍모를 체현하였으므로 세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안목으로 대하게 하였고 뭇 신들도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다.

백악관 외침사건은 비록 국제사회가 파룬궁과 산체로 대법제자의 인체장기를 적출하는 사건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으나, 국제 매스컴에서 맨 처음 보도한 편차 가 사람들에게 남긴 영향을 제거하기는 매우 어렵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도 아마 의혹이 생길 수 있고, 대륙매스컴에서도 이런 부면적인 영향을 빌어 본래는 진상을 알 수 있는 세인으로 하여금 이런 과격한 행위 때문에 파룬궁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후진타오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는 대륙 세인에게 부면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장소에서의 외침이 진정으로 후진타오를 진동시키고 구도할 수 있는가?

그는 한 국가의 원수로서 난처하게 되었는데, 속인의 마음이 매우 중한 속인인 그가 왕원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를 더 반면으로 몰고 갈 수 있지 않는가? 동시에 대륙각지의 노교소·감옥·지하수용소·병원에서의 대법제자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이로써 감소될 수 있는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가? 지금, 여러사람들은 또 왕원이 동수의 법정기소 문제로 발정념하고 있는데, 그럼 이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한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아마, 법정에서 진상을 할 수 있으며 이 사건을 이용하여 진상을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데, 우리는 줄곧 힘을 더해 이 방면에서 진상을 하고 있지 않는가? 설마 일부 비정상적인 사건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사람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인가? 설마 우리 수련인이 과격한 언행과 부면적인 영향으로 속인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그들의 양지(良知)를 불러온 단 말인가?

당연히, 이런 거대한 영향이 있는 과격한 행동은 일부분 사람들의 파룬궁에 대한 오해와 세인이 구도받는데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왔으므로 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속인의 눈으로는 영웅이 나왔지만, 오히려 일부분 사람들이 구도 받을 수 없게된 이것이야 말로 큰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일깨울 필요가 있으며, 특히 이런 특수한 행위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잘 파악해야 한다. 즉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더 잘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도 할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법노정이 현재까지 이르러, 어느 각도에서 말하든지 시간은 모두 유한한 것이다. 우리의 인위적인 부당한 행동으로 조성된 부면적인 영향으로 가져온 손실을 없앨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원하는 시간은 유한한 것이며, 아직도 일부 인연 있는 사람이 법을 얻지 못했고, 아직도 일부 세인들이 구원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최후일수록 더욱 이지적이며 성숙되고 청성(淸醒)하게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는 일을 잘 해야 한다. 대법은 바른 것이므로 우리는 인간세상에서도 마땅히 바른 요소를 펼쳐 보이며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지적이고 성숙되게 최후의 매 한 걸음을 잘 걸어, 정법과 중생구도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지 말자.

문장 완성시간 2006년 4월 28일
문장 발표시간 2006년 4월 29일
문장 번역시간 2006년 5월 7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4/29/12642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