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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수련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1)

글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1월 19일】정법수련은 이미 간난신고(艱難辛苦) 속에 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다. 이 5년 중에 많은 대법제자들은 정념 정행으로 사악의 발광적인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일부는 표현됨이 썩 좋지 않아 사람의 마음으로 대법과 법을 실증하는 일을 대하고 있으며, 자신의 책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을 잘 완수하지 못하면서, 다른 한면으로는 또 대법의 정체역량을 상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대법제자들의 표현으로 능히 알 수 있는바 잘한 사람들은 법리(法理)가 분명하고 정념이 강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정법수련의 길을 견정하게 걸어가고 있지만, 잘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낡은 세력의 배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면서 낡은 세력이 틈 탈 기회를 주면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개인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정법수련이며 무엇이 개인수련인가?

나의 이해로는, 개인수련은 바로 단순하게 개인적인 제고와 승화로서 개인의 해탈과 원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금왕래, 역조(歷朝)역대(歷代)의 모든 수련방법은 모두 개인수련의 길을 걸어왔지만, 정법수련은 사부님께서 정법하시고 있고, 사악이 전면적으로 박해를 실시하는 이러한 시기이기에, 개인수련의 기초상에서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하는 동시에, 법공부하며 심성을 제고하여 자신을 원만하는 이러한 과정이다.

수련과정 중의 사람이 영광스럽게 법을 실증하는 이것은 우주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일이며,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상의 영광이다.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개인의 해탈은 수련의 목적이 아니다. 중생을 구도함이 비로소 당신들이 올 적의 큰 소원(大願)과 정법 중에서 역사가 당신들에게 부여한 책임과 사명이다. 그러므로 대량의 중생들 역시 당신들이 구도할 대상으로 되었다”(『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7.20 이후 우리의 수련은 완전히 개인수련으로부터 정법수련으로 변했으며, 이때부터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우리 매 대법제자들의 모든 일에 관통되어 있다. 또 정법수련의 인식 정도는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대법제자들이 오직 정법수련에 대한 정확하고도 투명한 인식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부딪히게 되는 모든 문제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부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이러한 특수한 역사시기에 처해 있음과 더불어 정법, 이 일에서 우주 중의 층층 생명들 모두가 표현됨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의 표현은 아마 우주의 제일 낮은 층 —속인사회 여기에서 체현되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들이 직면한 일들도 역시 매우 복잡하게 변해 버렸으며 많은 일들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낡은 세력은 우리를 단순히 낡은 우주 중의 생명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들은 우리의 수련을 도와준다고 여기고 있기에 그것들이 인정하건데 수련인이 반드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이른바 마난을 배치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도 역시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한 기초상에서 우리들의 길을 배치하셨다. 정법이 우주의 제일 낮은 층차인 사람 여기에서의 표현은 미래 새로운 우주의 중생들에게 한 갈래 참조할 길을 남기게 될 것이며, 우리들로 말한다면 자신에게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닦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부단히 제고해야 할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이 한시기에 표현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일들은 가능하게 여러 방면의 요소들이 촉성했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닦아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낡은 세력의 배치도 부정해야 하며 미래의 길도 남겨야 한다. 그러니 정법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잘하겠는가 하는 이 모든 것은 매우 어렵다.

이 5년 간의 정법 중에서 우리들이 마주친 제일 큰 저애력은 바로 낡은 세력의 교란이다. 낡은 우주의 지혜는 낡은 세력의 정법에 대한 인식을 한정시켜 놓았는데, 그것들은 정법이 반드시 그것들의 요구대로 해야만 비로소 제일 좋다고 여기고 있으며, 대법제자는 반드시 그것들의 사악한 고험을 거쳐야만 원만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러한 일들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제도하는 본보기로 되어 있듯이 말이다. 그것들은 그것들도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낡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대법제자가 걸어야 할 길을 배치했는데 억지로 대법제자들에게 그것들의 일부 낡은 방식으로 배치를 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되려 그것들 자신도 정법 중에 바로잡혀야 할 대상이라는 것과, 이른바 이렇게 배치하여 돕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정법의 저애력으로 되어 대법제자들에게 감당하지 말아야할 마난을 가져다 주었음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승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 역시 정법 중에서 낡은 세력이 자신이 선택한 자아도태의 방식이다.

사부님께서는 “물론 낡은 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를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나 이 사부가 승인하지 않으므로 대법제자도 당연히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러나 그것들은 필경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는데,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에 부딪힐 경우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낡은 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낡은 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2004년 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낡은 세력은 우리들이 전생(前世)에 어떤 사람의 생명을 빚졌기에, 지금 그런 사람들을 배치하여 대법제자들을 박해하여 치사(致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전생에 빚을 졌기에 정법시기에 대법제자로 하여금 사업을 잃게 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하며, 대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기 위해 악경이나 혹은 가족들을 배치하여 우리를 악독하게 때리게 한다. 만약 낡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가늠한다면 이러한 배치가 틀리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개인 수련을 첫자리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법시기이며 정법에 대한 태도가 우주 중생이 존재하는가 멸망하는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주 중의 모든 생명은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놓아야 하며 모든 천체가 새롭게 조합된다. 그렇다면 정법 중에서 나타난 대법을 실증하는 것과, 중생을 구도함에 엄중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모두가 착오적인 것이며 모두가 교란이다. 낡은 세력의 이러한 배치는 확실히 법리가 명확치 못한 많은 대법제자들을 미혹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첩첩의 마난 속에 빠지게 했다. 그리하여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은 우리 대법제자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주 중의 모든 요소들은 정법을 교란해서는 안된다. 전생에 당신한테 진 빚을 내가 당신의 내세에 배로 갚아 줄 수 있으며, 당신의 명을 빚졌다면 나는 당신에게 더욱 큰 복을 가져다 주거나 혹은 내가 수련성취할 적에 아예 당신을 나의 세계로 구도해 갈 수 있다. 우리들이 대법에 대해 견정한가 견정하지 못한가 하는 것을, 사악이 박해로 검증하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3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법에 대해 견정하다는 것을 체현하는 것인데 이러면 더 좋지 않은가! 당연히 진정으로 이 일체를 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사부님이시며, 사부님의 지혜와 법력은 우주 중의 어떤 요소의 제한도 받지 않으며 사부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선해(善解)시킬 수 있으며 우리는 그저 이러한 인식과 이러한 염원이 있을 뿐이다.

나타난 일부 교란들은 우리 자신들의 요소를 제외한 이외에도 또 다른 한 방면의 원인이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낡은 세력과 무슨 약속을 체결했거나 혹은 어떤 소원을 품었거나 하는 것인데,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낡은 세력이 역사상에서 한 배치이다. 그러나 낡은 세력 자신마저도 바로 잡아야 할 대상인데 그것들의 배치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그러나, 우리가 만약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고 또 우주의 하나의 이치에 부합되었다면, 낡은 우주든 새로운 우주든 막론하고 모두 이런 하나의 이치가 있는바, 하나의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되며, 역사상에서 그가 어떠한 약속을 하였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에는 정반(正反) 두 개 방면이 포괄되며 모두 이러하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금방 이야기하였다. 역사상에서 어떠한 약속을 체결하였더라도 당신이 오늘 정념(正念)이 충족하여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가지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릇 이러한 것들은 하기가 좀 어렵다. 어려운 것은 바로 낡은 세력이 당신에 대하여 쉽사리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빈틈을 뚫고자 하는 것인데, 당신에게 한 점의 소홀함이 있기만 하면 그것은 곧 뚫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한 정황하에서는 그것은 곧 뚫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법은 정법 중에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며 나 이 사부도 승인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대법제자들 매 사람은 모두 말하기를 우리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대법과 정법(正法)의 요구에 따라 가서 하면 당신의 역사상에서 배치한 그 일체를 곧 부정하게 되는데, 나는 당신의 그 낡은 세력 자체를 포함해서 나는 모두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정념(正念)이 아주 충족하면 곧 그것을 배척할 수 있으며 그것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박수)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승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에서의 설법』)라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최근에 일부 대법제자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이 아직 모자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일부 구체적인 일들 중에서 정법수련과 개인수련과의 관계를 갈라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또 낡은 세력의 박해 수단에 대해서도 인식이 명확하지 못하여 부동한 정도로 사악의 교란을 받고 있었으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들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내가 정리해 보니 대체로 아래의 이러한 몇 가지 상황이 있다.

1. 자료점에서 일하는 대법제자

대륙에서 자료점은 법을 실증하는 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는데, 이 몇 년간 사악이 자료점을 중점적으로 줄곧 파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연히 자료점의 대법제자들은 사악이 중점으로 교란하고 파괴하는 대상으로 되고 있다. 자료점이 장기적으로 안정하게 운행되려면 여기서 일하고 있는 대법제자들이 잘하고 있는가, 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이 지극히 관건적인 문제가 된다. 나는 2000년부터 줄곧 자료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몇 년 동안에 걸쳐 자료점이 여러 차례나 파괴되었으며 매 번 모두 피나는 교훈이었다. 이런 것들을 총괄해 보니 아직도 우리들이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이 높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었다. 어떤 제자들은 부딪히게 되는 많은 교란들을 단순히 개인수련의 심성제고를 위한 관과 난으로 대하고 있었으며, 어떤 제자들은 주위에서 나타난 많은 시끄러움에 대해 막무가내였고, 어떤 제자들은 사람의 마음으로 자료점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인식상의 부족점이 있기에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교란하는 것이다.

예전에 명혜망에서 한 가지 사례를 보았는데 대체적으로 자료점에서 일하고 있는 두 대법제자가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과정에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대법제자들이 휴대폰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귀뜸해 주었다. (사악이 감시하고 있음) 당시 두 대법제자도 다른 사람의 말대로 통화를 끊었다. (두 휴대폰이 동시에 통화가 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그러나 이튿날 그 중의 한 대법제자는 이런 교란은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이 한차례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권고를 듣지 않고 계속 휴대폰을 사용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잡혔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연루되었으며, 자료점도 사악에 의해 파괴되어 손실이 매우 컸다.

정법시기와 개인수련 시기의 제일 큰 차이점은 문제를 보는 기점이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이다. 개인수련 시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원만, 개인의 제고이지만, 정법시기는 우리들이 어떻게 정체적인 협조와 정체적 제고를 더욱 잘하며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 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 개인수련의 의의를 훨씬 초월한 것이다. 이 시기는 엄격하게 말한다면 우리 자신이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으며, 정체에 속하며 우리 모두가 법의 입자인데 단지 분업이 다를 뿐이다. 우리들의 일체는 모두 정체의 필요를 위한 것이며 개체의 손실은 바로 정체의 손실이다. 앞에서 지적한 그 대법제자는 그저 자신의 이른바 “제고”를 위해 정체에 이렇게 큰 손실을 가져다 주었는데, 이로 인해 대법을 실증하는데 거대한 영향을 조성하였다. 이것이 어찌 한 개인의 일이겠는가! 낡은 세력은 바로 우리의 이러한 틈을 타고 들어와서, 정법을 교란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저애하고 있지 않는가? ‘자아’의 틀속에서 벗어나 정체속으로 오라!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정체적인 배합과 우리들이 하려고 하는 일들을 더욱 잘 할수 있다.

낡은 세력이 자료점의 대법제자에 대하여 교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형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법제자로 하여금 늘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고 집에서, 밖에서, 자료점에서,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 생기게 하면서 끝없이 생겨나게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시끄러운 일들을 처리할 때 우리들은 흔히 일 속에 빠져버리게 되는데, 정말로 머리를 쥐어 짜고 속을 썩여가면서 그 일의 내부에서 원인을 찾으면서 해결책을 찾는데, 이것은 근본상에서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단 당신이 낡은 세력의 배에 오르면 당신이 어떻게 노력해도 그것의 장악하에 있게 되는데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뱃머리에서 꼬리로 갈 수 없으며 그것의 틀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면 오직 구체적인 일속에서 뛰쳐나와 정법수련의 각도에서 냉정하게 분석해야 만 비로소 원래 우리들이 시작한 기점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시끄러움은 응당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 이 모든 교란은 대개 자료점을 향해 온 것이며, 단지 개인수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바로 우리들의 정력을 분산시키고, 소모시키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자료점의 일을 잘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들이 꼭 이 한점에 대해 청성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 외에 법리에서 명석하고 정념이 강하면 능히 사악의 음모를 식별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겁이 나서 달아나는데 달아나지 않으면 그것은 곧 바로 제거된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들이 법리가 명확하지 못한 곳에서 시끄러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 하나의 불행한 소식을 들었다. 한 지역에서 십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잡혔는데 여러 자료점이 연루되어 있었다. 사고 원인은 자료를 전달할 때 악인들에게 미행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사악이 매우 짧은 시간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계획적인 납치일 것이며, 이미 미행한 시간이 오래된 것으로 보여진다. 미행당한 사람이 한 사람만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간난신고를 겪어서 정법이 이미 여기까지 온 오늘날 이렇게 큰 누락이 생겼다는 것은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노출되어 있었다. 한 대법제자가 여러 차례 이 몇몇 자료점의 주요 책임자들을 찾아서 법공부를 연계하는 방식과 안전문제 등을 교류하면서 그들에게 주의할 것을 바랬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정념’만 계속 강조하면서 (정념을 단순히 두려워 하지 않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이것은 매우 평면적인 것인데, 사실 정념의 함의는 매우 넓고 깊다. 근근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 한 점에만 의거한다면 법을 실증하는 모든 일들을 잘 할 수 없다.)

만약 그들의 정념이 정말로 그렇게 강하다면 문제를 고려하는 것이 매우 전면적이고 섬세할 것이며 근본적으로 이렇게 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개별적 대법제자들이 잘 하지 못하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러나 책임자, 협조인이 잘 하지 못한다면 그 영향이 매우 큰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큰 빈틈이 생긴 것은 어느 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정체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법공부와 자신의 심성 제고, 정법수련에 대한 인식과 전반적인 정법노정의 이해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 자료점의 책임자로서 응당 해야할 책임을 잘하지 못했으며, 주위의 기타 대법제자들도 선의적으로 제때에 지적해 주거나 도와주지 못했고, 정법에 대한 요구에 이해가 깊지 못한 제자들도 그 속에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도리어 이러한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조장했다.

정체적인 협조와 배치에서도 명혜망에서 소개한 성숙한 경험을 교훈삼아 따라 하지 않았다. 늘 어떤 사람은 자신이 쓰던 방법을 강조하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명혜망 문장도 대법제자들이 쓴 것 인데 왜 거기에서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라고까지 한다. 이 한마디 말은 그 사람의 심태를 명확하게 나타내는데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말투가 크며 겸손하지 못하고 또한 매우 이지적이지 못하다. 명혜망은 사부님께서 확인하신 사이트이며 문장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개인 체험들인데 어떤 관점들은 아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이런 문장들은 모두 층층이 심사했기에 큰 방향으로 볼 때는 절대로 문제가 나타날 수 없다.

우리들은 명혜망에 소개된 성숙된 경험들을 참조하여, 자신이 있는 지역의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해야 한다. 정체적으로 빈틈이 생기거나 일부 과격한 인식들은 많은 일들로 하여금 완전히 정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못하게 한다.

1. 자료점의 인원을 배치할 때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자료점의 인원은 가급적 법에 대해 견정하고,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큰 자료점을 말하며 개인 자료점은 포함하지 않음)

2. 연계가 혼란하며 층차가 분명치 못하여 자료를 주고 받는 곳이 잡화점으로 되어 많은 사람이 오고 가게 한다.

3. 휴대폰을 마구 사용하며 휴대폰 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마음대로 알려주며 통화 중에도 아무 말이나 한다.

4.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법공부를 하지 않는다. 일이 있으나 없으나 한자리에 모여서 시간을 낭비하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심하면 수구하지 않고 아무말이나 마음대로 하고 전하며 날조하고 말썽을 일으킨다. 마음을 법공부와 응당해야 할 일에 두지 않고 있으며

5. 개인적인 것을 법을 실증하는데 섞어넣는다. 속인 중에서의 명(名)같은 것을 우리는 추구하지 않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되려 이러한 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법을 실증하는 중에 갖고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며 듣기 싫은 말을 듣기 싫어하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데 내가 어떤 어떤 일들을 했다고 하며,나는 지금 어떤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말하는데 표면상에서 볼 때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상에서는 그 자신을 실증하고 있다. 사실상 그런 잘하고 있는 제자들이 어찌 자료점에서의 중요한 일들을 상관없는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는가?

6. 자료점에서의 일부 배치들이 혼란하다. 모든 일을 사람마다 다 알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단선(單線) 연계와 비밀을 지키지 않으며 툭하면 누가 누구를 믿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완전히 인정(人情)을 법을 실증하는 중에 섞어 넣으면서도 되려 자신이 도리가 있다고 한다. 어떤 책임자들은 법리가 분명치 못하며 주요한 일과 부차적인 일의 구분이 명확치 못하며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놓고는 여러 사람들을 불러들이는데, 표면상에서 볼 때에는 단결되고 매우 선한 것 같지만 실제상 사람의 인정을 자료점에 가지고 오는데, 여기에 대해 어떤 사람이 옳지 않다고 제기하면 접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되려 두려움이 있어서 감히 오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 정법을 수련한지 이미 5년이 지나가는데, 처음에 할 때 우리들이 잘하지 못했다면 경험이 없고 많은 부족점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는 밖을 향해 찾지 말아야 하는데 피의 교훈은 너무도 많다. 명혜망에서 자료점들이 파괴된 경험을 쓴 교훈이 몇 백편도 넘는데 우리들이 과연 참답게 이러한 문장들을 보았는가? 정말로 그러한 경험 교훈들을 총결하여 그런 일이 우리 몸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는가? 어떤 자료점에서는 《명혜주간》을 만들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 자신도 참답게 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하고서야 어찌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돌덩이에 발이 걸려서 넘어지고서도 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사람마다 능히 이전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몸에서 발생한 일을 자신의 몸에서 발생한 일처럼 생각하고 참답게 총결짓는다면, 그러면 우리들은 더욱 성숙되고 더욱 이지적으로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지금 일하는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꼭 잘해야 하며 더욱더 잘해야 하며 법으로 하여금 적게 손실을 보게 해야 한다. 이상에서 제기된 것은 당연히 표면적인 것이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 너무도 많은 개인적인 것이 섞여 있는데, 명을 구하는 마음, 과시심, 쟁투심, 자만하고 자신을 크게 보는 마음이 그 속에 있다. 개인이 제고하지 못하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여 자신을 제고하는 것은 정법노정에 따를 수 있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기초이다. 법공부를 많이 하면서 자신을 찾자.

(다음에 계속)

문장완성 :2004년 11월 16일
문장발표 :2004년 11월 19일
문장갱신 :2004년 11월 19일 14:40:58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19/895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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