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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마음을 배제하다 – 정념정행으로 강해지다

글 / 허베이성, 수련생

[명혜망] 최근에 나는 사부님의 설법, 《2003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에서의 설법》을 공부했다. 읽어가면서 나는 갑자기 정념정행에 대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캐나다 밴쿠버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 각 층차에 모두《전법륜》이 있다. 각 층차의 이치는 부동하며 안에 있는 글자도 보기에는 부동하다. 그러나 모두 새로운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진리로서…”

우리가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새로운 우주의 이치에 따라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낡은 우주의 법칙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낡은 세력은 우리를 건드릴 수도 없고, 또 우리를 박해할 수도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자유스럽다.

다음은 두려운 마음을 제거한 나의 경험이다. 나는 이것을 동수들과 교류하고 싶다. 부적합한 것이 있으면 부디 친절하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나는 교사이다. 2년 전, 진상하다가, 경찰에 신고되어 세뇌반에 보내졌었다. 정념으로 세뇌반에서 풀려났지만, 나는 직장을 잃었다. 나는 직장을 다시 찾기 위해 수차 노력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에서 찾았다. “어쩌면 내가 충분히 “진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인연 있는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박해를 진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부님께서는 《2002년 워싱턴DC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곳이 바로 당신들이 가서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구도(救度)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곤란에 부딪혔다고 하여 피해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손실을 갖다준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법을 실증(證實)할 때 장애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피해 가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향하여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생명을 구도(救度)하여야 한다.”

내가 교육기관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교사들이 모두 내가 구도해야할 중생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편지로 진상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전국에 있는 학교마다 편지를 보내려했다. 백 장이 넘을 것이다. 나는 편지 한 장을 써서 이것을 복사했다. 하지만, 첫 번째 편지를 부치기도 전에, 두려운 마음이 나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그렇게 넓은 범위로 진상을 한다면, 나는 다시 박해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사부님의 가르침에서, 대법제자들은 아무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각 방면에 있는 사악들을 제약할 수 있는 불법의 신성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편지를 부치기 시작했다. 편지 부치는 일은 평탄치 않았고 때때로 교란이 왔다. 듣기로는 각 우체국에서 ‘9평공산당’ (대기원 시보에서 발행한)에 대한 기사가 있는지 편지들을 뜯어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번에 편지를 전부 부치지 않았고, 하루에 단 2, 3개를 보냈다. 그래서 속도가 아주 느렸다.

내가 몇십 개의 편지를 부친 후, 누군가가 내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알려주었다. 두려운 마음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계속 부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둘 것인가?”

당시에, 《전법륜》에서의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 자신의 신체 주위 공간마당 범위 내의 일체 물질은 모두 그의 생각(念頭)에 따라 연화(演化)되기 때문인데 또는 수심이화라고 한다.” 《전법륜》

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다른 공간에서 해로운 물질로 연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좋고 나쁨은 그 일념(一念)에 달렸다.”

법을 생각해내자, 나의 마음은 조용해졌고, 계속 편지들을 부쳤다.

며칠이 지나, 5월1일 휴일이 오기 바로 전이었고, 내게는 아직도 부칠 편지들이 남았는데, 그때를 즈음해서 우리 읍에 있는 수련생들을 넓은 범위로 체포할 것이며 한 닷새 계속될 것이라고 한 수련생이 내게 전해주었다. 당시, ‘명혜 주간’에도 전국적으로 체포가 있으리라는 계획을 알려주었다. 하나의 문제가 지나면 또 하나의 문제가 뒤를 따랐다. 두려운 마음이 다시 일어났고 전보다도 더 심했다. 나는 이 마음을 없애기 위해 발정념을 하고 법을 암송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3일간 편지 부치는 것을 중단했다. 내가 《전법륜》을 다시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제6장의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를 찾아 점을 쳤으니 당신은 듣고 믿은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당신은 정신적으로 부담이 조성된 것이 아닌가? 부담이 조성되었다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집착심이 아닌가? 그러면 이런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이것은 인위적으로 난을 증가한 것이 아닌가? 생겨난 이 집착심은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이해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내 머리에 있던 압력이 갑자기 가라앉았고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극히 이완되는 것을 느꼈으며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진정으로 법의 무한한 힘을 경험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II, “교란을 배제하자”》에서 말씀하셨다,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편지를 부치는 것을 통해서, 나는 나의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시켰다. 나는 또 나의 두려운 마음을 폭로시켰다. 전에 내가 발정념을 할 때는, 거의 조용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나의 공간이 훨씬 조용해진 것을 느낀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와 힘드신 구도에 깊이 감사 드린다, 이것은 내가 두려움을 없애는데 한 발 한 발씩 인도해주었다. 며칠 전에, 나는 드디어 편지 부치는 일을 전부 끝냈다. 편지를 부치는 것 역시 하나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한 사람이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어떤 고난도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6년의 박해 중에서 고통을 받았는가?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진정한 수련생으로 보지 않았고 충분한 정념을 갖지 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따랐던 것이다. 만약 누가 낡은 우주의 법칙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낡은 세력이 배치한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것들을 어떻게 반대해야 하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어떻게 인정하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내가 발정념을 할 때,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더했지만, 나는 아직도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했다.

거의 6년간, 나는 고난 속에서 수련했다. 내가 항상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법을 믿었지만, 나의 믿음의 깊이는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이 편지를 쓰기 전까지도, 나는 아직 낡은 세력이 배치한 모든 것을 반대하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물론 낡은 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를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나 이 사부가 승인하지 않으므로 대법제자도 당연히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필경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는데,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에 부딪힐 경우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낡은 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낡은 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 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내가 《2005년 미국서부국제법회에서의 설법》에서의 마지막 단락과 함께 이 단락을 써서 매일 그것을 암송했다. 나는 발정념을 강화시켰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전법륜》을 읽었다. 그 과정에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내게 낡은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부정하는지, 어떻게 사악의 교란을 돌파하는지에 대한 법리를 체현시켜주셨다. 내가 편지들을 모두 발송했을 때, 나는 어떤 위험도 만나지 않았다.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강한 정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똑발라야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나쁜 일이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요인들은 우리 생각에 따라 연화할 수 없으며, 어떤 악마도 우리를 교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낡은 세력을 부정해야 하며 인정해서는 안 된다.

발표일자: 2005년 7월 28일
원문일자: 2005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7/11/105919.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7/28/633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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