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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지 못하던 데’로부터 자아를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기까지

글/하북(河北)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9월 6일】나는 우리 지역의 협조인(協調人)이며, 지난 3년 동안 내가 우리 지역의 정체적인 협조 및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비교적 잘해왔다고 늘 여겨왔다. 수련생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고 도처에 작은 자료점을 세우는 데에 이르기까지 막론하며, 현재 속인들에게 ‘3퇴’ 등의 일을 권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우리의 정체적인 협조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바짝 뒤따를 수 있었으며 일체가 모두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약 한달 전에 나는 나에 관한 일부 헛소문들을 듣기 시작했는데 차마 듣기 힘들 정도였다. 당시 내가 이런 헛소문들을 들었을 때 나는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여겼으며 마음속으로 아무런 촉동(觸動)도 없었다. 그러나 후에 나 역시 안을 향해 찾았다. 도대체 어느 방면에 집착이 있는가?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생각하고 생각해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내가 무엇을 하든지 막론하고 항상 다른 협조인들과 공동으로 협조를 잘한 후에야 비로소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한 일체는 모두 정체적인 제고를 위한 것으로 속인이 대법진상을 명백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여겨왔다. 또한 나는 명혜망에 문장을 쓰기도 했으며 명혜주간에 글이 실린 적도 있다. 심지어 나는 작은 책자를 편집해서 명혜망에 보내 인정받은 적도 있다. 나는 늘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지혜이며 대법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또 이것 때문에 희희낙락 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동수들에게 알린 적도 없다. 나는 늘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법에 입각해서 하고 있다고 여겨왔으며 정체적으로 책임지는 기점에 서서 한다고 여겨왔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법학습과 사고를 통해 법에 비춰보았음에도 나는 최종적으로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여전히 부정하였다.

그러나 나에 대한 헛소문은 끊임없이 전해졌고 심지어 나와 왕래가 빈번한 동수들이 헛소문을 듣고는 모두 분분히 불평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서 늘 자신의 마음이 좋지 않은 요소들에 의해 이끌릴 수 없다고 여겼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씬씽(心性)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이에 나는 또 생각했다. 이 시기에 법학습을 적게한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한, 두강씩 읽었으니 법학습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연공이나 발정념이 부족했는가? 그렇지도 않다. 나는 연공을 줄곧 견지해왔고 발정념도 매일 8차례씩 했으니 적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공산 사령에 관련된 서적이나 휘장 등의 물건도 모두 깨끗이 청리하여 일부 기술서적과 자전 외에는 모두 없애버렸다. 무릇 공산 사령과 관련된 책은 태울 것은 태우고 팔 것은 팔아서 이미 다 처리해버렸다. 그렇다면 마땅히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 때 내 마음은 좀 침중(沈重)해졌다.

바로 며칠 전 아침에 한 수련생이 직접 나를 찾아와 불평하기를 “누구누구와 누구누구가 당신에 대해 나쁜 말을 했는데 당신의 집이 아주 가난(우리 집의 경제적인 조건은 확실히 열악하다)해서 당신이 동수들의 돈을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수련생은 매우 화가 나서 말했으며 이때 내 마음도 흔들렸다. 당시 나는 마음이 쿵쾅거리면서 ‘아이구, 세상에! 나는 지금까지 동수들이 어렵게 마련해준 돈을 단 한 푼도 함부로 쓴 적이 없고 교통비마저도 다 내 돈을 사용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모든 돈을 자료를 만들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사용했다. 이는 사부님과 뭇신들이 보고 계신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마음이 평정해졌다. 속으로 생각해보니 ‘분명히 어느 곳엔가 내게 아주 큰 부족점이 있으니 정말로 잘 찾아보아야겠다.’ 나를 찾아온 수련생이 또 말했다. “그들을 정황을 모르고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수련생이 돌아간 후에 어떤 동수의 복사기가 고장 났다는 연락이 와서 나는 수리하러 그곳에 갔다. 동수에게 가서 이 일을 해결한 후에 나는 이모님(동수) 댁에 들렀다. 이모는 내게 같이 식사하고 발정념을 하자고 하셨다. 이모부(동수)는 저녁에 일이 있다면서 잠시 쉬러 가셨다. 그후 나는 이모에게 나에 관한 헛소문과 자초지종을 말해주고 내가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이모가 내게 한 말은 “네가 협조인이니까 네가 하거나 말한 어떤 일을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랬겠지. 그들은 구체적인 정황을 확실히 몰라서 그럴 거야. 동수들은 모두 수련인이지만 경지가 서로 다르고 사람의 집착이 있으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대로 하렴. 사부님께선 알고 계실거야.” 이 말을 들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도대체 나의 어느 방면에 문제가 있는지 찾지 못했다.

약 오후 3시 반쯤, 이모부가 깨어나셔서 나와 이모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모부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셨다.)을 보셨다. 그러더니 쇼파에 앉으신 채 즐겁게 몇 마디 하셨다. 대체적인 의미는 “수련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때는 늘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마땅히 정체적인 심태를 고려해야 하며 진정하게 법에 입각하여 일을 할 때는 모든 것이 다 평화롭다.”

이모부가 말씀하실 때 아주 자연스러웠는데 당시 나는 마치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해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드디어 찾았다! 나는 줄곧 일을 할 때에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내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느슨해졌다. 나는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나는 줄곧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었구나. 그렇지 않은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늘 자신의 의견이 좋다고 여겨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신중하고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해왔으며 문제를 보는데 아주 민감해서 크게 차이가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원고를 인쇄할 때도 나는 아주 적은 종이만 낭비했다. 복사기 수리를 배울 때에도 한번보고는 곧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진상자료를 나눠줄 때도 늘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여겨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사람(동수)과 비교하면 내가 차린 식사가 더 맛있고 내가 세탁을 하면 물을 더 적게 쓸 수 있었다. 청소를 해도 내가 한 것이 더 깨끗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한 말의 표현이 분명해서 내 의견에 따라하면 효과가 좋았다. 심지어 나는 어머니(동수)가 늘 말씀하시듯이 어릴 때 이불이 단정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며 이불을 똑바로 깐 후에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지금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일을 함에 있어서도 비록 다른 동수들과 잘 협조하고는 있지만 늘 자신의 방법대로 하길 원했다. 수련생이 깨달은 법리도 늘 자신이 깨달은 법으로 지도하려고 했다. 늘 자신이 법을 일찍 얻었고 문화수준이 높으며 법학습도 많이 했고 깨달음이 높다고 여겨왔다. 나는 늘 동수들이 자신의 것을 받아들일 것을 원했다. 동수의 부족한 점을 볼 때면 항상 수련생이 나의 요구표준에 도달할 것을 생각했다. 심지어 수련생이 누락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서 체포되었어도 여전히 “어떻게 됐는지 봐라. 내 말을 듣지 않더니.”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련생을 구원하고 사악을 폭로하는 표어를 쓰며 선(善)을 권하는 편지를 쓸 때도 모두 내 일이었다! 내 생각에 따라 할 때 정확하고 또 많은 일들을 성공했기에 동수들도 모두 인정하였다. 이렇게 속인 중의 습관이 대법일 속으로 옮겨져 들어왔다. 이는 그중에서 자기 고유의 관념과 집착이 있는 것으로 더욱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당(死黨)의 문화, ‘우리 당은 일관적으로 정확하고 위대하며 바르다’는 요소가 장난치고 있는 것이다.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으면서도 나는 이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협조인으로 있었고 허다한 대법 일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조차 못했다.

지금 나는 드디어 자신의 문제를 찾아냈으며 또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용량(容量)이 정말이지 아주아주 커진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동수와 더욱 융합(融合)하여 협조하게 되었고 진정하게 동수의 인식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평상시에 나는 늘 처자(妻子)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아내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을 좋아했고 심지어 아내와 언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지금 나는 또 드디어 관용하게 되었으며 선의(善意)적으로 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동수에 대해서도 누구의 인식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나는 평화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동수들과 어떻게 해야 정체적으로 대법일을 할 수 있는지 더 잘 상의하게 되었다.

문장완성 : 2005년 9월 5일
문장발표 : 2005년 9월 6일
문장갱신 : 2005년 9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9/6/1099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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