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중국 대법제자
【명혜망】《명혜주간》 제169호에서 헤이룽장 대법제자가 쓴 《정체가 협조하니 힘이 커져》란 글을 보았다. 그 문장에는 “2004년 5월경 우리는 사부님의 사진이 일부 노교소의 접견실에 놓여져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한 일부 동수들도 위를 밟고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들 마음이 아주 아팠다.”라고 씌여져 있었다.
여기서 사부님의 사진을 밟고 지나간, “동수”로 불리는 사람과 나 자신의 느낌과 견해를 이야기하련다.
나는 대법을 수련한 지 이미 10여년이 지났고 1999년 7월 20일 사악이 대법을 미친듯이 박해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불법으로 구치소에 잡혀 들어갔다. 몸이 어느 환경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계속 대법을 단호하게 수호하며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걸었다. 몇 달 뒤 그들은 나의 사건을 처리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판결하자니 어떠한 소위의 죄증이 없었고 풀어주자니 또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소장은 한 가지 조건을 제기하였는데 사부님의 이름을 종이에 쓰고 “x” 표시를 한 후 또 나더러 발로 밟으라고 하였다. 만약 밟으면 나를 풀어준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불법으로 갇혀 많은 고생을 겪었으며 확실히 빨리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 경찰들은 이 비열하고 악독한 방식을 조건으로 한 즉 나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절대로 대법을 배신할 수 없고 더욱이 나의 은사님을 모욕할 수 없다. 나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들의 조건을 거절하였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사부님에 대해 무한한 경양과 비할 바 없는 존경,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후에 나는 강제로 4년 판결을 받았고 감옥에서 잔인무도한 시달림을 받았다. 그들은 나를 핍박하여 대법을 모함하고 사부님을 비방하는 이른 바 “4서”를 쓰게 하였다. 마지막까지 나는 굴복하지 않았고 정정당당하게 감옥에서 나왔다.
비록 내가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지만 나는 자신의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올바르게 걸었고 대법의 존엄을 수호하였으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자비하게 구도하는 한편의 고심(苦心)을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왜 그 길고도 긴 혹독한 박해 속에서 걸어 나올수 있었는가. 그것은 내가 파룬따파의 소중함을 깊이 알고 있고 사부님께서 우주 중생을 구도하시는 간고함을 깊이 알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수한 고생을 하셨고 무수한 죄를 감당하였는데 그것은 일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개인적인 감당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전에 《정견주간》에 오른 “영원한 진감”란 대법제자의 시를 보았는데 아주 좋았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중의 한 단락을 적어본다.
사악의 공포는
진수(眞修)자의 신념을 동요할 길이 없네
잔혹한 박해
더욱이 대법제자의 단호한 정념을 훼멸할 수 없네
지자지성(至慈至聖)의 은사시여,
우리를 위하여 중생을 위하여
끝없는 거대한 고난을 감당하시고
중생을 훼멸하려는 거대한 사악한 요소를
사부님께서는 넓은 어깨로 혼자서 감당하셨네
은사님의 신체는 부서졌고
은사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감당한 고난을
당신과 나 볼 수 없지만
은사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도 광명하고 위대하기 그지없다네
은사님의 이다지도 홍대하고
끝없고 무한한 자비에 감사합니다
아직 걸어나오지 못한 동수들이여
당신은 어찌하여 아직도 집에서 안일함을 누리고 있는고
사부님의 거대한 헌신을 마주하면
그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은 얼마나 미천한가
우리가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옴은
바로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네
우리는 앞 사람이 쓰러지면 뒷 사람이 뒤를 이어 하소연하여
절대로 은사님과 대법이 누명을 쓰지 못하게 하리.
1994년 사부님께서 지난(濟南)에서 전수반을 여실 때 나는 행운스럽게 참석하였다. 그때는 마침 여름이라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그 곳에 앉아 부채를 천천히 부치고 있었다(에어컨이 없음).
사부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좀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전수반에 참석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신수련생과 속인들이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중하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단지 연공인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이 방면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모두들 녹음 속에서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깨달았는데, 이는 수련하여 고생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다! 모두들 생각해보라, 그렇게 더운 날씨에 사부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설법하셨고 시간을 다그치기 위하여 전반 설법 중에 물 한모금도 미처 마시지 못하셨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그 곳에서 유유적적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었고 심지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다른 공간의 신이 보아도 불평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당신들에게 설법하고 있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천목이 열린 동수의 말에 의하면 매번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다른 공간에서도 아주 많은 생명들이 듣고 있으며 모두 아주 겸손하고 공손하다고 한다. 일부 신들은 끝까지 꿇어앉아 법을 듣는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법을 전하는 초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사부님이 누구이신지 몰랐다. 바로 수련생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법에 대해 이해가 깊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몇 해가 지나갔기에 오늘날의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이 일의 엄중성을 알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우리의 모든 일체, 우주 중의 일체는 모두 대법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셨다. “내가 사람의 말로 명백하게 이야기하겠다. 법은 내가 만든 것이다. (열렬한 박수) 홍대(洪大)한 궁체(穹體) 중에서, 오로지 당신이 우주 중의 한 물체라면, 무엇이든 다 포괄되었다. 당신이 있든 없든지간에, 공(空)이든, 무(無)든, 당신이 물체이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이 법이 만든 것이고 당신은 바로 이 법이 열어 놓은 생존환경 중에 있게 마련이다. 생명으로 말한다면 법은 표준이 있는 것이다. 법이 중생을 만들었으며 법은 또 갱신하는 중에서 중생으로 하여금 동화하게끔 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있다. “(《2003년 정월 대보름날 해법》
만약 속인은 이 일을 모른다면 수련인으로써 마땅히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인류는 사실 정법이 아니라면 일찍이 훼멸되었을 것이다. 인류의 사상 표준은 이미 지옥 아래에 있다. 법을 바로 잡기 때문에 나는 삼계 내 일체 중생의 죄를 속죄하였다. (박수)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수련생들로 말하면, 내가 당초에 당신들을 지옥으로부터 건져온 것과 같다. (박수)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대신하여 당신들이 저지른 천백 년의 죄를 감당하였다. 단지 이러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로 인하여 또 당신들을 신으로 제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나는 당신들을 위하여 온갖 고심(苦心)을 하였으며, 동시에 당신들이 그처럼 높은 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그처럼 높은 신의 영예와 당신들에게 그처럼 높은 층차에서 갖춰야 할 일체 복을 주려고 한다. (박수) 천지개벽 이래 어떠한 신도 감히 이처럼 하지 못하였고, 역시 여태껏 이러한 일이 있어본 적 없다. (《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온갖 걱정을 다하였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파룬따파–스위스 법회에서의 설법》)
때문에 나는 “동수”가 사부님의 사진 위를 밟고 지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 “동수”에 대해 나는 그렇게 무거운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우리 대법제자의 마음을 깊이깊이 짓밟았다고 말한다! 나는 반복적으로 혹독한 매질과 괴롭힘을 받을 때에, 생사를 내려놓는 고험을 겪을 때도 마음은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이 몇 년동안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유를 잃고 심지어 생명을 바쳤든가! 그러나 오히려 핍박이 없는 정황 하에서 단지 아주 한 점의 정을 내려놓지 못하여 그러한 발걸음을 내딛는 “동수”가 있으니. 만약 사부님께서 그 속에 계셨다면 당신은 밟고 지나갔겠는가? 당신은 이 일의 엄중성을 인식하였는가? 전 우주 모든 생명 모두 우리를 보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셨다. “내가 방금 이야기한 이러한 법은 모두 하나의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사부로서 내심으로부터 말한다면 당신들이 나에 대하여 존경하고 존경하지 않음에 대하여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가 애초에 당신들을 제도할 때에 아주 많은 사람은 또 나를 욕하고 있었다. 강의를 들을 적에도 욕을 하면서 나의 강의를 들었다. 나는 개의치 않으며 나는 바로 당신을 제도시키고자 하였다. (박수)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사부에 대하여 어떠하든지 간에 사부는 마음 속으로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임의의 우주 층차의 요소에 의해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제가 있다. 만약 당신들이 사부님에 대하여 존경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낡은 세력은 이로 인하여 틈을 타게 되며 당신들을 훼멸시키려고 할 것인데 그것들이 당신들을 훼멸시킬 수 있는 최대의 약점을 잡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당신들을 제도하는 전반 과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 당신이 나를 좋고 나쁘게 대하든지 간에 나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낡은 세력인 그들은 이 하나의 난 중에서 당신들을 훼멸시키려고 한다. 절대 주의하라! “(《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
사부님께서 평주하신 《사부님과 대법을 찬송한다》(2003년 8월 29일 문장)란 글에서는 이렇게 썼다. “낡은 우주의 최후의 표현이 매우 빨리 지나가게 될 이 때에 세인들, 특히는 구세력이 조성한 이 일체의 가상에 의해 미혹되어 있는 수많은 수련자들은, 더욱 더 이지적이고 명석한 두뇌가 필요하다. 사부님 ㆍ 대법과 “결렬(決裂)”하고 사부님 대법에게 불경하며 정법과 법을 실증하는 것을 부정하는 이러한 행위는 어떻게 화려한 언어와 이유로써 교활하게 변명을 하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틀린 것이다. 설사 또한 낡은 우주의 이치로 이를 보아도 모두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서, 모두가 자신의 생명의 실제적이고도 실제적인 손실이다.”
모두들 대법은 엄숙하고 수련은 엄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매 사람마다 자신이 이 몇 해 동안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심태와 행위를 한번씩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그럼 수련생으로 말한다면 이 한 차례 마난(魔難) 속에서 능히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나올 수 있다. 잘 하지 못한 그러한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당신은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승인했다면 당신은 마치 그들과 한 무리가 된 것이 아닌가? 박해 중에서 당신이 잘 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또 수련생 내부에 불안정과 박해의 격화를 조성시켰는데 당신 역시 부채질하며 사악을 도운 것이 아닌가? 그것들을 부정하라. 낡은 세력의 일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고 말씀하셨다.(《2003년 정월 대보름날 해법》)
아무튼 이런 일이 나타났다면 본 지역의 대법제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부님의 사진을 꺼내온 것은 아주 잘하였다. 그러나 마땅히 한번 진지하게 사고해 보아야 한다. 왜 사부님을 향하여 이렇게도 사악한 일이 발생하였을까?
이 일은 나에게 아주 큰 놀라움을 주어 이런 글을 적었다. 나는 누구를 질책하려는 뜻은 없고 단지 심득을 한 번 교류하고 싶다. 동시에 모든 대법제자들이 마땅히 진정으로 내심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존경하길 바란다. 또한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을 진정으로 감당하면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장거 중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기를 바란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고 적절치 못한 곳은 동문 제자들이 자비하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5년 04월 22일
문장발표 : 2005년 05월 17일
문장갱신 : 2005년 05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5/17/102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