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미국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1일】2004년 4월의 뉴욕국제법회로 나는 처음 뉴욕에 왔다. 법회가 끝난 후 비행기에 올라 뉴욕을 떠나기 전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회 참석을 제외하고 이 평생에 다시는 이 곳에 오고 싶지 않아.’ 뉴욕이 나에게 준 인상은 너무나 나빴다. 그러나 나 자신도 생각지 못하였는데 잇달아 전반 일년이 넘는 시간에 나는 연속 6번이나 뉴욕에 왔고 나의 겨울휴가, 여름휴가, 봄휴가, 명절날에 모두 뉴욕으로 날아왔다. 맨해튼의 거리에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휴가를 지냈다. 이 기간 역시 내가 법을 얻은 후 인생 중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하며 가장 의미가 있었던 나날이었다.
“바로 이 시각에 당신은 저를 개변시켰어요!”
금년 8월 여름휴가가 끝나서 내가 뉴욕을 떠나는 마지막 날, 맨해튼 펜스테이션(Penn Station)의 혹형전에서 나는 손 안의 자료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옷차림이 고급스럽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금발의 젊은 여인은 그 당시 마침 나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뜻밖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연속 신앙에 관한 질문을 하였는데 예수가 세상에 태어나 사람을 제도하고, 쩐싼런(眞善忍)의 세간을 초월한 힘 등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는 자신이 이해한 법리로 그녀에게 대답해주었다. 나중에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인생을 개변할 수 있고 세상을 개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모색하고 기대하는 눈빛을 보고 나는 단호하고 동요 없는 어투로 그녀에게 “Yes, I believe.”(그래요,저는 믿어요)말했다. 그녀는 갑자기 단번에 나를 단단히 포옹하고 족히 일분간 있었다. 나의 귓가에서 가볍게 말했다. ”You changed me at this moment.”(바로 이 시각에 당신은 저를 개변시켰어요).
그 순간에 내가 그녀의 거동과 그녀의 말에 채 반응하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떠났다. 나는 갑자기 명백해졌는데 이는 몇차례의 세속에서의 가라앉음을 겪고서도 인생의 참뜻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오늘 그녀는 오히려 쩐싼런에서 그녀의 귀속을 찾은 것이다. 얼마 안 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가 또 우리의 전시 지점에 온 것이다. 그녀는 두 명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우리를 향해 찬미가를 노래하였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원래 주 예수께 올릴 찬미와 감은의 노래를 우리에게, 맨해튼 거리에 있는 파룬따파 제자들에게 주었다. 노래가 끝난 후 그녀는 또 한번 나를 단단히 포옹하였다.
이 한막은 나의 머리 속에 아주 또렷이 새겨져 있는데 대법의 힘이 한 순간에 그녀의 깊은 잠든 생명을 깨운 것이다.
사부님께서 물을 가져다 주시고, 무량히 자비하시다
두 번째로 맨해튼에 왔을 때는 2004년의 여름이었다. 세계각지에서 온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맨해튼에 모였다. 햇볕에 달궈져 불같이 뜨거운 거리에서 곳곳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대법제자들을 볼수 있었는데 혹독한 무더위와 갈증을 마다하고 세속의 깊은 곳에 빠진 중생에게 대법의 복음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어느 날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노고를 마다하시고 직접 거리에 오셔서 우리에게 시원한 감천을 주셨다.
그 당시 한 거리에는 서양인 수련생 세 명이 있었고 한 명이 큰 거리를 향해 가부좌하고 발정념하였다. 그녀는 또한 사부님께서 자비하게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고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은 그녀로 하여금 일시에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오로지 눈물이 그녀의 두 눈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다른 거리의 한 제자는 차에서 생수 3병을 받았는데 그는 사부님께서 친절하게 “수고가 많아요.”라고 말씀하실 줄을 전혀 생각치 못했다. 그는 그 곳에 멍해 있었다. 차가 멀리 간 후 비로소 사부님께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이 제자들은 또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감동되어 온 얼굴에 눈물을 흘렸다. 금생에 다행히 연분이 있어 사부님의 제자가 될수 있음은 어떠한 영광이고 무량한 복인가. 매번 《전법륜》 제1강의를 들을 때 사부님께서는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말한다면 정말로…” 나는 이 생략부호가 포함한 끝없는 함의를 알게 되었고 이 천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소중히 하고 수련에 정진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에 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금생의 목적이 아닌가?
반혹형전에서의 감수
세번째로 뉴욕에 왔을 때는 9월경이고 우리는 연합광장에서 박해를 반대하는 모의혹형전을 하였다. 어느 날 나는 스스로 형틀에 매달아져 박해받는 수련생을 연출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때는 오후 2,3시 경이고 아주 뜨거운 햇볕에 바닥은 매우 뜨거웠다. 아주 진실하게 연출하기 위해 나는 반드시 맨발로 두 손은 가능한 높이 매달아야 했다. 내가 지면에 서자 나의 발바닥은 일종 불에 타듯이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한 시간을 어떻게 견지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중국에서 이 시각에도 옥 중에서 시달림을 당하는 대륙제자가 있는데 나의 이 한 점의 고생은 또 무엇이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5분 뒤에 발바닥은 오히려 더이상 불에 데는 듯한 고통이 없어지더니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십 분 뒤에 나의 손목이 마비되고 저리며 붓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파룬이 나의 손목 부위에서 돌면서 저린 통증이 감쪽같이 소실되는 것을 또렷이 느꼈다. 나는 이는 반드시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가지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한 막을 회상하면 나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매 한명의 제자를 보호하고 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일년 동안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풀어주시고 정성껏 보호해주심을 만약 글로 써낸다면 또 한편의 길고 긴 문장이다.
진상을 요해한 인연있는 사람의 희열을 느끼다
네 번째로 맨해튼에 왔을 때는 단 며칠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맨해튼 반혹형전으로 달려갔다. 10월의 뉴욕이 이렇게 바람이 차가울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아주 두터운 옷을 입지 않았다. 내가 길가에 차를 세운 사람에게 진상자료를 건넬 때 그는 그가 맞은 편 빌딩 매스컴의 촬영기자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왜 우리의 장면을 찍지 않는가고 물었다. 그는 상사의 명령에 따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자료를 상사에게 가져다 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아주 기쁘게 받았다. 그는 또 나에게 일부 중국인들이 그들의 회사에 출근한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으며 중문자료를 그들에게 가져다 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그들이 중공 사당 거짓말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즐겁게 승낙했다.
이어서 그는 나에게 춥지 않는가고 물었고 나는 좀 부끄러워 하면서 공항에서 이 곳의 날씨가 이렇게 추울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Chilly”(춥다)란 이 단어로 그 당시 사악의 기세등등함을 형용했다. 그는 차에서 비상용 자켓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나는 사양도 하지 않고 몸에 입었다. 한가닥 따뜻한 것이 나의 체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으며 나는 그의 선의적인 보살핌에 감격했다. 그가 떠날 때 나는 옷을 그에게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는가고 물었고 그는 진솔하게 웃으며 말했다. “놔두었다가 그냥 입으세요.”
세계각지에서 온 대법제자들
다섯 번째는 2004년 말부터 2005년 초의 겨울이며 나는 맨해튼에서 나의 겨울휴가를 보냈다. 이 3주일 넘는 나날 나의 심성에 가장 큰 고험을 준 것은 추위었다. 영하 십여도의 혹독한 추위 속의 3,4시간은 내가 이번 생에 한번도 겪은 적이 없었던 고생이었다. 나는 추위를 피하는 방편으로 수시로 지하철 내로 뛰어 들어가 자료를 배포했는데 방한용 신발을 신지 않아 나의 발가락은 얼어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점심밥을 가져올 수 없어 나는 늘 쵸콜렛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고 점심대용으로 하였다. 그것은 쵸콜렛이 얼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음산한 먼지와 눈이 흩날리던 어느날 한 영국제자가 우리의 전시점에 왔다. 그는 세시간이 넘도록 움직이지 않고 추위 속에서 끊임없이 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나처럼 수시로 지하철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호주머니 속의 쵸콜렛을 그에게 건넸다. “당신은 반드시 배고플 것이니 열량을 좀 보충하세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No,Thanks(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는 진지한 태도로 나에게 해석했다. “저는 매번 대법일을 할 때 배고픔을 전혀 느낀 적이 없어요.” 그의 말은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의 발그레한 얼굴과 눈썹 위의 눈꽃을 보고 나는 자신의 수련에서의 격차를 느꼈다.
여섯 번째는 금년 여름이다. 내가 맨해튼에 와서 진상을 알린 가장 길었던 한차례이다. 거의 두달을 보냈다. 시카코법회에서 뉴욕의 맨해튼 거리까지, 또 뉴욕에서 워싱톤DC법회로, 워싱톤에서 필라델피아의 예술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 한 단락 시간을 회상하면 그속의 매 일초마저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뉴욕에 있었던 대부분 시간은 거리의 반혹형전에서 진상을 알렸다. 안젤라(Angela)는 호주에서 온 젊은 청년이고 우리는 맨해튼에서 알게 되었다. 함께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무수한 나날 속에 우리 두 사람은 아주 밀접히 협조하였다. 그녀는 시종 찬란한 미소를 얼굴에 띄고 있었는데 어떠한 태도의 사람들을 만나도 그녀의 진실한 웃음은 시종 변함이 없었다.
그 시기에 매일 11시 부터 오후 5시 까지 나는 그녀가 식사하는 것을 거의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느날 나는 가져간 과일을 그녀에게 나눠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당신이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또 당신이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엇으로 점심식사해요?” 그녀는 “저는 거의 점심을 먹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배가 고프지 않아요?” “아니요. 우리의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에너지를 가지해주시고 특히 우리가 대법일을 할 때 에너지를 가지해 주시기에 배고픔을 느끼지 않아요.” 정말이다. 지금 나 역시 대법일을 할 때 자신이 아주 졸리거나 지치거나 심지어 배고파하지 않음을 체험할 수 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묵묵히 말했다. 위대하시고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드넓은 바다라면 우리는 오히려 한 방울의 물방울로 답하고 있다.
맨해튼, 나는 너와의 만남을 또 기대하고 있다.
문장완성 : 2005년 10월 31일
문장발표 : 2005년 11월 01일
문장갱신 : 2005년 11월 01일 09:32:29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1/11353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