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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2월 3일] 최근의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법공부를 적지 않게 하고 명혜망도 늘 보고 있으며 진상도 늘 해왔으나 어쩐지 자신과 법 사이가 격리된 것 같았다. 정법 노정과 격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법 속에 용해시키지 못했다. 요즘 명혜주간에서 몇몇 동수들이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낸 체험담을 읽고서 매우 큰 깨우침을 받았다.

나도 이전에 근본 집착을 찾아보았고 이젠 내려놓아야 한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신체를 중히 여겨 건강한 신체를 얻으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법 속에 출로를 찾으려고 했는데 법을 얻기 전에 감정상에서 상처를 입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전법륜》 제3강의 “반수와 차공” 중의 “만일 누가 그를 좋지 않다고 하면 그도 좋아하지 않는다. 명리심이 모두 일어나서 그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고명하며 그가 대단하다고 여긴다.”를 읽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근본 집착이 자신이 잘 살려고 하고, 편안하게 살려 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였음을 단번에 알게 되었다. 이전에 수련하면서 보아온 것들은 모두 근본 집착에서 비롯된 자질구레한 집착들로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물질은 근본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나의 전반 수련과정은 마치도 아기가 걸음마를 타듯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면서 대법에 먹칠을 하고 동수에게 상해를 주었으며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손실을 주었던 것이다. 대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진정으로 하지 못할 때가 아주 많았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제자였다. 바로 사부님께서 자비하시어 지금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신 것이다.

나는 1999년 7월에 대법을 얻었다. 나는 가난하지만 아주 따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아주 자애롭고 선량한 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른이 될 때 까지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잘했다. 어릴 때의 목표가 바로 농촌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후에 나는 중등전문학교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도 순조롭게 행정부분에 취직했다. 사업에 참가할 때가 22살이고 결혼 후 아들을 낳았으며 남편은 나를 잘 대해주었다. 시댁 식구들도 나를 좋게 대해주었다. 나의 인생여정은 참 깨끗하게 마디마다 더 높이 피어나는 것처럼 정말로 무엇이 근심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바로 내가 걷는 길이 순조롭고 남편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나는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그에게 미안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나의 직장에 와서 야단을 쳤고 시집에서도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줄곧 자존심이 특별히 강했던 나는 언제나 찬양소리 속에서 살아왔기에 이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나의 전반 인생의 기둥이 뽑히어 나가는 듯 했다. 그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면목이 없었다. 명리심이 커다란 상처를 입은 나에겐 기쁨이란 없었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체단련을 즐겼고 주의력을 전이시키기 위해 기공을 연마했다. 후에 대량의 시간을 들여 관상, 점치기 등 방면의 책들을 연구했고 또 후에는 불교 중의 경서들을 읽었으며 인과보응에 관한 이야기책들을 보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았다. 나의 새로운 삶의 지점(支點)을 찾은 것이다. 나는 수련을 하고 싶었다. 바로 이러한 형편에서 나는 대법을 얻게 되었다. 개인수련 단계에선 매우 정진하여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또 아주 큰 열정을 들여 다른 동수들을 이끌고 수련하였는데 사부님께서 얼마만큼 헌신하면 얼마만큼 얻는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또한 파룬궁은 정토(淨土)로서 모두가 선량하고 모두가 안으로 찾으며 누구도 속인시절의 그런 지저분한 일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누구도 남의 부족한 점을 밝히려고 하지 않으며 각자가 같지 않은 곳에서 왔다. 그 당시의 그 편안한 느낌은 한번 죽었다가 다시 새 삶을 얻은 것과 다름없는 나로서는 또 다시 희망을 찾은 것이었다. 대법 속에서의 단련으로 표면의 일부 욕망과 집착을 얼마간 버릴 수 있었고 사람의 이치보다 높은 많은 법리를 알게 되었으며 신체는 부동한 정도의 정화를 얻었다. 가정도 화목해지고 후에 남편도 수련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속인의 명리에 집착했던 나는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는데 근본적인 집착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은 진선인 우주 특성에 동화되어야 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하며 무슨 일이든 먼저 남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수련하기 전에 사람 가운데서 개인 행복을 추구했다. 아울러 사람들 속에서 좌절당하고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대법수련을 바람막이로 이용하려고 했으며 대법 속에서 더욱 큰 행복을 얻어 신선이 되려고 했다. 얼마나 더러운 나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대법을 이용하여 자신이 얻으려는 것을 감싸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은페적인가. 낡은 세력의 생각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완전히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점(基點)에 섰는데 이것은 낡은 우주의 근본 특성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조차 나는 아직까지 개변하지 못하고 덮어 감추고 있으니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하여 매번 “실과 득”의 문제를 볼 때 마다 나는 늘 한 층의 안개에 격리된 듯한 감을 느낀 것이다.

시어머니가 동서 앞에서 나를 못생겼다고 비난할 때 마음속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시어머니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수양이 없는가. 수련에 깨끗하지 못한 점이 있기에 수련생들 앞에서 부끄러운 감을 느끼고 동수에게 집착이 있는 것을 보고도 선의적으로 제기해주지 못함은 나 자신의 수련을 잘 하지 못하고도 남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서 이익을 얻으면 흐뭇해하고 누가 나의 이익을 차지하면 속에 품고 끙끙거린다.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고 누가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면 반나절이나 불쾌해한다. 늘 누가 나에 대해 나쁘다고 원망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적게 생각한다… ….

이 근본적인 집착이 오랫동안 그 곳에 있었기에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려는 생각을 충격하면 안 되었고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바깥으로 찾았다. 지금에 와서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고할 기회를 배치해주신 것이었음을 알았다.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버리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도리어 매번 모순을 밀어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생활 중의 고생을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겨 허다한 사람들이 척척 아래로 떨어진다.” 《전법륜》 직장에서는 내가 이전에 법을 실증한 행동이 있다고 하여 나의 월급을 낮추고 장려금도 낮추었는데 말로는 파룬궁 생각을 적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끊임없이 나의 사업을 변환시켰다. 나는 그들이 미웠고 그것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겼을 뿐 자신에게 누락이 생겨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악한 낡은 세력에게 틈을 타게 되었으며 그것들은 구실을 대어 박해하고 있음을 근본 생각지 못했다.

1999년 7월 , 파룬궁이 탄압을 받은 후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동요된 적이 없었다. 대법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진정하게 관을 넘을 때, 진정한 고험 앞에서 진정하게 대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아 오점을 남기었다. 바로 수련생이 쓴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나 이 부분의 수련생들은 중대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흔히 근본적인 집착문제에서 곤두박질하며 여러 가지 교란이 나타나고 심지어 사오하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류의 이치는 반대이치라고 많은 면에서 말씀하셨다. “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이며 어떻게 잘 살고 편안히 지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연공인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니라 정 반대로서……” 《전법륜》 “사람이 난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시키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 正法理)이다. 그러나 실제 수련 중에서 고통이 왔을 때, 모순이 심금을 충격할 때, 특히 일단 사람의 그 완고한 관념을 충격할 때면 여전히 관을 넘기가 아주 어려우며, 심지어 고험(考驗)임을 뻔히 알면서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명리를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에 갓 입문할 때의 그 마음 속 매듭을 시종 진정으로 풀어내지 못하여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효과에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낡은 세력의 나에 대한 박해를 더욱 가중시킨 근본 원인으로 되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대법 역시 사람마음을 직접 가리킴이다. 특히 지금은 정법시기 수련의 최후의 최후로서 더욱이 이지적으로 법을 실증하고 대량으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진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마음속에서 놓지 못한 물건을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는가?” 그러므로 근본적인 집착은 나의 정진을 가로 막고 내가 세 가지 일을 잘 하려는 것을 가로 막아 나에게 소침상태가 나타나게 했다. 나는 끝내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냈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아가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동안 수련을 하였는데 아직도 당초 생각인가 아닌가, 사람의 이 한 마음이 비로소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끔 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함이다.”

만약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진정으로 그것을 똑똑히 알았을 때 나는 펄쩍 뛸 지경으로 놀랐다. 나는 지금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며 수련을 한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을 써내겠다고 결정을 내린 후부터 교란이 아주 커서 몇 차례 문장을 써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어제 0시 문장을 다 쓴 후 꿈을 꾸었는데 매우 큰 한 무더기 더러운 물건들이 내 몸 속에서 떨어져 나갔다. 참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다. “당신의 씬씽(心性)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신체는 하나의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이며, 당신의 씬씽(心性)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 신체상의 물질도 보증하고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어떤 변화인가? 당신이 추구하고 집착했던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은 버리게 될 것이다.”(《전법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로서 오직 더더욱 정진하는 것만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미안하지 않는 것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이름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틀린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문장완성: 2006년 2월 1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2/3/1199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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