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2006년 2월 28일】사부님은 《원만을 향해 나가다》에서,“집착을 갖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할수 있다. 그리하여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길렀는바 관념에 이끌어 가기까지 하면서 동경하는것을 추구하고 있다.”“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물론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상의 작용하에서 대법의 문에 들어올수 있다. 그렇지만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후에 책을 보고, 법을 배우며 정진(精進)하는 중에서 자신이 입문시에는 어떤 생각으로 대법에 들어왔는가를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한 동안 수련을 하였는데도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한 마음이 비로소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끔 한 것이 아닌가? 만약 이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함이다.”라고 하셨다.
사부님의 이 경문을 읽은후 나에게 긍정적으로“사”에 대한 집착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줄곧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였다.
나의 수련한 과정을 돌아보면 법을 얻기전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교는 좋고, 또 어떤 기공은 좋고 하면서 많은것을 소개하였다. 나는 이때로부터 종교와 기공 수련에 흥취가 생겼다. 그러나 어느것이나 모두 나의 요구와는 틀렸다. 나는 진정 합당한 법문에 들어가 수련하려고 마음먹었다. 그후 나는 주동으로 어머니(연공인)로부터 내가 줄곧 관심이 없었던 파룬궁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나는 “이론이나 들어 보려”는 마음으로 사부님의 녹음 테프를 듣기 시작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사부님의 설법에 흡인되였다. 사부님은 『전법륜』에서 “또 어떤 사람은 연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일생중에는 진리에 대한것이 있었으며, 인생의 참뜻을 얻기 위해 고생하였다. 그가 일단 우리의 파룬따파를 학습하면, 금방 그가 인생에서 허다한 알고 싶었던것들을 모두 알게 되며, 여기에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나는 1995년 3월부터 정식으로 법륜공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처음 입문한 목적이 매우 단순하여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못한 않은 탓으로 “대법을 나의 과학 관념에 부합되게 한것도 아니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것도 아니고, 오직 수련을 위하여 근본 집착을 찾고 찾았는데 아주 긴 시간에도 찾지 못하였다.
어느날 갑자기, 나는 처음 대법문에 들어섰을때에는 비록 수련을 위하여서이지만, 그러나 사상중에는 줄곧 수련을 통해야만 번잡한 세상에서 철저히 해탈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초기 수련인들의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근본 근원은 바로 수련하여 원만되면“나의 행복”이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리상에서는 잘 알고 있다. 홍음에서 “吃得世上苦,出世是佛陀”(《洪吟))여전히 아주 강한 안일한 마음, 게으름, 자사,고생하기 싫어하고,어떤때에는 고생을 좀 하였다 해도 .역시“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서였다. 이것은 얼마나 더러운 사심이며 “나”를 위하는 마음인가!
“나의 행복”이란 집착으로 인해 나는 줄곧 정진하지 못하였다. 비록 세가지 일을 하느라고 하였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원만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어떤때 법에 따라 착실하게 잘 하였다고 생각될때 “원만에서의 자본으로” 느꼈고, 또 어떤때에는 정법이 빨리 끝나면 고생은 더 없겠지 하는 생각, 반면에 또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여 정법이 결속되면 원만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정법시기 대법 제자에 대하여 사부는 “당신에게 원만 도달에 대한 표준을 말하면 바로 무거운 짐을 부려 놓듯이,자신을 늦추고,아무 일이나 하기 싫어한다. 사부님이 당신들에게 이런 신성한 일을 정진의 동력으로 가해주려고 한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들이 지금까지도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당전의 마난중에서 나올수 없다. 바로 속인속에서의 안일한 마음이 움직여 정진하지 못한다.(邪悟)”고 이야기 하셨다. 총적으로,3가지 일을함에 있어서 심혈과 노력을 기울리지 않으면 제대로 할수 없다.
법리상에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어떤것인지 잘알고 있다. 그러나 “무사 무아, 선타후아” 대로 수련하자면, 개인의 원만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바로 구도 중생이다.
“나의 행복”이란 집착으로 인해 한면으로는 사생활에서 안일한 마음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원만을 추구하였다. 정말로 한손에는 사람을 붓잡고 놓지 않았고, 다른 손에는 부처를 붓잡고 놓지 않았다. 사부님은 원만으로 나가자에서 “사람의 이 마음이 있음으로 하여 여기에 남게 되였다.”라고 하셨다. 사람의 관념은 정진할수 없다. “나의 행복”이란 집착때문에 나는 진정으로 나의 신변에 있는 가족, 친구, 친우, 동사자들에게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때에는 그들과 모순 충돌도 생겼다. 나는 이렇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도하는데 시간을 놓지게 되였다.
만약 자신의 행복을 위하였다면 당초에 “대각자(大自在)”에서 한보 한보 그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세간으로 내려와 윤회의 고생을 겪지않았을 것이다. 대법 제자가 세간으로 내려온 것은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홍음. 법을 돕다)”이런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려면 우주의 천지개벽인 이때 “법을 증실하는 중”, 마땅히 사부를 도와 구도 중생의 중임을 감당해야 한다. “실질상 대법 제자의 제일 큰 임무는 구도 중생이다. 이것이 법을 증실하는 진실한 체현이다.(2005년2005年旧金山讲法)” 만약 개인의 원만을 제일위에 놓고, 구도 중생을 홀시한다면, 자신이 사전에 사부님과 서약한 맹세를 실행하지 않는 것으로 된다. 이것은 정법시기 대법 제자라고 할수 없다.
수련을 이렇게 긴 시간 하였지만 나는 근본적인 집착을 여태껏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깨닫은 후에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여 정말로 사부님께 부끄럽다. 이문장도 쓰려고 시도한지 오랜 시간이 되었는데 미루다보니 오늘에야 비로소 올리게 되였다. 그러므로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더욱 정진하여 사부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세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의 노정을 따라가야 한다. 끝으로 사부님이《마지막일수록 정진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우리 공동이 세가지 일에 대해 노력하여야 한다. “기실 모두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난 수련인들은 모두 일생을 수련의 길에서 끝을 맺는 중 감히 한시각도 태만하지 않았다. 대법에서 구도 중생 과위를 얻을수 있는 제자들의 수련은 제일 쉬운 수련 법문이다. 이러한 제일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법을 수련하는 길에서 왜 더욱 정진하지 못하겠는가? 당신들은 이미 알고 있다. 대법 제자의 수련 방식은 세간속에서의 수련이고 수련중 또 줄곧 사람의 마음을 본다. 사람의 집착, 정법에서의 교란되는 많은 인소,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신의 길로 가면서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하는것이 그렇게 힘든가? 만약 하나의 수련자로서 이러한 것조차 버리지 못한다면 그러면 수련인의 체현은 무엇인가? “
나는 당신들이 알고 나면 아주 빨리 따라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갈래 위대한 신의 길로 가는중 조금이라도 비뚫어져 앞으로 자신에게 유감을 남겨놓아서는 안된다. 층차의 거리가 가까와야 나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생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 이 한편의 문장이 나와같은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동수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기를 원하면서 부족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 지정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허스.
문장 완성: 2006년 2월 27일
문장 발표: 2006년 2월 27일
문장 갱신: 2006년 2월 18일
문장 분류: 제자 절차
문장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2/28/1217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