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1월 7일】 기억하기에 예전에 나의 사상 중에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였었다. 그러나 후에 끊임없이 법학습을 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그 원인을 찾게 되면서, 사상 중에서 하나의 큰 변화가 발생하였고, 낡은 세력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었다. 아래에 몇 개의 구체적인 예를 들겠다.
1. 어느 한 번 동수와 함께 발정념을 할 때였다. 막 앉았는데 밖에서 나팔소리가 울렸는데 소리도 매우 컸다. 당시 나는 ‘대법제자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없다. 이것은 나의 무슨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하며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그랬더니 내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것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또 노래가사 중에 나오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가 묻지만…..”를 자세히 듣고, 내게도 색욕(色慾)과 정(情)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것도 버려야겠다고 막 여기까지 생각하자, 밖의 나팔소리는 작아져서 잘 들리지 않았으나 조금은 들려왔다. 이때 나는 또 생각하였다. 나는 내가 의식한 공간 중의 마음은 없애 버렸으나, 내가 의식하지 못한 미시적인 공간 중에 남아있는 마음이 또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사부님, 저는 그 자그만한 것도 모두 가지지 않겠습니다.’ 생각이 끝나는 동시에 밖의 나팔소리는 즉시 정지하였다. 이때 나는 진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를 깨달았다.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고 계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집착을 버리려는 하나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계기로 나 자신의 이전의 심리상태를 평가해 보았는데, 이전에 밖의 나팔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은 또 교란이며 내가 발정념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전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낡은 세력의 출현도 모두 승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2. 어느 한 번은 아이가 수업이 끝난지 2시간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오빠는 나보고 나가서 찾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어떤 일에 부딪혀도 모두 안으로 찾고 안으로 수련하여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걸으면서 나 자신을 찾았다. 나는 어떤 마음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였는지, 결국 나 자신이 또 정에 대한 집착과 두려워하는 마음, 즉 아이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 집착심을 찾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하였다. “이 마음을 제자는 모두 가지지 않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돌아와 있었다.
자신의 이전 심리상태를 생각해 보면 만약 아이가 늦게 돌아오면, 나는 도처에 가서 찾고 찾지 못하면 이것은 교란이라고 생각하고 승인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했던 것이 낡은 세력을 부정하고 승인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승인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교란이라고 승인하는가?
3. 어떤 수련생은 신체 어디가 불편하면 교란이라고 생각한다. 한 동수와 교류할 적에 그녀는 연공할 때 자신의 팔을 갑자기 올리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에서 당신은 어느 것을 잘 하지 못하였는지 안으로 잘 찾아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진상을 잘 하지 못하였다고 알려 주었으며, 나중에 나는 그녀와 교류하여 진상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내가 또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알려주기를, 그녀는 거의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놓지지 않았고 게다가 또 많은 진상자료를 만들었으며 팔은 지금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나는 우리들이 어떤 일에 부딪혀도 모두 대법의 기점에 서서, 모두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는 것이며, 정말로 낡은 세력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인데, 심지어 그것들의 존재마저도 우리들의 사상 중에서 반드시 모두 철저히 제거하여야 한다. 나는 우리가 마음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마음이 있는 것은 대법에 잘 동화(同化)되지 못했을 뿐이며, 다만 법에 잘 동화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악의 박해와는 관계 없이, 우리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이 박해 받는 기회를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잘 학습하는 동시에, 자신을 부단히 정화시키고 진상을 더욱 잘 알려 세인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끝으로 사부님 설법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에 부딪힐 경우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낡은 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낡은 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이 배치한 일체마져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상에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낡은 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2004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
이상은 개인 층차의 작은 깨달음이므로, 부당한 부분은 수련생이 자비로 교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2004년 11월 06일
문장발표: 2004년 11월 07일
문장갱신: 2004년 11월 07일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1/7/8857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