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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박해를 정념으로 대하기까지

【명혜망 2005년 3월 17일】수련의 길에서 내가 항상 넘을 수 없었던 장애 하나는, 바로 매번 나의 경제조건이 나아질 무렵만 되면 잇달아 경제상황이 직선으로 미끌어지는 것이었다. 후에 사부님의 《2004년 뉴욕국제법회에서의 설법》 에서 한 수련생이 경제적 박해를 부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제기해 놓으셨다. 사부님의 해법을 보고 나는 비로소 확연이 깨달았다.

내가 원래 다녔던 회사는 국가기관회사였기에 일자리가 안정적이고 월급이 높았다. 1999년 장(江)씨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한 후 나는 줄곧 정념으로 대하지 못하고 늘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박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멈춰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안국, 파출소, 가두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찾아왔다.

어느날 나는, 내가 이렇게 끝없이 박해를 당하는 것은 이 일자리와 높은 월급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명백하게 드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박해로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져 있었는데, 나중에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는데 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워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낯선 도시에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개인수련 단계에 멈춰있어서, 사악한 낡은 세력이 대법에 대해 박해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였기에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시시각각 체험할 수 있었으며 늘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았다. 일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마다 지혜롭게 진상을 알리면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매번 나의 경제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일이 손에 잡힐 때쯤이면 해고되어 또 부평초처럼 유랑하게 되었다. 나는 법공부를 통하여 흑수가 나의 빈틈을 탄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바로 나의 경제상황이 좋아질 때 생각한 것이 모두 사람의 물건이고 물질이익을 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흑수는 이익을 추구하는 나의 마음을 없애야 한다고 여기고 박해를 가중시켰던 것으로 나로 하여금 낮은 월급을 받게 하고 또 나의 남편의 회사 사정을 좋지 않게 만들어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함에 영향을 받게 하였다.

나는 나자신의 누락을 찾은 후 정념으로 대하고 흑수의 박해를 단호하게 부정하고 사악을 제거하였으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걸었다. 또한 법 속에서 나자신의 바르지 못한 곳을 바로 잡게되자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즉 한 친구가 나의 남편에게 다른 회사를 소개시켜주었는 바, 초빙되어 간 회사는 아주 만족스러웠으며 월급은 그 이전의 거의 두배 가까이 받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배치하신 길은 모두 좋은 것으로, 자신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마치 물 속의 달, 거울 속의 꽃과 같으며 헛수고이다. 정념이 충족하고 사부님을 단호히 믿고 법 속에서 승화되어 올라오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문장완성:2005년 03월 16일
문장발표:2005년 03월 17일
문장갱신:2005년 03월 17일 11:17:30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3/17/9748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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