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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혹형을 받는 것에 대한 생각

글 / 토론토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8월10일] 현재 가면 갈수록 파룬궁수련자가 박해 받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중 상당한 수의 사람들은 우리를 동정하지 않고 있으니 대법에 대한 지지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 우리가 그 중에서 보게 된 일부 원인들을 분석하려고 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보충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볼 때 손오공이 천궁을 크게 소란하여 옥황상제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옥황상제는 도끼로 그의 머리를 찍고 만개의 화살들로 가슴을 뚫어 그를 정복 하려고 하였다. 후에는 태상노군의 연단 화로로 그를 49일 동안 연단시켰지만 그를 어쩔 수가 없었다. 매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생각하여 본다면 손오공이 받은 것은 혹형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동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중에서 유쾌함을 느꼈는데 손오공은 불사신(銅頭鐵臂:동두철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아무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한 기독교인에게 진상을 하는데 그는 놀랍게도 예수님은 마땅히 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신이기 때문에 그는 이런 일을 하려고 왔기 때문에 그가 이런 혹형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그러나 되돌아 우리들이 어떤 때에 진상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준 인상 또한 이렇지 않았단 말인가.

동수들과 교류하는 중에서 나는 우리 일부 동수들이 속인들에게 진상을 하면서 박해 받는 것을 말할 때 동수들이 어떻게 잔혹하게 박해 받는 것을 말하지 않고 반면에 그들이 어떻게 견정하고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심지어 당문화 중에서 형성된 ‘혁명열사’식의 방법으로 형용하면서 박해 받는 동수들을 형용하였다. 마치 동수들은 사람이 아니고 신선처럼 사는 존재인 것 같다. 다른 동수들은 의견을 말하면서 자신은 ‘속인의 것들’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진상을 하는 방식으로 인하여 속인들은 우리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당신들은 마술을 써서 감옥에서 나올 것이지 무엇 때문에 그런 박해를 받는가?”고 비웃기도 하는데, 정말 이것은 누락이며 일부 동수들이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지 않게 진상을 하는 핑게이며 또 낡은 세력의 수련 방식과 당문화에서의 낙인이다.

사부님께서는 : “일반 사람들은 진상을 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그들에게 우리는 박해를 받는 사람이고 우리는 단지 연공을 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곧 이해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북미순회설법》)

어느 정도까지 수련했는지는 속인들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고, ‘속인의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속인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으며 박해를 폭로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진상을 하는데 두는 중점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진상을 하는데 또 다른 하나의 중점인 ‘우리는 단지 연공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데 대하여 동수들에게 홀시 당하는 것이 더욱 많은 것 같고 이것은 많은 속인들이 우리들의 조우에 대하여 동정하지 않게 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된다.

중공의 사악한 당은 이 한차례의 박해를 하기 위한 최대의 방석은 전면적으로 수련자의 형상을 비방하는 것이고 우리가 사람의 정을 모르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고 자식을 관할하지 않고 친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등등으로 수련자는 사람들이 보는 사람의 기본적인 표준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하였다. 그래서 일부 진상을 모르는 속인들은 잔혹하게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마땅하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수련하여 없애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지만 지금까지 우리들을 속인의 이해 능력을 고려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반대로 우리들의 수련은 좋은 사람으로 되는 것부터 깨달은 사람의 표준에 도달할 때까지이며 절대 사람을 이탈하여 수련한 적은 없다. 이런 수련인은 사람들 속에서의 표현은 매우 평범하며 사람들이 본 것은 다만 우리들의 도덕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서 유일하게 느끼는 것은 다만 우리들은 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대륙에서 법을 전수하실 때 많은 대륙수련생들은 사부님을 만나 보았고 지금은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설법 하실 때 또 많은 해외 수련생들이 사부님을 만나 보았다. 조기든지 지금이든지 막론하고 대륙 또는 해외를 막론하고 여러분들의 사부님에 대한 감수는 거의 모두 같은데 사부님께서는 태도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하여 쉽게 다가설 수 있었으며 사람들 속에서도 매우 자연스러웠고 단지 늘 세심하게 고려하고 거동도 고상하며 태도도 부드러웠다.

해외 일부 동수들도 “우리들은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고 속인들이 무엇을 생각하든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이 쓰는 글들은 매우 깨끗하고 속인의 사상이 없기 때문에 속인들은 보기 싫어한다”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동시에 억만 생명의 사상을 감수할 수 있다. 당나귀나 말의 사상을 포함하여 정말로 사람의 마음이 없을 때면 일체 생명 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자비로워지며 모두 이해할 수 있고 어찌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고 우리와 사람과의 간격을 조성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우리들이 써 낸 글이 정말 사람들을 위한것이고 그들의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였다면 속인은 오직 수련인이 써 낸 글이 깨끗하고 사람을 눈물 흘리도록 감동시킬 것이다. 우리들의 경험에 의하면 속인들은 보기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이 신문을 버리기 아쉬워하며 조심스럽게 보관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진상을 할 때 사람들에게 중국에서는 좋은 사람을 박해한다고 알려 주라고 하셨으며 세인들이 만약 정말로 좋은 사람이 박해를 받는 것을 보게 되어야만 그들의 선한 마음과 양지는 최대한 공명을 받게 된다.

또 어떤 동수들도 우리들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는 알고 있지만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라고, 이 한 마디만 이야기한다. 그러나 왜 파룬궁을 수련하면 좋은 사람인가? 문장을 쓸 때 모두 일부 ‘여러분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도리’를 쓰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물론 우리들이 문장을 쓸 때 이 관점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실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크고도 텅 빈 ‘팔 고문’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진상을 하고 대법을 증실하는 효과는 어떠한가? 동기가 무엇이든지 막론하고 효과는 모두 고려해야 하며 아울러 효과를 고려하는 것은 효과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은 다른 하나의 관점이다.

수련에 들어선 후, 우리는 또 이전의 관념을 갖는데 예를 들면, 많은 동수들이 수련체험을 쓸 때 사부님의 설법을 나열하기 좋아하고 자신이 이런 법리의 지도하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심정과 언행의 경지를 제고했는지는 쓰지 않는다.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쓸 때도 우리들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서방으로 가서 문장 쓰는 것을 배우는데 자신과 서방의 최대한 부동한 점은 바로 서방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을 모든 사람들의 관점이라고 강조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꼭 자신에 대한 매 하나의 관점에 논거를 제기하여 그 중 당사자의 경험은 제일 좋은 논거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세인들에게 ‘우리는 단지 연공을 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많은 세인들은 파룬궁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사악한 당의 거짓에 속아 우리들을 오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점은 우리 파룬궁의 자신의 관점이 된 것이다. 우리는 세인들에게 ‘우리는 단지 연공을 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꼭 생동한 예를 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한 수련생이 박해를 받은 문장을 쓸 때, 가급적이면 동시에 그의 생활 속에서 일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례를 든다. 속인들이 보면 아주 상세하고 생생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여러분들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거의 매개 수련생마다 모두 이런 사연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대법을 증실하고 진선인 대법이 인간에서의 체현 그리고 법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점이다. 만약 우리들이 한 대법제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속인들에게 친근한 감을 준다면, 마치 생생하게 자신의 신변에 발생한 일과 같다면, 그리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한 박해를 받는다면 어떠한 선의의 사람들도 모두 나서서 우리들을 지지할 것이다.

문장완성 : 2005년 8월 8일
문장발표 : 2005년 8월 10일
문장갱신 : 2005년 8월 9일 19 : 48 : 32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8/10/10807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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