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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계속 발생한 박해사건에 관한 생각

글/길림시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9월 18일】우리 시에는 올해 부동한 시기마다 끊임없이 대법제자들이 납치, 판결, 노동교양을 받는 사건이 일어 났다. 그리고 세뇌반을 꾸리는 패턴을 볼 때 그동안은 수련생을 비밀리에 납치했었는데 이제는 밝은 대낮에도 사람을 납치하고, 개별적인 지역에서만 수련생을 잡았는데 이제는 전 지역에서 체포를 감행하고 있다. 사악이 믿는데가 있어 두려움을 모르는듯 현지의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우리가 눈앞에 해야 할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것을 파괴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렇듯 많은 문제가 나타났는가? 여기에는 사령악당이 최후로 발악하는 요소가 있으며, 이와 동시에 또 우리가 장기간 줄곧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집착이 있어 사악이 이것을 구실로 삼아 박해를 가중한 원인도 있다. 우리는 수련생이 박해 당하는 것을 대면할 때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정체와 개인에게서 존재하는 문제와 집착심을 찾아내어 그것을 버림으로써 하루빨리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아래에 개인의 인식을 말해 보려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사부님을 믿고 법을 견정하게 믿는 정념은 우리가 바르게 걸어 나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관건이다

‘9평’이 발표된 이후 우리 시에는 지금까지도 일부 동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마음을 가지고 ‘9평’을 뿌리고 세인을 인도하고 있다. 그래서 사당의 일체 조직을 탈퇴하는 구체적인 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는 바라만 보고 있고 어떤 이는 관심이 없어하며 어떤 이는 자신마저도 탈당, 탈단, 탈대하지 않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해준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못 된다. 더욱 심한 것은 붙잡혀 세뇌된 후 사오하여 ‘610’을 도와 대법제자를 세뇌하고 있으며 도처로 다니면서 대법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선동하며 공격하고 있다. 우리 시에는 한동안 아주 많은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명리를 수호하며 줄곧 나오지 못하거나, 혹은 사오한 상태에서 혹은 두려운 마음이 중한 수련생들이 같이 이끌려갔다. 이런 사오한 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사상에 부합하고 우리 시와 주변의 시현을 들락거리며 사악도 못하는 짓을 바로 그들이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왜 사오함이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관건적 원인은 바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더러운 사람의 마음으로 이름만 걸고 수련하는데, 부처가 되려고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자신의 생명을 제도하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도 듣지 않는다. 문제와 고험에 봉착하기만 하면 사람의 마음으로 대하면서 피동적으로 수련한다. 이렇듯 흐리멍덩한 사람들은 비단 자신을 해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해치며 사악이 견정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키도록 한다.

99년 7.20 이후 이 시기에 대법이 박해를 받고 사부님이 비방, 모함, 공격을 받고 있을 그 당시, 대법제자들은 생사를 내려놓고 북경으로 들어가 대법을 수호하는 것을 실증하였고 사부님께 강제로 씌워놓은 죄명을 씻었으며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였다. 그 당시 사악은 선전수단과 나쁜 사람을 이용하여 대법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하였으며 정부와 맞선다고 하였는가 하면 북경으로 들어 가는 것은 반혁명행위라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걸어 나오지 못했고 또 북경으로 들어가는 수련생들이 하는 것이 틀렸다고 하였는가, 뿐만 아니라 또 얼마나 많은 대법수련생들이 악당 한켠에만 기울어지는 선전과 공갈과 위협밑에 노동교양소와 집에서 세뇌당했고 심지어 사오했던가. 사부님께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하였을 때 이 사람들은 비로소 미혹속에서 명백해 졌지만 그러나 역사상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만나기 어려운 기회와 인연을 잃어버렸으며 이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란 단지 후회와 자책뿐이었다.

역사가 오늘날에 이르러 똑 같은 악당문화 공산사령의 독소인 거짓말이 또 튀어나왔다. 마찬가지로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할 수 있는가 하는 관건적인 선택속에서 또 세뇌당하고 사오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늘 사람의 마음으로 대법과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대했기에 일마다 따라오지 못하고 늘 뒤처져 있다. 시간은 정말 많지 않다. 소중히 여기라!

2.’세 가지 일’을 잘하여 세인을 구도하는 중에서 우리들의 수련환경을 창립해야 한다

몇 년 이래 우리의 정법수련 속에는 교란이 존재했는데 어떤 것은 심지어 엄중한 교란을 받았다. 이러한 교란은 우리 자신이 내려놓지 못한 사람의 마음과 집착에서 오며 또 공산사악한당의 일면적인 선전과 당문화 교육에 세뇌받은 요소도 있다. 수련생들이 진상을 할 때 사람에게 주는 감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들이지 못하게 한다. 마치 누구를 교육하거나 누구를 질책하는것 같고, 다른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부동한 생각을 내 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거나, 내가 한 말이 가장 옳으며 가장 바르다고 하는 것 같다. 어떤 때 상대방이 단번에 접수하지 못하거나 혹은 반대할 때 안색이 변하며 격동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위협하고 사람들이 강제로 듣게 하거나 혹은 아예 상대방에게 ‘구할 수 없구나’라고 정의를 내린다. 진상을 하는 것을 일로 여기고 하고 있거나 혹은 자신을 위해 ‘위덕을 수립’한다고 여기면서 하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라는 법에 대해 이해와 인식이 뚜렷하지 못하거나 흐리멍텅하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은 바로 조사정법 구도 세인이다. 우리는 세인한테 자비한 마음을 수련해 내어 귀찮게 생각하거나 원한 원망이 없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수련하는 과정이다.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우리는 반드시 대법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정행을 통해 세인에게 가져다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인이나 혹은 친인들이 우리가 대법을 배운 후 처처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높은 경지의 표현을 보면서 대법을 인식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잘하게 되면 우리가 진상을 똑바로 알리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몇 년 이래 대법제자들이 정념정행중에서의 순정하고 선량한 표현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을 정확히 인식하게 하였다. 어느 곳에 있던지 대법제자들을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당신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요, 당신들 사부님은 정말 능력이 대단하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역경 속에서, 도덕이 부패할 때 그렇게 바르고 그렇게 잘하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오, 이것은 일반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이 아니오 라고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역시 세인을 구도하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은 박해속에서 서로 사심없이 돕고 있다. 농촌에서 농사, 이앙, 가을걷이를 돕고 있으며 성시에서는 일자리를 찾아주고, 돈, 쌀 , 입을 옷들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돕는데 이러한 순정하고 고상한 거동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미담으로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은 영향과 의의는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중요한 작용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데 있다.

법공부를 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줄곧 존재하는 문제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법공부를 하여 마음이 조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수련 중의 매일보를 바르게 걸을 수 있는가 없는가, 우리가 수련중에서 심성을 제고할 수 있고, 우리가 사람속에서 명리정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진상을 똑바로 알릴 수 있고, 정념을 잘할 수 있는가 하는 가장 관건적인 원인이 바로 법공부를 하는 것이며 많이 법공부를 하고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법공부를 하는 가운데서의 어떠한 교란이든지 모두 자신이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 보아야 한다. 원인을 찾은 후 발정념으로 제거해 버리면 모든 교란을 타파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법공부를 할 때 졸리거나 혹은 마음을 조용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동수들은 책만 들면 자려고 한다. 동수여, 이것은 마가 졸리게 하는 것으로 당신을 교란하여 당신더러 법공부를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장기간 이런 상태에 처해 있는 수련생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반드시 졸음 마를 중시해야 하며 공을 들여 그것을 돌파하여야 한다. 정말 돌파했다면 그것은 다른 하나의 상태일 것이며 신의 상태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계속 견지한다면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이며 법속에 용해 될 것이다. 발정념할 때 손자세가 정확하지 못하고 몸이 움직이거나 혹은 잠을 자는데 늘 이런 동수들을 보게 된다. 또 어떤 일을 하면서 바쁘게 되면 발정념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몇 번하며 지금까지도 어떤이는 전세계적으로 네번하는 정각 발정념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동수들은 일이 먼저이고 수련이 두 번째로 되고 있다. 사부님이 《홍음.법을 얻다》중에서 ㅡ “진짜로 대법을 수련함은 가장 큰 일이로세”라는 법을 말씀하셨다. 희망하건대 수련을 중시하지 않은 동수들은 몇 번 더 외우기 바란다. 제자로서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다. 바르게 걷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이 버리지 못한 어떤 것으로 인해 수련의 기연을 잃어버리고 있다.

3. 맹목적인 숭배로 사람을 따라 배우면서 법공부를 하지 않는 마음을 없애버려야 한다

우리 시에는 근 몇 년 간 정체적으로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 배우며 법공부를 하지 않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동수들 지간에 상호 누가 수련을 어떠하게 했고, 누가 잘 수련했다고 의식적 무의식중에 수련생을 떠받드는데 결과 사악에게 틈을 주어 박해가 가중되었다. 이렇게 받들여지던 동수나 이름난 동수들은 어떤 이는 심지어 박해받아 치사되었으며 어떤 이는 중형에 언도되었고 어떤 이는 유리실소 되었다.

기실(其實) 개인 숭배의 바탕문제는 바로 사악한 당문화의 독이 우리 사상중에서 교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또 현시심과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숭배하는 것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을 높이 끌어 올리며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는 누구를 안다고 하는데 모두다 변이되고 패괴한 사람들의 관념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람만 따라 배우고 법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난법의 일종 형식이다. 어떤 사람이든지를 막론하고 대법속에서 수련한다면 그의 표현은 모두 대법속에서 얻은 것이며 대법이 그를 개변시킨 것이다. 법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제 아무리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다하여도 수련인의 경지에 도달 못한다. 때문에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난법이나 마찬가지 이며 혹은 변상적으로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련을 잘한 사람들의 그런 대법속에서 수련해낸 높은 경지의 심성표준과 정념정행속에서 사람을 벗어나 신을 향해 나아가는 경지의 사상을 배워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법공부를 하는 가운데서의 그런 대법에 대한 견정함과 헌신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중에서 차이점을 찾으며 절대 환심심, 현시심이 생겨서는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대법을 실증하는 원칙문제와 상호 어긋나게 되며 심지어 수련생을 해치게 된다.

이 문제에서 또 일종 좋지 못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동수들 속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마치 높이 있는 것처럼 나만 된다는 현시심리가 표현된다. 말하는 가운데 의식적 무의식 중에 자신을 지도자의 위치에 놓고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시키고 있다. 이것 역시 사람을 따라하고 법공부를 하지 않는 개인 숭배를 하여 조성된 나쁜 현상이다.

법회를 할 때에도 누가누가 잘하니 그더러 말하라고 하면서 많이 말하라고 한다. 사람은 받들린 후엔 열이 나며 방향을 찾지 못한다. 현시심과 환희심의 지배하에 마구 말하기 시작한다. 현지의 대법제자들이 세 가지 일을 하는데 대해 좋은 점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부면적인 작용과 부정확한 유도를 일으킬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악에게 구실을 쥐게 하여 박해를 가중히 할 수 있다. 이런 개인 숭배하는 현상은 몇년이래 우리 지역에서 줄곧 존재해 왔으며 어떤 이는 옳지 못하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있으며 시시로 또 누가 잘 수련했고 누가 잘 깨달으며 누가 근기가 좋다는 이런 말들로 동수들을 교란하고 있다. 이 방면에서 우리 지역에 가져온 손실 및 계속 박해가 가중되고 있는 것과 침통한 교훈은 마땅히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야 한다.

4.관용의 마음을 수련해 내어 상서로운 심태로 동수와 세인을 대해야 한다

정법 수련을 하면서 많은 동수들이 지금은 정법시기이므로 오로지 세인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면서 기타 수련중의 문제는 작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심성의 제고를 중히 여기지 않고 작은 일에 주의하지 않으며 어떤 이는 수구도 하지 않으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어떤 이는 말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아주 딱딱하다. 동수에게 문제를 지적할 때 눈살을 꼿꼿이 하고 큰소리로 쏘아댄다. 마치 비판대회를 하는 것 같다. 이 마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불편함을 느끼는데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줄곧 의심하는 마음으로 그런 정법수련 중에서 매우 정진하는 제자를 대하는데 이사람은 간첩이고 저 사람은 특무라고 하면서 수련생이 박해를 받거나 자료점이 파괴를 받기만 하면 누가 어떻다고 연상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사악당문화에 독해를 받은 후의 변이되고 왜곡된 관념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동수들이 왜 자신한테 이렇게 이상한 사상이 있는지 찾아보았는지 모르겟다. 이것은 법과 동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자신과 동수에 대한 일종 엄중한 교란이다. 진상이 크게 드러날 때에야 자신이 틀렸다는것을 알 때엔 이미 늦은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부동한 의견을 받아 들이지 못하며 다른 사람이 지적해 낸 부족점을 받아내지 못한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면 남의 비평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도리어 상대방을 비난한다. 허심하게 받아들여 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느 방면이 안 된다고 제기 하는데 이런 속인의 제일 나쁜 방식으로 남몰래 자신의 부족점을 감춰 버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어떤 이는 모순을 일으켰고 어떤 이는 서로를 상대하지 않으면서 관계가 아주 긴장하게 됐다. 어떤 수련생은 수련하지 않는 친인 혹은 속인에게 진상을 말하거나 일 할 때 혹은 생활왕래중에서 상대방과 일을 하는면에서 논쟁이 그치지 않으며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는 뽐내기 까지 한다. 우리를 접촉했던 그런 사람들로 놓고 말하면 그들은 우리의 표현들로부터 정말로 대법과 대법수련중의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법에 많은 부면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5. 정법수련의 높이에 서서 심도 깊게 우리가 한 일체 및 사악이 대법에 대한 박해를 보아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소위 대법제자를 검증하는 이른바 미친듯한 박해속에서 법리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사악이 대법제자에 대한 이 박해를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모 악경 모악도를 언급하기만 하면 화를 버럭 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간다. 모 수련생이 박해 받았다는 말만 듣기만 하면 왜 이런 나쁜 사람들이 보응을 받지 않는가? 그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 고 말한다. 심지어 발정념을 하는 중에도 모 악인을 저주하고 있다. 이러한 심태는 정념 작용의 발휘에 교란과 영향을 주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깨끗이 제거 안 되면 그들은 사람을 조종하여 대법제자에 대해 악행을 저지른다. 악을 제거하는 목적은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 받게 하기 위함이지 누구에게 보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일부 동수들은 대법에 “명예회복”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으며, 세계 기타 국가의 지지를 얻을 것을 바라고 있으며, 하루 빨리 이번 박해를 결속 짓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법력을 발휘하여 중공망나니집단과 악한 우두머리를 소멸하기를 바라면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사람에게, 사부님께 밀고 있다.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잊어버리고 오직 얻기만 하고 지불하려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정말 냉정하게 우리가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사상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우리로 하여금 잘 할 수 있게하는 근본적인 보증이 바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면서 안으로 자신을 찾는 것이다.

6년이 넘게 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수련중에서 어떤 사람은 줄곧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련을 엄숙히 대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연분이 있어 대법을 접촉하긴 하였지만 아직도 문어구에서 배회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도박에 참여하고, 어떤 이는 담배, 술을 마시며 어떤 이는 부정당한 남녀관계를 가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프기만 하면 침맞고 약을 먹으며 민간요법까지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수련상태가 줄곧 감성인식이란 법의 층차 중에 머물러 있는데 이른바 신이 되기는 좋아하나 사람의 마음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법공부와 연공만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수련’이란 이름만 걸고 있다.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는 정법수련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바싹 틀어 쥐지 않는다면 남는 것이란 오직 무한한 후회뿐이다.

우리는 늘 정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정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이렇게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데 어떻게 원용과 누락이 없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 문장을 써낸 목적은 바로 희망컨대 우리 지역의 매 한명의 대법제자마다 모두 자신을 잘 찾아 보자는데 있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잘 했다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공간마당의 불순정함이 있으므로 하여 비로소 이런 나쁜 물건과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의 부족한 점과 빠뜨림이 사악을 자양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살아나갈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이 정체는 마치 한사람의 몸과 같이 배가 아프다고 손발이 아무 일 없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문제가 생긴다면 정체에 연관되는데 어느 부분이 불편하다면 정체와 관련된다. 모 개인 모 지역이 안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정법수련의 높이에 서서 문제를 인식해야지 사람의 마음으로 이렇게 수승한 정법수련을 대해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가 법에 서서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면 낡은 세력의 사악한 요소가 우리가 대법을 실증하는데 조성한 각종 장애와 간격을 없애 버릴 수 있으며, 곧 각종 교란을 배제할 수 있다.

위에서 제기한 일부 문제들은 명혜문장 중에서 늘 볼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교류중에서 늘 제기하는 ‘늘 부딛치는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나타나는 것이 아주 돌출한데 그것이 바로 엄중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꼭 중시해야 한다. 자신부터 시작하여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고 일마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한다면 바로 우리의 정체를 수호하는 것이며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구도하기를 기디라고 있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문장완성: 2005년 09월 13일
문장발고: 2005년 09월 18일
문장갱신: 2005년 09월 18일 16:51:42
문장분류: [법리교류]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9/18/1104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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