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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는 가운데 수련하여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글/미생

명혜망 2005년 2월 16일】눈 깜짝할 사이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수련을 시작한지 이미 2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2년 동안의 정법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자비로움과 고심구도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마음은 언어로는 모두 표달하기 어렵다. 오직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진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나는 법을 얻은 이후에 노수련생들이 말하는 개인 수련시기의 그런 인식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직접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법일을 하는 동시에 나자신을 수련하여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속인의 컴퓨터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팩스와 인터넷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으며 친구들도 두 명 이상 있으면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법을 배운 후부터 무서움을 없애고 대형 교류회 때는 주동적으로 강당에 나가 나자신의 심득체험을 발표했다. 그것 뿐 아니라 심지어 소형적인 교류회에서는 사회를 맡기도 하는데, 어떤 동수들은 나에게 표현하여 전달하는 능력이 괜찮다고들 했다. 어릴적부터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했지만 수련하고 나서부터는 늘 심득체험 쓰기를 즐기고 있으며, 진상자료를 편집하는 일도 하고 있다. 만일 속인의 관념으로 나의 경력을 근거하여 판단한다면 내가 지금처럼 정법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의 위력은 나로 하여금 못하는 것이 없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정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여하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떠한 뜻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사부님께서 어떠한 능력을 주시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인일 때의 오래 된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해를 폭로하는 자료를 여러 차례 만들어 가면서 박해에 참여하는 모모 회사와 악인을 폭로하려고 하였지만 폭로하는 문장이 완전하지 못해서 몹시 어려웠다. 그런데 며칠 후 현지 대법제자들이 비교적 사악을 잘 폭로할 수 있는 완전한 문장을 발표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공간을 볼 수 없고 나자신에게 어떠한 공능이 있는지 더욱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은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고 다른 공간에서 곧 작용을 일으키며, 오직 염두가 바르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이러한 모든 절차조차 사부님의 안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나로 하여금 속인의 관념을 타파하는 오묘함을 견증하게 했으며, 동시에 다음 한단계씩 역사적인 사명에 다가 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 후에 또 자료를 편집하는 일을 접하게 되었고, 또 부분적인 자료소조를 협조하는 것과 편집하는 일을 책임졌다. 이런 일에 협조하기 위해 일부 사항을 배치하고, 동수들과 교류하기 위해 접촉하게 되는 것으로, 자료함 일을 할 때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정력을 집중해야 했다. 동적이기도 하고, 정적이어야 할 두 가지의 부동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일은 나로 하여금 늘 그 관계를 바로 잡지 못하게 했다. 예를 들면 일를 협조하는데 많은 시간이 수요되었기 때문에 긴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많은 경우에는 전자우편으로 대체했다. 왜냐하면 전화를 조금 길게 하기만 하면 곧 일정을 흐트려 놓기 때문이었다.

한 동수에게서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다. 그 동수와 통화하게 될 경우 비교적 통화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갈등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시간 안배를 적절하게 하지 못해 늘 연공이 부족했고, 그래서 연공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만에 연속해서 연공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누가 리듬을 끊어 놓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당시 수련생은 일부 부면적인 말을 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어떻게 되었길래 이른 아침부터 이런 말을 나에게 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어렵게 견지해온 나의 연공 시간을 흐트러 놓으면서까지 전화를 이렇듯 오래해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나왔다. 하지만 한참동안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 하면 끝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보니 비로소 나자신에게 급한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나자신에게 상화로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수련생이 곤란이 있는데 비록 그가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나 나자신도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이기적인 것으로 내가 해야할 일만 하고 싶은 게 아닌가? 마음을 내려놓고 한참 들으면서 어차피 이렇게 오래 말을 했는데 계속 말하자!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금 후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되며 꼭 연공해야 한다. 만일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것은 자신의 문제라고 나자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해 그와 교류하였다. 비록 통화 시간은 길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조금 도움이 된 셈이다. 대화가 끝난 후 내 마음 상태는 조용하였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초조해 하면서 손해 본 느낌이 일어났을 것이다. 통화를 끝내고 연공을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가부좌 하는 게 순리로웠으며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설령 작은 일이더라도 우리가 수련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때 인위적으로 자신이 모든 시간을 안배하려고 하지만 일단 자신의 소원대로 되지 않을 때엔 조바심, 득실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원인은 자신의 이기심과 구하려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만약 사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생각한다면 심성도 제고해 올라오고 일체도 아주 순리롭게 될 것이다.

수련하기 시작한 첫 해에는 나는 다만 나자신이 하고 싶은 진상을 알리는 일만 했으며, 끝까지 어느 소조에 진정으로 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 하나의 소조에 가입하면 회의해야 하고 교류해야 하는데 회의하기도 싫었으며 내 시간도 제한되는 느낌이였다. 정법 수련의 요구에 의해 보도원이 나를 찾아와 구체적인 일을 하라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자신이 과거에 한것은 모두가 사적이였으며, 오직 나자신이 원하는 것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의 새 우주는 공적인 것을 위하는 것인데, 어떻게하면 수련해 나가면서 새 우주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고 자신의 각종 사심을 버려야 하는가. 그것은 협조해 나가는 일처럼 하나의 일을 직접 완성하기는 힘들지만, 협조해 나가는 과정 중에 끊임없이 자신의 사적인 마음을 없애 버리면서 용량을 늘이지 않는다면 견지하기가 어렵다. 나 자신이 여러차례 봉착한 난관도 모두가 버리지 못한 사적인 마음과 관계가 있었다.

협조해야 할 일과 자료 작업을 골고루 하기가 어려울 때는 늘 협력하는 일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나고는 한다. 예를 들어 협력해서 해야 하는 일은 각종 복잡한 정황을 접촉해 나가면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직접적인 성과를 보지 못하지만, 자료 작업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혼자서 하면 실질적인 성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경우에 따라서는 나자신도 자료를 만들면서 신심이 없을 때는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원래 인터넷 진상을 하던 것과 같은 항목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익숙해져 있는 영역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배후에는 잠시 이 곤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안일심을 구하는 것과 강대한 득실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자신이 곤란을 돌파하지 못한채 계속 일을 한들 좋은 성과를 볼 수 없다……는 등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 역시 나자신의 구하려는 마음과 사적인 마음이 원인인 것이다.

이렇게 법을 실증하며 수련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비교적 큰 좌절을 겪었으며, 매번 시련을 겪는 가운데 진정으로 견지해 나가려면 반드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자신의 용량을 늘려 나가야만 했다. 최근에는 하마트면 정말로 수련을 포기할 뻔 했던 적도 있다. 나자신이 무슨 일에 협조해야 하는 것을 책임지기에는 정말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지어 나 자신이 과거에 명의를 구하지 않았나? 하는 부면적인 생각이 대단한 기세로 밀려왔다. 이러한 상태에 빠지자 또 사악이 기회다 싶어 나를 교란하였는데, 심지어 과거에 한 모든 일체, 그 당시에 책임졌던 동수마저 의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말 설상가상이었다. 그 당시 큰 구역의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으며 일부 해결 방안에 대하여 건의를 드렸으나 실행되지 않았고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날이 갈수록 거대한 압력을 느끼게 된 책임자 수련생은, 자료조 동수들이 구역 동수들을 이끌어 주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 당시 나는 이 부분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모두가 자료를 하는 것도 이미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방법이 나아질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설령 서로 협조하여 밀고 나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들게 된 원인을 종합해 보면 역시 안일심과 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가를 많이 지불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지난 후 생각해 보니 주요 책임자였던 동수의 뜻이 그런게 아닐 수도 있었으며 그에게도 곤란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당시는 나자신의 막대한 압력만 보였기에 그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 속에는 이러면 안된다는 소리가 느껴졌으나 바로 잡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후에 책임진 수련생이 어떠한 말을 해도 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자신의 이러한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함을 발견하게 되어 발정념으로 각종 교란을 배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법공부였는데 잠시 골치 아픈 일들을 내려놓고 《전법륜》 몇 권에 있는 글자를 수정했다. 글자를 수정하는 중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화시켜 주셨다. 그 체득인 즉, 수정해야 할 글자인 이 한마디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반나절을 찾아야 했으며, 어떤 때에는 한페지를 다 훑어 보았지만 찾지 못하고서 그 한마디를 빠뜨리곤 했다. 그런데 글자를 찾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한채로 왜 글자를 고쳐야 하는가만 생각했을 때는, 마치 안을 향해 찾으면서 자신을 수련하고 밖으로 구하면서 방법을 찾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 눈을 들면 그 한마디가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 몇 번은 신기하기만 하다가 후에는 이것이야 말로 신의 일면으로 하여 가볍게 얻음이지 사람의 일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나자신의 속인의 관념에 억제되어 고생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신심은 없었던 것이다. 또 그 당시 법공부를 하면서 내포된 함의를 깨닫는 것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안으로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으며, 후에는 아예 안으로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법 일은 수련이기에 속인의 일처럼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법 중에는 사부님의 안배가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르게 견지해 내려 가기엔 아주 힘든 것 같다. 동시에 만일 내가 손을 놓는다면 아마 정체에 엄중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이는 사악이 제일 좋아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나자신이 곤란한 상황이라하여 도피해 버림으로써 정체에 손실주는 것은 또 어떻게 미봉하겠는가? 그래서 나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다음에 책임질 수련생이 나타날 때까지 버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이 소조에 처음 참여하기 시작할 때 “상황이 어려워져 설령 우리 지역에 마지막까지 오로지 나 한사람만 남아서 하게 될지라도 나는 끝까지 하겠다, 얼마할 수 있으면 얼마 하겠다”고 다짐했던 일념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워싱턴 DC국제법회에서의 설법》 중에서 “되고 안 되고는 일념지차(一念之差)라, 당신이 능히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못하고는 역시 사람이 많고 세력이 큰 데 따라서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천안문 광장에서 기다리다가 여러 사람이 모두 나오면 나도 나가겠다고 생각하다가 여러 사람이 나오지 않자 그는 또 한 바퀴 빙 돌고는 돌아갔다. 여러 사람이 모두 나올 때는 그 기세가 당신을 이끌어 나온 것이지 당신이 당신 자신의 생사를 내려놓는 그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온 것이 아니다. 수련이란 개인의 일로서 뭇 사람이 들썽거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제고는 반드시 착실하고도 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 자신의 그 애당초 일념이 얼마나 진귀했던가, 지금 왜 다 없어졌는가? 그래서 정말로 자료조 동수들이 밀고 나가는 일을 동시에 할수 없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 상황이 이중삼중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거기에다 나자신마져 잘못했다고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정말 안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 “진정한 겁난속에서나 또는 관을 넘기는 속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 잠시 나의 사심과 곤란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서는 겨우겨우 본 지역 자료조를 다시 소집하여 교류를 했다. 교류회를 세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했는데 매 차례마다 참석하기가 극도로 싫었다. 그러나 사회를 책임졌으므로 부득불 참가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은 ‘오늘 제게 일이 있어 오늘 회의는 안 하는 걸로 합니다’ 라고 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져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 번마다 교류한 후 조금씩 나아지면서 교류할 때 마다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만 교류회에도 참가하기 싫었으나 억지로 참가했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서 우편자료를 쓰면서 한편으론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수련생이 그의 심득을 교류하는 데, 그 당시 나는 짜릿한 감흥을 느꼈다. 수련생은 이렇듯 순정하게 정성을 다하여 자신의 체득을 교류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렇듯 이기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수의 말에 감동받는 동시에 조금 괴롭기도 하였다. 나는 동수와 비교하여 나에게 누락된 부분을 찾아낸 후 비로소 나자신도 정체에 대해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교류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난 뒤 교류회를 했더니 책임자 수련생이 오늘 교류회는 사람을 매우 감동깊게 했다면서, 만일 내가 매 번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일체가 여전히 법중에서의 정체적인 힘 및 나 자신에게서 나온 일부 정념이 원인이 되어 원만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나자신이 한때 책임자에 대해 일부 부면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들도 교류할 때엔 아주 작게 되었고 심지어 잠시 없어지기도 한다. 그 당시의 나는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으며, 일부 집착하는 부분으로 인하여 아주 불편하였으며 아직도 진정으로 완전히 일어 나지 못한 상태이다.

맨하탄 진상 알리기 활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후부터는 줄곧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고 있으며 또 매일 연공할수 있도록 나자신을 독촉했다. 왜냐하면 맨하탄에 참여하여 활동하는 중에 나자신의 심성이 정말로 제고 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돌아온 후 법공부를 하면서 깨달음이 더 많아졌으며 심태도 상화롭고 차분해 졌다. 사실 내가 뉴욕을 가기전에는 나의 집착을 찾지 못하여 괴로워 했었으며 심지어 법공부를 하여도 체득이 아주 적었다. 원래 모두 자신이 “할수 있음이 수련이로다(做到是修)”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며 심성이 정말 제고하여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법중의 불도신 또한 나에게 점화해 주시지 못한 것이었다. 그 후 또 갑자기 책임진 동수와 협력을 잘 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조금 성이 났었다. 처음 내게서 불거져 나오는 생각이 바로 그가 왜 이런가.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결정권이 있으면서 왜 먼저 말하지 못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수련생이 이로 인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지 않는가. 이어서 왜 이런 사소한 일도 내가 지나치지 못하는가, 원래의 차분하고 상서로움이 얼마나 좋은가! 나의 쟁투심이 있음이 발견되었는데, 나한은 아무리 큰 손해를 봐도 웃으면서 개의하지 않는데 나는 사소한 일마저도 지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중받지 못한다고 마음속으로 화를 내고 있는데 이건 진짜 안된다. 명에 대한 집착이다. 게다가 상대방도 꼭 이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단지 나의 추측이다. 만일 그가 정말 이런 뜻이라면 그것 역시 그의 부족점인 것이다, 내가 왜 성을 내야 하는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니 원래 정에 이끌린 것이 원인이었다. 왜냐하면 근 1년간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동수에 대한 집착이 생겼고 동수의 견해에 몹시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등등. 여기까지 이르러서야 내가 그동안 동수에 대한 부면적인 견해가 모두 나자신이 정에 이끌렸음이 원인이었으며 쟁투심은 나자신의 명의 혹은 이익을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수련생이 매 번의 일마다 다 잘 할 수 있겠는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련하고 있는 것이며 책임자가 만일 다 잘한다면 또 기타 수련생이 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도리를 나는 다 알면서 왜 어떤 때는 수련생을 이해해 주면서 어떤 때는 또 그러지 못하는가? 원래 자신의 이러한 집착이 조성한 것이었으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자신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전법륜》 “수련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관건은 속인의 집착을 놓지 못함이다. 당신들이 명,리,정을 놓으려고 할 때에야 만이 비로소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정진요지》 그와 반면에 모든 사심, 현시심, 쟁투심, 득실심……또한 명,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대도가 세간에서 행하거늘, 미혹 속의 생명을 구도하노라. 명정리를 씻어버리거니, 어떠한 난이 성자를 가로 막을소냐.” 라고 말씀하셨다. 《홍음2>–‘도중행’ 정법과정에 수련하면서 만일 점차적으로 명리정의 집착을 버렸다면 아마도 아무런 곤란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과정을 겪은 후 나자신이 승화해 올라왔으며 일체가 전화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 《2003년 워싱턴 DC법회에서의 설법》중의 설법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용기를 북돋우려고 한다. “그러나 대법제자를 놓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또한 어렵다고 하여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것은 역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책임이자 당신의 홍대한 맹세와 큰 소원이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일이다.” “우리가 이 한 단락 역사를 걸어 지나갔을 때, 뒤돌아서 매 대법제자가 모두 능히 내가 하려는 것을 내가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것이다.”

이상은 개인이 있는 층차에서의 체득이며 부족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기 바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완성: 2005년 2월 15일
문장발표: 2005년 2월 16일
문장갱신: 2005년 2월 17일 10:57:57
문장분류:[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2/16/955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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