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3월 27일】최근에 줄곧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에 대해 깨닫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는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뻔히 알면서도 또 엎어진다. 그리고는 자제력이 부족한 나자신을 스스로 책망한다. 오늘 나는 불현듯이 깨닫게 되었다. 기실 나에게는 아주 깊숙하게 숨겨져 있던 커다란 하나의 마음이 있었는데 바로 상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것이 외재적으로 표현되기로 일에 부딪히면 도피하는 것인데 이 도피는 내가 세상을 알게 되면서부터 줄곧 존재해 온 물질이다.
당시 대법에 입문할 때 나에게는 도피하는 마음으로 대법을 공부했는가? 그렇다. 다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당시 나는 무슨 도피를 했는가? 대법에서 인(忍)을 이야기 하기에 나는 이 문자의 표면에서 도피할 최대의 구실을 찾았다. 예를 들면 어려서부터 나는 업신여김을 많이 받았고 (아주 많은 동수들이 모두 비슷한 경력이 있는 것 같다) 신체가 좋지 않았으며, 싸움은 근본적으로 감히 하지 못했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업신여겨도 어쩌지 못했고,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님과 이에 대해 말하지도 못했다.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을 찾아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리어 그렇게 되어 잘되었다면서 집에서 매를 더 맞기 때문이었다. 이런 환경속에서 나는 사람들과 거래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일에 부딪히면 도피할 수 있으면 되도록이면 도피하는 이런 성격을 양성하였다. 기실 사람과의 교제 중에서 상해를 받을까 무서워하는 동시에 사람들과 거래하는 사교성도 부족했다. 대법을 만난 후 대법에서 인을 말하는 것을 보고는 나자신의 원래의 행위가 모두 정확하다고 여겼다. 마치 나스스로 줄곧 “인”을 한 것 같았다. 이는 내가 “무서운 마음”을 버리지 못한 제일 큰 구실로 되었지만 나는 줄곧 의식하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너를 때려도, 너는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은 대법의 요구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과, 감히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이 양자는 본질적인 구별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은 “인”이나, 감히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은 “무서움”이다. 그러나 나는 10년동안 줄곧 이런 “무서움”을 “인”으로 여겼다. 줄곧 모순에 부딪히면 도피해 버리는 방법으로 표현되었고, 4.25 와 7.20 때 다른 동수들은 가서 법을 실증하였지만 나는 도리어 한쪽 구석에 숨어 있었다. 현재 사업터에서 동사자와 책임자들과 모순이 생기면 나는 곧장 사표를 던져버리고는 집안의 아내가 이로인해 생억지를 부려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나스스로 나는 참는다고 생각했다. 기실 현재 돌이켜 볼 때 나는 참은 것이 아니라, 나는 근본적으로 감히 말하지 못했고 감히 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말할 수 없이 소란을 피우자 나는 정말로 더 봐줄 수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혼하겠으면 이혼하라, 나도 당신한테 빚진 것이 없으니 이렇게 나를 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 아내는 그제서야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떠들지도 않았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 일은 바로 한차례 무엇이 “인”이고, 무엇이 “무서움”인가를 구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기실 연공인이 어떻게 모순을 도피할 수 있겠는가, 만약 도피할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집착심을 버리는 난이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10년동안 내가 도피했던 것의 결과는 더욱 큰 곤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련의 기연을 잃어버릴뻔하였다. (도피 때문에 나는 4년넘게 노정에 떨어졌었다) 사업상의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선후 두 차례 실직을 1년 동안이나 하여 생활에 거대한 영향을 조성하였는데 교훈은 침통했다.
오늘 이러한 나의 집착을 찾았지만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그것을 초월한다는 것은 나로 말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모순이 아주 첨예하더라도 이전에는 감히 직면하지 못하던 일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연공인은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인이 두려워 좋지 못한 일을 하는 것으로 자기를 상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두가지 인소를 구비해야 한다. 한가지는 고생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깨닫는 것이다. ” (《시드니 설법》).
이전에 나는 다른 사람처럼 하지 않고 도망쳤으며 또 빨리 도망쳤다. 그러나 현재 도망칠 수 없으며, 그곳에 서서 자비하게 그를 보면서 선을 권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체득이기에 희망하건대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3월 24일
문장발표:2006년 03월 27일
문장갱신:2006년 03월 27일 15:24:18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3/27/12369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