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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에 집착이 없다’를 다시 깨달음

글 / 대륙 대법제자 정시(鄭昕) 

[명혜망 2005년 3월 15일] 나는 《동생 류청쥔》이란 글을 읽고난 뒤 눈물을 흘렸다. 그에 대해 고통스러운 애도를 하고 나서 갑자기 ‘청쥔아, 너는 가지 말아야 했다!’라는 일념이 스쳐 지나갔는데, 지금 내가 깨달은 바를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토론하려 한다.

책의 원문에는 청쥔의 누나가 그에게 지금 보석으로 풀려나게해서 밖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으며, 그를 감옥에서 구해 내려 한다고 알려주었을 때 청쥔은 도리어 “아무것도 집착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사부님의 《정념정행》이란 시를 외웠으며 그 다음은 후사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어떻게 친인과 동수들이 구원하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집착’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후사에 대하여 부탁하는 것은 바로 ‘죽으러 가는’ 준비를 하였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생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집착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본다면, 만약 당시 정념을 견정히 하였더라면 가능하게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즉, 죽으면 안된다! 반드시 뛰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밖에 있는 동수들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잘 협조하면서, 사부님께서 가지하여 주시기를 부탁하면서, 견결하게 낡은 세력들이 배치한 박해를 부정하고,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로만 가면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또 본체를 갖고 원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체의 위험을 사악이 미혹하는 가상으로 보고, 생명이 붙어있는 한, 일념이 있는 한, 절대로 죽을 수 없으며 반드시 뛰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완전히 다른 하나의 결과가 나타났을 지도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법속에서 “하기 좋아하는 것도 정이요, 하기 싫어하는 것도 정이다”(《轉法輪 》)고 하셨다. 그렇다면 ‘좋아한다’ 와 ‘싫어한다’가 정이라면, ‘두렵다’와 ‘두렵지 않다’는 정이 아닌가? 바로 정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집착이다. ‘생사에 집착하지 않다’에 대해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집착을 없애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다’는 집착심도 버려야 한다고 깨달았다. ‘두렵다’ 와 ‘두렵지 않다’이 모든 것이 없어야, 바로 “집착이 없음이 정말로 빈 것이다” 라는 것이다.(《何口空》). 하물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반면에 더욱 사심과 두려움이 없는 ‘생’을 선택하는 것이다. 

생사의 고험에 직면하였을 때(사악의 박해와 병업이 과중할 때), 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는다면 죽지 뭐’, ‘이 80키로를 내놓으면 될 것이 아닌가’, ‘이 더러운 껍데기를 잃어버리는 것 밖에 더 있는가?’라는 등등의 생각들이 나타난다. 진상을 하는 중에서도, “잡히는 것이 두렵지 않다, 잡히면 잡히라지”의 등등 말들이 있는데( 나도 이런 생각이 있었다), 이지적이 못되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두렵지 않다’는 것은, 사실 역시 사람 마음의 집착으로 정념이 아니며, 반면에 ‘틈이 있다’는 것이고, 사악이 배치한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며, 사악들이 박해를 할 수 있게 틈을 탈수 있는 공간을 남겨 놓은 것이다. 사실상 마음에 오직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위대한 사명만 있다면, 견정하게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로 갈수 있으며 이런 생각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회천력이 있노라”(《사도은》) 그렇다! 사부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서 울려 퍼진다. 새로운 한 해에 우리는 정념을 강화하고, 3가지 일을 잘하는 위대한 사명속에서, 사악으로 하여금 다시는 한 동수라도 끌고 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깨달음에, 타당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바로 잡아 주기를 바랍니다.

문장완성: 2005년 3월 15일
문장발표: 2005년 3월 15일
문장갱신: 2005년 3월 15일 02 : 51 : 36
문장분류:[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3/15/9739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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