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옥중(獄中)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7월 29일] 나는 늘 수련의 기점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사부님이 요구하신 것을 첫 자리에 놓고 온 힘을 다해 잘 했는가, 아니면 개인의 득실, 원만, 이론상의 승화 등을 첫 자리에 놓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가지 일을 골라가면서 할 것인가?
사부님께는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원만을 집착하는 것은 집착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이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가 원만을 집착할 수 있는가? 기실 진정으로 원만에 가까워진 수련자는 이런 마음이 없는 것이다.” (é최후의 집착을 버리자û) 사부님께서 é대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û에서 말씀하시길 “명혜망에 한편의 문장이 게재되었다. 어느 한 수련생이 줄곧 대법의 진상을 이야기 하면서 “대법은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어디로 끌고 가든지, 악한 경찰이 무엇을 말하든지, 나는 모두 듣지 않으며, 네가 나를 모질게 때리고 욕해도 나는 여전히 이러하다. 그 노동교양소는 겁이 나서 “우리는 그를 갖지 않겠다”고 하면서 되돌려 보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가 그녀를 전향시키지 못한다면, 또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것이며 (뭇사람 웃음) 그것들은 또 보너스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박수) 방법이 없었다. 그 파출소는 어디에 남겨둘 것인가? 방법이 없으므로 집으로 돌려 보냈다.” “보건 대는 표면적으로 마치 사람의 표현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니다. 거기에로 수련된 것이며, 견정하게 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잡혀왔으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 왔다면 나는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다. 그럼 사악한 그것들은 두려워한다. 게다가 현재 사악의 숫자는 무척 적어졌고, 소멸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적어진다.”
그것은 그가 그 경지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기타 공간의 사악들은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째서 견딜 수가 없는가? 사부님의 평주 é두세 마디 하노라û 에서의 말씀이 생각난다: “ ‘좋은 사람’ 이 문장은 말은 많지 않지만 하나의 도리를 설명한다. 우주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정념은 선량한 대법제자의 반석처럼 견고한 금강지체를 구성하여 모든 사악들이 벌벌 떨게 하였고, 방사하여 나오는 진리의 빛은 일체의 바르지 않은 사상 요소를 해체 시킨다. 얼마나 강한 정념이 있으면 얼마나 큰 위력이 있다. 대법제자들은 정말로 속인 속에서 걸어 나왔다.”
명혜망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정념이 강대한 대법제자는 친인들이 반대하던 데로부터 이해하고 확고히 지지하는 데로 이르게 하였으며 지도자, 동료들이 법을 실증하라고 그녀를 보내 주었다. 그녀들을 잡으러 온 경찰들을 집단 정념과 진상으로 물러가게 하였다. 법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20여명 제자들이 잡혔다. 그 중 한 여제자는 6일 동안의 밤과 낮을 경찰들로부터 모진 매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은 내가 불러왔다” 이 한 마디만 딱 잘라 말하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도리어 풀려 나오게 되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노동개조로 보내지게 되었다. 어떤 이는 정념으로 그와 아내가 동시에 보아낸, 그가 임업대학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사악에게 붙잡히는 배치를 없애고, 진상자료를 몽땅 배포한 후,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또 어떤 이는 정념으로 인쇄기의 선천적인 결함을 개변시켰다……
위와 비교하여 볼 때, 사악이 소위 ‘무릇 안으로 문제를 찾는다’는 제자들 주위에서 감히 악행을 하고 모욕을 하는데, 그들이 정말로 금강부동(金剛不動)으로 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의 심태가 아주 바를 때, 스파이는 감히 이곳에 머무르지 못한다. 그는 오로지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바른 마당에 의해 동화되는 것인데, 대법제자가 내보낸 순정한 이 마당은 사람의 사상의식 속의 모든 좋지 못한 것을 제거 할 수 있고, 순정한 마당은 그것을 해체할 수 있으며, 사람의 의식중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해체하는 바, 이것이 바로 구도와 자비의 다른 일종의 체현이다.” (é2003년 미국중부법회에서의 설법û)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참음은 나약한 것이 아니며,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디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é더는 참을 수 없다û)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안으로 찾는 것은, 사람의식 중의 자기의 그 무슨 마음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닌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박해 받는 것을 제고하는 것으로 여기기에, 사악을 무서워 떨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한 수련자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모두 생사를 내려 놓을 수 있다면, 사악은 꼭 두려워 할 것이다. 만약 모든 수련생들이 모두 해 낼 수 있다면, 사악은 저절로 소멸될 것이다”( é최후의 집착을 버리자û) 안으로 찾는 것을 우리는 했는가?
많은 제자들은 잡히고 맞아도 매우 견정하였지만 결국 갇히게 되었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 하리라.”( é슬퍼하지 마라û)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박해가 발생했으므로, 그럼 나는 그것을 이용하여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박해를 부정함으로서 대법제자의 위덕을 세우게끔 하였다.”(é역시 방할 하노라û) 그렇다면 우리가 생사는 내려 놓았다 하지만, 반 박해를 도리어 소위 고험을 부정하고,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얘기하는 뒤에다 놓은 것이 아닌가? 개인의 생사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한가?
정법이 오늘에까지 걸어왔고, 사악의 기세도 없어졌다. 박해는 박해자 본신(本身)인 중공마저도 유지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부분적인 일부 제자들은, 이에 대하여 흥미진진해서 말하기 좋아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얼마나 큰일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평소대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é2004년 워싱턴 DC법회에서의 설법û)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최후의 기회를 이용하여, 중생을 구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때문에 여러분은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가지 일을 더욱 잘 해야 한다.” (é새해문안û) 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기다리면서 하지 않거나 혹은 최후 시각에 많이 했다가 박해를 받을까 봐 적게 하거나 혹은 숨어서 하지 않는데, 그 배후의 기점은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공(公)을 위한 것인가?
어떤 제자들은 “중생”을 자기가 가진 재산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대법이 수련해낸 각자로서, 그의 무량한 중생을 위해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은 미래의 우주가 준 책임이다. 만약 우리가 때때로 정체의 형상을 생각하지 않고, 정체로 법을 실증하지 않으며, 세가지 일을 공동 협조해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책임은 말할 자격조차 있겠는가?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진정한 부처는 우주의 보위자이다. 그는 우주중의 일체 바른 인소를 위해 책임질 것이다.” (é도항.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û) “여러분 알다시피 부처, 신 그는 중생을 위하여, 우주의 이익을 위하여, 그의 생명도 버릴 수 있으며 무엇이나 모두 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태연부동하다.”( é법륜불법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û) 어떤 제자들은 자기는 죽어도 원만 될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천국세계의 부처는 진리를 위해 일체를 버릴 수 있는데(생명도 포함하여), 그가 개인 원만을 생각할 수 있는가?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왜 한 생명을 대법과 내가 친히 전하고 구도해야 하는가? 투철히 말하면, 어떠한 생명이 우주대법이 구도하는 자격을 갖고 있는가? 구도 받은 생명은 단지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일 수 있는가?” (é역시 방할 하노라û) 오늘까지 우리는 중생을 위해 대가를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바친 것이 그 무슨 보류(保留)적인 바침인가? 사부님께서는é스위스 설법û에서 정법과 중생구도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실 때 말씀하셨다: “내가 능히 최대한도로 나의 일체를 버릴 수 있었기에, 나는 이 일체를 열어놓을 수 있었다.” (é스위스 법회에서의 설법û) 우리는 어떠한가? 중생구도에 만족을 느끼는가? 영화 é싱데레의 명단(辛德勒的名單)û의 끝부분에 싱데레에게서 구원된 천 여명의 유태인들이 그에게 감사드릴 때, 그는 도리어 울었다. 그는 자기의 손목시계와 반지를 가리키면서 “원래 나는 이것을 이용하여 몇 명을 더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몇 사람은 더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법제자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가지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는가?
개인의 깨우침으로서 자비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완성: 2005년 7월 28일
문장발표: 2005년 7월 29일
문장갱신: 2005년 7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7/29/1072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