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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모두 수련인인 동수들에게

글/지린(吉林)시대법제자

[명혜망2004년 8월 25일] 일년 전 우리 이 지역에는 “결혼”과 “재혼”에 관한 문제로 파문이 일었었다. 당시 명혜망에도 이와 관련된 글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인식이 성숙되지 못했던 관계로 나는 여태 이와 관련한 글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 써내어 여러분과 교류하려고 한다.

나의 주위에는 부부가 모두 대법제자인 동수들이 많다. 그들 중,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에 서로 잘 협조하고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는 부부도 많지만 일부는 정(情)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또 어떤 수련생은 아무 거리낌 없이 상대방의 보살핌을 받아들인다. 빨래에서 밥 짓기, 발 씻는 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대방의 희생을 향수하는데 (몇 사람은 일자리까지 없다)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상대방이 자신의 남편 혹은 아내이고 그 혹은 그녀가 자원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동수들은 전혀 가정환경을 수련환경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정”과 “수련”을 따로 생각한 것이며 자신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특히 “7.20”이후에 결혼했거나 재혼한 몇몇 동수들은 결혼 전에는 법공부도 잘하고 정법도 아주 잘했지만 결혼 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결혼 후에는 부부가 모두 대법제자이니 서로 배우는 것을 비기고 수련하는 것을 비기면서 환경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동수들은 감정 문제로 고민하고, 어떤 동수들은 달콤한 정 속에 빠져 자신이 정법제자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 버렸으며, 어떤 동수들은 서로 원망하고, 어떤 동수들은 고부갈등이 심하며, 또 어떤 동수들은 긴장한 일상의 표상에 미혹되어 정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도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속인의 기점에 서서 자신의 집착에 구실을 찾은 것이다. 그들 중의 어떤 동수들은 강제노동수용소의 악렬한 환경에서도 전혀 타협하지 않고 탈출했던 동수들이지만 결혼 혹은 재혼 후에는 자신을 잃고 심지어 수련하지 않겠다고 까지 했다.

비록 이런 동수들은 나중에는 “원래대로 수련”하기는 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정”과 체면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계속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재혼한 몇몇 동수들은 정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리고 자신에게 구실을 찾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최대한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게 하라고 하셨다는 등등을 말한다. 사실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었는지는 법의 요구와 대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수련인의 표준이 아니라 도덕 수준이 높았던 시대로부터 도덕이 바로 잡힌 후의 인류를 생각해 보면 아마 사람들은 재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혼인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만 후세 사람들에게 바른 참조를 남겨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 개인의 인식은, 수련을 오래한 동수 특히 4, 5십대의 동수들은 재혼에 대해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재혼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꼭 안으로 찾아 자신이 아직 무엇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정에 대한 집착은 없는지, 기타 잠재되어 있는 요소는 없는지 보아야 한다. 동시에 낡은 세력의 박해도 배제할 수 없지만 만약 어떠한 집착도 없다면 낡은 세력도 박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내가 재혼한 동수들에게서 다시는 지난날의 눈부신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동수들은 강제노동수용소 안에서도 변함없이 위풍당당했었는데 지금은 얼굴색이 좋지 않고 십년은 더 늙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낡은 세력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결혼 전의 확고함으로 낡은 세력은 다른 곳에서는 박해할 구실을 찾지 못했지만 “정”에서 틈을 찾게 된 것이다. 동수들의 집착으로 낡은 세력은 쉽게 그런 마음이 비교적 강한 동수들을 속박할 수 있었다.

나는 재혼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마땅히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저 간단하게 결혼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와 동수 사이의 관계 문제를 바로 잡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수련인으로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사부님뿐이며 그 다음은 동수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모두 동수인 동수들은 상대방을 우선 동수로 생각하고 시시각각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며 상대를 남편 혹은 아내로 생각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해야 한다. 위치를 바로 잡으면 재혼에 관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며 부부 사이에도 서로 배우는 것을 비기고 수련하는 것을 비길 수 있으며 속인의 표상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한 진정한 신이 “정”과 “욕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신은 혈연관계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부부라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박애인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홍음》 중의 《도중행(道中行)》 “대도가 세간에서 행하며, 미혹 속의 중생을 구도하네. 명리정을 버리니, 성자를 막을 어려움이 없네.”로 서로 격려하자.

개인의 깨달음이니 자비로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4년 8월 25일
문장분류: [제자절차]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8/25/82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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