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5년 8월 16일】저는 헤이룽장성 대법 꼬마제자입니다. 1992년 5월 13일에 태어났는데 엄마가 말씀하신바에 의하면 저는 조산아라고 했습니다. 한달반을 앞당겨 이 날 출생한 것이다. 아래 글은 저의 수련역정입니다.
1. 법을 얻고 법을 배우며 자신을 바르게 수련하다
저는 네살 때 부모님를 따라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 연공장에서는 제가 가장 어렸지만 연공과 홍법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시기 저는 책을 볼수 없어 어른들이 읽는 것을 듣거나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가끔 듣다가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저의 집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연공장에서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리를 틀 때 아파서 조금 틀고서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 아파도 내리지 않았더니 아빠는 낮은 소리로 “아프면 내려렴!”라고 하였습니다. 저 역시 말하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사부님의 말씀 “참기 어려워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워도 행할 수 있다” 『전법륜』를 생각하였습니다. 많은 할머니들이 부끄러워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네살난 애 보다도 못해요.”
저는 신체 소질이 아주 좋아 연공한 후 감기로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한 일이 있기만 하면 반드시 보응이 있었습니다. 제가 5살이었을 때 쥐약을 먹은 쥐가 마당에 엎드려있었는데, 할머니는 쥐에게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저도 할머니를 따라 돌멩이를 던져 쥐를 때렸는데 쥐의 눈알이 맞아서 나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5시가 넘어 아빠 엄마는 집안에서 연공하고 있었고 저는 한참 연공하고 난 뒤 마당에서 혼자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온 아주 가는 철사가 저의 눈을 향해 찔렀고 그 당시 피가 났습니다. 아빠 엄마는 저의 울음소리를 듣고 방안에서 아주 빨리 나왔고 피는 눈물을 따라 저의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엄마는 그때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아빠에게 빨리 병원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한켠으로 울면서 한켠으로 “연공인은 병원에 안 가요.”라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뒤 저의 눈은 좋아졌지만 지금까지 저의 눈 흰안구에는 찔린 흔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빠는 왜 철사가 제 눈을 찔렀을까하며 물었고, 저는 그날 쥐의 눈알을 때려서 나오게 한 일을 아빠께 말했습니다. 아빠는 연공인은 살생하면 안 된다는 도리를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저와 둘째 삼촌집의 여동생이 이웃집의 아직 익지 않은 복숭아를 따서 집에 가지고와 엄마께 보여주었습니다. 엄마는 보더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맞아? 대법제자는 진선인을 말하는데 이것이 무슨 행동이냐?” 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고 제가 잘못한 것을 승인하였습니다. 후에 저는 여동생과 나가 놀다가 어찌된 일인지 작은 돌멩이가 갑자기 날아와 저의 허벅지를 긁었고 큰 상처가 났습니다. 유사한 이런 일이 저의 몸에서 아주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2.비바람이 몰아치는 길에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
99년 4.25에 부모님들은 베이징에 가서 정법하고 저와 할머니만 집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습니다. 3일 뒤 부모님들은 집에 돌아왔지만 저의 집에서 하던 법공부 소조는 이날부터 해산되었습니다. 잇달아 7.20 부모님들이 성정부에서 돌아온 후 감시대상이 되었고 집안의 전화가 도청되었으며 파출소에서는 늘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습니다. 부모님들은 수시로 추적당했고, 원래부터 친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도 감히 말하지 못했으며 아무튼 곳곳마다 적색테러였습니다.
동수들로 하여금 사부님의 신경문과 『명혜주보』를 즉시 보게 하려고 저는 11살 때 주동적으로 전달임무를 맡았습니다. 어떤 때는 부모님은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였지만 저처럼 어린 아이는 주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많은 동수들이 두려운 마음에 자료를 감히 받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자료를 보내준 사람이 저인 것을 보고는 감히 받지 못하던 데에서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몇년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엄동설한, 무더운 여름에도 저는 동수들의 자료를 지체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모두 즉시 그들의 손에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또 부모를 따라 자료를 배포하고 매번마다 모두 책가방 가득 진상자료를 메고 엄마랑 한조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아빠는 다른 한 동수랑 한 조였고 몇 시간 내에 우리는 몇 천부의 자료를 모두 배포했습니다.
어느 한 번은 몇몇의 동수들과 우리와 아주 가깝게 위치한 농촌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였습니다. 저와 엄마는 남쪽으로, 아빠와 수련생은 북으로, 엄마가 붙히면 저는 자료를 배포하였습니다. 어느 한 마당에 도착하였을 때 그 집 대문이 잠겨있지 않아 저는 직접 들어가 창문에 자료를 놓고 나왔습니다. 나올 때 검은 개를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그 검은 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구하러 왔으니 나를 물면 안 된다.” 과연 그 개는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저와 아빠가 함께 필을 들고 벽에 “파룬따파는 좋다”라고 적었습니다. 쓰는데만 집중하다 보니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들은 무엇을 하시오?”라고 물었습니다. 날이 어두워 그 사람 얼굴을 볼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였습니다. 아빠가 “당신이 보면 알게 돼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과연 바짝 다가가 보았고 아빠는 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아빠가 쓴 “파룬따파는 좋다”란 글이 그 벽에 남아있습니다. 저와 할머니가 밖에 나가 스티커를 붙힐 때 할머니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 반듯하게 붙히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가서 비뚤어진 스티커를 잘 붙였고 길가의 사람들이 모두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2002년 5월, 20여 명이 갑자기 저의 집에 뛰어 들어와 부모님과 할머니의 손에 수갑을 채워 데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날 마침 점심무렵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라 이 정경을 보고도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손으로 병 하나를 들어 바닥에 내리쳤습니다. “팍”하는 소리에 모든 사람들이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왜 나의 엄마 아빠를 데려가려고 해요?” 한 20여 세 되는 남자가 저를 향해 뛰어오더니 손을 들어 저를 때리려고 하였습니다. 아빠는 “당신은 그래도 사람인가? 어린 아이에게도 당신은 때리는가?”고 하니까 그는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저의 집을 어지럽게 뒤지며 집안에서 값진 물건을 찾아냈습니다. 집안의 카세트를 가져가려고 하자 저는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물건인데 당신들은 손대지 마시오.” 경찰이 할머니와 부모님을 데려갔지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공중전화를 찾아 제가 알고 있는 한 할머니의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아빠, 할머니가 잡혀간 일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일체를 잘 배치해 놓았습니다. 오후에 저는 여전히 학교에 갔습니다.
부모님이 체포된 후 저는 잠시 고모집에 가 있었는데 고모는 속인입니다. 하여 저는 법공부와 연공하는 환경을 잃었고 학교에서 저는 아주 적게 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도 역시 말이 없었고 숙제를 끝내면 문어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가 저의 시야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그것은 제가 엄마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심 깊은 곳에서 사부님! 엄마가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어요? 라고 외쳤고, 가끔 혼자 가만히 눈물을 흘렸는데 고모가 저를 보고 걱정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어느 한 번은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가 학교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나도 동수이고 나는 너의 부모를 모두 알고 있어. 얘야, 만약 곤란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 나의 집은 XXX에 있고 한 할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한단다. 학교에서 끝나면 나의 집에 한번 들려라!” 저는 그 당시 그 할머니를 믿지 않았는데 나쁜 사람일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공장에서 그 할머니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그 할머니를 당신네 집에 불러오면 그 때 다시 말해요!” 방과 후 저는 그 할머니 집에 갔고 집에 들어서자 제가 알고 있는 그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할머니도 저를 보았고 저는 “와!”하고 울면서 할머니한테 안겨서 울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와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저랑 같이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빠 엄마가 집에 없을 때 우리 대법제자는 한 가족이니 곤난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구치소에서 70일 머물고 정념으로 뛰쳐나왔고 아빠는 3년 판결을 받아 현지노교소에 보내졌습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온 후 온 몸에 옴이 생겼고 그 당시 심장병이 아주 엄중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저와 엄마는 우리집 토방에서 지냈습니다. 집은 오랫동안 손질을 하지 않아 비가 샜는데 밖에서 큰 비가 내리면 집안에서는 작은 비가 내렸습니다. 방안에는 온통 크고 작은 대야와 그릇들이었습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행동이 아주 불편했습니다. 후에 동수들이 엄마를 보러 오면서 쌀과 밀가루, 제가 학교 갈 돈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동수들의 도움 하에 저와 엄마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내왔습니다.
2003년 초 엄마는 현지의 협조일을 감당하고 대법일을 하면서 또 돈을 벌어 우리를 부양하였습니다. 엄마는 아주 바빴고 저를 돌볼 시간이 아주 적었습니다. 저는 전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엄마가 가장 좋고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음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협조하여 대법 속의 일을 잘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과가 많아지고 시간이 적어져 저는 이전처럼 대면적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공부도 상대적으로 적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사부님의 법의 요구에 따라 제자신을 단속했습니다. 어느 한번 저는 진상자료를 들고 직접 사람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아주머니 좋은 거 하나 드릴께요. 한번 보세요.” “뭔데?” 아주머니는 의혹의 눈빛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보세요. 아주머니한테 좋아요.” 저는 걸어가면서 아주머니가 자료를 보는지 주시하였는데 그 아주머니는 파룬궁임을 알고는 바닥에 던졌습니다. 저는 방법이 없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돌아가 그 자료를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엄마와 교류를 하였습니다. 엄마는 “안을 향해 찾아. 왜 그 여인이 안 받았을까?” 라고 하셨고 저는 “그녀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도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죠.” 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더러 안을 향해 찾으라고 하였는데 너는 오히려 밖으로 찾는구나. 넌 그녀가 구도되지 않을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수 있니. 네자신에게 물어봐, 네가 그 당시 두려운 마음이 있지 않았는지, 순정한 마음으로 사람을 구도하겠다는 마음이었는지?” 저는 말하지 못하고 안을 향해 찾았습니다. 최근 법공부가 적어지고 벌정념도 적어져 속인 마음도 이전보다 많아졌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황에서 한 일은 마땅한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3. 시간을 다그쳐 중생을 구도하며 정법노정에 따라가다
현재 저와 동수들은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함께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홍음(2)』 속의 “견정”을 외우기 아주 좋아합니다. “깨달은 자 세속 벗어남을 높이 보나니 정진하는 자 마음이 독실하여 원만하노라 큰 난 속에서 견정해야 하거늘 정진의 뜻은 돌릴수 없노라.”
2004년 9월 아빠는 동수들의 정체적인 구원으로 정정당당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악한테 일종 이름모를 약물을 주사당하여 현재 길을 걸을 수 없고 기억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전신이 거의 마비되어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가끔 엄마가 왜 이렇게 바쁜 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저는 그 속에서 잘 조율하며 아빠에게 이렇게 알려줍니다. “엄마는 가장 위대한 일 가장 신성한 일을 하는데 어찌 인정으로 문제를 볼 수 있어요? 아빠는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아요?” 그러자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너무나 바빠 아빠를 돌볼 시간이 없고 저와 할머니가 집에서 아빠를 돌보며 함께 법공부, 연공을 합니다. 그리고 아빠를 부축하여 햇볕도 쬡니다. 우리 일가족 역시 정체가 되어 협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저는 비록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주 빨리 떨어졌지만 저는 계속 노력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입니다. 법공부를 잘하여 제자신을 잘 닦으며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려서 중생을 구도할 것입니다.
문장완성:2005년 08월 15일
문장발표:2005년 08월 16일
문장갱신:2005년 08월 15일 23:50:39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8/16/10849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