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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시기 대법제자의 두 가지 상태

글 /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6월 1일] 아래는 나 개인이 깨달은 것이기에 전면적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글로 써내어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기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상태 중의 하나: 마음은 사람을 구하는데 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전일해야 한다.”에서 “나의 층차가 얼마나 높든지 또 나의 층차가 얼마나 낮든 지간에 나는 필경 속인 중에서 아직 일종 유위(有爲)적인 일을 하고 있고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사람을 제도하는 데에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업을 하든지 어떠한 일상 생활을 하든지 막론하고 반드시 세인을 구도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곧바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최대한도로 원용하는 것이다. 길을 걷던지, 출근을 하든지, 밥을 먹던지, 잠을 자던지 등등을 막론하고 우리는 속인과 같지 않는바 마음속으로는 항상 어떻게 세인을 구도하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역사가 우리에게 준 능력들을 이용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일체 기회를 잃지 않고 세인들을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대근기지인”에서 “당신이 살인 방화하는 것 마저도 모두 상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상관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현재 사악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다만 살인방화뿐만이 아니다. 독해를 받은 세인을 놓고 말하면 그야말로 너무도 엄중하여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만약 우리가 매일 이러한 세인들과 마주 하면서도 무관심하고, 마음 속으로 그들을 어떻게 구도하겠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지 않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을 법을 위해 온 생명임을 실행함에 써야 하며, 세인을 구도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귀중한 시간을 절대 낭비하지 말며 속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반드시 마음을 모두 세인을 구도함에 써야 하며 그 마음이 점차 더 커져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모두 세인을 구도하는데 쓰는 이것을 가장 큰 것으로 한다면 그 무엇인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상태 중의 둘째 : 사상이 대법 중에 있다. 사부님께서는 “육식문제”에서 “우리 이 공법은 법이 사람을 연마시키는 공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사람을 연마시키는 공법은 바로 일부 상태가 모두 공중에서 법에서 체현되어 나오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전법륜》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도태되는 낡은 우주에서 벗어나겠끔 하는 유일한 대법이다. 만약 사상이 대법에 있지 않으면 곧 낡은 도리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것은 낡은 우주의 일체 중생을 놓고 말하면 미지인 것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상이 법 중에 있으며 그 사상이 체현되어 나타나는 것은 곧 정법의 요구이며 곧 새로운 궁체의 요구이다.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공법인 바 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상속에 대법을 담아야 하는데, 부단히 배워야 하며, 일체 시간을 이용하여 학습하고 암송해야 한다. 지금 매우 많은 대법제자들이 하루에 몇 시간만 자면서 2~3강의를 학습하는데 이것도 많이 학습하는데 속하지 않는다(진정하게 배워야 하며, 형식에 그치면 안된다). 법은 못하는 것이 없다. 사상이 법에 있기만 한다면 해낸 많은 일들이 모두 초상적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은 정말로 신의 일을 하고 있다.

문장완성: 2005년 5월 31일
문장발표: 2005년 6월 1일
문장갱신: 2005년 5월 31일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6/1/1030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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