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지린 한 입자
【명혜망 2006년 4월 14일】며칠 전 자료를 가지러 갔다가 함께 수련하는 어느 부부를 만나서 잠깐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부족한 면을 지적하면서 각기 불평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서로 자신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심지어 그의 아내는 상심하여 말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그들의 말을 듣다보니 서로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울 뿐 상화로운 심태로 문제를 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이런 일에 부딪혔다면 이렇게 대하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을 보았으니 나에게 무슨 좋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인가?
나는 최근 나 자신의 사상과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3가지 일을 하면서 동수와 교류를 적게 하는 외에는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두 동수에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인식을 나누었다. 우리가 흔히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았을 때 사실 그 모두는 우리 자신이 아니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이 나타나 우리의 평온한 심태와 응당 있어야 할 이지들을 교란하는데, 이럴 때 우리는 이런 부족한 부분을 찾은 것에 기뻐해야 하며, 그것이 나타났을 때는 그것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순정한 생명이기에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사상과 행위는 우리 자신이 아니므로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조금 지나자 다른 수련생이 와서 말했다. 쑤자툰처럼 중공의 강제 수용소에서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고 있는 사실이 폭로된 후 어떤 수련생들은 두려워서 감히 자료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자료를 가져갔더라도 적게 배포한다는 것이었다. 계획한 바로는 최근에 집중적으로 각 병원에 진상 자료를 넣기로 했는데도 어떤 수련생들은 배포하지 않고 있으며, 또 어떤 수련생은 여러 가지 구실을 대면서 명령식으로 단체로 행동을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 곳에나 넣으면 다 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는 동수들의 분노를 자아냈으며 정체를 돌보지 않고 자료도 배포하지 않는다면 사부님의 제자인가! 라고 말을 하면서 목소리 마저 변해 버렸다.
그 일에 대해서도 나의 관점을 말했는데, 우리는 응당 쑤자툰 사건을 이용하여 공산악당이 대법제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있는 폭행을 폭로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악한 본질을 사람들에게 더 똑똑히 알려서 악당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법에 대하여 사람들이 더욱 깊이 이해할 것이며, 대법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을 선택하게 된다. 일부 동수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하여 우리들이 그들을 원망하며 분개하거나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더욱 안 된다. 각자 자신의 길을 걸으며 우리는 정체로서 응당 서로 도와야 하는바 그 방법을 생각하여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만약 조건이 허락되면 함께 법공부도 하고 작은 범위에서 교류도 진행한다면 대법이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개변 할 것이며, 법공부가 따라가면 다른 일들은 점차 잘하게 될 것이다. 만약 현재 그들이 자료들을 배포할 생각이 없다면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 심성이 도달해 있지 못하면 오히려 손실이 날 수도 있는데, 그들이 병원에다 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주변이나 혹은 주택가에 가서 하도록 하며, 편지로 하는 형식이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수련생은 듣고나서 머리를 끄덕이더니 점차 화났던 마음도 가라앉혔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 온 후 나는 또 다른 장소에서 3명의 수련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과도 잠깐동안 일부 문제에 대해 교류를 나누었다. 나는 동수 사이에 나타난 문제에 대해 말했다. 나 자신도 때로는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안일한 마음이 생겨 매일 연공을 하지 못하거나 발정념을 해도 조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또 쑤자툰 폭행에 대해 건의를 하면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3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도 했고 나태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이렇듯 말을 하면서도 내가 말하고 있는 억양이 평소의 그런 안정된 어조가 아니라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동수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는데 왜 내 말의 어투가 변하고 있는가? 그때 한 수련생이 문뜩 여러 사람에게 무엇이 ‘당팔고’인가? 라고 물으면서 아주 곤혹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수련생이 그것은 공산 악당의 고정된 격식이라고 하면서 현재 이런 형식이 ‘당팔고’와 같은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문제에 부딪히면 늘 본보기라면서 그의 인식을 말하는데 말하는 어조가 달랐다.
나는 수련생이 하고 있는 말이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에는 서글픈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비평이나 질책에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그러면서도 마음은 나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질투심이 있어서 내 말을 들으면 그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니까 어떠어떠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게 되면서, 나는 진정으로 내 앞에 놓여진 일들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부딪힌 모든 일에 나자신을 개변하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더는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보지 말하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깊숙히 숨겨져 있던 명리심, 말하기 두려워하는 마음, 이것들이 매우 미세하게 은폐해 있는 것을 보았으며 다른 사람을 지적할 때 흔히는 그것이 나자신의 부족한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나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들인 것이었다. 이렇듯 무조건적으로 나자신을 향해 원인을 찾았을 때, 내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상서로웠으며 동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내심으로부터 미소가 흘러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도록 해 주신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감사 드리며 더욱 잘하여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 (苦度) 에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장완성:2006년 04월 12일
문장발표:2006년 04월 14일
문장수정:2006년04월13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4/14/125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