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북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0월 14일]나는 자료점에서 일하는 대법제자이다. 2005년 10월 12일 오후쯤 프린트의 잉크 두 개를 새로 갈아 끼운 뒤 자료를 인쇄하게 되었다. 그런데 갈아 끼운 잉크 중 하나가 인쇄가 되는 자료에 5밀리 미터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프린터의 고장인줄로만 여기고 프린터를 깨끗이 청소하려고 했으나, 다른 잉크를 끼우니까 아주 깨끗이 인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잉크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와 잉크 배후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정념으로 잉크의 결함을 보완하려고 정식 발정념을 하는 것처럼 10분 동안 발정념을 한 후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로 에러가 났다. 그래서 또 10분간 정념을 보낸 뒤 또 시도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금 낙심하면서 이 잉크를 갈아 끼워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 일을 내가 부딪히게 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며, 꼭 나에게서 깨우쳐야 할 것과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마땅히 매 하나의 중생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리 쉽게 포기한단 말인가.
바로 그때 나는 문뜩 “한 생명으로서 그 자신이 원해야 만이 그에게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은 해낼 수 없다” 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한층의 법리를 깨달은 나는 잉크에게 “네가 여기에로 온 것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정법에 참여하러 왔든지 아니면 정법을 교란하러 왔든지. 어쩌면 낡은 세력이 너를 여기에 배치한 것이 부적인 작용을 하게 한 것일지도. 그러나 지금은 정법시기이다. 모든 생명들이 천고에 만나기 어려운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오직 네가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대법을 실증하는데 참여 하려는 이러한 희망이 있다면 너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실 꺼야. 그렇게 되면 넌 구도 받을 수 있는 생명에 속하게 될 수 있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거야. 네가 잘 생각해봐라, 잘 생각해보고 ‘파룬따파 하오’를 외워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는 잉크를 한켠에 놓고는 다른 잉크로 200장 인쇄한 후 다시 그 잉크를 손에 쥐었다. 나는 또 그에게 “잘 생각했니? 이번이 너의 마지막 기회야, 네가 이 희망만 있다면 너의 일념이 전해지자마자 인쇄가 잘 될꺼야.”라고 하면서 시도해 보았다. 결과 인쇄해낸 자료는 아주 깨끗했다. 정말 아무 결함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구도받을 수 있는 생명이 되어서 축하드린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오직 법리에서 명석하고, 정념정행해야만이 못하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만약 법리가 명석하지 않고, 어느 한 절차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내보낸 정념도 작용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한다. 까놓고 말하면 오직 생각한 것과 행동이 완전히 법에 부합되여야 만이 법속에 용해 될 수 있으며 “정념”의 강대한 위력을 발휘 해낼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인이 부딪히는 어떠한 일이든지 우연하지는 않으며 반드시 자신을 그속에 두고 깨달아 봐야 하며 일념의 차이에서 일부 생명들이 구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또 우리는 반드시 매 하나의 생명을 자비롭게 대해야 하며, 바로 우리가 자비로운 일념이 있기에 사부님께서 비로소 우리에게 깨달아야 할 법리를 깨닫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으며 비로소 이 일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분발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격동되기도 했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다니는 MP3가 늘 작동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발정념만 하면 정상적으로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오늘 처럼 이렇게 흥분되지는 않았잖은가? 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MP3를 작동 안 할 때 발정념으로 정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 당시 머리속에 -어쩌면 접촉 불량일지도 라는 염두가 튕겨 나오지 않았던가. 왜 이번엔 반응이 이렇게 강렬할까? 그것은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사람의 관념”을 즉 “눈으로 보아야 믿는다”것을 발견했다. 이 관념은 아직까지 나의 머리속에서 완전히 제거 되지 않았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제거하고 법에 동화될 것이다.
나는 내가 요즘 탈태환골 된 느낌이며 모든 사유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요즘 법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그 질량 또한 높았으며, 법공부를 할 때 아무런 잡념의 교란도 없었으며 일에 부딪히면 늘 안으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감촉이 있는지 아는가. 나는 이제야 수련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다. 내가 수련해 온 7년간 여러 차례 이러한 느낌을 받아 본적이 있었다. 이러한 느낌들은 모두 내가 장시간 동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안으로 찾지 않다가(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조건을 가지고 안으로 찾았었다) 안으로 찾은 이후의 감각이었다. 오직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아야만이 심태의 상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전변은 얼마전 한 사건에서 나타났다. 지난 달에 친척 한분(대법제자)이 붙잡히게 되었다. 이 일은 비교적 특수하고 영향력도 비교적 커서 많은 동수들이 이 일을 매우 중하게 보았다. 명혜망에 동수의 문장 한편이 실린 후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나의 머리속에선 수련생이 실제가 아닌 것을 사실처럼 보도했다고 원망했으며, 수련생이 동수에(자신의 친척에 관련됨)대해 자비롭지 못하며, 한면만 보고 다른 한면은 보지 않는다고 원망하였다. 나는 친척에게 마난이 더해질까 걱정하는 등등 나쁜 생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았으나 참을 수가 없었으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악화되어 어느 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화가 풀릴 것만 같았다. 이 두 사상은—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지 다른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법에 부합 안 된다. 아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면서 겨루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 두 사상은 주기적으로 올라오면서 하루반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수그러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돼, 네가 수련생이 자비롭지 않다고 원망할 때 넌 동수에게 자비롭게 대했었니? 넌 오직 자신의 친척에게만 관심을 가지는데 그건 정이지 자비가 아니야 라고 강박했다. 이렇게 내가 무조건 안으로 찾으니 마음속이 평화롭게 되었으며, 그러한 악한 염두가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진맥진한 것 같았다. 아주 큰 타격을 받은 느낌은 마음속을 파고 들어 정신을 못차리게 하였다. 나는 이런 상태에서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깨달았는데, 너 왜 사부님을 잊었니, 나는 문뜩 입에서-“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자, 내 길을 바르게 하는 것만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라고 말이 튕겨 나왔다. 이때, 뿌옇던 하늘이 전부 개이고 온 몸이 순간적으로 가벼워 지더니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끝내 정념을 찾았다.
이 일은 나에게 감촉이 아주 깊었다. 평시에는 늘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 법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왜 실제로 문제에 부딪히면 일에만 빠져 생각하고 사부님을 잊는가. 나의 제일 큰 깨달음은–입으로 사부님과 법을 첫 자리에 놓는 것과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사부님과 법을 첫 자리에 놓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가장 고상한 위치에 놓았을 때 당신은 모든 집착에서 뛰쳐 나올 수 있으며 오직 모든 집착에서 뛰쳐 나올 수 있어야 만이 집착을 제거 할 수 있다. 집착속에서 집착을 제거한다면 더욱 집착하게 될 뿐이다.
요즘 우리 지역에 많은 교란이 나타났고 많은 일들이 발생했음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느끼건대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우리가 법공부를 잘 못했고 무조건적으로 안을 찾지 못했으며 자신을 잘 수련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을 매일 임무를 완성하는 이론으로 삼아 배워서는 안 되며, 또 어느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올 가지고 배워서도 안 된다. 우리는 마땅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어떠한 관념과 목적도 갖지 말고 배워야 하며, 마땅히 법으로 우리의 모든 사상과 모든 행위를 가늠해야 하며, 마땅히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여 우리들의 일사 일념을 규범화 시켜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라고 하셨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을 다 잘 수련했다면 우리 정체는 빈틈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가령 개별적인 사람이 빈틈이 생긴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 의해 보충될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일을 통해 나는 원용에 대해서도 한층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다른 수련생이 법에서 빈틈이 생겼을 때 묵묵히 그 공백을 채워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아주 훌륭한 원용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장도 상서롭게 되고 유기적인 정체가 형성 될 것이며 사악은 곧 빈틈을 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악은 곧 해체 될 것이며 교란은 적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한 후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과이며 헛된 생각을 해서 온 것이 아니다. 헛된 생각은 망념이며 요구하는 것은 집착이다.
우리 모두 모든 집착에서 뛰쳐나와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 합시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아무것도 집착말고, 아무 것도 걱정마세요,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야 말로 가장 관건입니다” 기억하세요.
원래는 잉크에 대한 일만 쓰려고 했었는데, 결과 최근에 느낀 것과 깨우친 것을 다 쓰게 됐네요, 타당치 못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완성: 2005년 10월 13일
문장발고: 2005년 10월 14일
문장갱신: 2005년 10월 13일23:47:24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0/14/1123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