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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어린 대법제자들이 두 차례나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였다

글/ 중국 대륙 어린이 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23일] 나는 올해 14살의 어린 대법제자이다. 99년 초에 엄마와 함께 수련을 시작하였다. 한 명의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대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대법의 한 입자이다! 그래서 엄마가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법을 실증하기로 결정하고 내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나를 꼭 데리고 가라고 말하였다.

2000년12월 8일 저녁, 5살 먹은 작은 남동생을 포함한 우리 일행 수십 명은 베이징으로 가는 차를 탔는데 기차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식당 칸에서 엄마 품에 기대어 선채로 하룻밤을 지냈으나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겹겹이 가로막은 장애를 뚫고 천안문 광장에 도착하였다. 광장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와서 캐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전국 대법제자들의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들었다. 남북방언이 뒤섞인 말투도 있고, 현수막을 높이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매우 대단하였다.

이때 우리 일행 몇 사람은 이미 사복을 한 경찰에게 주시 당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노인 대법제자가 그들에게 추궁 당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와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그들이 흉악스럽게 대법제자의 옷을 잡을 때였다. 그 대법제자는 재빠르게 품에서 이미 준비해온 현수막을 꺼내들고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하고 외쳤습니다. 이 때 우리도 자신의 현수막을 꺼내서 높은 목소리로 “대법은 좋습니다.” 등 등 내심에서 우러나는 소리로 외쳤다.

뒤이어 몇 십 초안에 우리는 주위의 무장경찰, 사복경찰들에게 현수막을 빼앗겼으며, 어떤 사람은 맞아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당시 조금 두려움이 있어서 소리가 너무 약했고 마음껏 함성을 지르지 못하였다. 그러고 나서 경찰들은 나와 남동생 그리고 같이 온 수련자들을 이웨이커(依維克, 역주-중국의 자동차 상표명)경찰차에 밀어 넣어 천안문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파출소에서 우리는 전국 각지에서 법을 실증하러온 대법제자들을 만났다. 경찰은 우리를 ‘철창’에 가두었다. 여기에서 랴오닝성의 어린제자를 만났다. 그는 좀 뚱뚱하기 때문에 나는 습관적으로 그를 어린 뚱보라고 불렀다. 나와 어린 남동생, 그 랴오닝의 어린 뚱보, 우리 셋은 어른들을 따라 ‘논어’, ‘홍음’을 외웠다. 어떤 경찰들은 탄복하면서 “이렇게 어린 아이가 다 외우니, 참 대단하다.”라고 말하였다. 어떤 경찰은 너희들 여기에 온 사람들이 아직 너무 적은 것 같다. 십만 명, 이십만 명이 함께 오면 법을 바로잡을 것이 아닌가? 듣기로는 수련자들이 일억이 된다는데 아직은 수련을 잘 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였다. 어떤 경찰은 또 매우 악하고 더러운 말만 하였다. 우리 대법제자는 같이 있으면서 서로 관심하고 매우 친절한 느낌이 들었으며, 두려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천안문 근처 파출소에서는 천안문 광장으로부터 납치해온 대법제자들을 여기로 계속 데리고 왔다. 그러고 나서 또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보냈다. 나와 엄마, 어린 남동생과 그의 엄마, 그리고 또 그 어린 뚱보와 그의 엄마는 한 경찰에 의해 다른 곳으로 불려갔다. 저녁때 그 경찰은 ” 너희들 베이징 천안문도 갔고, 대법이 좋다고 외쳤고, 너희들의 사부님도 이를 보았으니 일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라. 차비는 있어?” 라고 물었다. 우리는 ” 감사합니다. 차비는 스스로 준비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 “역전을 찾을 수 있어?”하고 물었다.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우리를 도와 파출소를 빠져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 세 명의 어린제자와 세 명의 엄마는 처음으로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소망을 순조롭게 완성하였다.

파출소에서 나왔으나 우리는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많은 대법제자들은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왔다가 어떤 사람은 도중에 잡혀갔고, 어떤 사람은 현수막을 펼치지도 못하였으며, 구호도 외치지 못한 채 납치되었다. 우리는 더 많이 외쳐서 그들의 소망을 완성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엄마는 우리는 데리고 집을 찾아 세를 주고 살기로 하였다. 이튿날 , 어린 뚱보 고향의 수련자들은 사부님의 배치 하에 우리를 찾게 되었다. 정말로 신기하다! 그들 일행 7, 8명도 어린 제자 한명을 데리고 왔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우리 4명의 어린제자는 평소에 할 일이 없으면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마당에서 제기차기도 하고, 때로는 어른들을 따라 전단지를 배포하였다.(전단지는 어린 뚱보 고향의 수련자들이 가져온 것이다).

때로는 깊은 밤에 어른들은 전단지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었으며 작은 스피커를 걸었다. 나는 작은 동생을 보살피고 잠을 재워주었다. 작은 동생은 평소 저녁에는 늘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들이 대법일을 하시면 동생은 매우 얌전해졌고 조금도 떠들지 않았다. 그 어린 뚱보와 나는 동갑이다. 당시 열 살 밖에 안 되었는데 심성을 잘 연마하여 아주 좋았다. 작은 동생이 때로는 그의 머리나 옷깃에다 모래를 넣어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 밖에 그는 사부님이 지으신『홍음』의 시를 많이 외울 수 있었으며 대법에 대해 매우 확고하였다.

한번은 4명의 엄마들이 전단지를 배포하러 갔었는데 어린 뚱보와 작은 누나의 엄마가 잡혀갔다.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어린 뚱보를 집으로 데려다 주려고 하였는데 어린 뚱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안문 광장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법을 실증하여 경찰들이 그의 엄마를 돌려보내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어린 뚱보의 엄마와 작은 누나의 엄마는 붙잡힌 후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선한 마음으로 경찰에게 홍법을 하였다. 그리고 안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다. 경찰은 말하기를 당신들 이후에 전단지를 붙이려면 새로운 것으로 붙여라. 이것은 우리 모두 보았던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조건없이 풀어 주었다.

또 한번은 우리는 거리로 나갔었다. 화물차가 갑자기 차를 돌릴 때 차의 뒷부분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쾅”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피부는 벗겨지지 않았으나 단지 후에는 좀 두려웠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 대신 큰 난을 감당하셨고, 어린제자인 나를 보호해 주신 것임을 알았다.

이후에 전단지, 현수막을 다 만들었다. 우리는 두 번째로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번에 우리는 다시는 두렵지 않았으며, 매 한사람 마다 현수막을 썼다. 나는 사부님이『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글씨가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구절이 생각이 났다. 현수막을 주머니 속에 넣고 상, 하 표기를 한 다음 엄마를 따라 광장으로 갔다.

이번에 우리는 거의 동시에 현수막을 높이 들고, 어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높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이 소리는 멀리 하늘 높이 울려 퍼졌고 천지를 뒤흔든듯하였는데 아마 많은 마귀들을 소멸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더욱 많은 세인들을 깨워주길 바랬다. 외친 후 마음이 정말로 통쾌하였다.

오후 3시 넘어서, 우리는 또 무조건적으로 풀려나왔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마음이 매우 순정한 것을 보시고 사악이 박해를 못 하게 하여 두 번이나 천안문에서 법을 실증할 때 무사히 악마의 굴속에서 걸어 나왔던 것이었다고 생각하였다.

어린 뚱보와 그의 엄마는 아주 잘 하였다. 어린 뚱보는 현수막을 높이 들고 뛰면서 외쳤다. 경찰은 한참의 실랑이 끝에 비로소 어린 뚱보의 현수막을 빼앗았다. 후에 어린 뚱보와 그의 엄마도 무사히 돌아왔다. 그 누나와 엄마는 갈때 두려운 마음이 조금 있었기에 저녁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누나의 좋지 않은 집착심을 버리는 것을 도와주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는 그 이튿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 차례 베이징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나의 심성은 많이 제고 되었다. 직접 천안문 광장의 공포와 사악을 보았고 또한 전국의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가는 위대한 장거를 보았다. 저에게 오랜 세월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와 인연을 만들어 주신 사부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지금 수업이 아주 많아서 법공부와 연공을 이전보다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끝까지 대법을 확고하게 수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노력하여 합격한 어린 대법 제자가 될 것이다.

문장완성: 2004년 9월 22일
문장발표: 2004년 9월 23일
문장갱신: 2004년 9월 22일 23:54:29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4/9/23/848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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