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6년 4월 11일]
4, 집착을 제거하고 자아를 내려놓아 무조건 안으로 찾는다.
정법 수련은 부단히 집착을 없애고 자아를 내려놓고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으로 부딪히는 일마다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어 수련하고 자신의 심성 경지가 정법 노정에서 제고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늘 대법의 일을 하면서 천방백계로 어떻게 잘하는가를 수련으로 여기고는 일하는 마음으로 즉, 대법의 일을 한다는 비호하에 자신이 제거하지 못한 집착을 끊임없이 확대하여 낡은 세력의 흑수와 썩은 귀신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엄중한 교란을 조성하였다.
나자신이 정을 너무나 중하게 여기다 보니 동학들에게 진상한 것도 효과가 더욱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정에 깊이 빠져 나올 줄 몰랐는데, 마음이 조급하여 맥이 없었고 상심하여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을 보면 사업에 성공하여 생활이 행복한데, 나는 박해를 받아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보니 없애지 못한 명, 리, 정과 많은 집착심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자비감, 허영심, 자존심, 질투심 등등 모두 밖으로 표현되면서 잡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정념은 약해지기만 했다.
나는 이것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는 재빨리 나자신을 조절하려고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하였으나 책을 읽으면서도 집착심은 또 올라왔다. 눈은 책을 보지만 머리는 복잡하여 감히 더 책을 읽지 못하였다. 법에 대하여 존경하지 못한 것으로 발정념을 해도 조용하지 못하고 사상업의 교란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주의식을 가강하여 이 상황을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그랬더니 정황은 좋게 변하여 정념이 강해진 것 같았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집착심이 올라 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기가 죽었다. 정말로
“수련은 어렵지 아니하나
마음 버리기 어렵노라
많은 집착 언제 가서 끊을소냐
고해(苦海)는 어디까지나 대안(岸) 없음을 다 알거늘
의지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으려니
어떻게 속세를 벗어나랴
(《홍음(2)끊어라 》)
나는 상황은 깨달았으나 실천에 옮기자니 정말로 힘들었다. 번번히 잘 걷지 못하여 마음이 소침해졌다. 법을 실증하는 일도 마음에 있지 않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나자신을 방임하여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다. 가정의 환경도 좋지 못했고 오는 사람들도 많아 매 번마다 책만 들면 곧 일이 생겼다. 바쁘게 설쳤지만 세 가지 일을 다 잘못하여 마음이 조급할수록 더욱 교란을 받아, 어린 조카가 방학이라 하여 과외공부를 하러왔고 형제들도 나에게 와서 휴양하려 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나자 머리는 혼잡하고 무거워졌다. 동수지간의 협조도 잘 되지 않아 원래 제때에 동수에게 알려 줄 일을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수간에 모순을 일으켜 그가 찾아와 따지고 드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런 혼잡한 장면을 보고서야 나의 마음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즉시 동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뒤 안으로 찾아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동수와 교류를 했다. 동수들도 법에서 인식하고 마음을 내려놓고는 나를 관용해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진정으로 나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지속하게 되면 사악에게 교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대법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는 일체 집착을 내려놓고 조용히 법공부를 하면서 안으로 찾아 집착의 근원을 찾았다. ――자아를 집착하는 낡은 관념, 나는 어떠어떠하고 어떻게 잘하고 이런 마음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강력한 마음이 생겨서 잘하지 못할 때는 또 소극적이고 기가 죽고 실망하고 도피한다.
여기까지 글을 쓰자 나자신에게 더욱 깊이 숨어있는 더러운 마음, 대법을 이용하는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대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완미한 경지를 추구하며 자기를 실증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마음인가?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수련생이 쓴 이와 관련된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이런 마음이 종래로 없다고 여겨왔는데, 이 마음이 지금까지 엄페되고 엄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더러운 물건을 안고 내려놓지 못하니 어찌 교란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깨달은 후 즉시 정신을 차리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하여 자신을 정화시켜 교란을 배척했다.
그때 사부님의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한다》를 보니 글자마다 마음이 진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분 수련생들은, 심지어 노(老)수련생마저 혹은 많게 혹은 적게 소침(消沉)한 상태가 출현했고 정진(精進)의 의지가 해이해졌는데, 이 역시 정법시간(正法時間)에 대한 집착 혹은 부정확한 후천관념(後天觀念)의 교란으로 조성된 것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낡은 세력이 이전에 인류 공간 표층에 남겨놓은 교란요소와 사악한 영[邪靈], 썩은 귀신[爛鬼]으로 하여금 빈틈을 타게 했으며 이러한 집착과 사람의 관념을 크고 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런 소침한 상태를 조성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자 나의 심중의 곤혹은 날아가 버리고 법리의 빛은 층층의 장애를 제거하였다. 이 경문에서 지적한 것은 그야말로 지금 나의 상태였다. 내가 이런 사악의 교란으로 거기서 헤어 나올 줄 모르고 소침해지고 해이해져 진상을 알려서 중생을 구도하는 제일 좋은 시기를 놓치고 있으면서 나자신을 험악한 변두리에 세워놓았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또 한 번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체험하고는 나는 또다시 일어났다. 대법에 대하여 바른 믿음으로 가득차 있으며, 나자신에게 깊이 숨은 근본집착을 퍼 내어 실제 수련 중에서 철처히 제거하고 재빨리 자신을 바로잡고 있다. 자아를 내려 놓고 일체를 사존님께 바쳐 법에 용해되고 용맹 정진하여, 사부님의 간곡한 희망과 고생스럽게 자비로 제도하고 계시는데 어긋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체험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2001년 이전에 어느 곳에서 협조인을 맡아 많은 동수들과 접촉했고, 많은 것을 감당하며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였다. 표면으로 보면 기세높게 했지만 실제로 돌이켜보면 그것이 어디 수련인가? 일은 많이 했지만 일하는 마음, 환희심, 쟁투심, 선두를 다투는 마음, 과시심, 욕심, 명을 추구하는 마음 ……각종 집착과 관념이 자생하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팽창하고 또 팽창했다. 기실 그때에 나와 연락하는 동수들은 저마다 자료점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인정과 관념의 집착으로 인하여 누구도 현실을 개변하려고 하지 않았다.
후에 조용히 법공부할 겨를도 없다보니 틈이 갈수록 커지면서 사악의 미친듯한 박해를 받았다. 나자신은 아주 큰 굽은 길을 걸으면서 혼자서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정도에 처했고, 다른 몇 몇 동수들도 연루되어 당지에 진상을 알리는데 아주 큰 손실을 가져 와 아주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이는 이 지역의 전체 수련상태와 연관이 있었지만, 나로 놓고 말하면 교훈은 너무나 심각했다. 나는 정말로 깨어나야 하고 이지적이 되어야 했다.
나는 나와 같은 집착이 있는 동수들은 자신을 대조하여 제발 일하는 마음, 명리심 등 사람마음의 집착이 자신을 좌우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반드시 마음을 조용히 하여 법공부를 많이하고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왜냐하면 법은 원융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평형할 것이다. 당신이 조절할 것이 수요될 때는 다른 동수들이 묵묵히 보충하는데 당연히 똑같은 그런 교조는 아니다. 각자 자신의 정황에 근거하여 매 번마다 정오하는데, 기실 잠시 정돈하는 것도 역시 자신과 법에 대하여 책임지는 표현이다.
우리가 바르게 가는 길이 곧 법을 실증하는 가장 좋은 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박해를 받으면 자신이 반박해 중 아무리 잘 걸었다 하더라도 모두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거대한 손실을 가져 오는 것이다. 어떠한 정황에서도 우리의 승화와 제고가 제일 위로써 역시 대법의 일을 잘하는 보증이다. 자신이 갈수록 순정해야만 역사의 중임을 더욱 잘 짊어질 수 있고 자신의 작용을 더욱 잘 발휘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수련의 길에서 나는 아주 거칠고 느리게 소같이 무거운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는 줄곧 방향을 분간하지 못하고 동쪽 벽에 한 번 부딪치고 서에서는 넘어지고 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아에 너무 집착했으며 일하는 것에 집착한 것이었다. 자신의 수련과 제고를 홀시하여 응당히 잘 할 일을 잘못했고, 특히 진상을 많이 알리면서 중생을 구도해야 할 보귀한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특히 《9평》인식이 부족하여 3퇴의 진전이 너무나 더디면서 또 아직도 수련하지 못한 집착이 있는데, 동수지간의 원융 등등 문제이다. 모두 나자신이 진일보 바로 잡고 배로 노력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 가는데 뒷다리를 잡아 당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의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중의 한 단락 법으로 동수들과 나누려 한다. “하지만 당신들이 능히 이 가장 위대한 신의 길에서 굽은 길[彎路]을 적게 걷고,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며, 층차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나와 당신들 내지 당신들을 기대하는 중생들의 바람[願望]이다. ”
최근에 느낀 체험으로 우리의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주신 “기제,기기”[机制、气机]와 같아 이미 벌써 다 놓여져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집착할수록 더욱 꼬이고 더욱 그런 “기제”로 나타나는 자연스런 기제 상태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아를 내려놓고 법에 용해 되어야만 더욱 그런 끊기지 않고 자연적인 물흐름과 같은 미묘하고 갈수록 가벼워지는 상태를 느낄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이 층층의 자아를 타파하고 집착을 제거하며 자신을 정화시키는 수련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한층 한층의 무거운 껍데기를 벗어 버렸다. 한 번 더 체험을 쓰지 않은 동수들은 빨리 필을 들기 바란다. 이렇듯 수련하면서 제고하는 얻기 어려운 기연을 놓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06년 04월 10일
문장분류 :【제자 절차】
문장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6/4/11/1249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