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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자의 상태를 유지할 때 더욱 빠르게 일을 완성할 수 있다

글 / 타이완 대법수련생

[명혜망] 매 순간 수련자로서의 상태를 유지할 때에만 우리가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또 모든 것을 완성하고자 하지만, 종종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묻는다, “우리가 일을 완성할 수 없는 경우, 일을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매 순간 한 수련자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내게는,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린다. 이는 마치 “수련자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일을 완성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의 견해로는, “수련자의 상태”에서, 우리가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중 일부가 일을 느리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방식으로 그것을 하기 때문이고, 또 바로 그것이 왜 우리가 큰 장애를 만나고 효율를 올리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많은 경우에, 우리 일부는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을 함으로써 다만 표면적으로 “수련자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수련에 대해 잊어버린다. 우리가 인간의 집착을 갖고 모순과 교란을 대하기 때문에, 수련자들 간에 간격을 조성하거나 협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는, 일체를 “기술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의 사악의 교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정념으로 엄숙하게 그것을 제거하지 못한다. 끝에 가서, 대법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속인들이 일을 하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일도 당연히 늦어진다. 이것이 일이 지연되는 근본 이유이다.

몇 가지 생활 중의 예를 들어봅시다. 아침 4:30시에 일어나 연공을 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목표를 세웠을 때, 밤 12시 발정념을 한 후, 나는 내가 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다음날 그것들을 끝내겠다고 기억하며 자러가야 한다. 종종 많은 일들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그럴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한다, “이것들을 아주 빨리 끝낼 수 있다. 내게 3분 만 달라.” 그러나 3분에 끝내지 못하면, 다시 나 자신에게 말한다, “3분 만 더 달라.” 물론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 내가 자야하는 잠에서 시간을 빌려오며, 때로는 새벽 1시, 2시까지도 깨어 있다.

그래서 단지 2, 3시간밖에 자지 못했기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 알람이 울릴 때, 인간의 관념이 효력을 본다: “지난밤 내가 너무 늦게 잠을 잤다. 만약 내가 일어나 연공을 한다면, 나는 졸릴 것이니, 좀 더 자자.” 그래서 알람을 끄고 나 자신에게 두 번째로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2, 3분 만 더 자자고 말한다. 두 번째 알람이 울렸을 때, 다시 이것을 끈다. 세 번째로 울렸을 때는, 이미 5시가 지났고, 연공장을 가려던 나의 염두가 더욱 약해졌다. 이때, 인간 관념이 다시 고개를 든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낮 시간에 연공 할 수 있다. 좀 더 자자.” 결국, 내가 일어났을 때는 6시가 지났다.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아침 6시 발정념까지도 놓친다.

일단 아침 연공을 놓치게 되면, 낮에는 법공부, 진상, 수업, 그리고 대법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공할 시간을 찾기 어려워 결국 연공을 하지 못하고 만다. 때로 2, 3일 연속으로 연공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내일은 꼭 일어나 연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일어나게 되면, 다음 2, 3일 동안은 정진한다. 이와 같이, 연공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점점 수련에 자신이 없어지고 다른 일도 잘하지 못하고 만다.

이것의 근본적 원인은 내가 心性(씬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나의 표준에 따라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나의 견해로는, 수련생이 여러 번 일을 잘하지 못하면, 그의 층차가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모두 비교적 중요치 않은 많은 경우에서 우리가 心性(씬씽)을 유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개미구멍이 일천 마일의 둑을 붕괴시킨다.”라는 말은 진실이다.

진상을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발정념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안 하는가?

사람의 생각은 늘 이렇다, “발정념은 15분이나 걸린다. 이 15분 동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더구나, 많은 중생들과 관계된 아주 중요한 일들, 아주 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중생구도가 가장 중요하다. 결국, 나는 법공부 하고 연공을 하기 때문에, 하루 네 번 발정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부디 잘 생각해보라: 비록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하루에 네 번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중생구도를 출발점으로 한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 이 경우, 15분을 아끼기 위해 발정념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神들이라면 이처럼 일을 급하게 하겠는가? 만약 인간의 상태에서 일을 한다면, 어떻게 한 인간이 한 악마를 패배시킬 수 있겠는가? 오로지 神들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런고로 이때, 우리는 명석한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나는 한 수련자이다, 그리고 나는 한 수련자의 표준을 따라야 한다.” 한 수련자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 우리에게 神의 위력(威力)이 부여될 것이고, 사부님과 정신(正神)들의 도움이 있게 될 것이다. 만약 한 수련자의 상태로 우리 자신을 올려놓지 못하고 항상 인간의 소위 노력만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공간의 사악을 제거하고 악마들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종종,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일이 잘되지 않거나 또는 끝내지 못한다.

한 번은, 갑자기 할 일이 너무 많아, 나는 그것들을 빨리 끝내려는 인간의 마음으로,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완전히 인간의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지속적인 발정념과 내면을 향해 찾고, 내 마음속의 모든 나쁜 생각들을 제거하고, 근본적인 집착을 발견하고, 이것을 쫓아버리고, 부정하고, 제거한 다음 점차 한 수련자의 표준에 가 닿았다. 나는 우리가 수련자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 곧 사부님과 정신(正神)들이 도와주러 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경우, 그렇게 해서 기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회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사부님께서는 실제로, 우리가 대법을 첫 자리에 놓는가 아니면 일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는가 줄곧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고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을 때, 만약 어떻게 일을 완성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돌파할 수 없다. 우리의 인간적인 방법이 고갈되고, 오도 가도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막 포기하려고 할 때, 생각하게 된다, “사부님께 도움이나 청해보자.”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그리고 우리가 일을 완성하려는 정신상태를 내려놓을 때, 그리고 실제로 大法이 첫 자리에 놓이고 일의 완성이 다음으로 갔을 때, 즉시 돌파하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수련자의 표준에 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정신(正神)이 우리를 돕고자 해도, 그들은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정념(正念)이 부족하고, 우리 자신을 수련자로 취급하지 않으며, 대법(大法)을 첫 자리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나쁜 것은, 난 중에서 박해받는 동안에도,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끝에 가서, 종종 교란 때문에 더 계속할 수 없을 때, “좋아, 다시 시도해보기 전에 발정념이나 하자.” 발정념을 한 후, 갑자기 일을 완성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심태로 이것을 보고, “정말 발정념은 유용하구나.” 일이 잘되지 않으면 좌절감을 느끼고, 일이 잘될 때는 큰 자신감을 갖는 이것은 인간의 심태로 정법수련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태고 싶다. 왜 일부 수련생들의 손이 발정념 할 때 꼿꼿하지 못한가? 보통 이것은 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왜 그들은 눈을 뜨지 않는가? 그들은 단순히 졸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집착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인간의 상태로 발정념을 한다면 이것이 작용을 할 것인가? 인간의 심태를 갖고 발정념을 한다면 우리가 명석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발정념을 할 때, 우리가 사부님의 法身(파선)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가 내보내는 각종의 공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손을 떨어뜨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한 인간이 하는 것이고 다만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앉아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더라도, 인간 심태에 있을 때는, 이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책임지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우리는 종종 우리의 인간 심태로 생각한다, “아무도 이것을 볼 수 없다.” 이러한 “아무도 볼 수 없다”라는 정신상태가 나오자마자, 만약 이것을 저항하지 않고 이것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이미 인간의 상태로 떨어진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인식을 끝마치겠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수련자로서 취급해야한다. 다만,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배치해주신 길을 걸을 수 있다.

발표일자: 2005년 11월 7일
원문일자: 2005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0/13/112195.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1/7/665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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