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월17일】평소에 대륙 일부 지역의 소식통보를 보면 사악이 또 무엇을 할 것이고, 또 무슨 박해공구를 내놓았으니 모두들 경각성을 높이고 조심하라고 한다. 말은 틀리지 않는데 항상 정념이 모자란듯한 느낌이 든다. 대법제자가 일을 하면서 신중하고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심태는 마치 속인의 큰 적을 만난 것 같은 상태에 떨어지지 않았는지? 사실 정법 형세의 오늘날, 사악이 무엇을 하려고 시도하면 애초에 그것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금년에 우리 해외 대법제자들이 신년 갈라에 참여하면서, 사악의 해외에 대한 교란은 마치 아주 사납게 보이지만 동수들이 이런 정황을 보고 모두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 청리하고 있다. 여기서 또 심태의 차이가 있다. 사실 심태의 차이는 또 사람과 신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놓고 말할 때 속인사회에서 생활하기에 무엇을 하든지 모두 속인사회 중의 일 형식과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경지와 본질은 오히려 완전히 속인사회를 초월했다. 비록 우리가 취한 것이 속인 속의 일하는 형식이지만 우리의 심태는 속인을 초월했고 진정한 수련인의 심태이다. 일하는 효과는 자연히 초상적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성숙”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총체적인 느낌이라면, 다수 대법제자들은 성숙되었고, 수련의 형식도 성숙되었으며, 수련에 대한 수련자의 인식도 성숙되었고, 사람 마음이 갈수록 적어진 이성적인 행위 표현이 성숙되었다. 모든 대법제자들이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악을 모조리 제거하고 신불(神佛)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사악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모두 속인을 조종하고 교란해야만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단지 이 층면에서 말해도, 우리가 정말로 정념이 아주 강하고 신념이 단호할 때 속인은 우리의 마당에서 제약당하여 나쁜 일을 감히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수련인과 속인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고 수련인의 심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한편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교란을 청리하고 사악을 해체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구체적으로 일할 때 속인관념에 빠져 사악을 아주 크게 보고, 자신을 속인사회 중의 “보통 일원”으로 보거나 혹은 사악의 능력을 아주 대단하게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아주 “평범”하게 보며, 자신과 교란의 비례를 마치 속인이 바람 부는 계절에 삼림의 불을 끄는 격으로 여길 때 그것은 무의식 중에 자신을 속인 층차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럼 일을 하는 효과도 오로지 속인과 같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를 제 위치에 밀어주셨는데 우리 자신이 이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악한 세력이 잔여세력을 긁어 모아 풍파를 일으키고 그것들이 대법제자 앞에서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정념이 동요되지 않고 세간 이 층면에서 잘 해야 할 것을 잘했는가. 동시에 진정한 신불(神佛)이 개미를 보는 그러한 심태로 높은 곳에서 아래의 사물 본질을 꿰뚫어 보듯이 하였는가. 이는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일체 기회를 빌어(특히 사악이 감히 주동적으로 제공한 기회) 자신을 성숙시키고, 세인을 구도하고 사악을 크게 쓸어버리며 쓰레기를 쓸어버려야지 쓰레기가 우리를 잡아끌고 정력을 소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우리 매개 대법제자들이 모두 자신에게 성숙되도록 요구한다면 꼭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악이 말끔히 제거되고 신불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개인의 인식이고 동수들의 참고하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1월16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17/11888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