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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인 신수련생의 정법 수련 역정(번역문)

글/양푸진(캐나다)

【명혜망 2005년 5월 27일】사부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의 수련 역정은 2001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는데, 마치 그 일막이 어제 시작된 것처럼 생생하다. 그 당시 나는 밖에 나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마음 속으로는 기도를 하였다. 그동안 수련을 하고 싶었지만 좋은 수련 방법을 찾지 못하여 늘 고달팠던 것이었다.

세상에는 나쁜 것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기에 나는 반본귀진의 세계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일념이 있었다. 나는 끝까지 견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련방법을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수련할 수 있도록 도와서 지도해 주면 이해하고 싶었으나 이런 수련방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파룬궁을 만나기전 수련에 대한 인식이라고는 겨우 아시아에서 전수된 것 밖에 몰랐다. 나는 내가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디에 가서 찾을 지는 모르고 있었다. 우주는 선하기에 만약 내가 진심으로 도움을 구하면서 승화할 것을 갈망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날 밖에서 기도한 뒤 몇 시간 후, 학교 켐퍼스 내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부좌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것은 내가 도움을 청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기회를 잃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수련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관찰할 필요는 있었기에 우선 나는 자발적으로 가서 무엇인지 알아야했다. 아마도 이것은 우주가 나에게 부여한 한 차례 기연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이 바로 파룬따파 임을 알았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순정함과 이지에 깊이깊이 감동되었다. 그 후 일주일동안 나는 파룬궁을 배웠고 사부님께서 정법하고 계심을 알았는데, 내가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생소하지 않았다. 과거 12년 동안 세계 각지의 부동한 문화 속의 예언들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예언들 속의 함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 세계는 곧 중대한 변동이 발생하는 특수한 시기임은 알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나자신이 도의의 수호자임을 줄곧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법을 얻은 후에는 정법시기의 사명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수련을 시작한 한 달 뒤 중국 대륙의 동수들이 겪고 있는 박해를 이해하였기에 나는 백인 수련생들이 반드시 톈안먼 광장에 가서 청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해 11월 많은 백인 수련생들이 톈안먼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쳤을 때 나도 마땅히 가야 함이 더욱 강렬하게 알 수 있었다.

중국경찰은 중국 수련생을 대하는 것처럼 그런 전혹한 방식으로 백인 수련생을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가 톈안먼에 가서 청원하는 행동은 국제 매스컴에 더욱 강한 영향력을 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중국에서 발생하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알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행동은 사악에게 더욱 큰 놀라움을 줄 것이었다.

다음 해의 2월 중순 즉 대법을 수련한 지 반 년 뒤에 나는 톈안먼광장에 갔다. 그 곳에서 나는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광장을 질러 다니다가 붙잡혔고 경찰국에 갇혔다. 일부 기타 백인수련생과 함께 협소한 방안에 갇혀 있었다. 그후 또 다른 한 곳에 갔다. 그들은 나를 3시간 동안 심문하였고 모두 29시간 가두어 두었다가 강제 출국시켰다.

그때 중국에 갔었던 정의의 여행은 비록 일부 방면에서 더 잘할 수 있었지만 양호한 효과를 이미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톈안먼 광장에 있던 사람들과 우리를 수감한 경찰들에게 대법의 신성함과 정의를 펼쳐보인 것이었다.

매 번 다른 사람들에게 그때의 중국여행을 말할 때 나는 그것이 나의 일생 중 가장 뜻깊은 일을 한 것이라고 알려주곤 하였다!

그것이 수련 역정의 전환점이 되어, 중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갈수록 나자신을 정법 속에 용입시켰다.

후에 나는 방광명 방송국의 일에 참여하였고 또한 토론토 TV조에도 참여하였다. 우리는 함께 매 주 짤막한 뉴스프로를 제작하였다. 그 시기에 기타 동수들은 방광명을 위해 헌신을 많이 하면서 아주 정진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못하였기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늘 생각하였다. 나는 TV조의 법공부에 항상 참여했으며 그 당시 어떤 프로 제작에 참여하지 않아도 계속 법공부에 참여했다.

한 단락 시간이 지난 후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당시 주위 동수들은 모두 각종 방송프로를 제작하느라고 바빴는데 우리에겐 마땅히 근사한 스튜디오가 있어야 했다. 최소한 좀 넓은 장소가 있어서 여러분들이 각종 방송프로 제작을 잘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했다. 2002년 나는 TV조의 동수에게 이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경문 《길》에는 이런 말씀이 나온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없으며 개개인이 걷고 있는 길이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기초가 같지 않고, 각종 집착심의 대소가 같지 않고, 생명의 특징이 같지 않고, 속인 중에서의 사업이 같지 않으며, 가정 환경이 같지 않은 등등의 요소가 … …”

나는 TV조의 동수들은 TV와 방송프로에서 각자의 배역을 맡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TV조에 제작장소를 제공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나자신에게 ‘만약 내가 대법을 위해 일부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 이 소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소원은 바로 한 개의 생명체라는 답을 얻었다. 만약 내가 대법을 위해 일부 일을 하겠다는 소원이 있다면 그럼 나는 반드시 그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소원이 현실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는 소원만 있지 충분한 자금이 없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스튜디오 하나를 만들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데 자금은 모두 TV설비를 사는 데 써버린 상태였다. 나는 스튜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 개인의 돈으로 임대금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학교 다닐때의 대출을 채 갚지 못한 상태였고,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의 생활비 또한 부담하고 있었다. 직장의 수입은 겨우 기초 생활을 유지할 정도인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수 있어 TV스튜디오의 월세를 지불하겠는가?

나는 사부님의 시 《정신(正神)》을 읽었다.

正念으로 바르게 行하고
精進하면서 멈추지 아니하거늘
法을 교란하는 마귀들을 제거하여
善으로 중생을 待하노라

정념에 대한 나의 인식으로는, 만약 우리가 사부님의 가르침을 준수하여 용맹정진한다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대뇌로 생각한 장애는 단지 속인 층차의 장애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얼마나 크든지 얼마나 작든지 완전히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달린 것이다. 사실상 인간세상의 일과 고층차는 반대이다. 나는 속인 세계 속에서 발생한 일을 고층차에서 볼 때는 항상 꼭 그렇지만 않음을 깨달았다.

내 마음 속에서 불거진 감지할 수 없는 아주 작은 문제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큰 장애와 곤란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내가 본 일부 사무들에 제한된다면 그럼 나는 또 속인의 사유형식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만약 내가 사부님을 단호히 믿고 정진한다면 신은 이 세상의 매 한가지 일을 배치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사부님의 사진을 꺼내어 한가지 소원을 내보냈다. 나는 TV조를 위해 스튜디오 하나를 제공할 것이고 진상프로를 만들어 중생구도에 쓰여질 것을 바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좋은 일임을 알지만 어떻게 하여 그것을 현실로 변화시킬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반년동안 바삐 보냈고 나중에는 끝내 이 생각을 실현하였다. 그때 많은 일들이 발생하였지만 여기서는 시간 관계로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2003년 5월 18일 사부님께서는 벤쿠버에서 설법하셨고 마지막 하신 말씀은 나를 깊이 깊이 감동시켰다. “내일 원만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여전히 모를 수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생각할 것인바 나는 또 회사를 차리려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가서 하라, 그러나 일체를 나는 모두 당신에게 원용시켜 줄 것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당신은 무엇을 하면 된다.”(《2003년 캐나다 벤쿠버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더 이상 사람의 관념으로 눈 앞의 경제적인 곤란을 마주하지 않고 정념으로 그것을 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일체를 배치해 주실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차린 회사의 경영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리하여 TV조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가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차츰차츰 회사의 경영은 끝내 호전되었다. 첫해 연말 우리는 거의 모든 대출금을 갚았다.

나는 아주 많은 대법제자들이 자신의 돈을 법을 실증하는 일에 쓰는 것을 보았다. 비록 그들이 하는 일이 아주 뜻이 있더라도 나는 일부 일들이 사회에서 일으킨 효과가 대법제자가 예견했던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 미중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그럼 우리는 낡은 세력이 한 일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번 박해와 정법에 대한 교란을 인정하지 않고 박해를 앞당겨 결속짓고 우리 자신의 길을 걷는데 있어서, 그것들의 이런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낡은 세력이 그것들에게 맡겨둔 임무를 완성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한 대법제자의 각도에서 볼 때 우리의 경제적인 곤란은 완전히 낡은 세력의 배치라고 생각한다. 자금의 부족함은 우리에게 중생을 구도함에 있어서 장애를 증가시켰다.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부정하고 더욱 잘 해야 한다.

2004년에 접어들어, 회사의 업무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여름 말기에 이르러서는 회사가 1,2년내 더욱 큰 장소를 필요로 했다. 만약 더 큰 장소가 있다면, TV조가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의 임대기한이 오랫동안 남아있어 그 당시 여전히 경제 곤난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나는 경체 문제를 떨쳐버리고 해결방안을 찾아보기로 결정하였다.

나중에 우리는 더욱 큰 장소를 찾았으며 TV조도 더욱 큰 스튜디오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사온 후 잇달아 오는 것이 바로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곤란한 상태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 건축물은 한 회사에 의해 전부 임대되었고 이 회사는 또 다른 한 곳을 우리에게 임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곧 부도될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곤난은 실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나는 회사의 어려움 때문에 TV조가 스튜디오를 잃는 것이 아주 싫었다.

나는 안을 향해 찾으면서 나를 반성하였다. 이는 나의 문제인가? 혹은 TV스튜디오가 낡은 세력의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닌가? TV조와 기타 동수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우리는 나중에 이것이 낡은 세력이 이런 방법으로 TV조에 교란을 강제로 가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나는 내가 이 일을 잘 하지 못하여 TV스튜디오가 이러한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사무일에 너무 바빴고 일부 세부 절차를 소홀히하여 일을 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스튜디오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일하기에 바빠 TV조 동수들과의 교류를 홀시하였다. 그 시기에 나는 매주 법공부 교류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매일 정황은 모두 변화가 있었고 이는 TV조의 동수들이 곤혹을 느끼게 하였다.종합적으로 효과적인 교류가 모자란 것이 원인이었다.

후에 나는 새로운 집을 찾았는데 우리의 수요에 아주 적합하였다. 단지 가격이 높았지만 장원한 계획을 고려하여 이 곳이 아주 적합하였다.

사실상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일종 종합적인 방식을 늘 찾았는데, 회사에서 한 곳을 개척하여 TV조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얻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나 자신의 회사를 크게 키워 스튜디오가 존재하게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전반 과정은 나를 놓고 말할 때 아주 심오한 수련과정이었다.

대법 일이 내가 생각했던 궤도를 따라 진행되지 않았고 장사도 내가 계획했던 대로 발전하지 않았지만 일체는 모두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회사는 처음에 400평 규모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9,600평의 빌딩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방송국의 스튜디오는 그 당시의 지하실에서 3,000평의 정규적인 스튜디오로 발전하였다. 이 일체는 오로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배치일 것이다.

나는 우리 스튜디오를 크게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부딪혔던 곤란들을 반성하였다. 내가 일을 추진하여 앞으로 나아갈 때 다른 동수들은 일어나서 나에게 막대한 지지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나의 착오로 전반 일은 번거로움과 역경을 가져다 주었다. 여러 동수들이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스튜디오를 충분하게 이용하지도 못하고 이사하게 됨으로써 동수들의 소중하고 제한된 자금과 시간을 낭비하였다. 여기서 나는 스튜디오 건설에 공헌을 한 동수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깊이 표한다!

만약 그 당시의 착오가 없었다면 스튜디오를 그 건축물에 옮겼다고 해서 그 후에는 핍박에 의해 이사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스튜디오를 단번에 오늘날 이렇게 큰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을 내가 예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상황에서 지금의 이 스튜디오를 보았더라면 아주 크지만 가격이 비싸서 진지하게 스튜디오로 사용할 엄두조차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 당시 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는 또 이렇게 빨리 현재의 3,000평의 스튜디오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내가 충분히 정진하였는가? 내가 자신을 돌파하여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는가를 묻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신의 길은 어렵도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유의 만세의 인연은
대법의 一線에 묶이었다네
난 속에서 金體를 연마하는데
무슨 까닭에 발걸음이 느릿느릿하냐

스튜디오를 아주 작은 곳에서 3,000평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거대한 돌파 외에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또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또 어느 방면에서 사람의 안일함을 탐하는 사유방식으로 자신을 제한시키지 않았는가, 나는 이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들과 나의 수련역정 중에서 얻은 일부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데 적절치 못한 곳은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1. 우리는 외재적 교란을 돌파해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심성을 제고하여 내재적 교란을 제거해야 한다. 이 내재적인 교란을 만약 제거하지 않는다면 현재 긴요한 관두에 우리가 정법시기의 사명을 똑바로 보는 것에 장애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우리가 가서 주목하고 실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2. 우리는 표면에서 볼 때 넘지 못할 어려운 고비에 부딪쳤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 법공부를 잘하고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잘하면, 우리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을 수 있으며, 또한 우리의 사명을 실행할 수 있다.

3, 중요한 일이 생겨 수련인이 가서 해야 할 때 자원이 모자라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어떤 때 우리는 각종 곤란을 마주하고 심지어 희망이 희박한 경지에 처한다. 나는 이것들은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단지 낡은 세력이 우리 개인 수련을 고험하는데 사용하는 배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법시기에 세인을 구도할 때 곤란이 나타나는 것은 세인들에게 해로운 작용을 일으킨다. 사부님에 대해 바른 믿음이 있고 또한 법에 입각하여 문제를 보면 우리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을 수 있다.

4. 나는 속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그 사람들은 마치 바다의 변두리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이 멀리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힘이 없거나 혹은 큰 파도를 만났을 때 아주 빨리 바다가로 돌아와 안전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인마음을 내려놓은 사람들은 전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먼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것은 우리가 다시 기점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천상, 천하, 인간세상은 정법 중에서 이미 영원히 개변되어 가고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오로지 대법만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안전을 얻게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2005년 캐나다 법회 발언고)

문장완성:2005년 05월 26일
문장발표:2005년 05월 27일
문장갱신:2005년 05월 27일 12:44:55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5/27/10271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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