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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엄숙하게 대하라

글 / 중국대륙 수련생

[명혜망] 최근, 나는 대법수련생들이 중한 병업으로 고통을 받거나 병이란 검은 손에 의해 생명마저도 빼앗기는 데 대한 기사를 종종 읽었다. 이런 유의 사건들은 또 우리 주변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그들은 수련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똑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에게 큰 손실을 가져왔다. 문제가 협조자라든가 행동으로 보아서 보통 “잘 정진한다”고 고려되었던 수련생들에게서 일어났을 때 그 영향은 더욱 크다. 나는 이러한 손실을 어떻게 최대한 줄일 것인가 대한 나의 이해를 교류하고자 한다. 부디, 부적합한 것이 있다면 친절히 지적해주기 바란다.

정법이 속인사회 층에 와있고 속인들조차도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진지하게 말하면 심각한 병이 회복될 수 있는데, 어떻게 대법수련생이 병에 걸릴 수 있는가? 어떤 수련생들은 장기간의 병업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입원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큰 수술을 했다. 협조자로서 일했거나 또는 대법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수련생들이 관련된 상황에서 가장 큰 부정적인 영향을 만들어냈다. 수련생이 더 잘 알려졌을수록, 손실이 더욱 컸다. 어떤 수련생들은 묻는다, “그가 그처럼 잘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 때문에, 법공부를 잘 하지 않았던 수련생들과 신수련생들은 대법에 대해 의심을 갖기도 하고, 그리고 잘 알려졌던 수련생들의 가족과 친구들 역시 대법을 향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친 듯한 박해 중에서도, 모든 대법수련생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이 사람들을 선량하고 건강하게 되는 것을 돕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 해왔다. 우리는 자신의 건강한 육체로 대법의 경이로움을 실증하고,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믿게 하고 대법에 의해 구도되었다. 병든 몸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대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사악은 우리의 수련을 교란하고 세상 사람들이 구도되는 것을 교란함으로써 우리를 박해하고, 결국은 고난 중의 수련생들을 파괴하고, 대법에 더욱 큰 손실을 가져오기를 원한다.

대법자료를 전달하는 책임을 졌던 어느 한 수련생이 심부름을 하느라고 달리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켜 즉석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수련생들과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일으켰다. 전에 대법을 인정했던 그의 형조차도 당장에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가 물었다, “당신들은 당신의 사부가 보호하지 않는가?” 나중에, 역시 대법수련생인, 죽은 수련생의 부인이, 그녀의 남편이 대법 이전에 다른 문의 기공을 수련했었는데, 그가 대법을 얻고도 다른 수련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파룬궁의 가르침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충고에도,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 기공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사부님께서 사고가 있기 전에 암시를 주셨지만, 그는 그것을 행동에 반영하지 않았고 그의 옛 방법을 계속했다. 오직 그의 부인이 실제 상황을 밝힌 후에야 다른 대법수련생들 간에 있던 오해가 일소되었다. 수련은 심각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철저하게 정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수련생들 간에 교란을 만들어내며 세인들 간에 오해를 가져온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와 있을 때조차도 자신들이 “대법에 견정함”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들은 자신의 집착을 감추고 그들의 누락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집착을 마주 대하고 직면하는 용기가 없다. 진정하게 정진하는 대법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9강의, “깨달음”》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이 할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됨으로부터 시작하여, 줄곧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줄곧 고생을 겪으며, 줄곧 위로 수련하면서, 줄곧 心性(씬씽)의 제고를 요구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공을 볼 수 없다.”

견정한 믿음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만 할 뿐 실제로 우리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대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높은 표준을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

고난 중에 있는 동수들을 향해 이해심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환경하에서 대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수련생들, 특히 사악한 고난을 대면하고 있는 수련생들은 명석한 마음을 유지해야한다. 그들이 대법에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가 더욱 결연해 “보일”수록 그리고 우리 자신의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수록 또는 그것들에 대해 논의하는 것마저 두려워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사실, 우리를 박해하는 사악은 우리가 집착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이것에 빛이 비치면 분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가슴 속 깊은 데로부터 개인적인 명예를 방어하는 대신에 대법을 높이 들어올린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사악의 고난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보전상태를 틀어잡고 있다면, 당신에게 많은 나쁜 일들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대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수련생들은 당신의 상황을 목격할 때 흔들릴 것이고,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인들은 당신의 상태를 보고 그들이 구도 될 기회를 놓칠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처럼 책임이 없는 수련생 자신에 대한 내포는 무엇인가?

고난 중에서, 우리는 대법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자신에 집착하지 말며 당신의 단점을 감추려는 구실을 만들지 말라. 동수들에게 당신의 누락으로 인해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교란을 보도록 하라. 이렇게 하는 것만이 대법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사악이 우리의 누락을 틈탔기 때문에 우리를 박해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우리의 집착을 덮어 감추라는 뜻이 아니다. 집착을 폭로하는 것은 실제로 대법수련생들을 박해하고 교란하며, 또 이로 인해 대법에 손실을 가져오고 중생 구도를 막는 사악의 음모를 파산시키는 것이다.

대법수련생으로서, 이런 유의 사건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났을 때 우리는 사악의 악의에 찬 계획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 바로 대법에 손실을 가져오고 대법수련생들을 교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악들은 법공부를 잘 하지 않은 수련생들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고, 그들이 대법을 포기하도록 이끌며, 일부 속인들이 구도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대법과 동수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그리고 최대한으로 병업이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여야 한다. 우리는 사악이 틈탄 수련생의 집착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동수들에 대해 비판하거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정하게 그가 心性(씬씽)을 제고하도록 도와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오해와 의심을 씻어내기 위해 다른 수련생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이,“어떻게 그처럼 정진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말을 하지 않게 하고, 대법에 대해 견정하지 않았던 수련생들의 층차가 떨어져 내려가지 않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고 동수들에게 진정하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하고, 이런 방법으로 이성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우리 다 함께 사부님의 “대(大)뉴욕재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을 재음미해봅시다,

“당신은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왜 당신을 교란하는지를?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로소 틈을 탈 수 있다! 당신에게는 사부가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설령 한 속인이 오늘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다”고 한마디 외칠지라도 사부는 그롤 보호하는데 그가 이 한마디를 외쳤기 때문이며 사악 속에서 내가 그를 보호하지 않으면 모두 안 된다. 하물며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또 개별적인 수련생들은 정말로 불치병에 걸렸는데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라. 법을 배우기 전의 중환자들과 불치병에 걸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배운 후 모두 좋아졌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안 되는가? 설마 대법이 중생에게 차별이 있단 말인가? 내가 사부로서 수련생에게 다르게 대하는가? 나는 정말로 당신들에게 물어보아야겠다. 당신은 진수(眞修)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였는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서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는 그러한 속인의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각도에 입각하여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가? 낡은 세력은 일부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배치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대다수는 되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은 안 되는가? 나의 법은 당신에게 이야기해준 것이 아니란 말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반드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어 사악에 의해 틈을 타게 되었는가를 보라. 잘못되었으면 마땅히 인식하고 마땅히 잘해야 한다. 당신들은 잊지 말라.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들이여!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다! 수련은 고생스러운 것이며 대법을 실증함에 사악이 더욱 사악한 곳에서 능히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중생의 왕일 것이다.”

발표일자: 2005년 8월 1일
원문일자: 2005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7/28/107059.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8/1/634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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