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중생 구도만을 생각하라

글/ 허난성 난양시 대법제자 정위

[명혜망]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려고 한다. 한 때 아주 선량한 사람이 있었는데 씬씽(心性)이 아주 높았다. 한 신(神)이 그를 제도하고자 생각하고,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고험(考險)하고자 했다. 초겨울 어느 추운 날, 그 남자가 강 옆에 있는 그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신(神)은 자신을 학자로 변형시키고 이 남자에게 접근하여, 강 건너편으로 그를 업어 날라달라고 부탁했다.

강이 아직 얼지는 않았지만 물은 얼음같이 찼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 남자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는 학자를 등에 올라타게 했다. 그가 학자를 강 건너편에 데려다주고는 돌아온 후, 발을 말리고 신을 신고는 밭일을 다시 시작했다.

갑자기 강 건너편에서 학자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것이 들렸는데, 그가 집에다 두고 온 것이 있으니 그를 다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강을 건너가 학자를 다시 데려왔다. 몇 분 후, 학자가 집에서 왔고 농민은 그를 다시 데려다 주었다. 농민이 강 이쪽으로 돌아오자마자 학자가 또다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가족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농민은 다시 한 번 건너가서 그를 데려왔다. 학자가 집에서 돌아왔고, 농민은 다시 그를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번 했지만, 농민은 한 마디도 불평을 하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매번 강을 건넜다 와서 한 번도 학자를 뒤돌아보는 일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곧바로 밭일로 돌아왔다. 학자도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사람이 아주 높은 도덕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했으니 그가 훌륭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얼음이 어는 물을 건너야 했어도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가 학자를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을 반복적으로 부탁받았을 때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자가 한마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보상을 구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는 마음에 초점을 두며 불평도 후회도 없었으며,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그에게 한 치의 집착심도 없었다. 그는 과거에 도를 수련했던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진상을 통해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서, 우리가 모든 집착심을 내려놓아야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진상을 똑똑히 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우리 자신의 수련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잘하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만약 우리 모두가 이야기에 나오는 농민처럼 할 수 있고 어떤 환경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단연코 중생구도에서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진상은 우리 매 한 대법제자의 성스러운 사명이자, 이것은 또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의무이다. 법공부를 더욱 잘하고 더욱 자주 할 때에만, 우리는 각종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은 진상을 통해 중생을 구도하는 우리의 노력이 성공할 수 있는 진정한 보장이다. 다음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일부 집착심들이다.

두려움에 대한 집착. 이 집착심은 두려움과 걱정이 많은 것이다. 이것, 저것이 두렵고, 무엇을 잃을 것이 두렵다. 이것은 실제로는 명,리,정(名,利,情)을 포기하지 못한 결과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집착심을 갖고 진상을 하게 되면, 그(녀)의 마음은 평정되지 않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자기만족에 대한 집착심. 이 집착심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진상을 설명했을 때 그 사람이 쉽게 이해했을 때 지나치게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의기소침에 대한 집착. 이 집착심은,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이 잘 들으려 하지 않을 때마다 의기소침해 지고, 무력해지며, 불안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시심에 대한 집착. 우리는 수년간 수련해왔고, 심신(心身)에 큰 변화를 경험했다. 우리의 수련 중에 현시 된 상태는 속인들 중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할 때, 너무 높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부면적인 영향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진상을 통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허리를 굽혀 그 사람에게로 가서 닿아야 하고, 모든 힘을 기울여서 그를 잡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 모두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서로 용기를 북돋아줍시다.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威德)을 세우는 것이다.” 《정진요지 II, “이성(理性)》

발표일자: 2006년 1월 27일
원문일자: 2006년 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1/16/118663.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27/6938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