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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도 구함이 없노라[做而不求]

글 /후난(湖南)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18일 】나는 청년 대법제자이다. 1999년에 법을 얻었으며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며 어머니는 96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어머니와 나는 모두 대법제자이며 함께 상호 교류도 하고 있으며 주위의 환경도 괜찮은 편이다. 가도(街道) 판사처와 610은 작년 3월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수련을 계속하고 있는것을 알고 있지만 나와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두의 회계와 사업일꾼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한테 대법이 좋다는 것과 대법의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머니에게 계속 연공을 하고 있는가 물으면 어머니는 늘 “물론이지! 이렇게 좋은 대법인데 왜 연마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곤 했다. 또한 어머니는 늘 동네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는데 모두들 대법이 좋다고 하며 어머니가 왜 대법을 견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저녁이면 나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 전단지를 배포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아침 일찍 나가서 전단지를 배포하기도 했다.

나는 사악의 박해때문에 대학을 끝마치지 못한 채 핍박에 의해 학교를 떠나 일을 하게되었다. 나는 일이 바쁜 관계로 법공부와 연공할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수시로 자신이 대법제자라는것을 잊지 않았으며 대법의 법리로써 자신을 요구했다.

아래에 나는 어머니와 심성 상에서, 생활 중에서 이러저러한 마찰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동수들과 법에서 인식을 교류하고자 한다.

나와 어머니는 모두 수련인이며 서로 간에 상대의 부족점과 집착심들에 대해 지적해 주고 있다. 처음에 일자리를 찾기 시작할 때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학력도 높지 않았기에 주로 업무에 관계된 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일들을 해나갔다. 시작할 때 나는 매우 바빠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앉으면 곧 잠들어 버리곤 했다. 아침 법공부에서도 졸곤 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그저 나를 깨우면서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라고 하셨다. 나도 자신을 교란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많이 노력했으나 일에 노력을 많이 해야 했기에 한 동안 그냥 바삐 보내면서 잘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 어머니는 처음에는 그저 깨우던 것이 강제적인 요구로 발전했으며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면서 속인의 방식으로 질책하였다.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속인의 방식으로 질책하면서 나를 도와줄 때에 나는 정말로 자그마한 “선(善)”의 요소도 느끼지 못했으며 마음속에는 거기에 대한 저촉감이 생겼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선생님들마저도 말하는데 비평과 징벌이 목적이 아니며 목적은 잘못을 시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도 이런 상황하에서 어머니의 심태와 말투가 틀렸다고 지적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했다. 나중에야 나는 어머니의 말투나 심태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임하고 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며칠동안 진정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잘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나는 또 잘하지 못했다. 당연히 어머니의 질책을 받았는데 이러한 것이 어머니로 하여금 어투와 심태를 개변하지 못하게 했다. 되려 어머니의 질책이 작용을 일으켰다고 착각하게 했다. 또한 나자신은 자신이 잘하지 못했다는것을 인식했지만 잘하려고 생각하니 그것을 접수하기 어려운 감을 느꼈으며 속으로는 늘 이것이 어머니의 “공로(功勞)”가 아니며 진정으로 나를개변한 것은 대법이라는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가 왜 이런 일에 부딪히면 화를 내고 어투에 “선(善)”념이 없으며 표현되는 심태가 속인과 같은가? 하는 것을 분석해 보았다. 그것은 어머니는 아마도 마음은 법에서 나를 도와 잘하게끔 하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방식과 방법은 속인 식의 질책이며 법으로, 수련인의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내가 잘하기만을 바랐으며 나를 “도와”주는데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때문에 약간의 집착이라고도 할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 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 늘 도속에 있노라”고 하셨다. (『홍음』「도중(道中)」) 수련인의 마음은 세간의 만사만물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며 어떠한 일을 하던지 간에 그 결과가 꼭 어떠하리라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내가 꼭 잘하기를 바라는 그러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며 수련인의 심태와 심성을 잃게되었고 바로 이러했기에 그 표현되어 나온 것이 당연히 속인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내가 한 대법제자로서 응당 안을 향해 찾아야하며 자신이 먼저 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것은 한 수련인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대할 때 응당 “하면서도 구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만약 결과에 대해 집착을 한다면 이것은 누락이 있는 것이며 그러면 사악이 틈을 타게 된다. 만약 나 개인의 수련이라면 나만 잘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전체 대법제자들이 수련중에 누락이 있는가 하는 것이며 특히 정법시기에 사악에게 이용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1999년에 박해가 시작된 이래 모(某) 총리로부터 공산당의 모(某) 회의에 이르기까지 ,또한 근간에 장씨가 물러난 일들에서 대법제자들의 마음이 움직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희망을 어느 속인이나 혹은 어느 한 가지 일에 의탁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제자들이 대법이 하루빨리 명예가 회복되기[平反]를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하는 집착을 하지말아야한다는 것은 자료를 만들거나 진상을 알리는 것이 집착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료를 만들거나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면서도 구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비로소 대법제자들이 어떠한 일을 하든지 막론하고 가져야 할 심태이며 이것은 우리의 수련이 원만을 위한 것이지만 그러나 원만에 대해 집착을 하지 않는다는 법리와 비슷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사실 이것 역시 마지막 집착을 내려놓을 시기가 온 것이다. 한 수련자로서 당신들은 이미 알았고, 또 일체 세간의 집착(인체에 대한 집착을 포함함)을 내려놓았으며 생사(生死)를 내려놓는 속에서 걸어 지나왔다. 그러면 원만에 집착하는 것은 집착이 아닌가? 역시 사람의 마음이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처가 원만에 집착할 수 있는가? 사실 진정으로 원만에 접근한 수련자는 이 마음이 없는 것이다. 나는 설법[講法] 중에서 만약 한 학생이 오로지 공부를 잘 한다면 자연히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 자체에만 집착하고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도리를 말한 적이 있다. 한 수련자가 원만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상을 법에 놓고 끊임없이 수련하는 중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원만의 표준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일부 고통 속에서 참을 수 없어하는 수련생 들이 가장 쉽게 인간세상을 떠나 빨리 원만 하려는 생각이 생기고 이로 인해 사악한 것이 틈을 타게 된다. 당신들은 이미 가장 간고한 시기를 걸어왔으므로 최후의 하나의 집착에서 부디 마음을 놓아야 한다.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다.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욱 당신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우주 중에서는 이전에 없었던 속도로 한창 천체중의 일체 사악한 것을 모조리 소멸하고 있는 중에 있다. 지나간 1년 동안 수련생 자신의 업력(業力)․법에 대한 인식 부족․난(難) 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 고통스러운 관을 넘는 중에 정념(正念)으로 대할 수 없는 등등은 모두 사악한 것에 의해 박해가 가중된 주요 원인이자 또한 사악이 진정하게 법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구실이었다. 그러나 한 수련자로서 수련 중에서, 대가를 얼마나 치르든 지를 막론하고 원만 시에 꼭 얼마를 얻을 수 있다. 당신들은 내가 설법(講法)할 때, 한 수련 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이 생겼을 때보다 더욱 높은 과위(果位) 까지 수련할 수 있는 가고 어떤 수련생이 물은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 만약 한 수련자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생사의 생각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악한 것은 틀림없이 두려워한다. 만약 모든 수련생들이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악한 것은 바로 자멸(自滅)할 것이다. 당신들은 이미 상생상극(相生相克)의 법리(法理)를 알고 있고, 두려움이 없다면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강제로 행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탄연(坦然)하게 내려놓으므로 도달한 것이다. 매번 나는 당신들이 마난(魔難)을 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사부는 당신들 보다 더 괴롭다. 매번 당신들이 어느 한 걸음을 잘 걷지 못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주 아프다. 사실 사악한 것이 한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손을 쓴다. 당신들은 佛․道․神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의 각자(覺者)들로 세간의 득실을 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응당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각 당신들이 만약 원만을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악한 것은 더 이상 최후의 하나의 틈을 탈 방법이 없다.”(《정진요지 —최후의 집착을 버리자》)

“기억하라 ,구하고자 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记住,要无所求而自得)”(《정진요지 —법을 배우다 》)

정법은 꼭 실현될 것이며 막을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낡은 세력의 정체적인 실패는 필연적인 것이다.

내 생각에는 최후의 한 가지 집착 즉,”명예회복[平反]”에 대한 마음도 마땅히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박해를 겨냥한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일에서도 구하고자 하는 집착심을 내려놓고 힘자라는 데까지 노력하여 최대의 노력으로 일들을 잘하며 수련 중에서는 “하면서도 구하지 않거니 늘 도속에 있어야”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만가지 움직임을 제약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니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1회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교류대회 원고 ) 

문장완성 : 2004년 10월 9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18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18일 02:10:31
문장분류 : 수련마당>법리절차
원문위치://www.minghui.org/mh/articles/2004/10/18/8624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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