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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다

글 / 요우솽

[명혜망]

1. 재난

1980년대, 우리 네 명의 행복한 가족에게 재난이 들이닥쳤다. 나는 29세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물어보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개가 한 마리 와서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먹어도, 나는 반응을 할 수 없었다. 파리, 모기가 얼굴에 앉아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루 종일 졸려 긴장병 환자처럼 보였다. 식사 후에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3년 3개월 동안 이런 상태에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나는 물이나 액체를 마시지 못했다. 나를 낫게 하려고 가족은 나를 데리고 곳곳을 다녔다. 그들은 많은 돈을 빌려 썼다. 하지만, 아무도 치료는커녕 내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회복되었다.

이 병은 왔다가 가고 갔다가 오곤 했다. 불가사이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주기적인 재발로 내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3년간 좋았다가 3년간 아팠다. 이렇게 세 번 재발했고 나는 9년 9개월 동안 고통을 받았다. 재난은 연속적으로 왔다. 내가 두 번째 아팠을 때는, 혹독하게 위병을 앓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나는 신음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의 가족과 한 이웃이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의사들이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관찰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5일째 되는 날 그들이 나의 위장을 수술했지만, 의사들은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병원에서 두 번 더 수술을 했다. 위장에 낸 구멍과 십이지장 궤양을 치료받았다. 수술하는 동안 나는 정신을 잃었었다. 어느 시점에서 가족들은 나의 장례 준비까지도 시작했다.

수술로 15cm 정도 긴 상처가 내 가슴 복판에 생겼다. 나는 정맥주사로 살았고 음식은 먹을 수 없었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나의 수술 상처는 나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창자들이 상처를 통해 보였다. 배 위 살가죽에는 깊게 멍이 들었다. 상처에서는 피와 고름이 나왔다. 피와 고름으로 침대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두꺼운 종이를 위장에 얹고 벨트로 맸다. 매일 종이를 15-16번 갈아야 했다. 3개월 전에 병원에 들어온 이래로, 나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입이 변형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혀도 나무토막 같이 단단해졌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너무 기운이 없어서 도움을 받지 않고는 침대 위에서 돌아눕지도 못했다. 등 뒤에는 깊게 종기가 생겼고, 몸무게는 143 파운드에서 66파운드로 떨어졌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나에게 음식을 먹이고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해, 의사들은 십이지장에 구멍을 내고 우유와 삶은 계란 섞은 것을 주입시켰지만, 나의 상태는 향상되지 않았다. 다시 봄이 왔다. 나의 형제들은 들에 곡식을 심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4개월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내가 빌린 돈 6000원을 다 썼는데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 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떠났다.

집에서는 더욱더 통증이 심했다. 우리에게는 돈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 나의 아내는 나를 보조하기 위해 집에 있는 것들을 모두 팔았다. 나는 거친 것을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고운 곡식 (밀가루와 쌀)만 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한 사람이 받는 곡식의 양은 제한되어 있었다. 직장을 가진 사람이나 학생들은 한달에 총 35파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단지 31파운드를 받았다. 어린이들은 훨씬 적었다. 내 아내와 두 어린아이들은 아주 힘들었다. 우리는 곡식이 없으면 때때로 감자를 먹어야 했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나의 아내가 때로는 빈속으로 일을 해야 했다. 어린아이들은 아이스캔디 하나도 먹지 못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우수했다. 어느 날 나의 아들이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을 이끌고 달리기를 했다. 갑자기 그는 더 이상 뛰지 못했다. 그의 선생님이 그에게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선생님에게 그가 얼마정도의 감자를 먹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슬퍼하며 다른 선생들에게 우리 가족의 상황을 이야기 했다. 그들은 모두 우리를 동정하고, 당시, 아무도 부자가 아니었지만 학생들과 선생들이 200원 이상을 모금하고 한 손수레 가득히 곡식을 모아서 우리를 도왔다. 나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고마웠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나는 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의 가족을 이 지경으로 몰아왔고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그런 성가심을 주었다. 우리를 도우려고 그들이 돈과 곡식을 모았던 것이다. 정말로 마음이 언짢았다.

2. 다시 태어나다

내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내게 법을 얻는 행운이 왔다. 1998년 9월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중국 파룬궁”이라는 책을 한 권 갖다 주었다. 처음에는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지만, 애를 쓰자 나중에 단어들이 분명해지면서 글자가 보였다. 이것은 아주 이상했다. 글자들이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느꼈고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 날까지 읽고 셋째 날에 끝냈다. 나중에 이것을 두 번 더 읽었다. 다른 사람같이 느껴졌다. 아주 가볍고 기운이 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집안일도 할 수 있었고 피곤을 느끼지 않았다. 나중에, 모든 대법 책 읽기를 끝마쳤을 때 나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나는 연공 음악에 따라 연공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의 아내가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 “환경(環境)”》을 내게 읽어주었다:

“대법제자가 이 환경에서 형성된 높은 경지의 행위는, 일언일행을 포함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사람의 행위를 용련(熔煉)시킬 수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빨리 제고할 수 있게끔 한다. 그러므로 新수련생 또는 자습하는 제자는 반드시 연공장에 가서 연공해야 한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가 사부님의 제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연공장에 가서 연공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아내와 나는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기 위해 연공장에 갔다. 연공자의 환경은 아주 차분하고 평화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며 법을 한 단락씩 읽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모두들 내게 한 번 시도해 보라고 고무시켜주었다. 나는 아주 감동되었고, 사부님의 법을 큰 소리로 읽어보기를 대단히 원했다! 나는 따뜻한 에너지가 흘러 내 몸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내 목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나는 세 번 기침을 했다.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울면서 책을 읽었다. 나는 가슴 속에서 외쳤다: “사부님!” 삼, 사 십 명의 수련생들이 이것을 견증했다. 우리 모두 파룬따파의 위력과 사부님의 자비에 감동되었다. 모두 울었다. 우리는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에 둘러싸인 채, 너무 기뻤다.

법공부를 한 후, 우리는 연공을 했다. 나는 80분 동안 결가부좌로 명상을 했다. 둘째 날에는 한 시간 반 동안 앉아 명상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 몸에서 파룬따파의 위대함이 체현되어 나온 것이다. 대법은 내게 제 2의 생명을 주었고 조각났던 가족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잔인한 박해를 마주하고도 파룬따파에 대한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대법으로부터 혜택을 받았고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대법의 위대함을 견증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런 경이로운 법이 비방을 받을 수 있는가?

3. 법을 수호하다

대법이 구해준 사람인 나는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에 정의를 되찾아오기를 원했다. 2000년 8월 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의 정당성을 청원했다. 나는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나의 사부님의 명예를 되돌리고, 대법책의 출판을 허락하고 감금된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을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말하고자 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한 경찰이 내가 왜 그곳에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청원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는 좋다고 말하고 나의 개인 경험을 교류했다. 경찰은 나를 밴에 태워 나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25일 동안 감금되었다. 나는 나의 개인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감시원들과 범죄자들에게 똑같이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진상을 통해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한명이 말했다, “나도 대법을 배우고 싶다,” 그가 구치소를 떠난 후 좋은 사람이 되었다.

4. 파룬따파에 대해 진상하다

정법의 빠른 진행과 함께, 우리는 사악한 박해를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한다. 점차적으로 나의 사명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 우리가 감히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인간세상으로 왔는가? 이것은 정법과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의 사명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이야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잘하고 싶다, 나는 나의 개인 경험과 행동을 이용해서 정법한다.

나의 일은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이러한 기회들을 이용해서 파룬따파와 정법에 대해 진상한다. 한 번은 내가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세발자전거를 타고 시골로 갔다. 편도로 47마일을 달린 후에도 나는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들은 아주 건강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한 번은 내가 6층으로 모래주머니를 날랐다. 각각 110파운드 되는 모래주머니 여덟 개를 나르는데 반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고객은 아주 놀라서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말랐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수련을 시작하기 전의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말해주고 그에게 나의 수술자국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병을 고치려고 집까지 팔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다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지 한 달 만에 치유되었고, 파룬궁이 내게 제 2의 인생을 주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파룬궁이 기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하고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말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소송대리인의 사무실에서 공인으로 일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에 아주 만족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안 후, 그는 그 때부터 누구를 고용하려면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았고 파룬궁 수련생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모순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가장 무겁고 더러운 일들을 도맡았다. 나는 고객들이 내게 얼마를 지불하는가를 상관하지 않았고 때로는 무료로 일했다. 나는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나는 파룬따파 제자이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파룬따파 제자의 이미지를 나타내야 하고 파룬궁의 진실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나는 부지런하지 못해 수련의 길에서 넘어진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법공부를 더하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고쳐나갔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법을 바르게 한다. 나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기 위해 매 기회를 이용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나는 정법을 방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용해시켜나갈 것이며,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에서 잘 할 것이다.

발표일자: 2005년 9월 10일
원문일자: 2005년 9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8/29/109371.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9/10/647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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