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 시(市)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2월 23일 소식】1999년 7.20일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이래 대륙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법제자들이 불법노동교양, 판결, 심지어는 박해로 사망했다. 지린 감옥에만 해도 불법으로 중형판결을 받은 대법제자가 100여 명이 넘는데 그들은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고, 류청쥔(刘成军), 위슈산(魏修山), 장잰화 (张建华), 추이웨이둥(崔伟东)등 4명의 대법제자가 박해로 사망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박해로 부상당했거나 불구가 되었다.
지린 감옥이 위치한 지린시의 대법제자들인 우리는 지린 감옥에서 대법제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있는 것을 줄곧 폭로해 왔다. 그러나 이곳의 대다수 대법제자들은 옥 중의 동수들이 우리와 한 덩어리라는 점에 대해 가슴속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며, 사악을 폭로하고, 옥 중의 동수들을 구하는 것에 대한 인식과 방법이 그저 표면에 머물러 있었다. 때로는 옥 중의 동수들 또한 집착심이 있고 정념이 강하지 못해서 감금되었다고 원망하거나 질책하였다······. 또한 사악이 외부에 극력 소식을 봉쇄하고 있기에, 밖에 있는 우리 대법제자들은 어떤 때는 옥 중의 사악에 대해 어찌할 수 없다고 느꼈으며, 옥 중의 견정한 대법제자들은 하나하나씩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잔혹한 박해를 당하여, 마지막에는 사망까지 하게 되었다.
창춘 대법제자 류청쥔은 생전에 세계를 뒤흔든 창춘 케이블 진상 스폿 뉴스 참여자이다. 2003년 12월 26일 류청쥔이 지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 지린 시 대법제자들은 어떤 사람은 놀라고, 어떤 사람은 애석해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당시 근본적으로 이 소식을 모르고 있었으며 더욱 많게는 이 일에 대해 무감각하고,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고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다시 해외 대법제자들을 보면 비록 그들이 대륙의 동수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대륙 동수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갇혀있는 동수들을 구출하는 면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해외 대법제자들이 전력으로 류청쥔을 구원하는 이 일에서 우리들은 자신의 부족점을 보았으며 수련 중에 그들과의 차이점을 찾게 됐다. 우리는 법리상에서는 동수의 일을 자신의 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일에 부딪혔을 적에는 때로 자신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며 진정으로 정법의 기점에 서서 수련생을 구원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불법으로 감금된 모든 동수들은 대법의 한 입자이고 모두가 대법 중의 일원이며 우리들은 완정한 일체이자, 모두가 우리들의 친인이다. 박해를 반대하고 옥 중의 동수들을 구원하는 것은 우리 모든 대법제자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 기점을 바로잡고, 교류를 증가하다
법공부를 통하여 우리들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것을 더 깊게 인식하게 됐다. 그렇다면 모든 일들은 이 한 주제를 둘러싸야 하며 박해를 반대하고, 동수들을 구원하는 것은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며 또한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후에 있은 이곳의 여러 차례 소형법회 교류에서 우리들은 사악을 폭로하고, 수련생을 구원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고, 전에 우리가 한 모든 일들이 옥 중의 동수들을 “도와준다”는 착오적인 생각을 타파했으며, 당시 여러 사람은 전문으로 지린 감옥에 근거리 발정념을 했다. 교류를 통하여 사람들은 갈수록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라는 데 대해 명확해졌으며 옥 중의 대법제자들이 잔혹한 박해를 받고있는 이 상태에 대해 더는 전처럼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외부요소의 변화에 대해 바라보지 않으며 주동적으로 사악을 폭로하고, 사악을 제거함으로써 옥 중 동수들의 압력을 감소시켰다.
* 옥 중 동수의 가족들이 법에서 제고를 가져왔으며 마지막에 공동의 인식을 이루었다.
몇 년 래 우리들은 줄곧 감옥 악경들의 범죄 증거들을 수집했으나 이 일에 대해 우리들이 전체적인 인식면에서 부족했고 심혈을 기울이는 면이 부족한데다가, 또한 사악의 엄밀한 봉쇄로 인하여 우리들이 감옥 안의 박해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사악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여전히 매우 창궐했다.
2004년 5월 창춘 대법제자 리즈융(李智泳)이 지린 감옥에서 박해로 생명이 위급하게 되어 수련하는 가족이 감옥에 그를 만나보러 갔는데 악경의 거절을 당했다. 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를 만나보게 되었다.
한 시기가 지난 후 리즈융의 가족은 그의 병세가 한층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또다시 지린 감옥에 가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으나 감옥측에서는 거절하면서 만나지 못하게 했다. 가족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할 수 없어 현지의 대법제자들과 이 일을 의논했다. 지린 대법제자들은 구체적인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족과 여러 차례 교류를 했다. 먼저 대법제자는 제일 바르며, 응당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감옥에 감금된 리즈융은 근본적으로 죄가 없으며 그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감옥의 악경들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마땅히 감옥 악경의 범죄 사실을 인터넷에 알려야 하며 우리는 응당 정상적인 법률 수단으로 죄가 없는, 생명이 위급한 친인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공동으로 인식했다.
시작에 리즈융의 가족은 지린 감옥 악경의 범죄 사실들을 인터넷에 폭로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심했고, 가족이 연루될까 봐 근심했으며, 더구나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지린 대법제자들은 그들과 깊이 있게 법에서 교류를 했으며 그들과 함께 사부님의 경문 《이성》
“현재 그것들이 수련생과 대법을 파괴하고 해치(破害)는데 채용한 행위는 모두 극히 사악한 것이고, 면목 없는 너절한 것이라, 노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것들의 사악함을 세인들더러 알게끔 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세인들을 구도(救渡)하고, 사악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동시에 자기를 원만시키는 것이고, 강대한 법이 세간에서의 체현이다”를 읽었다. 교류를 통하여 리즈융의 가족들은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두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하며 이 중에서 또한 우리들이 능히 자아를 내려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반영되며 완전히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지린 대법제자들은 먼저 지린 감옥 악경들이 리즈융을 박해한 범죄 사실들을 명혜망에 폭로했으며 리즈융의 가족들은 또한 동시에 지린 감옥 감옥장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는데 리즈융이 소속되어 있는 감구(監區)의 악경들이 리즈융을 잔혹하게 박해한 사실과 관련 조항들을 위반한 사실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보지 못하게 한 내용들을 썼다. 이틀이 지나서 리즈융이 소속되어 있는 감구의 악경이 리즈융의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악경은 전화에서 위협하고 노발대발하면서 당신들이 감히 감옥에다 우리 감구를 고발했는데 후에 다시는 리즈융을 만나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했다. 가족들은 당당하게 악경과 도리를 따졌다. 이 모든 것은 당신들이 조성한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우리를 원망하는가?
며칠이 지난 후 지린 감옥에서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와 리즈융을 만나보라고 했다. 이 기간에 가족은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임상 의사는 말하기를 “만약 리즈융이 원래 이런 병이 없었다면 그가 겨우 26살인데 10여 일 동안에 “신장병 증후군”에 걸릴 수 없다고 했다. 차 사고나 ,혹은 엄중한 타박상으로 질식했거나 쇼크 증세가 있어야지만이 이러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은 리즈융의 몸에 이러한 상황이 나타난 것은 모두가 지린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감옥의 관계 부문을 하나하나씩 찾아 다녔으며 리즈융이 보석을 받아 치료를 받게 해주기를 요구했다. 감옥의 여러 부문에서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또한 리즈융이 수련을 포기하는 것을 교환 조건으로 삼았으나 리즈융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다시 여러 차례 지린 감옥에 가서 사람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는데 감옥 측에서는 사람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태도는 이미 확연하게 변화되었다. 지린 감옥에서 견정한 대법제자는 가족들이 근본적으로 만나 보지 못하게 했지만 그러나 리즈융만은 수시로 만나 볼 수 있었다.
* 악경과 악인들의 범죄 증거들을 폭로하다
현지의 대법제자들은 지린 감옥의 악경, 악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제때에 명혜망에 폭로했으며 또한 가족들이 감옥에 가서 친인들을 구원하는 소식들을 현지의 대법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으며 정념으로 지지했다.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지린 감옥의 악경, 악인들이 잔혹하게 대법제자들을 박해한 증거들을 수집하여 《지린 감옥의 진상》이란 자료들을 만들어서 전 시에 대면적으로 배포했다.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사악을 폭로한 후 지린 시 감옥의 악경, 악인들의 잔혹한 박해 행위는 조금 누그러졌으며, 악경, 악인들은 가족들 앞에서 과거처럼 ‘위풍’을 부리지 못했다. 또 어떤 악경들은 대법제자의 가족들에게 다시는 명혜망에 자기들을 폭로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했다. 지금은 대법제자들의 가족들이 감옥에 가서 책임자들을 찾으면 그들은 모두 겁먹고 숨어버리며 또한 전문으로 사람을 파견해서 가족들을 응대하는데 번마다 거짓말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인지 대신 전해주겠다고 한다.
*돌발적인 일에 직면하여 국내, 해외 대법제자들이 신속하게 정체적으로 협조하다.
2004년 10월 초 지린 감옥에서 또 한 명의 견정한 대법제자 추이웨이둥(崔伟东)이 병원에서 박해로 사망했으며 어떤 대법제자들은 박해 받아 생명이 위급하며 지금 지린 철도중심병원에서 응급조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근거하여 우리는 즉시 여러 차례 정체적으로 교류했으며 이런 상황들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이루었다.
먼저 우리는 지린 감옥에서 대법제자들을 박해한 소식을 즉시 명혜망에 보내어 전 세계에 폭로했다. 동시에 주야에 걸쳐 ‘시(市)의 대중들이 긴급히 주목해야 할 일– 박해를 받아 생명이 위급한 대법제자들’이란 진상 스티커를 연속 3일 동안 병원의 병동, 복도, 화장실, 응급실, 부근의 여러 곳과 시의 곳곳에 몇 천장이나 붙였다. 또한 많은 대법제자들이 자원적으로 지린 철도중심병원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했다. 일본, 홍콩 등의 대법제자들이 전화로 진상을 했으며 사악을 질식시키는 유력한 작용을 일으켰다. 이 일에서 국내, 해외의 대법제자들은 정체적으로 협조를 이루었는데 전화를 건 사람, 구두로 진상을 한 사람, 단체로 근거리 발정념을 한 사람, 진상 스티커를 붙인 사람 등, 많은 대법제자들이 이 일에 참여했으며 많은 사람들은 대법제자들이 서로 일치하여 협조한 정체적인 역량을 느꼈다.
l 교훈을 얻으며 수련생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자신을 순정하게 하다.
2003년 11월 15일 사부님의《현지의 민중에 향해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 평론과 주석이 발표된 후 지린 시 대법제자들은 관련된 악인들의 범죄증거를 적극적으로 명혜망에 폭로했다. 지린 시 강남의 한 가두에 10명의 대법제자들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했는데 가두주임 왕 某는 극히 사악했다. 당지의 대법제자들은 왕 모의 악행을 명혜망에 폭로했으며 집주소와 전화번호, 아들, 며느리 집 전화번호, 휴대폰 번호를 함께 명혜망에 올렸다.
시작에 해외에 대법제자들이 왕 모의 가족에 전화로 진상을 했는데 그는 기염이 매우 컸고 마구 욕을 퍼부었다…….당지의 대법제자들이 이 상황을 알고서 왕 모의 죄행을 폭로하는 진상 스티커를 만들어서 그의 집 주위와 파출소, 가두 등 여러 곳에 붙였다. 왕 모의 악행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매우 격분해 했으며 그의 사돈 어른은 당장에 “원래 사돈이 이렇게 많은 나쁜 일들을 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구먼!” 하고 질책했다. 그의 가족들도 이 일로 해서 모두가 난처하게 됐는데 마지막에 왕 모는 길을 걸어도 머리를 쳐들 수가 없었다. 왕 모는 당지의 대법제자들을 찾아가서 구걸하다시피 했는데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가족들이 연루되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후에 왕 모는 정말로 가두주임의 직무를 사직했다.
당시 현지의 대법제자들은 매우 기뻐했다. 현지의 민중들에게 사악을 폭로하는 것이 끝내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했으며 사악한 가두주임이 그만 두었다는 것을 서로간에 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 주임이 임명됐는데 전에 왕 모 주임보다 더 사악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대법제자들은 냉정해졌으며 세심하게 안을 향해 찾았다. 현지의 민중들에게 사악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시작부터 기점이 완전하게 바르지 못했으며 사악한 자들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을 폭로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았으나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홀시했다. 때로는 무의식 중에 대법에 대한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겼다. 사실상 왕 모가 대법제자들을 찾아서 이젠 나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적에 대법제자들은 능히 선의적으로 그한테 당신이 능히 맡은바 책임을 계속할 수 있으며, 그러나 이제부터는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해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전에 지은 죄업을 속죄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어야 했다. 이러면 가능하게 악행을 저지른 왕 모한테 속죄하고 생명의 위치를 새롭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지린 감옥의 동수들을 구원하는 과정 중에 우리들은 시작부터 이 교훈을 받아들이고 기점을 바로잡았으며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세인들을 구도함을 근본 목적으로 삼았다. 더욱 많은 세인들이 지린 감옥에서의 소위 문명관리 배후에 숨어있는 암흑의 면을 정확히 알게 했으며 지린 감옥은 ‘사람을 죽이고도 피가 보이지 않는’ 인간지옥이며, 또한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이 한 차례 잔혹한 박해가 지닌 사악한 본질을 인식하게 했다.
지린 감옥의 사악한 자들은 매우 당황해 했으며, 범죄사실을 덮어 감추기 위해 엄중하게 박해를 받은 대법제자들을 비밀리에 이전했다. 그러나 이 한 과정 중에서 과거에 사악의 거짓말에 미혹된 세인들은 대법제자들이 잔혹한 박해를 받은 일들이 자기의 주변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대법제자들이 지린 감옥에서 대법제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한 범죄 사실들을 써 붙인 스티커를 찢는 사람이 없었다. 정의감이 있는 많은 병원의 지도자들, 의사, 간호사들은 지린 감옥에서 인명을 초개처럼 여기는 폭행에 대해 질책했다.
* 계속적으로 동수들을 구원하는 것을 정법수련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지린 감옥에서 줄곧 잔혹한 박해를 받아서 생명이 위급한 창춘 대법제자 리즈융(李智泳)에 대하여 그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방식의 구원 활동을 벌였는데 지린 감옥의 관계부문의 책임자들을 찾아가서 사람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거절을 당한 후 가족들은 또 지린 감옥 관리국, 지린성 사법국, 지린성 610 등 부문에 찾아가서 생명이 위급한 죄없는 아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한 시기 여러 부문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구원 활동은 한동안 지체됐으며 리즈융의 가족들도 구원 활동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은 실망하지 않았으며 줄곧 주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여러 사람들은 교류를 통하여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들은 모두가 우리의 친인들이며 대법과 대법제자들에 대한 어떤 형식의 박해에 대해서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인식했다. 불법으로 대법제자를 감금한 것은 낡은 세력의 배치이며 박해를 폭로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은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이며, 감옥의 동수들을 구원하는 것도 역시 우리들이 정법 수련의 한 부분이다. 때문에 표면 환경이 어떻게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지난 날과 다름없이 지속되는 구원 활동을 잘해야 한다. 오직 우리들이 바르게만 걷는다면 사부님은 수시로 우리들을 보호할 것이다.
리즈융이 지린 감옥에서 박해로 하여 신장병 증후군에 걸렸으며 이후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졌다. 지린 감옥 형법과에서는 두 차례나 이퉁(伊通)현 공안국 국보대대에 가서 보석치료 수속을 밟으려고 모두 거절을 당했다.
2004년 9월 27일 리즈융은 생명이 위급하여 모든 수속을 끝냈으며 그저 현지에서 그를 데려가기만 하면 되였으나 이퉁현 공안국 국보대대의 악경 리쇼둥(李曉東)은 위태로운 젊은 생명에 대하여 지린 감옥 형법과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설복해도 접수 수속에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호적이 현지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창춘 눙안 대법제자 류청쥔도 지린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았는데 그가 생명이 위급하게 됐을 적에도 감옥에서는 보석치료 받을 것을 동의했으나 류청쥔의 호적 소재지인 –눙안현 610, 공안국에서는 접수를 허가하지 않았기에 마지막에는 류청쥔이 박해로 사망하는 것을 초래하였다.
지린시 당지의 대법제자들과 리즈융의 가족들은 곤란 앞에서 줄곧 법공부, 교류를 하면서 정념을 견정히 하였다. 한 면으로는 친인을 구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또 한 면으로는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에돌아가지 않고 직접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렸다.
리즈융이 석방되기 전 2004년 10월 지린 감옥에서는 리즈융의 가족을 핍박하여 보석 치료하는데 서명을 하라고 했으며 얼마만한 돈을 내야 한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엄숙하게 거절했다.
2004년 10월 12일 리즈융의 부친은 지린성 사법청 청장 겸 지린성 감옥 관리국 국장에게 장편에 달하는 편지를 써서 택배로 발송했으며 위급한 아들을 즉시에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끊임없는 노력을 견지한 끝에 결국 지린 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된 창춘 대법제자 리즈융은 2004년 10월 13일 오후 3시 경 무조건 석방됐으며 정정당당하게 지린 감옥에서 나왔으며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 가상을 간파하고 시시각각 사부님을 믿으며 법을 믿다.
지린 감옥에서 대법 수련생 류청쥔 등이 박해로 사망한 것으로부터 리즈융은 성공적으로 구원했다. 이 가운데서 대법제자들이 정체적으로 협조하는 역량을 체현했는데 더욱 주요하게는 대법제자로서 우리들이 능히 시시각각 사부님과 법을 믿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설법 중에 오직 대법제자들이 바르게만 한다면 사부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창춘 차오양꺼우 (朝陽溝)노교소는 지린 성에서 소위 ‘전향’기지이며 전후하여 수 천 명의 대법제자들을 감금했으며 20여 명의 견정한 대법제자들이 박해로 사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박해로 부상당했거나 불구가 되었다.
2004년 지린 이퉁 대법제자 왕진퍼(王金波)는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에서 엄중한 박해를 받았으며 그는 견정하게 수련을 했기에 악경 악인들에게 여러 차례 혹심한 구타를 당했다. 수련생인 가족이 이 일을 알고서 여러 차례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에 찾아가서 소장과 관계 부문에 악경과 악인들을 엄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또한 병세가 위급한 왕진퍼를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에서는 그저 상징적으로 사람을 때린 흉수를 처리했으며 가족에 사과를 했으며 구두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 일이 발생된 후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에서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견정한 대법제자들에 대해 계속 잔혹한 박해를 하였다. 이퉁의 대법제자 왕진퍼(王金波)는 박해를 받아 걸을 수가 없었으며 그 가족들은 여러 차례나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의 개조를 책임진 부소장 왕잰강을 찾아가서 사람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해외의 대법제자들도 적극 참여했는데 전화, 팩스, 편지 등 형식을 이용했다. 국외의 강대한 여론의 압력 아래에서 왕잰강은 왕진퍼의 가족이 찾아오기만 하면 무서워서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숨어버리곤 했다.
왕진퍼의 가족들은 또 창춘 차오양꺼우 노교소의 관계 부문인 창춘시 사법국에 자기 가족이 박해를 받은 경위를 제소했다. 2004년 11월 창춘시 노교소에서는 왕진퍼의 가족을 찾았으며 가족에게 병원에 가서 병세가 엄중하다는 증명서를 가져오면 노교소에서는 사람을 내놓겠다고 했다.
왕진퍼의 가족과 대법제자들은 몇 번의 교류를 통하여 어떤 상황에서든지 모두 사악의 배치에 따르지 않으며 죄가 없고 병세가 위중한 친인을 구원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며 어떠한 추가 조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은 또다시 노교소에 찾아가서 무조건 사람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차오양꺼우 노교소 관계 책임자는 도리어 미친 듯이 성을 내며 발광하듯 고함을 질렀는데 노교소에 당신네만이 찾아와서 시끄럽게 구는데 모든 사람은 내놓아도 왕진퍼만은 내놓지 않겠다고 했다. ………..
2004년 12월14일 이퉁 대법제자 왕진퍼는 무죄 석방되었다. 지금 왕진퍼 가족은 진일보로 창춘시 차오양꺼우 노교소 악경들이 법을 집행함에 오히려 법을 어긴 범죄 사실— 가족을 때리고 잔혹한 박해를 가해 왕진퍼가 걷지 못하고 있는 범죄사실에 대해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 감옥에 있는 우리의 친인(동수)들을 구원하여 집으로 돌아오다
정법 노정이 빠르게 추진됨에 따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들이 대량으로 청리됐으며 사부님께서도 신 경문《역시 방할하노라》중에서 “당신의 가족이 감금 중에서 박해가 경감되고 박해가 멈춘 이것은 대법제자들이 사악과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해 중에서 사악을 폭로하고 겁을 먹게 해서 조성한 것임을 알고 있는가? 그들이 나왔을 적에 당신은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할 것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대법제자들 모두가 한 가족이며 모두가 우리의 친인들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써, 사부님의 말씀은 법이며 또한 천상의 변화인데, 그렇다면 큰 천상의 변화 아래에서 우리 대법제자들은 움직여야 한다. 이 중에서 매 대법제자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겨야 하고 각기 책임을 져야 하며 가능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한다.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이 한 차례 박해의 사악한 본질을 인식하고 또한 반 박해 중에서 수시로 법을 스승으로 삼고 자신을 부단히 수정하며 정체적으로 견정하게 법을 수호함이 바로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직책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면, 대법의 위력은 능히 수시로 펼쳐지게 될 것이며 감옥에 감금된 동수들도 사부님의 보호하에, 대법제자들의 구원하에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우리들의 조그마한 인식이니 합당치 못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문장 완성:2004년 12월 22일
문장 발표 :2004년 12월 23일
문장 수정:2004년 12월 23일 00:14:06
문장 분류 : [제자절차]
문장 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2/23/9200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