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께서는 《2005년 캐나다법회설법》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기억하라: 당신들이야말로 오늘날 인류사회의 풍류 인물들이고 당신들이야말로 중생들이 가장 주목하는 생명이며 당신들은 또 인간세상의 매 한 사람 미래의 생명을 결정하고 있다!”
현재 이것이 바로 정법이 대법제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달성하는가이다.
비록 우리가 속인 사회의 명성, 재산, 감정에 대한 많은 집착을 포기했다고 느끼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많이는 연공하거나 법공부하고 있을 때 아직도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넓어서 무한한 중생들을 다 품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동수들의 관점을 참아내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때로 우리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까지 하는가?
우리가 동수들을 향해 책임감을 가졌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집착을 볼 때 그것들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라는 관념을 내려놓았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거나 못하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던).
어쩌면 바로 이러한 뒤얽힌 집착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인간세상에서 집착을 만들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과거의 수련자들은 갖고 있는 집착들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집착을 만들어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격리된 곳으로 갔으며, 그로부터 일종의 자유를 얻었다. 정법시기대법제자는 정법에 참여하기 위해 세속의 세상 속에 있어야 하고,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환경 속에 있을 때 그리고 이러한 뒤얽힌 집착을 용해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진정하게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II, “부정치(不政治)”》에서 말씀하신다,
“인류사회는 수련하기에 좋은 장소로 이는 이 속의 일체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집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걸어 나와 인류사회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대한 것이며 비로소 원만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인간의 구속을 벗어나 그 밖에 있는 상태–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만약 이 상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이것은 개인수련에 있어 훌륭한 상태이다. 하지만,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는, 거기에 우리의 사명이 멈추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상태도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에 쓰셨다:
소원을 풀다
한마음으로 세상에 내려와
이미 먼저 법을 얻었구나
훗날 하늘로 날아가면
끝없는 법 속에 유유가적하리라
1994년 8월 27일
모든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한 보통 수련자는 진정한 자유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에게는 정법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우리의 서약을 완수해야 하며, 오직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끝없는 법 속에 유유자적하리라.”
발표일자: 2005년 6월 29일
원문일자: 2005년 6월 29일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6/17/104201.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6/29/623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