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월 4일】나는 한 번 넘어진 다음 3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대법제자다. 사오(邪悟)하여 속인 중에서 3년 동안 사부님의 어떠한 설법이나 경문을 접촉하지 못했으며, 《전법륜》도 읽지 않았다. 2004년 4월에야 갑자기 깨닫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사부님의 설법과 경문, 그리고 《전법륜》을 읽게 되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荡)에 감격했고, 그동안 나 자신이 사오하여 대법에 손실을 주었던 것이 가슴 아팠으며, 시간의 긴박함을 느끼게 되면서 지금이라도 새롭게 대법 중에 들어 온 것이 행운이라 여겼다. 한 동안 법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잘못했던 나를 책망하는 자아질책도 집착이므로 벗어나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빨리 사람의 마음을 내려 놓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게 더 중요한 바, 대법제자가 응당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고 대법노정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의 두편 경문을 반복적으로 읽고 외웠다. “사람의 마음이 너무 중한 대법제자들이여, 내가 당신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신의 길이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사람의 관념을 고수하고 있다” “ 당신이 대법에 대한 근본적 인식은 정말로 사람 이 층에 머물 수 밖에 없단 말인가?”
이 단락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이 건드려 졌다. 나는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겠지?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나에게는 없겠지? 라고 생각하였다.
반복적인 법공부와 《명혜주간》의 대법제자들이 교류한 문장을 읽고서야, 나 자신도 근본적인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의 수련 목적이 아주 순정하다고 여긴 뒷면에는 ‘사를 위하고, 자아’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심정이 매우 격동되여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기다린 대법이란 것을 알고 땅에 엎드려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께 맹세하였다. “나는 꼭 수련 원만하겠습니다” 라고 한 것이 지금에서야 놀랍게도 ‘나’에 집착한 것임을 발견했고, 대법 수련이나 법을 실증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사를 위하고’ ‘나를 위하여 ”’이 근본 집착을 알게 되자 그 뒤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집착심,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의 수련제고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정진’ ‘제고’에 숨어 있는’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듯 교묘하게 숨어있기에 나는 지금껏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법공부를 시간만 있으면 하였다. 시간이 많으면 보고 시간이 적으면 외웠다. 출퇴근 시간에도 생각하고 집안 일을 하여도 수시로 들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사부님께서 당부한:
“기억하라, 얻고자 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정진요지》법공부)”실속있게 수련하는 자는 얻고자 함을 집착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얻게 되나니, 일체 공(功), 일체 법은 모두 책 속에 있는 것이라, 대법을 통독(通讀)하노라면 스스로 얻을 수 있노라.” (《정진요지》스승을 모시다)
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나는 구하기만 하였다. 또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가? 또 새로운 제고가 있는가? 새로운 깨달음이나 제고가 있으면 매우 기뻐했는데 심지어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얼마나 집착하는지 가히 알만한 것이다. 이런 ‘구하는’ 마음은 법공부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수련 중에서 표현되어 나왔다. 동수들과 단체로 법공부할 때와 상호 심득교류 때 많은 자극을 받았고, 마치 다른 사람에 의해 이끌려가는 것처럼 제고가 빨랐다. 그러자 또 교류에만 집착하게 되고 마음 속에는 ‘모범심’이 생겼는데도 나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 마음이 나를 사오(邪悟)하게 만들었다. 감옥과 세뇌반에서 사악의 거대한 압력에도 나는 전화하지 않았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내가 아주 수련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나 스스로 ‘모범’은 이래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나와 함께 있었던 모범적인 동수들은 또 한 층의 높은데 올라가고 나는 아직 원래의 곳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모범’이 되는 방법으로 대법제자의 최후의 원만하려는 마음을 버리게 한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여기서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고 어떤 사람 마음이든지 기로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법수련 중 나에게 ‘환희심’이 시종 있었지만 나는 깨닫지 못하고서 사람의 방법으로 법공부와 수련에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도 비교적 나 자신이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나에게 숨어있던 이런 마음을 찾아낸 후 새롭게 태어나는 감각을 느꼈다. 이 때부터 법공부와 수련을 하는 중,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대법제자가 응당히 해야할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정말로 날마다의 변화를 느꼈다. 사고하는 방식도 이전과 같지 않고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심성에서 찾았고 이전같이 다른 집착에로 넘어가지 않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하고 무위의 깨끗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하였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가를 보지않고 나 자신의 수련의 길을 확고히 걸었다.
나에게 있는 또 다른 ‘두려운 마음’도 해부해 보았다. 이 마음 역시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영향을 주는 제일 엄중한 집착심이었다. 왜 두려움을 없애기 힘든가? 무엇이 두려운가? 왜 두려워 하는가? 왜 이렇게 두려움이 완고한가? 나는 자주 사부님께 구했다. 사부님께서 빨리 나의 이 집착심을 없애 달라고, 이 두려움이 나는 싫다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두려운 마음’을 없애는 마음이 견결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떤 때는 사람의 마음으로 ‘만류’하는데 나의 성격은 담이 작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의 관념으로 ‘두려운 마음’에게 길을 비켜준 것이다. 쩐,싼,런(真善忍)으로 조성된 진정한 나라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다른 한 면은 소극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사악이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친인들이 나를 위해 많은 것을 감당했는데, 또 감당하라고 하면 그들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사악이 나에게 혹형을 하면 나는 감당해 낼까? 조금 낮게 수련하더라도 이 천고의 기회를 놓쳐 버리면 안된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사람 마음이 아닌가? 이것은 ‘두려운 마음 ‘과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두려운 마음’을 만류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기실 이런 사상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이것은 사악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흉악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이렇게도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사악에게 박해할 틈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정말로 마난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 면으로 인식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배척해 나가며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였다. 대법을 실증하는 마음이 갈수록 확고해지고 두려운 마음도 갈수록 적어졌다. 나는 사부님의 《정대궁》——
“사악이 언제까지 날뛸거냐
중생의 심지가 전부 드러나는데
이 겁에 누가 그 밖에 있을까
웃으면서 뭇신의 어리석음을 바라 보노라”
를 외우면서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두려워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것은 우주가 정법하는 것이다. 어떤 생명이 피할 수 있겠는가? 당신 생각에 집에 숨어 있으면 안전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가? 그것은 자기의 위치를 자신이 안배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자신을 어디에 배치하고 있는가? 이것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책임인가? 당신의 표현은 대법제자의 칭호를 향수할 수 있는가? 당신이 정말로 이 만고의 기회를 놓치려는가?
나는 마음 속으로 사부님께서 우리가 깨닫지 못해 조급해 하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정말로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두려운 마음이 중한 동수들이여, 감히 나와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는 동수들이여, 당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들은 이미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위험한 변두리에 서 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면 시간이 없다!다른 면으로 말하면 두려운 마음 역시 당신 속인 사회에서의 마난을 초래한다. 수련은 곧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가? 낡은 세력은 당신의 개인 수련을 첫 자리에 놓지 않는가?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곧 그 마음을 제거해야 되지 않는가? 당신은 집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경찰은 가능하게 집에서 당신을 잡아 갈 수 있다. 당신이 고생을 두려워하면 당신을 혹형의 맛을 보게 한다. 가능하게 다른 면에서도 표현 될 수 있다. 당신이 생사를 내려 놓지 못하면 사악은 당신이 ‘병업’의 방식으로 ‘암증’등에 걸리게 하는데 당신의 정념이 부족하면 이 관을 넘길 수 있는가? 가능하게 깨닫지 못하고 사오하여 반면으로 나갈 수 있는데 사실이 말해주지 않는가?
무엇이 안전한가? 어디가 제일 안전한가? 나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사부님을 바짝 따르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나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생명들인가! 사부님께서 친히 우리를 제도하시고 만고에도 없는 정법시기 이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우리는 우리의 맹세와 우리의 책임을 다 해야 하지 않는가? 소중히 여기라!대법제자들이여 ,쩐,싼,런(真善忍)으로 조성된 우리들은 견고하며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사부님께서 연속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 》、《역시 방할하노라》3편의 경문을 발표하셨다. 이것은 우리를 앞으로 미는 것이 아닌가? 사악은 제거되어 아주 적게 남아 있다. 형세는 우리가 진상을 똑똑히 말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더욱 유리하지 않는가? 우리는 아직도 형세를 똑똑히 보지 못하는가?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 조성한 것이 아닌가? 일체는 마음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주동적으로 사람의 집착심을 내려 놓으니 승화가 아주 빠른 것을 느꼈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지고 지혜도 끝없이 나오는 것이다.
이상은 나의 수련 체험이다. 나는 주요하게 사람 마음이 중한 대법제자들에게 고려하는 마음을 버리고 빨리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빨리 나와서 대법을 실증하여, 대법의 전체적인 노정을 따라잡자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그러나 시간은 아주 긴박하다. 빨리 나오지 않으면 더 기회는 없다 .
문장 완성 :2005년 01월 03일
문장 발표 :2005년 01월 04일
문장 분류 : [제자 절차]
문장 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5/1/4/927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