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3월 4일]
1, 귀에 거슬리는 동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일부 동수들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이를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속인 속에서 양성된 사심 때문에 형성된 관념으로써 수련인은 제거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록 속인 속에 있지만 이런 사심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집착심이 있는 사람이 황제가 된다면, 그의 주위에는 간신들만 많게 될 뿐 아니라 나라 또란 머지않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황제가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을 수 있고 충신의 말을 듣을 수 있다면, 이 나라는 꼭 부유해질 것이며 사회 질서가 장기적으로 안정되어 태평하게 될 것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만약 이를 받아들여 참고할 수 있다면, 사람은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인데 왜 배척하려고 하는가? 물론 의견을 제안하는 수련인도 자신을 수련해야 하며 ‘도리가 있다고 하여 양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물며 스스로 한 말도 꼭 맞다고 할 수는 없다. 설령 자신이 하는 말이 맞더라도 스스로 수련하여 제고할 요소는 안에 있다. 이와 더불어 태도나 표현하는 방식이 선하지 않거나, 혹은 불순한 기타 마음이 있을 경우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를 조성할 수도 있다.
2, 동수의 집착을 보았을 때 마땅히 지적해 주어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동수의 집착을 보고 난 후 체면 때문에, 또는 상대방의 반감 등을 불러 일으킬까 염려되어, 그리고 정에 이끌려 묵인해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대법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행위이며, 또한 동수와 자기의 수련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행위이다. 수련생이 표현해낸 집착심도 생명체이고, 다른 공간에서 볼 때 마치 기생충과도 같은데, 인체를 침식하고 있는 기생충을 보았는데도 묵인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동수의 집작을 보았을 때 마땅히 제때에 지적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을 없애는 동시에 동수의 집착심을 없애는 과정이며 사실은 쌍방에 대하여 모두 좋은 일이다. 속인의 각도에서 보아 예를 든다면, 황제 앞에서는 충신이 되어야 하며 간신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솔직하고 선의로 동수에게 충언을 해야 한다.
개인의 체험이 어떤 류의 임의에서 볼 때, 대법제자의 정체는 마치 시계와도 같아 동수 지간의 연계는 마치 시계 속의 스퍼기어와 스퍼기어 사이의 운동 상태와도 같다. 만약 그 중의 한 스퍼기어에 문제가 생겼다면(마치 수련생이 집착심이 있을 때) 운동 상태 중에서 옆에 있는 스퍼기어도 영향을 받게 되고, 시계 전반 운동 상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1월 20일 명혜망에서 대법 정체의 일에 대하여 라는 문장을 발표하였는데, 사실 동수지간에도 제 때에 서로 집착심을 지적해 주는 과정이 대법제자가 정체적으로 수련하는 환경 속에서 없으면 안될 요소 중의 하나이다. 자료취급소의 정상적인 운행을 위하여, 제 때에 이런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문장완성: 2005년 3월 3일
문장발표: 2005년 3월 4일
문장갱신: 2005년 3월 4일 15 : 47 : 06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3/4/9664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