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억지로 씌운 감투”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4월 29일] 오늘 인터넷 보도를 통해 사악이 파룬궁 수련생에게《반동정치조직》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워 이것을 구실로 전국적으로 대법제자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수련생은 교류를 통해 한 가지 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인간 세상의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악이 《반동정치조직》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일이 나타나는 것일까? 혹시 현재 우리 대법제자들 중 아직도 많은 수련생이《9평》에 대한 인식이 똑똑지 못한 원인이 아닐까? 만약 우리 대법제자 중 다수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9평》을 전하는 것을 정치와 연관지어 정치를 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사악들에게 우리들의 근본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다는 구실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로 인하여 악으로 악을 다스리는 마난의 고험을 더욱 크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체적으로 어떠한 마난이 있으면, 우리들이 정체적으로 어떠한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못한 것과 대응된다고 알려 주셨다.(동수와 내가 사부님의 “원만을 향해 나가자” 경문에서 깨달은 것이다.)

사부님은 설법 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대법이 자신의 과학적인 관념에 부합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인 도리에 부합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되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이 부패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과 사부님은 바르다(正派)고 여기고 있는 등등등등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지향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한 동안 수련을 하였는데 아직도 당초 생각인가 아닌가, 사람의 이 한 마음이 비로소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끔 한 것이 아닌가? 만약 이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함이다………”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지금 낡은 악세력(惡勢力)이 대법에 대해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 중의 하나가 바로 당신들의 근본적인 집착이 덮어 감추어진 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난을 더 크게끔 해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한다. 당신들이 대법이 사람의 과학에 부합된다고 집착하면 그것들은 사악한 사람을 통제시켜 대법은 미신이라고 요언을 날조하고, 당신들이 대법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집착하면 그것들은 사악한 사람을 통제하여 대법은 사람들 더러 약을 먹지 못하게 해서 1,400명이나 죽었다고 요언을 날조한다. 심지어 당신들이 대법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들은 사악한 사람더러 대법과 이홍지는 국외 정치세력이 있다는 등 요언을 날조하고 있다. 당신들이 대법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들은 사부가 재물을 긁어 모은다고 말한다. 당신들이 무엇을 집착하는지를 막론하고 그것들은 사악한 자들더러 무엇에 대한 요언을 날조하게끔 한다. 심지어 당신들이 대법이 파괴될까봐 걱정하면 그들은 가짜 경문을 만들어 낸다. …… 또한 그것들이 사악한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일체 마음, 일체 집착에 대하여, 전면적이고도 빠짐없이 와해식으로 대법과 제자를 검증하고 있다. 만약 당신들이 진정하게 능히 수련 중에서 사람의 그러한 근본적인 집착을 제거해 버릴 수 있다면, 최후의 이 한 차례 고난(磨難)은 이렇듯 사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에서 알 수 있듯이, 수련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는 근본 집착이 아직도 인류사회 이 한 층에 남겨져 있어 언제나 사람, 이 층의 것으로 법을 가늠하는데서 표현되며, 인류 사회는 방대한 우주 중의 제일 낮고 좋지 않은 하나의 층차이며, 이곳의 변이 된 관념으로 우주의 일체 생명과 생존 환경을 창조한 우주대법을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 버린 것이다.

낡은 세력들의 본성이 그러하듯, 그것들은 대법제자를《도와》집착심을 제거하게 하는 방법으로 정법 중에서 《공을 세워》자신을 보존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들은 수련인의 일체 사람의 마음, 일체 집착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빠뜨림 없이 와해식으로 대법과 제자들을 점검(检验)하고 대법제자들의 정념을 《때려서》나오게 한다며 강박적이고도 악독한 방법으로 강제로 대법제자들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자비 중에서 우리를 위해 설법하시고 갖은 방법을 다하여 우리들이 한 걸음, 한 걸음씩 법을 인식하게 하여 우리들을 점차적으로 승화시키지만 낡은 세력들은 이와 정반대 이다. 이리하여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서 무엇에 집착하면 사악이 거짓말을 구실로 발동한 이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한 악독한 고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며 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오는 것이다.

때문에 사악의 이러한 악독한 고험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근본 집착심을 내려 놓으려 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으로 대법을 가늠함으로써 떨어졌던가?

어떤 사람들은 현대 과학이 진리라고 믿고 있기에 대법이 미신이라는 말을 듣고는 당연히 대법이 좋지 않다고 여겨 배우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파룬궁을 연마함으로써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는데 대법이 사람들에게 약을 먹지 말라고 해서 일천 사백명이나 죽었다는 요언을 듣고는 대법이 틀림없이 나쁠 것이라고 느껴져 더 연마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대법이 정치에 참가하지 않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치며 인류사회에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이 하나도 없다는데 집착하였으므로 대법과 사부님에게 국외의 정치세력이 있다는 요언을 듣고는 놀라서 더 연마하지 않았다……

사실 과거의 여러 해 동안 우리들에게 정체적으로 발생한 낡은 세력들의 마난을 통하여서도 우리는 이 점을 점차적으로 똑똑히 보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박해가 금방 시작되었을 때 사악들은 대대적으로 대법서적을 수색하고 빼앗고 없애지 않았던가? 우리는 지금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대법서적에 대해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대법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낡은 세력들이 우리의 정체적인 이 마음을 보고 대법서적을 마구 태워버림으로써 대법서적이 희소하고 대법을 얻기 어렵게 하여 법을 소중히 여기려고 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박해가 지속되는 이 몇 해 동안 우리의 많은 수련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보통 사람의 사회가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벗겨 줄 것을 바랬다. 사람이 어찌하여 대법의 억울함을 벗겨 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을 수 있는가? 대법은 보통 사람들이 마음대로 좌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은 대법을 어떠한 위치에 놓았는가? 낡은 세력들은 우리들의 정체적인 대법에 대한 불존경한 마음을 보고 한 번 또 한 번의 기대가 빗나가게끔 하였으며 결과는 더더욱 나쁘게 되어 나아가서는 대수색, 대박해,《반동정치조직》이라는 감투까지 덮어 씌웠다!(물론 이런 마난의 형성은 더욱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본 문에서는 수련 중의 일부분만 언급하였다.)

《미국서부국제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나는 당시 우리 많은 사람들이 의식 중에서 인류의 과거 그런 수련방식에 집착하였기에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도 제도를 받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큰 고생을 겪어야 만이 진정으로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라는 착오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 하여 사악이 요언을 날조하여 사부님께서 장춘에 호화로운 사택이 있고 생활이 어떻게 사치하다고 하였을 때 사부님과 대법이 좋지 않다고 여겨 수련을 하지 않았기에 천백년 이래 중생들이 모두 기다리던 구도될 수 있는 기연(机缘)을 놓치게 되었다.

대법이 세간에서 널리 전해짐은 인류 사회에 좋은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대법이 중생들에 대한 좋은점은 인류사회에 대한 좋은점 뿐이 아니기에 우리 수련인은 관념상에서 대법이 인류사회에 대한 좋은 점으로만 대법이 좋고 나쁨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낡은 세력들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시는 전반 과정을 보았기에 사부님에 대해서는 그지없이 탄복해 한다. 때문에 우리들이 일단 사람의 마음으로 법을 가늠하거나 법에 대해 존경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마난을 가져다 주며 우리를 훼멸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바꾸어 놓고 본다면 우리들이 낡은 세력의 그 어떠한 강제적으로 가한 마난을 만났을 때는 꼭 우리들이 모 방면에서 대법에 대한 인식 중에 아직도 사람의 근본 집착과 대법에 대한 존경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부동한 시기에 각 지방에서는 자료점이 끊임없이 파괴되고 협조인, 기술인원, 자료점의 동수들이 부단히 박해를 받았다. 이런 현상은 정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자료점을 기다리고 의탁하고 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 많은 사람들이 자료점에서 일이 나면 오직 자료점 동수와 협조인의 씬씽(心性)에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하는 것과 상관이 있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료점을 파괴하는 사악에 대한 발정념을 오직 자료점 동수들의 일이라고만 여기는데 있지 않는가? 우리 많은 사람들이 훌륭히 하고 있는 동수에 대한 숭배심리와는 상관이 없는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자료점이 일으키는 작용이 아주 관건적이라고 인식하여 사악이 꼭 중점으로 자료점을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상관이 있지 않는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자료점의 동수들이 제일 정진하고 사악이 제일 두려워 하기에 사악이 꼭 더더욱 그들을 박해하리라는 생각과는 상관이 있지 않는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자료점은 쉽게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느껴져 주동적으로 하지 않고 줄곧 기다리고 의탁하고 요구한데만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감옥에는 아직도 많은 대법동수들이 감금되어 있고 박해를 받고 있는가? 이는 우리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는 연관이 있지 않는가? 정념의 위력을 믿지 않는 것과는 상관이 있지 않는가? 자신과 동수들을 정체적인 한 부분으로 여기지 않은 것과는 연관이 있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이런 마난의 현상이 오늘까지도 계속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사심과 사람의 마음을 놓지 않고 정체적인 각도에 서서 대법을 원용하지 않으려고 한데 원인이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도처에 자료점을 만들어야 하고 명혜망과 단독연계를 해야 하며, 사람마다 나와서 진상을 말해야 한다. 대법수련에는 모범이 따로 없고 사람마다 책임자이며 사람마다 주동적으로 자신의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사악이 동수들을 꺼리낌 없이 박해하는 대로 놔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이 사부님의 모종의 방면의 법리에 따르지 않아 낡은 세력들이 잡고 놓지 않도록 하는, 법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부딪치게 되는 낡은 세력이 만든 그 어떠한 큰 마난이든지 모두 낡은 세력들이 우리들의 정체적인 어떠한 집착심에 대응하는 것이다. 낡은 세력이 강제적으로 우리에게 가한 매 한차례, 매 한가지 마난을 타파하려면 매 사람 마다 모두 우리가 부딪치는 마난에서 우리 자신들의 근본 집착심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라고 알려 주셨다. 모두가 아주 빨리 집착심을 찾아 내고 없앤다면 낡은 세력들이 우리들의 정체적인 집착을 목표로 한 이 마난을 사부님께서 계속 존재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목전 낡은 세력들의 요소로 인한 강제적인 박해를 타파하려면 오직 우리 대부분 대법제자들이 모두 매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하고 열심히 《9평》을 보면서 부단히 자신에게 존재하는 당문화의 변이된 사상과 행위격식을 고쳐야 하고 9평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9평을 전파함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전 중생들이 대법진상을 요해하고 구도되는 제일 큰 장애를 타파하는 것이고 중생을 구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정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똑똑히 인식한다면 《반동정치조직》이라는 이 감투도 스스로 없어질 것이다.

문장 완성: 2005년 4월 28일
문장 발표: 2005년 4월 29일
문장 갱신: 2005년 4월 29일 03:20:43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4/29/10065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