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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간의 수련 체험

【명혜망 2005년 10월 23일】나는 1997년 하반기에 법을 얻었다. 몇 년 동안의 수련 체험을 써내어 여러 동수들과 교류를 하려고 한다. 아래에 몇 개 부문으로 나누어 말하겠다.

1. 주의식이 강해야 한다

내가 수련을 시작해서 줄곧 2년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의 주의식이 매우 강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주의식이 강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무슨 일을 하든지 얼떨떨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만 여겼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지 매우 명백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주의식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2002년의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나보고 ㅡ주의식이 강해야 한다고 하자, 나는 당시 매우 곤혹스러웠다. 내가 어찌 주의식이 강하지 못하단 말인가? 나는 매우 “청성”한데 종래로 얼떨떨하지 않았잖은가 ?

법공부와 수련을 깊이 있게 하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더욱 깊은 내포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이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주의식은 진정으로 순정한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속한 그 한 층차에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그러한 모든 것이 없어야 만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인 것이다. 하지만 전에 나는 여러 가지 관념과 심지어는 매우 강한 집착심으로 일하려는 집착심을 자신으로 여겼다. 단순하게 다른 공간의 영체에 통제당하여 일하지 않는 것을 주의식이 강한 것으로 여겼으며, 여러 가지 관념,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 일어나는 소극적이고 정서가 하락되고 각종 교란의 반영을 모두 자신이라고 여겼으며, 이러한 것들에 끌려가면서 교란을 받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으며, 늘 자신이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생각했다.

나의 이해는 주의식이 강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느 것이 자신이고 어느 것이 자신이 아닌가를 알아야 만이 교란을 배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심성을 제고하는데 제일 처음으로 부딪치게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으며 이것은 이 우주의 이치이다.” “우리 이 우주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ㅡ당신이 구하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간섭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여러 가지 관념들을 모두 자신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제거하겠는가?

2. 정(定)

지금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定)”에 대해 이런 하나의 인식이 있다. 매번 내가 어떤 일에 부딪쳤거나 듣게 되었을 적에, 늘 여러 가지 생각과 사상활동이 일어나는데, 정념이 있지만 견정하지 못하며 동시에 또한 여러 가지 관념, 집착, 외부의 교란들이 잇따라 오게 된다. 만약 청성하지 못하고, 주의식이 강하지 못하며, 이러한 교란을 자신으로 여긴다면, 사상은 정념과 관념지간에서 흔들리는데, 정념을 견정하게 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관념에 의해 나쁜 일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 수련생이 사악의 박해를 받았는데, 박해를 받고 있는 중에서 여러 가지 사상들이 반영되어 나왔다. 나는 사악의 박해를 받지 말아야한다. 누구도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다. 나는 사악의 어떠한 요구에도 배합하지 않겠다. 그러나 동시에 또한 사람의 사상이 나오는데, 이렇게 하다가 더 큰 박해를 받거나 더욱 큰 고통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겠는가 하는 등등의 사상들이 강렬하게 반영되어 나오며, 정념이 안정되지 못하고 인식도 확고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가능하게 형식적으로는 사악의 요구에 배합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도리어 더욱 큰 박해를 받거나 혹은 현재의 곤경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데, 어째서 내가 이미 이렇게도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자신이 정말로 사부님의 법의 “요구에 따라”하고 있으며, 그렇게도 많은 마난을 겪었는데도, 그러나 마지막에는 아직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것이다.”라고 하신 것처럼 되지 못하고,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고 아직도 박해를 받고 있는지? 도리어 내심으로부터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을 완전히 믿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나의 이해는ㅡㅡ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가 정념이 나온 후에 여러 가지 교란을 제거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념을 정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박해를 받는 것은 바로 자신이 정념을 견정하지 못하고, 정념의 위력을 완전히 발휘해내지 못한 정황하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낡은 세력은 또 이것을 이용하여 속인의 집착심을 가강하게 하며 우리들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견정한 정도(程度)를 동요시킨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시기를 “석가모니는 정념(正念)을 이야기했다.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경을 읽어 진정으로 그가 수련하는 그 한 법문의 세계에 진동이 생길 수 있게 해야만 비로소 각자(覺者)를 모셔 올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청정심”에서 우리들에게 어째서 띵(定)하지 못하는가 하는 원인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단지 이 “定”을 가지고 나의 체험을 이야기 하겠다

전에 한 서양수련생이 쓴 한 편의 심득교류에서 이런 한 구절이 있었다. 그가 발정념을 할 때 “자신의 일념이 산도 가른다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우리들이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자. 내가 어떤 일에서 확신을 가진 다음에 주위 환경의 변화와, 내가 우유부단한 상태 하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구별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체험이 있으리라고 본다. 만약 우리들이 정말로 정법수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념을 정한다면, 정념의 강대한 위력은 꼭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여러 가지 교란들을 제거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응당 받지 말아야 박해를 타파할 수 있다.

3. 일의 표면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말고, 마음을 닦는 것이 관건이며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

어느 한 지역에서 있은 일인데 정체적인 상태가 줄곧 좋지 못했다. 일부 소수의 동수들이 걸어 나왔으나 엄중한 박해를 받았다. 한 시기 불법 노동 교양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 온 동수 한 분이, 이 지역의 비교적 넓은 범위내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일들을 했다. 갑자기 어느 날 그는 집에서 현지의 사악한 자들에게 납치되었다.

이 사건은 당지의 동수들 중에 비교적 큰 파동을 일으켰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처럼 정진하고 바르게 하던 정법제자가 어떻게 이렇게 엄중한 박해를 받게 되는가?

나 개인적인 인식은 ㅡ먼저 일의 표면에서 급급히 수련생이 어찌된 일인가, 수련을 잘했다 혹은 잘하지 못했다를 볼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가 다른 공간에서 실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가 나타나면 정념으로 낡은 세력 요소의 박해를 부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자신을 향해 찾아보아야 하며 자신이 누락, 부족한 것과 어떠한 염두들이 대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으며, 자신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어떤 사람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이 층차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악의 박해를 피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일하지 않는다면 사악이 박해할 구실을 찾게 된다고 하는 등의 어떠한 사상도 다 있을 수 있다.

다른 한 면으로 볼 때, 평소에 개인 수련을 홀시 하거나 심지어는 속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하게 방임한다면, 우리는 일의 표면에서는 그것의 진실한 원인을 보지 못한다. 사람 속에는 많은 가상이 있기에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난 속인의 표현도 여러 가지일 수 있으며, 표현되는 것이 그저 여러 가지 형식일 뿐이다. 만약 단 한 건의 일을 가지고 경험을 총결한다면 갈수록 빗나갈 수 있다. 때문에 나의 인식은 모든 일에서 먼저 자기를 찾아야 하며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이 일은 어떠한 생명도 교란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낡은 세력과 그런 사악한 요소들은 죽기 내기로 그들이 하려고 하는 것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악의 박해를 받지 말아야 하며 낡은 세력을 승인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사람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 정법 수련의 과정에서 아직 대법 표준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하였고 누락된 것이 있기에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오지만, 이것이 우리가 밖에서 찾으며 자신을 향해 수련하지 않는 구실로 되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싱가포르 법회에서의 설법에서》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부딪힌 어떠한 일들을 모두 우리자신의 이 방면에서 한번 가늠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것인데 원만의 이 길에서 어떠한 장애도 당신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혔을 때 모두 밖으로 보고 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하나의 제일 큰 치명적인 장애이다. 지난날 일부 사람들이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의 제일 큰 장애이므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려 하지 않고, 자기가 고통을 받았고 불행을 당했는데 또 자신한테서 찾고 자신이 어느 곳에 잘못되었는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 위에서 수련의 이 길 위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모두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정말 이러하다.”

4. 심성제고

매우 오랜 시기에 나는 심성제고를 간단하게 사부님의 설법을 이해하면 오성이 좋고 심성이 높은 것으로 여겼다. 좀 전에 《전법륜》제 1강에서 “어째서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에서 말씀하시기를 “씬씽(心性)이란 무엇인가? 씬씽(心性)은 더(德)〔더(德)는 일종의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능히 고생을 겪을 수 있는 등등 허다한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 사람의 씬씽(心性)이 여러 방면에서 모두 제고되어야 하며,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다. 이는 공력(功力)을 제고하는 관건적인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때에야 나는 비로소 심성이 포함한 것이 매우 많으며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방면에서 잘한다 하여 심성이 높은 것이 아니며 또한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원래 나는 줄곧 심성이란 오성이 좋으면 심성이 높다고 이해했으며 몇 년간 이러한 인식으로 제고를 가져오지 못했다. 때로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어느 한 법리에 대해 깨달았지만, 그러나 수련 중에서 하지 못했으며 진정으로 수련하면서 제고를 가져오지 못했다. 어떤 때는 문제가 있으면 부득불 개변해야 했으며 심성을 제고하는 면에서 확실하게 청성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매 한가지 일에 대해서도 될수록 주의를 돌렸으며, 내가 명백하게 의식적으로 자신이 심성을 제고할 때, 나는 내가 그 법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사람속에서 형성한 사람의 마음, 관념, 집착들이 나를 가로 막으며 개변하지 못하게 하거나 개변하려고 하지 않는데 때로는 정말로 하기가 어렵다. 특히 한 가지 법리를 깨닫고 법의 요구대로 하려고 하면 매우 어려웠는데, 그러다가 해내고 나면 후에 비슷한 일에 부딪치게 되어도 쉬웠으며 점차 해내거나 잘할 수 있었다.

다른 동수들과 더욱이 젊은 동수들과 교류하다 보니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인식이 있었다. 사부님의 어느 한 법리를 깨달으면 심성이 높다고 여기며, 심성을 간단하게 이해하면서 주동적으로 심성제고를 하지 않으며, 또한 큰 중시를 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 체험을 써내어 함께 교류하려고 했다.

5. 일사 일념 속에서 사람과 수련인을 선택

현재 나는 제고와 집착을 버리는 구체적인 형식을 체험했다. 우리는 수련하는 과정에서 많은 크고 작은 일들에 부딪치고 있으며 매우 많은 생각들을 갖고 있다. 내가 발견한데 의하면 매 한차례 매 한 가지 일의 과정에서 집착심을 제거하거나 혹은 집착심을 가강하게 되며, 또한 제고하거나 제고하지 않는 과정 중에 있다.

내가 이런 일에 부딪쳤을 때 속인의 마음이 일어났으며, 따라서 거기에 끌려가게 될 때 면 이미 그 집착심을 강화시킨 것이다. 늘 이렇게 한다면 이런 집착심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며, 반대로 내가 이런 집착심을 의식하고 매번마다 제거하면서 법의 표준에 따라 하게 될 때면 점차적으로 이러한 집착심들이 감소되거나 혹은 없어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매 한 차례, 매 하나의 일념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과정 중에서, 한 단락의 시간을 경과하여 일정한 수량의 정념을 가강하여 교란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제고를 가져오게 된다.

때로는 자신이 좋지 못한 “습관”을 형성시킨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집에서 동수와 전화로 연락를 하는데, 비록 이러한 일이 매우 적지만 전에는 종래로 이렇게 하지 않았다. 원인은 어떤 동수들과 한동안 접촉하고 나면 그 수련생은 안전에 대한 의식이 느슨하기에 집에서 전화를 하거나 혹은 휴대폰으로 동수와 연락를 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떤 동수와 한동안 접촉하고 나서 보면 그 수련생이 많이 낭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나는 그것을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점점 나 자신도 그 방면에서 돈을 쓰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낭비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일을 말하자면 마치 밖으로 찾는 것 같은데 실제상에서는 내가 이후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생각과 염두가 나오게 되었다.ㅡㅡ집에서 전화를 하면 얼마나 편리한가, 밖에 나가지도 않고 혹간 한 두 번쯤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여겼다. 처음에 이 일에 중시를 돌리지 않으면 이후에 늘 이런 생각에 따라 가게 되며 또한 그러한 생각을 강화시킨다. 그러다보면 점차 이런 좋지 못한 “습관”을 키우게 된다. 사실 매우 많은 “습관”들이 이런 식으로 점차 자라는데 모두가 집착과 관념들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모르고 있으며 갑자기 어느 날에 가서야 자신이 이미 개변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친구지간에, 동수지간에, 혹은 부부사이에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모두가 이렇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천천히 개변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6. 주동적으로 수련하다

오랜 시기동안 나와 많은 동수들이 구체적인 모순이 있어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어떤 문제에 부딪쳐서야 자기를 향해 찾았다. 나의 인식은 이것은 우리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표현되는 한 가지 형식이라고 본다. 제고는 단지 이러한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며 우리는 더욱 주동적으로 가서 수련하며 자신을 찾고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 내가 살펴보았는데 설사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 없더라도 여려 면에서 안을 찾아보면 마음을 닦고 심성을 제고할 요소들이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도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끼리 말하는 것을 듣거나 일하는 것을 보았을 적에, 때로는 생각이 움직이며 이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이 반영되어 나온다. 자기 사상이 활동하고 있다면 그것을 의식 할 때가 있는데, 그럴 적에 법으로 가늠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자기의 그런 바르지 못한 생각에 끌려갈 수 있다.

수련은 마땅히 자각적으로 자기를 향해 찾아야 하며 수련을 잘해 나가야 한다. 수련인 에게는 절대로 우연한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응당 더욱더 자각적으로 수련을 하며 제고해야 한다. 진정 시시각각 안을 향해 찾을 때에야 만이, 나는 비로소 자신이 수련중의 득실에 대해 쉽게 집착하거나 빠져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또한 심태도 더욱 평온하며 이지적이었다.

7. 수구

수구에 대한 나의 이해는 아직도 심성을 능히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마음을 닦는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진상 자료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3자나 어떤 구체적인 일에 연관되지 않는 등등의 일부 현상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예를 들면 동수 지간에 다른 동수의 일상생활, 수련상태,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일에 부딪쳤다는 등이다. 내가 발견한데 의하면 많은 동수들이 이러한 말들을 들은 다음에 흔히는 유의 무의적으로 자신의 견해, 관념과 인식, 심지어는 집착을 넣는다. 그가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자신의 이해, 집착 같은 것들을 주입한다.

내가 이전에 속인이 그린 만화를 본적 있다. 입 두 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서로 닭털을 말하고 있었다. 갈수록 많은 입이 전하고 말하고 했는데 마지막에 이 닭털이 한 마리 봉황새로 변해 날아갔다.

바로 내가 이 체험을 쓰는 것과 같이 어떤 때에 문장을 더 화려하게 쓰려고 일부 형용사 혹은 다른 것을 첨가했다. 이러다 보니 그 원말의 의미가 변해 버렸으며 자신의 체험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다시 수정을 했으며 그 과정에 또 각종 사람의 마음, 집착들이 나왔는데 이것도 또한 심성을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느껴진다.

수구도 심성을 수련하는 과정이며 만약 우리가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심성을 지키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주려고 하면 이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고 하거나 전하려고 하는 일은 꼭 자신이 놓지 못하고 있는 집착이 있으며, 내가 심성을 닦는데 중시를 돌리지 않아서 수구를 잘하지 못한다면 좋지 못한 후과를 조성하게 된다.

우리는 사상이 바로 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렇게 저렇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하나의 큰 좋지 못한 물질의 장을 형성하게 되며, 동수에게 하나의 교란을 조성해 줄 수 있으며 심지어는 매우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응당 주의해야 할 현상이다. 똑똑치 못한 일에 대해서 함부로 의심하거나 전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마구 연락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일들은 우리들이 눈에 띄지 않는 집착심이거나 우리들이 주의를 일으키지 못하는 자그마한 일들로부터 시작되며,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온 다음에야 다시 반성하게 되면 불필요한 손실들을 초래하게 된다.

이상은 내가 이 몇 년 사이에 수련초기에 비해 같지 않은 수련 체험과 인식이다. 현재의 인식들이 수련의 초기와 많이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되며, 이렇게 긴 시간의 수련을 거쳐 우리들은 이전에 법에 대한 인식을 고수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법공부를 할 적에 “대법을 잘 배우려면 아무런 목적도 품지 않고 배워야만 한다.”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대로 해야 하며, 법공부 할 때 자신이 어느 한 구절에 대한 인식을 놓아야 하며, 책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움직이지 말며, 이전에 법에 대한 인식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동수와의 교류에서 부동한 인식이 있을 때, 늘 자기의 이해가 옳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법으로 이것이 정확한가를 가늠해야 한다.

내가 이러한 체험들을 한 조목 한 조목씩 써낸다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은 원용한 것이며 이런 이치와 일들은 모두가 고립된 것이 아니며 서로 많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면 가능하게 사로(思路)가 더욱 똑똑하게 되는데, 이런 방면으로부터 고려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내가 수련을 시작한 5년-7년 동안에 명확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있는데, 어떤 것들은 일부 동수들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래서 이것을 써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고, 우리들이 공동으로 사색하고 교류하면서 진정으로 더욱 빠른 제고를 가져오기를 바라는 바이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문장완성:2005년 10월 22일
문장발표:2005년 10월 23일
문장갱신:2005년 10월 22일 22:13:32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minghui.org/mh/articles/2005/10/23/1129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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