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하늘 사다리를 오르면서 영원히 고개를 돌리지 않으리(上)– 후반부분

글 / 지린대법제자

【명혜망】

2001년 원단에,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전단지를 배포하고, 어떤 이는 현수막을 펼치고, 어떤 이는 스티커 전단을 붙이고, 어떤 이는 족자를 거는 등등 일을 하였다. 나와 기타 5명은 3개 팀으로 나누어 글자 분사하는 일(噴字)을 하였다. 우리는 원단 아침 3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밤에 잠을 잘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화해주셨다. “글자 분사하는 현장에서 그 페인트는 계속 흐르고 있었고, 이어서 입체 교차교의 교각에 몇 명의 나쁜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다고 우기며 우리를 가지 못하게 했다. 꿈으로부터 볼 때, 나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가려고 하는 곳에 경찰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침 시간은 매우 긴박하여 변경할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입체 교차교 부근에 가서 글자를 뿜었다. 첫 번째 “法輪大法好”를 분사하고 두 번째 것을 분사하고 있을 때, 경찰이 우리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는 잡히고 말았다. 우리를 경찰 차에 오르게 했는데 안에 이미 7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있어 우리 둘을 합치니 모두 아홉 명이었다.

파출소에서 불법적으로 3일간 심문을 당했다. 집주소를 대지 않은 사람들은 간수소에 보냈다. 파출소와 간수소에서 심문을 받던 중, 나는 늘 상화(祥和)한 심태로 그들에게 진상을 이야기 하였다. 사람을 때리는 경찰은 경찰봉을 들고 왔다갔다했는데 나의 조용한 표정을 보고는 그들은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른 듯 했다. 가장 지독한 한 경찰은 누가 눈에 거슬리기만 하면 곧장 때리며 욕해댔다. 그는 악독하게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발로 차서 죽이겠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아유! 당신이 감히 나를 찰 수 있단 말이요?!” 당시 나는 이미 생사를 내려놓았다. 그러니 신의 일면이 나타나게 되어 경찰은 근본적으로 발을 들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감방에는 불법적으로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이 너무도 많아 사람들이 서로 엉키어 자다 보니 가슴이 눌리어 아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예전처럼 경문을 외우고 단체연공을 하였다. 경찰이 사람을 때릴 때면 우리는 함께 “사악을 질식시키자!” 라고 외쳤다. 어떤 때 경찰은 몇 명의 신체가 장대한 남자죄수를 우리 감방에 들여보내 손을 마구 휘두르며 한바탕 때렸다. 이러했지만 나를 때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단식을 7일 하였다. 7일째 되는 날, 경찰은 나를 내보냈다. 하지만 병이 위독한 파룬궁 수련생을 간호한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 그때 나는 바지가 없었는데 (감방에 처음 들어간 날, 죄수에 의해 버려졌다.) 그래도 그 죄수 실장이 바지를 벗어 나에게 주었다. 수속을 다 밟은 후에야 우리를 내보낸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수소에서는 내보낸 8명의 기차표를 모두 한 곳의 것으로 샀다. 경찰은 기차표를 우리에게 주고는 바삐 차에 올라 가버렸다. 우리의 나머지 돈을 빼앗아갔던 것이다.

나는 한 큰 언니와 함께 차표를 물리고는 그녀를 셋집으로 배웅해주었다. 그때 나는 털 내복 바지만 입고 있었고 발에는 검은 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간수소에서 우리들의 신발을 몽땅 버리고는 거기의 검은 천 신발을 사서 신어야 한다고 했다.) 큰 언니 그의 얼굴은 경찰에게 맞아 얼굴이 절반이나 검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또 천안문광장에 가서 현장정황을 둘러보고서야 거처로 갔다.

거기에서 우리와 함께 간수소에 갇혀있었던 남자 대법제자를 보았다. 그는 겨우 26세인데 박해를 형편없이 심하게 받았다. 그가 간수소에 있을 때, 중형의 수갑과 족쇄를 찼는데 연결되어 허리를 펼 수 없었다. 경찰은 또 “소음 모자”를 씌워 대뇌로 하여금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게 하면서 때리며 욕까지 하였다. 경찰은 그가 죽을 것 같아 밤 중에 기차역 앞에 끌어다 놓고는 즉각 자리를 떴다. 그 수련생은 서있지도 못했다. 이후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가 그를 거처에 데려다 주었는데 6일째 되는 날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또 원래 거처로 돌아왔다. 계속 매일 거리 곳곳을 누비며 진상 전단지를 많은 집들에 보내주었다. 2001년 2월, 법회에서 사람들은 마땅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진상을 알려 곳곳에서 꽃이 활짝 피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몇 개 성의 수련생들은 걸어 나오지 않아 우리 몇 사람이 가서 교류하고자 나는 이렇게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북 황토 땅에서 법을 실증하다

시안(西安)에 도착해서 접촉한 수련생들은 장기간 외부의 대법 수련생들과 소통을 하지 않아 경문, 명혜망, 진상자료들을 전혀 볼 수 없었으며, 진상 내용에 대해 그들은 의심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현지 정부에서 이미 원래 파룬궁 책임자, 보도원을 모두 외지 친척 집으로 보내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실제 정황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이야기 했다. 북경에 있을 때, 매 편의 보도는 모두 실재 인물과 사실에 근거하였으며 인증, 물증이 있고 시간과 장소가 모두 정확해야 하며 사이트를 책임진 수련생들은 실사구시를 요구했으며 절대로 허위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었다. 반복적인 교류를 거쳐 몇몇 연세가 비교적 많은 수련생들이 걸어 나왔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계속하여 젊고 그 지역을 이끌 수 있는 현지 수련생을 찾았다.

내가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할 때, 현지에서 긴 시간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정황에 근거하여 나는 진상 전단지를 상인에게 주었고 길가는 사람에게 주었으며 길가에 식사하는 사람에게 주었다. 그 한 단락 시간에,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자료를 만들었는데 매일 밤중까지 일을 하고는 이튿날 자료를 내보내야 했다. 나머지 전단지는 우리 둘이 나가서 배포했다. 어떤 때는 경찰을 만나면 차를 몰고 천천히 간다. 그리고 매 전화박스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글자가 붙어 있는가를 검사했다.

한번은 내가 농촌에 전단지를 배포하러 갔는데, 길이 먼데다가 길까지 좋지 않아 발바닥에 많은 물집이 생겼으며 게다가 발목이 부어 걸음이 절뚝절뚝 하였다. 이때 뒤에서 폐품을 모으는 노인이 밀차를 끌면서 동정하며 말하기를, “걷기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어서 차에 올라요”. 나는 이 선량한 노인을 보면서 얼른 말하기를, “당신의 호의에 감사 드리지만 연세가 많은 당신한테 어찌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당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그 다음 마을과 거리가 비교적 멀기 때문에 노인은 한참 가다가 또 고개를 돌리고 보았다. 내가 걷는 것이 정말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또 멈춰서 나를 태워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모두 거절했다. 아울러 내가 뭘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진상 전단지와 동영상 CD를 주었다. 그는 “나는 글을 모른다” 고 했다. 나는 그에게 친인의 도움을 청하라고 알려주었다. 발이 아파 걸음걸이가 늦기 때문에 전단지를 다 배포하고 나니 밤 11시가 넘었다.

거처와는 아직도 4개 정류장 거리가 있었다. 길옆에 손님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가 몇 대 있었는데 서로 앞 다투어 나를 태우겠다고 했다. 나의 호주머니에는 1.40 위안밖에 없다고 하자 어떤 이는 적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는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비교적 성실해 보이는 사람의 오토바이에 올랐다.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거처하고 있는 곳과 또 한 단락의 거리가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릴 때 그에게 1.40 위안과 동영상 CD를 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 젊은이는 매우 기뻐하면서 갔다.

서북의 이 황토 땅에서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수들과 바삐 보냈다. 일에 두서가 좀 잡히려고 할 때, 현지 수련생들에게 먼저 일이 발생했으며 그 다음 우리도 잡혔다. 그 중의 원인은, 일이 생긴 사람이 국가 안전국 특무에게 비밀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형상과 행동거지에 주의하지 않아 주민 위원회의 주의를 일으키게 했다. 가장 큰 누락은 법공부가 적으며 온 종일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몹시 조급하였다. 이렇게 나간다면 어찌 되겠는가? 법공부를 하지 못하면 우리들이 법을 실증하는 길을 원만히 할 수 있겠는가? 동수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는 기회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일에 부딪치면 법에 따라 대조하지 못한다. 그리고 핸드폰이 도청 당해도 (통화 때 끊어지는 반응이 있다) 동수들은 개의치 않아 전반 설비가 전부 사악의 손에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국가 안전국 특무에게 붙잡힌 후, 경찰은 말 잘하는 사람을 시켜 교대로 와서 세뇌교육을 시켰다. 이에 대해 나도 고대의 것과 현재의 것을 예를 들어가며 도리를 따졌다. 장(江)씨 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한 사실로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하게 이야기 했다. 그 무슨 처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리 없이 말하기를, “언젠가 파룬궁을 위해 명예회복을 시켜준다고 하자. 하지만 당신은 현재에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작은 팔이 큰 다리를 넘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일체 바른 것들을 감히 정시하지 못하며 양심을 어기며 나쁜 일을 한다.

그들이 큰 소리로 외치든 탁자를 두드리든 지간에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3일간의 강온 양면책을 통해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자 할 수 없이 간수소에 보냈다. 나에게 수갑을 채운 후, 국가 안전국 특무는 한 쪽에 하나씩 나를 붙들고 있을 때, 내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자 그들은 “이것은 규정이다” 라고 얼른 말했다. 나의 신성하고 위엄이 있는 거동에 의해 나를 붙들고 있던 국가 안전국 특무의 팔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산시(陝西)성의 많은 고위급 간부 요원들이 나를 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그렇게 작게 보였다.

시안 간수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었다. 내 몸의 물품을 몽땅 거둬가서 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들은 곤란과 고강도의 강제 노동으로 나를 정복하려고 했다. 반달이 넘도록 생활용품이라곤 조금도 없었으며 이불도 없어 할 수 없이 죄수들한테 휴지, 치솔, 수건 등을 달라고 했다. 감방의 옷을 입지 않으면 “큰 널”에 올려놓는다. (上大板, 이전에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4명의 남자 죄수가 큰 두꺼운 널을 가져오는데 위에 수갑과 족쇄는 고정되어 있다. 손발을 채워놓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간수소에서는 죄수들을 시켜 나를 괴롭혔으며 나더러 나 자신을 때리게 하고 “감옥의 규정”을 외우게 했다. 나는 그런 악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속으로 줄곧 경문, «홍음»을 외우고, 대법을 자신이 기억한 것 만큼 외웠다.

매 차례 심문 중, 사실은 정(正)과 사(邪)의 겨눔이었다. 나의 가슴 속에 “진(眞), 선(善), 인(忍)” 우주 대법이 가득 차 있을 때, 내보낸 말은 자비하고 힘이 있어 국가 안전국 특무로 하여금 매번마다 부득이 끝마치게 하였다. 네 번째 심문하던 그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나는 북경대학을 졸업한 후, 북경 모 회사에 배치 받았다. 금방 사회에 나오니 생활이 아직 청빈하였다. 그래서 다른 한 여 동창과 함께 들에 가서 매 사람마다 한 줌의 씀바귀를 캤다. 그 뜻인즉 나는 아직도 고생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부님의 격려였다. 나는 여태껏 대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데 사부님의 점화는 나의 가슴으로 하여금 비할 수 없는 행복감을 충만하게 하여 이로 인해 나더러 더욱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을 잘 걸어 나가게 한 것이다.

그 다음, 사무님의 생신 날 아침, 나는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속으로 묵묵히 말하였다. “사부님 당신의 생신을 축하합니다! 당신께서 하시고 계신 정법의 일이 순조롭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저의 몸이 감옥에 있어 사부님께 무엇을 어떻게 표시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법을 외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데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가지 해 주십시오.” 이때 사부님께서는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를 띄우시면서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순식간에 한 가닥 뜨거운 흐름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흘러 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나의 온 몸은 힘이 충만되어 있어 아침부터 밤중까지 긴긴 시간의 노동을 하였지만 나는 법외우기를 중단된 적이 없다.

(계속)

문장발표: 2005년 6월 20일
문장완성: 2005년 6월 21일
문장갱신: 2005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6/21/10448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