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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녀가 중국에 돌아갔을 때 겪은 경력

글/ 야오칭

【명혜망】나의 고향사람인 하오펑쥔이 일어섰다. 그는 중공의 해외 간첩활동을 폭로하며, 그는 캐나다 그곳에서 간첩활동을 하며 정보를 얻었다고 폭로하였다. 나는 그의 고심에 대하여 감탄하였다. 나는 한 평범한 파룬궁수련생으로 중국에 귀국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중국에 돌아갈 때의 목적은 단지 동포들에게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분신 등 거짓말에 몽폐되지 않도록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3년전 중국에서 발생한 일을 돌이켜 보니 일체가 모두 어제같이 눈에 생생하다. 선량하고 대법과 인연있는 그 사람들, 당신들은 여전히 괜찮은가?

* 딸아이의 얼굴도 단호함으로 충만되었다. “엄마 펼쳐요!”

2002년 4월 18일 나와 9살난 딸은 3년 동안 헤어져 있었던 친절하고 또 위험이 가득한 고향땅을 밟았다. 황사로 노란 하늘과 공중은 흙냄새로 가득하였다. 입국한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직접 톈안먼으로 갔다. 택시 기사는 우리가 톈안먼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당신네 외지 사람들만 그 곳에 가려고 하지 우리 베이징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 피비린네가 너무 심하다고 가기를 모두 꺼립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파룬궁의 근황을 물었더니 “어차피 어떤 사람은 파룬궁 수련생을 신고하여 부자가 되었는데, 만약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 같으면 직접 파출소로 싣고가서 200위안의 돈을 받습니다. 나는 그런 덕을 잃는 일을 하지 않아요. 보응을 받지!” 나는 아주 감동되었다. 하늘과 땅을 뒤덮는 거짓말 속에 아직도 이렇게 사악과 무리를 짓지 않은 명백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는 아주 감탄하며 부러워하였다. 차에서 내릴 때 나는 그에게 팁을 좀 주며 마음 속으로 묵묵히 그를 축복하였다.

기사의 선량은 나의 신념을 더욱더 단호하게 하였고 콩당거리던 가슴이 조금씩 평온해졌다. 그리고 2분 뒤에 우리는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치기로 했는데 그후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단호한 마음으로 광장 중심으로 갔다. 그 때가 거의 황혼무렵이라 본래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깃발을 내리는 의식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동시에 많은 사복경찰들도 있었다. 그 때가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내 마음은 콩당콩당 뛰면서 손을 두 번이나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또 꺼내었다. 주위에서 나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 꺼내지 않으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만리길을 넘어 이곳에 온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나와 딸은 서로 바라보았고 아이의 어린 얼굴은 단호함으로 가득하였다. 엄마, 펼쳐요! 나는 현수막을 꺼냈고 딸과 함께 높이 들었다. 우리의 평생의 힘을 다하여 높이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다! 대법의 결백을 돌려주라! 분신자살은 사기극이다! 파룬궁을 박해하면 천리가 용서치 않는다! 선에는 선한 보응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다!……”

광장은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나를 에워싸고는 있었지만 감히 접근하지는 못했다. 한 무장경찰이 뛰어와 단번에 우리의 현수막을 빼앗더니 몸 뒤로 숨겼다. 나는 큰 소리로 그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딸아이는 기회를 엿보다가 그의 몸 뒤로 가서 현수막을 가져다 다시 펼쳤다. 그러자 또 다시 다른 무경이 현수막을 빼앗아갔다. 이때 여타 경찰들이 경찰차를 불러왔고 4,5명의 검은 옷을 입은 경찰들이 우리 모녀를 끌어다가 차에 강제로 태웠는데, 우리는 또 차 창문에 대고 파룬따파가 좋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경찰차를 에워쌌고 나는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과 걱정하는 눈빛을 보았다.

경찰은 차창문을 닫았으며 차가 시동을 걸자 곧장 우리에게 손찌검을 하였다. 한 사람은 나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의 팔을 몸 뒤로 비틀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의 눈을 눌렀다. 그리고 한 사람은 딸아이의 팔을 몸 뒤로 비틀었으며 우리 둘은 필사적으로 반항하였다. 나의 머리는 맞아서 피가 흘렀고 딸아이의 무릎은 상처가 났다. 톈안먼 파출소에 간 후 그들은 나의 배낭을 빼앗고 기타 대법제자들이 갇힌 철조망 안에 가두었다.

옆의 철조망에는 광장에서 체포한 좀도둑 등이 갇혀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캐나다에서 왔고 캐나다 정부와 민중들은 파룬궁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대법은 60여 개 나라에 널리 전해졌지만 오로지 중국에서만 박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 중 일부는 캐나다에서 잘 살지 않고 돌아와서 고생을 하는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이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하나도 없는데도 오히려 모함과 탄압을 받는 즉 천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나아가면 중국은 필연적으로 천재인화가 발생하여 국민들이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대법제자들을 동정하는 것이 보였다. 일부 사람들은 또 철조망 사이로 아이에게 옷을 보내주었다. 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나와 딸만 남았다.

* 톈진경찰이 뒤에서 “이 파룬궁이 또 정말로 대단하다”고 의논하다

한밤 중에 톈진에서 경찰 4명이 와서 우리를 톈진으로 데려갔다. 차에서 경찰은 파룬궁의 해외에서의 정황과 각국 정부의 태도를 끊임없이 물었다. 백인 수련생은 얼마나 있고 수련생의 학력은 어떠한가, 왜 파룬궁을 수련하는가 등의 질문을 하길래 나는 “우리 파룬궁이 퍼레이드를 할 때면 경찰들이 앞에서 길을 열어주고 경찰들이 교통을 열어준다. 경찰은 또 파룬따파 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국가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구타 당하였다.”라고 답해 주었다. 그러자 경찰은 이것이 바로 중국 국정이라고 하였다.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는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동안 막혀있었고, 몇몇 경찰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했다. 나는 그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고, 당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나쁜 일이기에 일체는 모두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혜망에 보도 된, 어느 경찰이 30여 명의 대법제자를 압송하다 길에서 차사고가 났는데, 대법제자들은 모두 괜찮지만 경찰 4명 중 3명이 사망하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은 기사내용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차를 운전하던 경찰이 말했다. “우리를 놀래키지 마라. 우리도 마침 4명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이가 좀 많은 국장은 “오늘의 일은 뒤에 있는 두 사람과 관계가 있을 것이고 나의 훈련도 연기되었다”고 하였다. 딸아이는 내 다리 앉아서는 계속해서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나는 내심으로 이 어린 수련인을 탄복하였다. 딸아이는 비행기에서 내려 지금까지 15,16시간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잠마저 자지 못했지만 정신상태가 이렇게 좋았다.

톈진에 도착한 뒤 차는 나의 호구 소재지의 파출소에 갔고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 알려 아이를 데려가게 하였지만, 친정 엄마와는 말도 못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녹두죽을 가져왔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긍정코 나를 위해 걱정할 것이기에 나는 나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한참 딸아이를 껴안았다. 옷을 입혀주는데 아이는 경찰에게 “엄마랑 함께 있을래요.”라고 하였다. 경찰이 “우리는 너의 엄마한테 몇 가지 문제만 물어보고 돌려보낼 것이다”고 말하자 아이는 그제서야 경찰을 따라 대문을 나섰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쓸쓸해졌다. 나는 국내 대법제자들이 잔혹한 박해 하에서 정념을 견지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더욱 체험할 수 있었다.

오후에 50여 세 되는 사람이 왔는데 경찰복을 입지 않고 있어 나는 그가 610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나의 정황에 대해 아주 요해하고 있으면서 일부 문제에 대해 물었다. 전부 중공에서 선전한 흑백이 전도된 그 따위들이었기에 나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저녁 5시 좌우에 경찰은 3일간 구류 처분을 내리면서 나를 훙치오구치소에 보냈다.

이만큼 나이가 들도록 구치소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 복도에는 층층의 철문이 있었고, 감실에는 각각 두 개의 철문이 있었으며 문에는 경찰이 감시할 수 있도록 작은 창구가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이 곳에서 빠져나가게 할 사람은 없고 오로지 대법에 대한 단호함으로 사악과 협조하지 않아야만이 비로소 한 가지 올바름이 만가지 사악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였다. 그날 저녁 나는 점오할 때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아 불려 나갔다. 그 당시 나의 머리 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누구도 감히 나를 움직이지 못하고 크게 잘못되어 봐야 죽는 것이다.” 경찰은 나를 붙잡아선 기타 재소자들이 점오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하여 그들이 나쁜 일을 하도록 통제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갔고, 우두머리인 소장은 내가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고 하며 그들의 규정에 따라 감옥규율 등을 외우라고 하였다. 나는 오로지 대법의 규정만 준수할 뿐이며, 나는 재소자가 아니기에 감옥규율을 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경찰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서 이렇게 말하는가.” 라고 하길래 나는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 인간세상에 정도가 없다고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중 한 경찰이 “94년 이 사부님이 톈진 8.1회의장에서 강의하실 때 갔었고, 나는 당신보다 파룬궁을 더 빨리 알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나는 내심으로 안타까웠는데, “당신은 대법과 이렇게 연분이 있었는데 얼마나 행운인가.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에 참여하였으니 당신은 정말로 사부님의 당신에 대한 고심에 면목이 없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아주 조급해하며 “나는 대법을 박해하지 않았고 이는 나의 사업이다. 당신이 한번 알아볼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감실에 돌려보내졌고 경찰이 뒤에서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파룬궁은 정말로 대단하다.”

같은 호실에 갇힌 사람들은 아주 비좁은 자리를 나에게 내어주면서 이불도 빌려주었다. 그녀들은 모두 내가 구타당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첫 번째 교전에서 한 가지 올바름이 백 가지 사악을 제압한다는 것을 단호히 믿게 하였다. 그후 이틀간 나는 이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녀들 중 일부 사람들은 생활고로 일부 좋지 않은 일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모두 착했다. 그녀들은 모두 많은 대법제자들과 접촉하여 대법제자의 몸에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요해하였으며 또한 대법제자의 용기에 탄복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간 후 수련할 것이라고 하며 가만히 결가부좌를 배웠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들을 위해 기뻤으며 또한 묵묵히 자신의 행동으로 진선인의 이념을 실천한 수련생들에 대해 감격하였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늘과 땅을 뒤덮는 거짓말을 논쟁없이 부셔버린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그다지 고독하지 않음을 느꼈는데 나는 천백만의 파룬궁 제자들과 함께 서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엄호하에 나는 같은 호실의 수련생과 교류하고 그녀들이 3년동안 진상을 알리며 해낸 간고한 노력을 요해하였다. 그녀들은 모두 여러 차례 붙잡혔고 일부는 이미 2년 노동개조하고 갓 풀려나간 사람도 있었다. 한 수련생은 한밤 중에 자전거를 타고 세 개의 구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으며 매일 문을 나설 때는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를 몰랐다. 그녀의 남편은 수련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묵묵히 그녀를 도와 망을 보아주고, 집의 돈을 내어 자료를 만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박해가 하루빨리 결속되어 이 선량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랬다고 했다. 그녀들이 나에게 또 알려주기를, 한 젊은 경찰은 법을 얻은 지 2달이 지나서 곧 반박해에 참여하였으며 십여미터의 대형 현수막을 만들어 빌딩에 걸었다고 했다. 나중에 현경대에 체포되어 아주 심하게 구타당했는데 그들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나의 눈앞에 한 폭의 역사적 그림이 펼쳐지는 듯 하였다. 위에는 바로 매개 대법제자의 사적들이고 평범하면서 또한 위대했다.

*『전법륜』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그후 여러 차례 심문을 받았는데 그 기회를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여겼다. 단지 나자신이 그 당시 수련이 잘 되지 않아 자비심이 부족하여 대선대인을 잘 못한 것이 아쉬웠다. 수많은 진상을 제대로 잘 알리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나를 아주 애석하게 하였다. 후에 나는 또 시구치소에 보내졌고 그 곳에서 또 많은 인연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녀들이 나의 생활에 준 도움은 나로 하여금 한평생 잊지 못하게 하였다. 복도에서 나는 경찰들이 ‘분신자살’에 대해 의심하는 소리를 들었다. “파룬궁들은 다리를 틀때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는데 그 왕진둥(분신자살자)은 왜 발바닥이 아래로 향하였는가?”

이틀 뒤 또 심문이었고 많은 경찰들이 자리에 있었다. 우두머리인 듯한 30세 40세되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마지막에 이른 바 ‘판결’을 읽었는데 나더러 기한내에 출국하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전법륜』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고 그들은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나는 한사코 양보하지 않았다. “만약 『전법륜』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는다.” 고 하니까 그들은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날, 캐나다로 강제 수송되기 전에 그들은 부모님과,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불러 유리창을 사이로 몇 분간 얼굴을 보게 하였다. 몇 년동안 보지 않았는데 그들은 모두 늙어있었다. 특히 시어머니는 이전에 대법을 수련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거의 2시간을 다닐 수 있었는데, 박해가 두려워 연마하지 않아 신체도 예전보다 못하였다. 기침이 아주 심하여 나의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그때가 시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일 줄 어찌 알았으랴, 반년 뒤 시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하였다. 토론토 중국영사관에서 나의 여권을 연기해 주지 않아 나의 여권은 폐기되었기에 귀국하여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 그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책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아주 단호하였고 나를 이해하셨다. 이번 나의 귀국이 그들을 놀라게는 했지만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딸아이는 아주 기뻐하였다. 작은 손을 유리창에 올렸고 나도 손을 아이의 손에 올렸더니 경찰도 아이와 농담을 하였다.

점심무렵 나와 딸아이는 3대의 차량과 20여 명의 사복경찰의 호송하에 장구이장 공항에 갔다. 귀빈실에서 안전검사를 할 때 또 방금 전에 돌려받은 『전법륜』을 수색당하자 딸아이가 달려가 책을 빼앗았다. 책을 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더니 비행기 이륙시간이 10분이 남아서야 그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책을 나에게 돌려 주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찰은 나에게 “당신이 나를 해쳤다.”고 하길래 나는 “당신을 구원한 것이고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하였으니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 뚱뚱한 경찰은 “당신들은 얼마나 위풍이 있는가. 귀빈실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송을 하지, 총리 대우와 같다!” 우리는 그들과 악수하며 고별하였다. 나는 “다음 번에 또 귀국했을 때 다시 당신들을 만나고 싶다.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라. 당신의 일 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전도를 망치면 너무나도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와 딸아이는 모두 울었다. 짧디 짧은 일주일동안 우리 모녀는 인생 중에서 겪은적이 없었던 생사의 선택을 겪었다. 나를 키워준 나의 고향땅을 아래로 굽어보자 귓가에는 귀에 익은 고향의 소리가 울렸다. 법과 인연이 있지만 거짓말에 몽페된 동포를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맹세하였다.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대법 진상을 알게 할 것이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고 사악과 멀리하게 할 것이다.

3년 후 하오펑쥔이 일어섰다. 톈진경찰들은 마땅히 그의 행위를 배워서, 하루 빨리 중공에서 이탈하여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9평』을 보고 중공과의 고별은 자신의 몸에 붙은 사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인 즉, 마치 달기의 몸에 붙은 구미호와 같이 누구도 그것이 여우임을 보지 못하지만 달기의 사람 몸을 빌어 사람을 해치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당신이 얼마나 큰 관리이든지 간에 사령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당신이 한 일은 바로 그것을 대신하여 한 것이고, 나중에 당신 자신이 화를 당하는 바 그것은 당신의 사활을 상관하지 않는다. 대법은 적이 없고 대법제자 역시 누구의 권력을 대수로와하지 않으며 오로지 사람을 구하고 있는 즉 누가 깨어나 깨달을 수 있는가를 볼 뿐이다.

좀 있으면 곧 사라질 이 좋은 기회를 잡으라!

문장완성 : 2005년 07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7/23/1068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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