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덴마크에서 고아 류 샤오톈: 새로운 삶의 노정

글 / 덴마크 수련생

[명혜망]

나는 덴마크에서 온 대법제자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과 심득체험을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부님을 향한 나의 감사함은 언어를 초월한다. 나는 파룬따파를 배우기 전과 후로 나의 체험을 교류하겠다. 나는 신 수련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법에 대한 이해가 아직 깊지 않기 때문에, 부디 내가 교류하는데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친절하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파룬따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으로부터, 생사의 고난을 통해, 나는 수련을 시작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었다. 내게 새로운 생명을 준 것은 대법이었다.

내가 막 16세가 되고 중국에서 8학년에 진학 되었을 때, 우리 가족에게는 예기치 않은 재난이 닥쳐왔다. 2001년 11월 23일, 금요일 오후, 나의 두 부모님이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납치해갔다. 나는 그때 학교에 있었는데, 경찰이 우리 학교 사무실에 와서 나를 찾았다. 갑작스런 비극은 나를 아연케 만들었다. 급우들이 재촉해서, 나는 공포에 휩싸인 채 학교에서 도망했다. 그 순간부터, 세상의 근심걱정 없이 부모님 사랑의 배려 아래 살던 나는, 외로움,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집-없이 사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날 밤 나는 내 집 전체가 마치 지진을 당한 것처럼 산산이 부서진 것을 보았고, 이웃 헛간에 있는 삼베 더미 속에 숨어서 밤을 보냈다. 경찰이 나를 찾고 있었으므로, 친절한 이웃은 내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나의 아저씨를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가는 길에 많은 위험을 지났고, 결국 푸젠성 시골에 있는 아저씨 집에 도달했다. 반년이 지난, 2002년 5월 어느 날, 경찰이 아저씨 집에 나타났다. 경찰의 협박으로 고통받았기 때문에, 아저씨는 나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창고에 나를 숨기기 위해 그곳으로 나를 보냈다. 나는 버려진 창고에 격리된 채 13개월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나를 에워쌌던 것은 고독, 슬픔, 공포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어두운 밤에 나는 종종 악몽에서 눈물로 깨어났다. 깨어나서는, 나는 한 구석에 머리를 파묻은 채 웅크리고, 눈이 빠지도록 울었다. 매일 그러한 아픔과 고통이 찾아왔고 나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내가 창고를 떠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2003년 6월 말, 내 생명을 구해주려고, 자신도 가난하게 살고 있었던 아저씨가 나를 덴마크로 보내기 위해 엄청난 빚을 냈다. 도착 후 몇 시간 내에, 나를 외국으로 데려온 사람들은 나를 버렸다. 한 선량한 사람이 나를 덴마크 적십자로 데려갔지만, 나는 아직도 엄청난 두려움과 슬픔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하룻밤 내가 악몽에서 소스라쳐 깨어났는데, 그것이 근무하던 직원을 놀라게 했다. 다음날, 적십자에서 은신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확하게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덴마크에 파룬궁 수련생들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덴마크에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과 연결이 되었다. 차츰 나는 왜 나의 부모님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알게 되었고, 점차로 대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대법을 얻는 행운을 가졌다

내가 첫 번째로 항상 알고 싶었던 것은 왜 나의 부모님이 파룬궁을 수련했는지, 왜 경찰이 그들을 체포했는지, 그리고 왜 경찰이 아저씨에게 파룬궁을 수련하지도 않는 나를 데리고 있지 못하게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그처럼 많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을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가 내놓은 첫 마디는, “당신들 내가 부모님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나는 그들이 너무 그립습니다.”였다. 한 친절할 숙녀가 내게 말해주었다, “너의 부모님이 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는지 알고자 한다면, 다음 주말에 우리 연공장으로 와. 파룬궁이 무엇인지, 그리고 파룬궁 수련생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네가 알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너는 너의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왜 그들이 체포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다음 주말에, 나는 코펜하겐, 뉴 킹스 공원에 있는 연공장으로 갔다. 한 숙녀가 내게《전법륜》 한 권을 주고, “이 책을 읽어봐. 너는 네가 가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거야. 그 시간부터, 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들의 친절한 보살핌은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내가 처음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나의 정신력은 낮았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내가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고요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엄마를 보았다. 그녀는 연꽃 위에 앉아있었다. 당시 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동수들이 내게 사부님께서 내게 다른 공간에서 엄마가 수련하는 장엄함을 보여주심으로써 나를 격려하고 계시다고 말해주었다.

드디어 몇 달 후, 나는 안정을 찾았고 책을 읽었다. 도망 다니며 사는 삶 속에서 온 심리적 손상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항상 최고 학과성적으로 일등 학생이었다. 그러나 고난 후에, 특별히 선전시 창고에서 13개월 동안 고립되어 있은 다음에, 나는 나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지도 못했다. 나의 이론은 혼동되었다. 책을 읽을 때도, 한 문장을 틀리지 않고 끝내지 못했다. 동수들은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나를 돕고 격려해주었다. 문장 문장마다, 그들은 인내심 있게 내게 읽는 것을 정정해주었다. 심리적 장벽을 단단히 부셔가면서, 나는 대법 책 한 권 한 권을 끝냈다. 대법은 내게 장엄한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매 시간을 법공부, 연공, 그리고 동수들과의 심득교류로 보냈다.

점차 나의 가슴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나는 모든 고난의 뿌리, 인생철학, 그리고 사는 진정한 의미가 반본귀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에게서 집착을 제거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길을 걷다

나는 대법을 얻기 위해, 생생세세 축적시켜 온, 나의 행운을 대단히 소중히 여겼다. 나는 단체 법공부와 교류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느라고 매달 나오는 적은 용돈에서 가능한 한 많이 모았다. 순수한 수련 환경에서, 나는 빠르게 진전했고 정법수련에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2004년 6월 세계 반-고문의 날에, 수련생들은 처음으로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반-고문 전시를 했다. 나는 불로 고문당하는 대법제자의 역할을 했다. 나는 나의 부모님 그리고 다른 많은 중국 수련생들이 잔인하게 박해받는 것을 상기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잘 재현 했다.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재연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얇게 옷을 입었고 한 자세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했다. 북유럽의 싸늘한 날씨에, 나는 전혀 추운 줄을 몰랐다. 내 마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하는 데로 완전히 초점이 모였다. 행사가 끝났을 때, 동수들은 친절하게 내가 춥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단지 그때야 나는 싸늘함을 느꼈고 즉시 추워서 덜덜 떨게 되었다. 이 행사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참가했던 모든 수련생들은 전심전력으로 연기했고, 반-혹형 전에서 육체적 고통을 참아냈다. 에너지의 장이 특별하게 강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여러 주요 도시에서 열렸던 반-혹형전 행사에 참가했다. 집을 떠나는 삶이 어렵긴 했어도, 나는 대법제자의 정법활동에 참가한 것에 행복했고 만족했다.

2004년 7월, 내가 노르웨이에서 반-혹형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고험을 통과해야 했다. 밤에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저씨가 경찰의 협박 아래서 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꿈꾸었다. 이를 알고 나서, 덴마크 동수들이 즉시 나의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으로, 아저씨는 내게 진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사실, 2002년 4월, 그들이 체포된 지 5개월 후 나의 부모님은 죽음에 이르는 박해를 받았다. 이 일로 경찰이 2002년 5월에 나의 아저씨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서류나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나의 부모님이 “자살을 했다”라고만 주장했다. 그 사이, 그들은 나의 아저씨에게 내 가족과의 모든 관계를 끝내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할 것을 강제했다. 나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게 되자, 아저씨는 선전에 있는 창고에 나를 숨겨두고자 그곳으로 보냈다. 중국에는 나를 보호할 만한 다른 친척이 없었고, 또 다른 방법도 없었다. 경찰의 손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아저씨는 나를 해외로 보내느라 거대한 빚을 졌다.

내가 그처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나의 부모님에 대한 뉴스가 박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나오다니! 사악은 단지 부모님들이 眞, 善, 忍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다시금 사부님과 동수들의 자비심이 내가 그런 통렬한 충격을 견디고 지나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 드린다.

2004년 7월, 나의 난민신청이 기각되었다. 청원 과정에는 단 하나의 기회만 남아 있었다. 당시, 나는 속인들처럼 다시 절망감을 느꼈다. 나는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처음 덴마크에 왔을 때, 두려움에서, 나는 경찰에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을 이야기했다. 지금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친척 아저씨마저도 감히 나를 맡을 수 없다. 내가 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에도 희망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시 돌려보내 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동수들이 나를 변호사에게 데리고 갔을 때, 나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마비된 것 같았고 머리가 맑지 못했다. 부모님의 사례를 이용해서 진상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 방문이 있은 후, 동수들은 내게 몇 가지를 지적해 주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의 방문은 제안을 통과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네가 덴마크에 남아 있느냐 아니냐 하는데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너의 경험을 근거로 진상하는 것이었다. 현재, 너는 해외에 나와 있는 단 한 명의 수련생 고아이다. 중국에는 아직도 너와 같은 어린아이들이 있다. 박해받고 있는 어린 아이들도 많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구출해 줄 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너는 진상에서 너의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너는 차분해지고, 명석해지고, 그리고 대법제자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너의 부모님을 대신해서 말하고자 하지 않니?”

그날 밤 법공부 후에, 동수들은 내게 자비심으로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네가 겪고 있는 것에 동참하고 있다. 너는 부모님을 잃었다. 우리는 우리의 수련생을 잃었다. 그것은 우리가 정부의 여러 층과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더욱더 사악한 박해를 폭로해야 하는 이유다. 이것이 중국대륙 수련생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의 압력을 감소시켜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아직 중국에 있는 그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집을 갖게 하고 안정된 삶을 살도록 할 것이다. 파룬따파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고, 박해를 반대하고, 그리고 파룬궁 수련생들을 돕는 것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잘 위치 할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내가 수련에 누락이 있고 이것이 동수들이 진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부지런히 수련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집착을 제거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대법제자에게 요구된 세 가지 일을 했다. 연공을 하고,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했으며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가족의 불행을 이야기했다. 지역 언어의 제한을 보충하기 위해, 나는 동수들에게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자료를 프린트해달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모든 곳에 이것을 대량으로 배부했다.

사부님을 믿고, 정념정행을 견지하다

2004년 10월, 덴마크 난민심판위원회는 마지막으로 내 신청을 심문하는 법정을 열었다. 덴마크에 있는 대부분의 수련생이 정념을 보내기 위해 법정으로 갔다. 어떤 수련생은 다른 도시에서 오기까지 했다. 평화스럽고 조용한 발정념을 유지하면서, 나는 심판위원회의 질문에 진실 되게 대답했다. 동수들이 부모님의 박해 진상자료를 종합하여 나를 도왔지만, 부모님에 대한 뉴스가 마지막 심사 바로 전에 나왔기 때문에 결정은 아직도 부정적이었다. 덴마크 정부는 내게 가능한 한 빨리 중국으로 떠나라고 통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었다. 나는 아직도 여느 때처럼 세 가지 일, 연공, 법공부, 발정념과 진상을 했다. 심득교류를 통해, 동수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덴마크 정부와 매스컴에 더욱더 진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자극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세계 전역에 있는 대법 수련생들이 출동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진상 편지가 덴마크 정부로 쇄도했다. 수련생들은 나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진상 매스컴 보도 자료를 만들어냈다. 덴마크와 다른 유럽 나라에서는, 수련생들이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로 나갔고, 국회, 매스컴, 비정부 단체, 그리고 UN에 도움을 청했다. 덴마크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몇 비정부 단체는 정부에 나의 사례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편지를 썼다. 국회 입법위원회 의장도 나의 사례를 갖고 여러 번 매스컴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정부가 중국 파룬궁 수련생들의 박해를 과소평가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분명하게 나의 사례에 그의 지지를 보여주었다. 지역 TV 방송도 나에 대해 특별보도를 했다. 선량한 많은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잔인한 박해에 대하여 분개하는 한편, 대법을 향해 그들의 동정을 표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자신의 미래를 바르게 위치했다.

전 세계에 있는 수련생들로부터 온 강한 지지의 결과로, 덴마크 정부는 나를 즉시 중국으로 추방하려던 그들의 결정을 바꾸었다. 견실하게 진상한 후, 덴마크 정부는 확실히 파룬궁에 대한 박해의 심각성을 훨씬 더 인정하게 되었다. 결과로, 다른 두 명의 수련생들이 낸 난민 신청이 비교적 순조롭게 받아들여졌다.

법공부와 동수들과의 교류하는 환경 중에서, 나는 정법 수련에서 빠르게 제고되었다

나중에 나는 코펜하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다른 여러 곳으로 옮겨졌고,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렇게 자주 대부분의 수련생과 함께할 수가 없었다. 수련 환경이 비교적 외로웠지만, 나는 대법제자들이 많지 않은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은 그런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법을 가져다주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하고 그들을 구도하는데 나의 경험을 이용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수련환경을 창조해 내야한다. 나는 빠르게 나 자신을 적응시키고 여러 명의 지역수련생들과 함께 단체 법공부와 연공장을 세웠다. 나는 매일 연공하고,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며 진상했다. 나는 진상자료와 “9평 공산당”을 (대기원시보가 발표한)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 또 여러 정법 활동을 위해 나의 생활 기준을 가능한 한 가장 낮게 세웠다.

어느 주말, 나는 한 동수와 함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연공을 시범해 보였는데, 지나가던 한 기자의 흥미를 끌었다. 언어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나의 자료를 보여주었고 내가 아는 몇 마디 덴마크 언어로 진상했다. 다음날, 우리의 큰 연공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렸다.

큰 분량의 진상자료를 다시 심사한 후, 덴마크 난민 심판위원회는 다시 내 사례를 심사에 올렸다. 2005년 4월 말, 나의 난민 신청이 인정되었다.

대법을 얻는 나의 고귀한 행운을 소중히 여기고, 근면하게 수련하다

대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로서, 나는 정말 박해로 거의 파괴되었었다. 파멸의 벼랑에서 구원해 주신 사부님의 자비로움에 감사 드린다. 나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수련자가 되었다.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나의 생명을 구해주셨다. 사부님을 향한 나의 감사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세계의 대법제자들도 그렇게 큰 사랑으로 나를 보살펴주었다.

사랑하는 사부님,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전 세계의 대법제자들, 감사합니다!

나의 부모님도 다른 공간에서 매우 안심하시리라 믿는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그들이 내게 가장 희망하던 길이다, 모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가진, 가장 밝은 길이다. 나는 대법제자들이 해야 할 세 가지를 잘하며 나의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 사람에게 진상하고 그들을 구도하기로 결심했다.

발표일자: 2005년 6월 26일
원문일자: 2005년 6월 26일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6/18/104311.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6/26/6227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