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헤이룽장성 대법수련생
[명혜망] 중국 명혜주간에 올라오는 기사 중 많은 문장들이 근본 집착을 찾아내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고 나 자신의 근본 집착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 II, “원만을 향해 나가자(走向圓滿)”》에서 말씀하신 집착 중 내게 해당되는 것은 병을 낫게 하려는 집착이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에, 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다른 기공들을 수련했었지만 어느 것도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파룬궁이 병을 치유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수련생들의 말을 들은 이후로 수련을 시작하였다.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나는 추구하는 마음을 갖고 수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에 대한 나의 인식이 좋아지고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청리해주시면서 나는 차차로 병을 고치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았다.
그럼 나의 근본 집착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찾아보았지만 나는 찾지 못했다. 나는 혼자 ‘집착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수련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최근에 발표된 사부님의 《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에서의 설법》을 읽었고, 그 중의 일부 말씀이 내게 충격을 주었고 나를 깨어나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부 수련생들은 근본 집착을 줄곧 제거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근본 상에서 대법제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근본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집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내게 떠오른 것이 있었는데, 나의 근본 집착은 내가 원만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원만(圓滿)이 나의 근본 집착인지 아닌지 확실히 하고 이 집착의 뿌리를 뽑기 위해 나는 일생을 뒤돌아보았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다른 사람들 중에서 출중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여 대학에 갈 수 있고, 나중에 고위 관리가 되고 자동차도 굴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단지 어린아이였지만,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겼고 그것이 내가 하는 모든 것의 동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또 아주 잘 했다. 불행하게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내가 아직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나는 가족의 생계를 돕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는 겨우 중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 고관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가난했으며 고생하며 살았다.
나의 전반생은 불행했지만, 나는 중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의 일생에 가장 찬란한 일이 되었다. 사부님의 법은 내게 인생의 참뜻을 알게 해주셨다. 법을 얻은 기쁨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으로 개변하게 했다. 나는 매일 기분이 좋았고 늘 미소를 지었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운스럽게 느꼈다. 수련은 병을 치료해 주며 사부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내게 어떠한 위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련하여 원만에 도달할 수 있고 고해(苦海)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나는 이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나 정부 관리들을 볼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들은 나보다 못하다. 내가 원만에 도달하여 천국에 가게 되면, 이것은 당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기 전 개인수련 단계에서, 원만을 성취하려는 나의 욕망은 내가 수련하는 동력이 되었다.
박해가 시작된 후 사악은 원만에 대한 나의 집착을 틈탔다. 사악의 “고험”을 마주하고,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지 못했다. 내가 성급 정부에 가서 청원을 하고 공공 광장에서 연공을 했지만, 나의 의도는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중공 경찰이 집에서 나를 끌고 가서 “보증서”를 쓰게 했다. 그 후, 사부님께서 《원만을 향해 나가자》를 발표하셨고 나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인식이 왔다. 하지만 잠재의식 중에는 이것이 내가 원만에 도달하는 것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베이징으로 가서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경찰이 나를 붙잡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원만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으며 스스로 기뻐했다. 나는 지역 간수소로 보내졌고 그곳에 30일간 갇혀있었다. 나의 친척들이 보증서를 쓰고 내가 서명한 다음 벌금을 물고 풀려났다. 그 때 사부님께서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後的執着)》를 발표하셨고 우리에게 원만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요청하셨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북미 대구호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수련생이 잡혀 들어가 혹형의 고문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여 회개서(悔改書)를 썼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나 이것은 모두 그들을 속이는 것인데, 나온 다음 나는 여전히 연마할 것이고, 나는 또 나가서 법을 바로 잡으며 또 천안문에 나가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런 관념은 사람 여기에서마저도 패괴(敗壞)된 후에 비로소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신(神), 그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상이 없으며, 그가 단정한 길은 반드시 걸어가고야 말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읽은 후 매우 실망했다. 내가 회개서를 여러 번 썼기 때문에 나는 결코 원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심한 후회감이 나를 내리눌렀다.
몇 달 후, 사부님께서 《정진요지 II, “건의(建議)”》을 발표하셨다. “그러한 낡은 세력은 일개 대법수련생이 집착 때문에 이 기간에 일단 대법을 수련하지 않겠다고 서면 보증을 하였다면 바로 그가 이미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것으로 인정한다. 만약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니고 강박으로 조성된 것이라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정법(正法)속으로 다시 들어온다면 곧 마난(魔難)을 크게 하여 관(關)을 넘어야 할 것이다. 비록 사부가 낡은 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당신이 일단 반면으로 향하여 나아간다면 나중의 결과는 끔찍한 것이며 천만년을 기다린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 경문을 읽은 후, 나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나의 가슴은 더욱더 절망적이 되었다. 내게 완전히 희망이 없으며 내가 원만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실패했고 크게 견뎌내는 힘이 없으며, 사는 것이 고생스럽고 원만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법공부 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당시 나는 연공을 하기는 했지만 다만 병을 치료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다른 수련생들의 도움을 받고 법공부를 하면서 다시 분발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느끼고 희망을 되찾았다. 나는 원만에 도달하는데 큰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만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제거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할 때 많은 병과 불순한 의도들이 나왔다.
법공부를 할 때 나는 분량에 집착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법공부를 하고 법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원만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매일 연공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나를 밀어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상을 하고 중생을 구도하기만 하면, 나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바쁠 때면 연공을 적게 해도 괜찮다. 발정념을 할 때도 이것을 일상적인 일로 했다. 발정념하는 횟수도 느낌에 따라서 했다. 때로는 발정념하는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진상하는 것도 위덕을 쌓고 고층차로 원만하려는 집착과 섞여져 있었다. 나의 마음은 인간 관념에 의해 움직였다. 박해가 얼마나 나쁜가를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중공에서 탈퇴할 때 나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났다.
원만에 대한 나의 집착은 종종 나로 하여금 내가 대법수련생이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아주 높은 층차로 원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종종 법정인간이 왔을 때 나와 다른 수련생들이 원만에 이를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원만에 대한 나의 집착으로부터 “일을 완성해야한다”는 집착이 나왔다. 나는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나는 위덕을 쌓고 싶었고 내가 한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서, 원만 후에 나의 층차를 제고하기 위해, 그리고 나의 천국의 중생들을 더 많이 구도하기 위해서 했다. 때로는 내가 너무 많은 잘못을 해서 사부님께서 내게 배치해주신 고층차에 오르지 못할 것을 걱정했고, 때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지 또는 하지 않았던지 관계없이 나는 원만에 도달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해이해졌다.
원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정법의 시간에 대한 집착이 나왔다. 나는 사악한 박해가 곧 끝날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봄에서 가을을 기다렸고, 지난해로부터 올해를 기다렸다.
원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과시심과 질투심이 표면화했다. 속인 중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속으로 “그것은 내가 신이 되어 성취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한 수련생이 원만을 희망하는 것은 잘못이 없지만, 이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법시기 수련생들로서 우리에게는 개인수련보다도 더 큰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세 가지 일을 잘 하는데 놓여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원만에 대한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못하는가? 법 중에서 나는 낡은 우주에서 생성된 생명, 낡은 우주의 속성은 바로 자신을 위하는 위사위아(爲私爲我)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한 일체가 내가 성취해야할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원만에 대한 나의 집착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한 세 가지 일은 신성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 안에 깊이 숨어 있는 집착 때문에, 나는 많은 굽은 길을 걸었다. 나는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다. 짊어지실 필요가 없는 짐을 사부님께 짊어드리게 했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무엇을 원만 할 것인가? 집착할 것이 무엇인가? 자랑으로 여길 것이 무엇인가? 나는 지금 과거의 나의 행동을 생각할 때 부끄럽다.
사부님의 이끄심으로 나는 나의 근본 집착심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제거해야만 한다! 나는 최선을 다 해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하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나와 같은 근본 집착을 가지고 있는 동수들이, 나를 예로 삼아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사부님의 경문 《원만을 향해 나가자》 그리고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를 함께 공부하고 제고합시다.
발표일자:2006년 1월 21일
원문일자: 2006년 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5/117976.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21/69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