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5년 8월 28일】
1.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하며 정신이 다른 곳에 가지 않다
이 며칠동안 나는 단체로 법공부할 환경이 있어 매일 저녁마다 한 강의씩 하였다. 《전법륜》을 한번 배운 후 모든 경문과 설법을 다시 한번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였고 4일째 되는 날 낮에 나와 두 수련생은 함께 하루도 안 되어 두 강의를 배웠다. 그러나 마음에 들어와, 자신이 마치 아주 오랫동안 모두 그렇게 진지하게 《전법륜》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느낌이었다. 이전에 비록 법공부하는 속도가 아주 빨랐지만 80%는 정신이 다른 곳에 갔다. 매일 법공부한 수량으로 늘 자신을 위안하면서 그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며 늘 《전법륜》에서 무엇을 깨닫지 못한다고 느끼었다.
그 날 우리는 법을 배울 때 되도록 자신에게 처음 《전법륜》을 볼 때처럼 그렇게 열심히 보고 정신이 다른 곳에 가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말자고 서로 일깨워주었다. 그 때 두 강의를 배운 후 나는 상태에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을 느끼었다(그날 나의 상태가 좋지 않았음). 또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실 오랫동안 존재했던 부정확한 상태와 법을 실증하는 중에 자신을 닦아야 함을 잊고 있은 점, 또 심태가 상서롭지 못한 등등의 문제를 처음으로 체험하였다. 모두 《전법륜》을 배울 때 배워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6일째 되는 날, 나는 동수와 함께 집을 나섰고 하루종일 또 법공부하지 못하였다. 저녁에 그리고 이튿날에도 다른 일이 있어 법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마음속으로 아주 조급하였다. 길에서 수련생은 나더러 《논어》를 외워보라고 일깨워주었다. 사실 논어 역시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전에 아주 마음에 들어가도록 외워보지 못하였다. 정말로 “어린 화상이 경을 읽음에 있어서 입으로 읽지만 마음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날 나는 자신이 “마음으로 외우길” 요구하였고 매 한마디 외우면서 모두 진지하게 이 한마디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한번 외운 후 법리는 단번에 나에게 펼쳐졌다. 아주 많은 문제들을 마치 단번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았고 나 자신에게 오랫동안 존재했던 부정확한 상태, 그리고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을 포함하여 단번에 알았다. 무엇이 “근본상에서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면”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물론 모두 이 층차 중에서 나에게 펼쳐보인 것임). 그날부터 나는 법공부의 질량을 더욱 중시하였고 매일 법공부할 때 모두 엄숙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7일째 되는 날 또 집을 나섰고 길에서 두 시간동안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을 때 나는 끊임없이 논어를 외웠다. 비록 환경이 아주 소란스러웠지만 기본상 정신이 다른 데로 쏠리지 않았고 마음 속으로 법 속에 용해된 착실함을 체험하였다.
9일째 되는 날 오후 나는 다른 한 동수와 함께 또 열심히 한 강의를 배웠다. 배우고 난 후 나는 나 자신이 이 6년동안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걸어온 길,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도 사악한테 박해당한 그렇게 많은 동수들을 생각하였다. 만약 모두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진정으로 매일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였다면 그 손실은 모두 면할 수 있는 것이고 많은 일 역시 더욱 잘 되었을 것이다.
10일째 되는 오전, 나는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두 동수와 함께 법공부하였다. 한 강의를 채 끝내지 못하더라도 두 명은 모두 천천히 배우며 속도를 구하지 말고 질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나는 늘 이 두 명의 동수에 대해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 왔다. 갓 시작하여 그 중의 한 수련생이 다른 동수에게 손으로 책 위의 글자를 짚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 당시 일종의 감동이 솟아올랐다. 법 속의 매 하나의 생명은 사실 모두 법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가끔 우리는 단지 자신의 관념으로 남을 가늠하려고 한다. 배우는 과정 중에서 나는 우리 세 사람이 아주 열심히 배우고 있음을 느꼈고 심태가 아주 순정하였다. 평소에 그 속인 속의 시비와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고 누구도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 순정한 마당은 나로 하여금 오래전 “평화로운 시기”의 단체법공부를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또 한 가지를 깨우쳤다. 이전에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과 교류할 때 나는 항상 짧은 시간내에 진상을 잘 알리는 다른 동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법노정이 얼마나 빠르고 우리 앞에 놓여진 사명이 얼마나 긴박한가….등을 말하였다. 결과 작용은 항상 며칠만 지속될 뿐 그 중에는 또 부정적 효과가 따라왔다. 하여 두려운 마음이 중한 일부 동수들은 압력이 있어 다른 일종의 교란을 형성한 것이다. 이번에 그들과 법공부하면서 나는 사람의 생명 참뜻에 대한 사색, 돌아갈 갈망에 대해, “진선인”에 동화하려는 바램에 대해 사실 어떠한 것으로도 법만큼 깨우쳐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울러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수련을 견지할 수 있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원동력이다. 더욱이 매일마다 다망한 혼란과 시끄러운 소음 속에 잠겨있으며, 그리고 곳곳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의해 포위된 사람을 놓고 말할 때 오로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해야 비로소 법에 동화되는 미묘함을 느낄 수 있다.
저녁 법공부조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정진요지》를 배웠고 한편으로 배우고 한편으로 자신과 대조하였다. 그리고 서로 의견을 나누웠으며 한시간 반에 겨우 20페이지를 배웠다. 《안을 수련하므로 밖이 안전하노라》를 배울 때 (모두들 아주 감오가 있어 7,8번 읽었다) 모두들 우리 주위의 환경은 사실 우리 자신이 수련한 것이 어떠한가에 달린 것임을 깨달았다. 이 몇 년 동안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항상 정법이 “교란당하였다”로 가리면서 자신의 수련에 관계가 없는가, 자신의 무슨 마음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닌가를 아주 적게 생각하였다. 평화로운 시기(탄압 이전)에 한번에 법공부에 참석한 적이 없었던 한 수련생은 한사코 감탄을 발하였다. “이렇게 배우니 너무 좋습니다. 얼마나 많이 했는가에 상관없이 조금 배우면 조금 알게 되며 조금 동화됩니다.”
2. 생명의 가장 큰 선념을 지키며 선으로 시작하여 선으로 끝내다
협조인 A와 B 이 두사람 사이에 수시로 모순이 발생하였고 모두들 이것을 보아왔다. 다른 한 동수 C는 항상 동수 A에 대해 이것은 법에 입각하지 않고, 저것은 틀리고, 집착이 많다 등등으로 질책하였다.
C는 원래 보도원이고 본래 일정한 작용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7.20 이후 그녀는 계속 숨어다녔다. 비록 법도 배우고 간간히 또 전단지도 배포하지만 현지의 정체 정법형세에 힘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에 대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후 나는 한 개 문제를 생각하였다. 모두들 A와 B를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그들의 집착이 얼마나 중하게 표현되고, 보기에는 잘못이 얼마나 많든지 간에 이 몇년을 돌이켜보면 일은 모두 남들이 해낸 것이었다. 현지에서 이 일보까지 행해냄은 그들 두 사람의 헌신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C는? 보기에는 어떻게 “매끄럽고” 집착이 어떻게 없어보이나 우주 중 전래없이 정법하는 중에 그녀는 오히려 한쪽에서 유유자적하게 보고 있으며(비록 얼마간이라도 힘을 썼어도) 자신의 최대의 능력을 다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원용하지 못하였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낡은 우주의 생명으로서 일체 생명의 요소를 포함하여 정법 이 일에서, 나의 선택 중에서 모든 생명들이 모두 내가 선택한 데 따라 그것을 원용(圓容)시키며 당신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내놓으며 내가 갖고자 한 것을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말에 따라 가서 그것을 원용(圓容)시키는 이것이 바로 우주 중의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 이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놓고 말할 때 가장 큰 실패이고 영원히 영원히 미봉할 수 없는 아쉬움이다. 만약 미봉할 기회마저 없을 때, 이 몇년동안 사람들 속에서 “분투”해 온 잠시적인 명리를 붙잡고, 이 우주 중에 넋을 뒤흔들듯이 감동적인 이 몇 년 동안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때 어떠한 심정일까!
사람들 속에서의 태평성가, 겉으론 번창해 보이는 그것들은 뜬 구름에 불과하다. 비록 오래가지 못하지만 오히려 대법제자를 훼멸시킬 수 있다.
이 나날 속에서 나는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던 타지역의 일부 동수들이 전에는 몇년을 하루와 같이 현지의 정체를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하였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안일한 마음에 이끌려 속인의 명리정에 미혹되었고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였다고 느끼며 이 몇 년 동안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아 마땅히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들은 소식에 의하면 어느 한 기업에 많은 대법제자들이 있었는데 월급, 대우가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의 “엘리트”들은 오늘날 함께 만난 후 매일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여 계속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것인가를 담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누가 돈을 더 많이 벌고 누구의 생활이 “좋은가”를 비기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을 걸은 것은 맞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두 마땅히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대법제자인가?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없으며 인간세상의 안일(安逸)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그릇되게 깨달을 것이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는 이런 마음에 이끌리어 망가진 것이다.”
“이 한 단락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지만 도리어 부동한 층차의 위대한 각자·불·도·신 및 부동한 층차의 주(主)의 위덕을 단련해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을 방임하는 일개 수련자로 하여금 이미 굉장히 높은 층차로부터 하루 아침에 망가지게끔 할 수 있다.”
사실 매 사람마다 모두 이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즉, 시종 “우주 중 생명의 최대의 선념” 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원용할 수 있는가, 선으로 시작하고 선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가 이다.
개인의 깨달음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동수들께서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5년 08월 27일
문장발표:2005년 08월 28일
문장갱신:2005년 08월 28일 00:51:32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8/28/10930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