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수련생
[명혜망 2005년 7월 8일] 최근 명혜망에 발표된 ‘두려워하는 마음에 관해서’라는 문장을 읽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나도 자신의 수련체험을 말해보겠다.
나는 1995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과정 중에서 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다. 1999년 사악한 박해가 시작된 이후 나는 벽보나 전단지로 박해를 폭로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꽤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법 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을 사부님께 들은 소업의 과정과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솟아 오를때는 전단지 한 장을 나눠주거나 벽보 한 장 붙이는 일도 매우 어렵게 느꼈다. 사부와 대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 의지하여 최대의 용기와 의지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제거된 후 마음이 가벼워졌으며 일도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반복해서 나타났다.
2000년, 나는 한동안 진상자료 제작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얼마후 사악에게 알려져 구속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마음 속에서 ‘생사’의 시련을 체험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서 나는 단호히 사악에게 박해 구실을 주지 않았고 고난을 참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했으며 결국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다. 그 후부터는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두려움이 없어지자 사악의 박해 이유도 없어졌으므로 나는 곧 석방되었다. 이것으로 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부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이후 내가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갔을 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다시 나타났다.
두려운 마음은 아직 제거되지 않은 자신의 집착과 관련해 존재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사악에게 직면하는 길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직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부분 나는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가끔 길을 벗어나는 일도 있었다.
베이징에서 나는 한 차례 큰 마난(魔難)을 체험했다. 2000년말, 내가 3번째로 천안문광장에서 대법을 실증했을 때 사악에게 붙잡혔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다소 두려워하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정념으로 이 마음에 대항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방으로부터 상경해 온 수련생이 많이 있었다. 나는 다른 수련생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속인의 용기로 나는 다른 수련생을 유혹해 천안문광장으로 나갔지만 결국 사악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 후에도 수련의 기점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지 못했으며 관련된 집착심도 많이 나타났다. 영웅 심리로 자신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숨기는 한편 내심으로 빨리 이 마난이 넘어가도록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전에 사악에게 잡혔을 때는 마음가짐이 좋았기 때문에 사부님의 보호 하에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마음가짐이 잘 되지 않았고 법에서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속인의 수단으로 이 마난을 넘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사악에게 틈을 제공했으며 나는 함께 체포된 수십 명의 수련생과 함께 잔혹한 체벌과 학대를 받았다. 2001년 나는 주거지에 이송된 뒤 곧 노동교양에 처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로 먼 길을 돌아간 것이다.
노동교양으로부터 석방된 후 나는 다시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 3년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자신을 또 극단적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없애는 것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게으른 마음이 나타났다. ‘이제 많이 왔기 때문에 조금 게으름 피워도 괜찮을 것이다, 나의 수련이 이미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이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마음속 깊이 숨어 있었으며 그 표현은 결국 법을 실증함에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안으로 향해 찾아보면 역시 두려워하는 마음과 각종의 집착심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의미로부터 말하면 이것은 박해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걸어나와 대법을 실증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수련자로서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해서 언제나 법의 기점으로부터 대처해 정념을 갖고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나의 체험을 근거로 주위의 수련생을 관찰하니 두 부류의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지금까지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한 적이 없거나 한동안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지만 박해 후 다시 걸어나오지 못하는 수련생이다. 이러한 수련생들은 다양한 구실이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말하면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정념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일부 수련생은 대법 일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마음이 나타났을 때 정면에서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며 속면의 표면적인 용기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수련생들은 때때로 자신에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사업 중 이성이 똑똑치 않고 편향이 많으며 지혜가 부족하고 사악에게 쉽게 빈틈을 탄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최근 심하게 박해받고 있는 수련생들은 거의 이러한 성향이 있었다.
나의 개인 인식으로는, 사악이 아직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았고 수련이 아직 마지막 한 걸음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수련자에게는 아직 다양한 속인의 마음이 있으므로 두려워하는 마음도 반드시 가끔 나타난다. 우리는 항상 수련자의 심태로 모순을 숨기지 말고 그에 동요하지도 않으며 이성적으로 내부의 두려운 마음과 외부의 사악을 근절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수련의 길을 끝까지 걷을 수 있다.
이상 개인의 체득이며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바란다.
문장완성: 2005년 7월 7일
문장발표: 2005년 7월 8일
문장갱신: 2005년 7월 7일 21:12:30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7/8/1057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