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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말함에 대한 하나의 문제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2월12일] 동수와 교류할 때에 한가지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아침 시장에서 한 노년 동수께서 진상을 말할때 매우 선의적으로 어느 한 사람에게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사람은 말하기를, “파룬따파가 좋으니 그럼 당신은 나를 도와 설떡을 한 봉지 사주시오.” 이 노년 수련생은 그럼 한 봉지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한 봉지를 가져갔고 그 노년 수련생은 그를 대신하여 돈 5원(元)을 지불하였다.

우리 몇 분의 동수들이 함께 이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교류하였는데 내가 인식하건대 진상을 말하기 위해 사람의 좋지 못한 일면을 방임해서는 안되며 또 그가 대법이 좋음을 기억하도록 하기위해 그에게 물건을 사줘서는 안된다. 지금의 사람은 무엇이 좋고 나쁨을 알수 없으며 이득을 보면 좋다 하고 그더러 가져가라고 하면 사양하지 않고 가져가는데 그가 정말 대법이 좋다는 것을 기억했는가? 오히려 가져간 후 당신을 바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당신이 그를 구하려고 할 때 그는 또 당신에게 조건을 내걸고 당신이 한 척의 아름다운 배로 그를 구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이것이 어찌 될수 있단 말인가?

수련생이 말하는데 또 적지않은 동수들이 상인들과 진상을 말할 때 쓸데없는 물건을 많이 산다고 한다. 상인도 말하기를, 당신이 ‘파룬따파가 좋다’고 하는데 그럼 당신은 나의 물건을 좀 사가시오. 수련생은 곧 산다. 이렇게 한다면 그가 능히 진심으로 대법이 좋음을 접수할수 있겠는가? 또 능히 진상을 말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내가 느끼건대 그래도 대법 진상은 똑똑히 말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인식하건대 우리가 진상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수련한 선(善)과 정념으로 일체 부당한 것을 바로잡으며 진정 그를 구하는 것이지 순종하여 좋은 사람의 좋지 못한 일면에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동수들께서 틀린 곳이 있으면 시정하여 주시기 바란다.

문장완성: 2006년 2월 10일
문장발표: 2006년 2월 12일
문장갱신: 2006년 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2/12/1205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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