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중국대륙 대법수련생
[명혜망]
오늘 아침 일찍 나는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을 읽고 있었다.
“질문: 대륙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노동 개조를 당하는 수련생들은 사악이 그들이 법공부와 연공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련조건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원만합니까?”
“사부: 나는 또 이러한 수련생을 늘 보게 된다. 네가 나보고 연마하지 말라고 해도 나는 연마하고 네가 나보고 배우지 말라고 해도 나는 배운다. 나는 너의 사악한 말을 듣지 않는다. 너는 생사를 갖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사부가 여기에서 이야기하였는데 이는 당신들 수련인에 대하여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부 역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속인이 듣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당신이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을 때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다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번에 이 법을 다섯 번째 읽는 것이고, 5년 전(2000-2003)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부 일들을 회억해내고자 한다. 당시 많은 수련생들이 생명을 걸고 대법을 실증하고 부지런히 정진해나갔으며, 결국에는 사악한 강제노동수용소 안에서도 단체 법공부와 연공하는 환경을 성취했었다. 나는 아직도 이런 조건 속에 있는 동수들과 하나의 본보기로 교류하고자 한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매 수련생들은 수련의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 사악한 것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널리 퍼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길을 막았다. 중국의 매 견정한 수련생들이 붙잡혀 구타당하고, 체포되고, 재산을 압수당하는 위험을 마주하게 되었다. 압력은 거대했지만 수많은 대법수련생들은 죽음, 폭력, 또는 장정권의 잔혹한 유혈의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파룬따파 제자들이 그런 압력에 맞서 법을 실증하고자 걸어 나왔다.
2000년 1월 19일, 나도 수만 명의 동수들처럼 이런 무한한 방법의 길을 걸었다. 나는 연이어 수감되고 강제노동수용소와 세뇌반에 보내졌다. 어디에 있든 나는 공개적으로 연공을 했다. 허베이든 내몽고 구치소든 나는 여전히 5장 공법 연공을 했다. 내가 풀려난 후, 나는 많은 경찰들과 일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니터 앞에 몰려들어 집중해서 나를 바라보았다고 들었다–그들은 아마 우리의 체계적인 연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처음 청원하러 걸어 나왔을 때, 나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치소에서 처음에 경찰이 법공부나 연공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때 나는 말했다. “파룬따파 수련생으로서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할 것이지만, 다른 것은 당신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두 가지는 타협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법공부를 (당시 나는 주로 법을 암송했다) 했고 공개적으로 연공했다. 두 번째로 체포되었을 때도 나는 평상시처럼 연공했다. 박해를 항의하기 위해 우리 30명의 죄 없는 수련생들은 잡혀 들어가자마자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고 사부님의 결백과 대법의 결백을 요구하는 단식항의에 들어갔다. 당국이 역겹고 사악할 대로 사악했지만 매 감방의 수련생들은 함께 연공했다. 통제할 방법이 없게 되자 당국이 우리의 대법 책들을 압수했고 우리는 더는 법을 배울 수 없게 되었다.
단식항의 9일째 되는 날,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애원했다. “사부님, 대법제자로서 《전법륜》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죽느니만 못합니다.” 나는 모든 수련생들이 나처럼 법공부에 목말라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당번 관리들이 순찰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법공부를 해야 하겠으니 책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예기치 않게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정말로 나는 다른 상태로 들어갔다. 나는 내 이웃과 친구들이 모두 내 곁으로 와서 나의 머리를 잡고 눈이 빠지도록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방안 가득히 많은 의사들과 경찰관들이 나를 에워쌌다. 혼잡한 속에서 나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한 경찰이 다가오는 한 무리의 관리들에게 제안하는 것이었는데, “그녀의 사부의 책을 이용해 봐요. 이것이 그녀를 다시 되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보자구.” 누군가가 대답했다. “빨리 가서 책을 찾고 빨리 이곳으로 전부 가져와.”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대법 책을 찾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숨을 멈춘 것처럼 방안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러자 나는 생기 있는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 빨리 깨어나세요! 보세요! 당신의 선생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마치 죽음에서 살아난 것처럼 눈을 떴다. 나는 일어나 앉았고 두 손에 책을 들고 있는 공안국 부서장을 보았다. 그는 사부님 법신상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가 바로 내게 깨어나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의 사부님이 오셨다고 말해주었던 사람이었다. 사부님의 사진을 보자마자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내가 책을 잡으려고 즉시 일어나려 했으나 경찰서장이 의사에게서 물 한 컵을 재빨리 받아 내게 건네주면서 책은 멀리 가져갔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물을 마시면 책을 주겠다.” 책을 갖기 위해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물을 마셨다. 마침내 나는 간섭받지 않고 며칠 동안 법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나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았다. 마치 집에서처럼 《싱가포르법회 설법》을 열심히 읽었다. 내가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자 누군가가 들어와서 내게 방문객이 찾아왔다고 속였다. 나를 감방에서 끌어내 차에 태우고 비밀리에 징간 호텔로 이전시키고 그곳에 연금시켰다.
나는 계속 수련생들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항의를 했다. 나중에 나는 풀려났다. 이틀간 쉬고 나자, 당국은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나를 3년 강제노동 수용소 행을 선고했다. 법공부와 연공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수용소에서 수련생들은 죄수복을 벗어버리는 지혜를 사용했다. 모든 사람들이 견정했고 박해 반대를 위해 매 수단을 썼으며 우주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바쳤다. 일부 사람들은 고문으로 마비가 왔고, 일부는 로프에 묶여 대소변을 통제하지 못했으며, 일부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일부는 눈에 부상을 입었고, 일부는 꼬리뼈가 으스러졌고, 일부는 수갑에 묶인 채 공중에 매달렸고, 일부는 바늘로 찔리고, 일부는 손가락이 부러졌고, 일부는 구타로 얼굴과 신체에 멍이 들었다. 장소는 사악과 잔인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는 매일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못되고 끔찍한 박해 하에서 수련생들은 경찰들의 불법에 항의하고 서로 협조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2000년 4월, 70명이 넘는 수련생들이 죄수복을 벗어버린 다음 집단적으로 단식항의에 들어갔으며 노예노동을 거부했다. 이 행동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고용했는데 우리가 성공했다. 우리는 우리들의 옷을 돌려받았고 일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함께 법공부하는 시간을 더 갖게 되었고 교류하며 함께 제고했다. 법공부할 때 우리는 주로 큰 소리로 《논어》, 《전법륜》과 《홍음》을 함께 낭송했다. 정확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우주를 꿰뚫고 세상을 진동시켰다. 사악은 정말로 놀라 두려워했다. 그 당시 우리가 단체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우리는 사부님의 신경문을 외우고 그것을 함께 암송했다. 감시원이 알고 책을 찾으러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그것을 우리의 마음과 가슴에 내맡긴 후였다. 매 수색이 있은 후, 감시원들이 물었다. “숨긴 것은 더 없나?” 수련생들은 익살스럽게 대답한다. “네!” “어디?”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머리를 가리키고 대답한다. “여기요.” 감시원들은 할 수 없다고 느끼고 공격이 덜해졌다. 한 번은 감시원이 나를 불러내어 비밀스럽게 물었다. “우리에게 두 명의 무장한 보초가 있고 국가안전국이 있기 때문에 이곳은 정말 안전한 곳이다. 당신들이 어떻게 신경문을 갖게 되었는가?” 나는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신들이 하는 것을 어떻게 인간들에게 알게 하겠어요! 하하, 당신들도 서둘러서 법공부하세요, 그리고 당신들이 파룬따파수련생이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 감시원들은 일부 수련생들에게 특이공능이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에 그들은 9명의 영향력 있는 수련생들을 골라내어 “직속반”이라고 불리는 반에 재조합시켰다. 감시원들은 다른 사람들은 연공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9명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공부하고 연공하게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다. 2001년 1월 26일에 그들은 9팀에서 한 명씩 뽑아서 “직속반”에 넣었다. 우리 아홉 사람은 만나자마나 교류를 했다. 우리는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졌다. 첫날인 3월 5일 우리는 양회가 열리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장쩌민이 그의 권력을 남용하여 법을 위반하고 무시한 그의 불명예스러운 인권 위반을 직접 폭로하는 편지를 써야했다. 우리는 아홉 개의 그런 편지를 국가인민국회에 제출하고, 장쩌민은 시민들에게 손상을 입히고 국가의 헌법을 짓밟는 짓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런 후, 2001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사악한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모든 수련생들이 물과 음식을 거절했다. 바로 첫날부터 우리는 평상시처럼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며 물과 음식은 절대 거절했다. 진정하게 생사를 내려놓는 이 행동은 사악을 완전히 두렵게 만들었고 아무도 우리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중단시키러 오지 못했다. 두 명의 새 감시원들만이 5분마다 우리가 죽었는지 보기 위해 우리의 코를 만져보고 감시하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나중에 두 명도 대법을 배웠다. 나를 확신시키기 위해 그들은 내게 종종 법의 문장들을 암송했다.
2001년 3월 27일 밤, 나는 “세계의 모든 동수들에게”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를 마친지 삼일 째 되는 날, 두 명의 감시원들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회의실로 데리고 가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도 ‘眞,善,忍’을 좋아합니다. 몰래 집에서 매일 연공합니다. 그리고 지난밤에는 사부님 꿈도 꾸었습니다.” 이 관리는 다른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그녀는 침대 위에서 나의 손을 잡고 내게 5장 공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나는 그녀에게 가르쳐주었고 울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로했다. 나는 다른 여덟 명의 수련생들을 가리키며, “그들도 모두 나보다 연공을 더 잘한다. 당신은 그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한 평범한 남자가 말했다.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이 세상에 그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속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 수련생이 진정으로 생사를 내려놓았을 때, 그의 층차는 이성적인 면에서 그리고 법에서 높아졌고 “두려움”이라는 세속적인 물질을 버렸다. 수련 중에서 그는 속인을 초월하는 경지를 성취했고 그의 층차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층차를 초월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생명들을 구속할 수 없는 것이다.
매 동수들이 생사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악한 세력의 어두운 소굴 속에서도 다만 햇빛과 정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는 법공부를 할 수 있었고, 연공을 할 수 있었으며, 다른 장소나 환경에서 보다도 진상을 더 잘할 수 있었다. 단식항의 27일째 되는 날 밤, 우리 아홉 명은 눈같이 흰 비단 스카프와 새 겨울옷 안감인 밝고 붉은 아름다운 비단 위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수놓았다. 한 사람은 글자를 썼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잘라내고, 다른 사람은 글자를 붙이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꿰맸다. 아홉 사람이 총력으로 이 글자들을 구성하고 수를 놓았다. 글자 양쪽에는 두 개의 아주 아름다운 꽃을 수놓았다! 사악이 충만한 환경 속에서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생사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단체로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그런 글자를 만들기는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의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의 체현이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당신이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을 때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다 해낼 수 있는 것이다!”
2001년 3월 29일, 나는 독방에 갇혔다. 다른 죄수들의 감시는 더는 없었지만, 또 여덟 명의 정진하는 나의 자매들도 없었다. 다만 혼자서 마음속에 단 한 가지 “어디를 가든 내가 아직 살아있는 한, 나는 정법하시는 사부님을 도울 것이다!”라는 생각만 갖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그들은 나를 응접실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관리들은 내 주위에서 번갈아가며 나를 감독했다. 나는 그들 매 사람에게 진심으로 진상하려고 노력했다. 이상하게도 마치 한 번도 진상을 들어보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매우 놀라며 감동했다. 나를 감독했던 대대의 87명의 경찰 중 70명 이상이 나를 감독하러 또는 특별히 나를 보러왔다. 그들 중 대부분이 호기심으로 왔다. 내가 물과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속인의 의학 분석에 따르면 나는 벌써 죽었어야 했다. 대부분의 감시원들이 이를 믿었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이 죽기 바로 전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회복하는 수련생의 초상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방문했던 매 경찰들이 친절했다. 그 기간에 가장 사악한 경찰로 알려진 사람을 포함해서 내가 맛보았던 선량함은 그들의 진정한 영혼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방문하는 동안, 그 역시 그의 보살피는 마음을 내게 완전히 들어냈다. 나의 진상을 들은 후, 모든 사람들은 그처럼 비도덕적인 장을 욕하면서 말했다. “그는 부패관리들과 나쁜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지 않고 대신에 선량한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당신은 계속해서 “眞,善,忍”을 따르시오. 더 이상 참지 말아요. 당신이 싸우는 것을 우리가 돕겠소!”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면을 보여주며 매우 화를 냈다. 그 열흘 동안, 인간의 眞과 善의 본질이 완전히 드러났고 내 앞에서 입증되었다. 비난이 없었고 다만 평안과 동정하는 마음만 있었다. 이것은 생명 하나를 더 구하도록 배치된 것이었고 생명 하나가 “眞,善,忍”을 받아들이게 했다. 실제로 물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더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예쁜 미소와 부드러움을 유지했다. 비록 내게서 약한 목소리가 어렵게 나왔지만, 나는 매 새로운 얼굴에 세심하게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들 중 일부는 조용히 얼굴을 돌리며 눈물을 닦아냈고, 일부는 매혹되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누군가 말했다. “빨리 와서 파룬궁 (내게 사용되었던 별명)을 봐라. 어쩌면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 37일째 되는 날, 사법국에서 의사를 보내 수혈을 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내 신체에 바늘을 꽂지 못했다. 의사가 바늘을 뺐을 때 바늘에서 피 응어리를 발견했다. 그러자 그녀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날, 그들은 내가 노동수용소에서 죽을까 두려워 즉시 정맥주사를 맞히고 응급치료를 위해 나를 시 제2병원에 이전시키고 내 가족에게 연락하여 집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내가 노동수용소를 떠나기 전에, 수용소에서 가장 사악하다고 알려진 경찰 (그러나 실제로는 또 선량한 생각도 가졌다)과 5장 공법을 배웠던 직장 책임자가 나에 대한 일부 마지막 진술서를 썼다. 이번에 그들은 나를 의장 단상에 앉히고, 그들은 내 밑에 앉아 질문을 했다. 전체 과정은 매우 평화로웠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나의 뜻대로 상세하게 기록했고 내게 펜을 주며 말했다. “보고 만약 부적합한 것이 있으면, 당신이 직접 고쳐도 된다.”
위는 5년 전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나는 중국대륙의 모든 수련생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대법의 한 입자로서 나는 다만 모든 이들이 한 것의 조금만 한 것뿐이고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것이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법제자들이다. 매 입자는 대법의 무한한 위력을 느낀다. 우리가 하는 일체에서 우리는 사부님 편에 서서 반영해야하기 때문에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사부님과 법이 있고, 파룬이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으며, 불법은 무한하다. 나는 “당신이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을 때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다 해낼 수 있는 것이다!”하는 진리의 산 증인이다.
발표일자: 2006년 4월 16일
원문일자: 2006년 4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6/3/15/122842.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4/16/720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