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23일] 현재 법을 실증하는 일을 아주 많이 하면서 매우 바쁘다. 그리하여 많은 동수들(나를 포함해서)이 《명혜주간》을 아주 적게 보는데, 이는 동수들과 교류할때 늘 듣는 소리로 어떤 수련생은 골라서 보거나 혹은 아예 보지 않는다고 했다. 두려운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더욱 안전해지는 문장을 보기 좋아하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수련생은 자신의 안전을 주의해야한다는 문장은 보지 않고,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며 사부님께서 계신다고 한다.
그러나 주간을 보는 동시에 당신은 자신에게 매우 많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이 문장을 보기 좋아하는데 왜 보기 좋아할까? 어떠한 말이 당신이 집착하는 어떤 생각과 부합된 것은 아닌가? 왜 이 문장을 보기 싫어할까? 자신의 무슨 마음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골라서 보는 것은 일하는 형식처럼 끝내 임무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보지 않는 것은 무슨 원인인가? 두려움? 게으름? 아니면……그렇다면 《명혜주간》은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인가? 속인에게 보여주는 것인가? 연공인(대법제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보지 않는 것은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며 자신을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주간을 보는 것도 하나의 수련이고 사람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며 매 편 문장을 볼 때의 심태, 생각은 모두 그중에서 자신이 아직 무슨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련생이 잘 하였을때 자신은 제고하려는 생각이 있고 정진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며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홍음》). 수련생이 잘못했을 때 글을 쓰는 것도 기타 동수들이 굽은 길을 적게 걷고 곧장 집착심을 제거하고 정법 노정에 잘 따라오게하려는 바램이다.
사실 또 어떻게 주간을 보는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복사기가 잘 되지 않을 때, 컴퓨터가 문제가 나타났을 때,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잘 대하지 않을 때, 예컨데 금방 한 단락을 썼는데 나의 볼펜이 떨어져 글을 쓸 수 없었지만 현재는 잘 되고 있으며( 자신이 조급한 심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함) 이렇듯 사소한 것은 모두 우연이 아니며 바로 발견하면 바로 개정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하나의 수련인으로 여기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한 정법시기 대법제자에 부끄럽지 않는 것이다.
문장완성: 2006년 4월 22일
문장발표: 2006년 4월 23일
문장갱신: 2006년 4월 23일 00:39:09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4/23/1258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