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7월 15일] 나의 어머니는 97년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법을 얻고 7.20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후 수련을 견지해오면서 끊임없이 청원활동과 진상을 알렸고 대법일에 적극 나섰다.
2004년 5월 하순 나는 그분의 병업증상이 아주 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집에서 그분을 만났다. 그 당시 나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굴색은 누렇고 온몸이 부어있었으며 겨우 다른 사람의 부축으로 걷는 형편이었다. 문제의 엄중성을 의식한 나는 바로 동수들과 교류했고 또 그곳에 남아있으면서 어머니와 같이 법학습과 발정념, 교류를 하면서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찾아보았다.
교류를 통해 나는 어머니의 상황이 이미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가족들에게 강제로 이끌려서 링거를 몇 번 맞은 적도 있었는데 엄마의 견지 하에 더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시간은 지금까지 흘렀다. 거기에는 흑수의 박해가 있고 동시에 자기가 장기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떤 집착을 버리지 못했든 간에 우리는 모두 낡은 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
같이 법학습 할 때 나는 어머니의 주의식이 강하지 못함을 발견했고 사상업의 교란도 아주 심해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평소에도 이러냐고 묻자 그분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면서 요즘 들어 특히 교란이 심하다고 했다. 나는 그분에게 꼭 정념을 확고히 해야 하고 교란을 돌파해야 하며 법학습을 할 때는 바로 그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 책을 놓고 학습하기 싫을 때는 사실 그것들에게 타협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제자가 대뉴욕법회에서 사부님에게 여쭤본 적이 있다:“ 제자는 7.20 이후에 법을 얻은 제자입니다. 병업의 현상이 발생할 때, 만약 그것을 병업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승인한다면 이로써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마땅히 발정념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는 여기에 명확한 답변을 해주셨다:“낡은 세력의 교란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 말한다면 자신이 자신의 가장 표면적인 신체를 개변시킬 적에 여전히 일부분은 당신들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모두 그리 크지 않으며 법을 실증하는 데는 그리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대단히 큰 곤란이 나타났을 때는 틀림없이 사악이 교란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발정념을 하여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려야 한다!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한 것은 법을 실증하는 일이며 가장 신성하고 가장 위대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의 일을 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적 시기에 어떤 일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란이다. 당신 자신이 이지적으로 가늠해야 한다.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하면 틀림없이 교란이라고 여기어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하면 안 된다면서 발정념만 해서도 안 된다. 물론 발정념을 하는 것은 괜찮다. 당신이 내보낸 공(功)은 그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면 책임질 것이며 그것이 책임지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공 역시 법에 따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수련 중에서 곧바로 법의 표준에 따라 수련해낸 공이기 때문이다. (뭇 사람들이 웃음)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건대 여러분은 이지적으로 해야만 한다. ”(≪대뉴욕지역 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 ≫)
평소에 엄마는≪전법륜≫외에는 기타 경문과 설법들을 아주 적게 본다. 보통 신경문이 도착해서 수련생이 한번 읽어주고는 거의 다시 학습하지 않는다. 엄마는 글씨를 똑똑히 볼 수 없어 그랬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나는 몹시 가책을 느꼈다. 집을 떠나 떠돌아다닌 지 이미 2년이 된 나는 평소에 어머니와 같이 법학습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실 그분의 이런 상황은 사부님의 후의 설법에 모두 제기되었었다. 그런데 그분이 깊이 학습하지 못한 원인으로 마난이 왔는데 그것을 병업으로 여기고 감당한 것이다. 흑수는 이 한 점을 붙잡고 끊임없이 박해를 가한 것이다. 이 역시 모두들 정체적인 조율을 잘 하지 못한 탓으로 일어난 것이다.
끊임없이 법학습과 교류를 통해 우리는 점차 자기의 많은 집착을 찾아냈다. 어머니의 증세도 좀 나아졌다. 우리는 기회를 찾아 주위 친지,친구들에게 인내심 있게 진상을 했다. 그들에게 어머니가 왜 수련을 견지하는지 이해 시키려고 했다. 결과 그들은 다시 뭐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를 동정했다. 일주일 후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다시피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남아서 어머니를 보살펴 주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의 사명을 생각하고 또한 어머니가 점점 명석해 지는 것을 보고 나는 사부님의 모든 신경문이 들어있는 mp3를 남겨두고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는 가방을 메고 동수와 떠났다.
우리가 떠난 이튿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허약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리를 보고 엄마는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옆에 앉혀놓고 어머니가 걸린 병은 악성 종양에 암 말기라고 했다. 병이 위독한 통지서까지 내려 왔다면서 수시로 생명위험이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견정하게 정념을 내보내면서 일체 가상(假象)을 제거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홍음≫(2)를 읽어 주었고 수련생은 한쪽에서 정념을 발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또 ≪전법륜≫을 읽어주었다. 그분의 정신은 계속 좋아져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철야 정념을 발했다. 중간에 어머니가 가끔 일어날 때면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고 흑수가 어떤 구실로 박해하든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튿날 6시 정념을 마치고 나는 어머니와 교류하면서 꼭 정념을 견지하고 자기를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이는 아주 엄숙한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퇴원할 것을 건의하면서 집에 가서 법학습과 정념을 많이 발하고 절대 자기를 환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의 말을 동의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퇴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금방 나에게 어머니에게 무엇을 말했냐고 따지면서 크게 화를 내셨다. 나는 정념을 유지하면서 평정한 마음으로 그를 설득시켜보려고 했다. 아버지는 가더니 모든 친지,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불러왔다. 열 몇 명 되는 사람들이 나를 밖에 있는 화원에 불려다가 이를 악물고 나를 꾸짖었다. 나는 그들에게 “엄마가 지금 병원에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나는 조금의 희망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나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엄마를 데리고 가면 죽기를 기다리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집안재산을 모두 털 신세가 되더라도 엄마는 병원에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우리도 최선을 다한 것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죽음을 기다리면서 왜 분명 한 가닥 희망이 있는데 실험해보지 않는 것이 그분을 위한 것입니까?”하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흑수와 후천 변의 된 관념에 지배당해 이미 이성을 잃은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흑수가 사람의 잘못된 사상을 이용하여 대법제자들의 정신과 정념을 동요 시키고 최종적으로는 한 대법제자를 훼멸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무지 속에서 업을 지어내는 친척들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흑수들의 사악한 수법을 똑똑히 보아냈다.
이어서 타 지역에 있는 친척들까지 전화를 걸어와서 엄마의 퇴원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면서 되도록 정에 이끌리지 말자고 노력했다. 正과 邪가 겨루는 과정에서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고 끝까지 견지했다. 친척들은 또 엄마한테도 찾아갔지만 엄마는 견정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병실에서 큰 소리를 내면서 떠들어댔고 엄마는 계속 퇴원을 고집했다. 우리는 옆에서 끊임없이 정념을 내보냈다. 마지막에 아버지는 끝내 동의하시고 차를 불러와서 엄마를 퇴원시켰다.
어떤 동수들은 나의 이런 처리 방식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어머니의 일은 응당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들은 하나의 정체로써 그의 일은 바로 나의 일이며 그를 박해하는 것은 바로 나를 박해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더욱이 내가 지금 이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도외시 할 수 있고 옆에서 보고만 있겠는가? 수련생이 곤란 속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그래, 당신은 그를 위해 뭘 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가? 당신이 수련의 길에서 곤경에 빠져있을 때 그래, 당신은 동수들의 성실한 도움과 일깨워 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가?
우리는 이런 일을 봤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이 수련생이 바르게 걸었는지, 집착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응당 먼저 자기가 바르게 걸었는지를 되돌아보고 정말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기점에서 부딪친 일체 문제를 대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흑수는 바로 한사코 우리의 단점과 우리가 어디에 잘못되었고 어디에 집착이 있고 어떤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가를 붙잡고 목숨을 걸고 교란과 마난을 조성한다. 그리고는 겉모양이 번지르르 하게 우리를 도와 원만 시킨다고 한다. 우리는 반드시 정신을 차려 확고한 믿음으로 사부님의 말씀대로 해야만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 중간에 아직 많은 수련해 내지 못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두려워할게 없다. 우리는 사부님이 배치한 정법수련의 길에서 진정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수련해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원융불파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흑수는 여전히 어떠한 틈 탈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정념을 발했다. 그의 증상도 뚜렷하게 호전되어 얼굴도 붉은색을 띠었고 정념도 배로 강해졌다. 아버지도 더는 아무 말 안 하셨고 차츰 웃음도 지었고 병문안 하러 온 친척들도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하였다. 병원에 가라고 하던 동네 주임도 엄마의 호전된 모습을 보고 또 그에게 진상한 결과로 역시 우리를 몹시 이해해 주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정념을 느슨히 했고 환희심도 나왔다. 또한 많은 대법일을 해야 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한번은 전화를 걸고 돌아와보니 엄마는 배가 몹시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는 옆에서 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지 않은 말도 막 해대는 것이었다.정념을 발하는 동시에 나는 아버지에게 진상을 하고 수련생은 한쪽에서 어머니에게 법을 외워주면서 가상에 미혹되지 말고 정념을 견지하라고 했다.
그 후, 아버지가 불만만 있으면 나는 진상을 했는데 그가 이해하게끔 그의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전면적이고 세심하게 인내심 있게 진상을 하라는 말씀에 좀더 뚜렷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이 사악한 박해를 감당하고 있다. 그들의 특수한 입장과 친인에 대한 정은 잘못하면 흑수에게 조종당해 대법제자를 교란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상알림은 바로 직접 사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매개인의 마음을 견주고 온 것 인줄 안다. 특히 엄마는 더욱 그러하다. 엄마가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아버지는 어떤 속인의 수단으로 그에게 고통을 억제해준다. 엄마도 거절하지 않고 비자각적으로 자기를 환자로 여긴다. 우리와 같이 교류할 때도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다고 하면서 심지어“사부님이 나를 관계하고 있는가”라고 하는 아주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와 교류를 하고 법학습과 정념을 발하면서 그의 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사부님의≪대뉴욕설법과 해법≫중의 한 단락 설법을 읽어주었다.
“우리 일부 수련생들은 잘못된 정황이 나타난 적이 있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겠는 바, 다수는 모두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신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수련하는 그 과정과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 그 과정은 함께 융합되었으며 당신에게 따라잡아 올라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수련은 법을 실증하는 일을 동반하여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교란당하는 것이다. 교란 당함을 당신은 늘 누가 교란하면 나는 그것을 소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누가 교란해도 모두 안 된다고 여긴다.(뭇사람들의 웃음) 그러나 당신은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왜 당신을 교란하는지를?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비로소 틈을 탈 수 있다! 당신에게는 사부가 책임지고 있지 않은가? 설령 한 속인이 오늘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다”고 한마디 외칠지라도 사부는 그를 보호하는데 그가 이 한마디를 외쳤기 때문이며 사악 속에서 내가 그를 보호하지 않으면 모두 안 된다. 하물며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또 개별적인 수련생들은 정말로 불치병에 걸렸는데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라. 법을 배우기 전의 중환자들과 불치병에 걸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배운 후 모두 좋아졌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안 되는가? 설마 대법이 중생에게 차별이 있단 말인가? 내가 이 사부로서 수련생에게 다르게 대하는가? 나는 정말로 당신들에게 물어보아야겠다. 당신은 진수(眞修)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였는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서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대한 불만을 갖고 있는 그러한 속인의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각도에 입각하여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 하는가? 낡은 세력은 일부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배치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대다수는 되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은 안 되는가? 나의 법은 당신에게 이야기 해준 것이 아니란 말인가?!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반드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어 사악에 의해 틈을 타게 되었는가를 보라. 잘못되었으면 마땅히 인식하고 마땅히 잘 해야 한다. 당신들은 잊지 말라.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들이여!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러 온 것이다! 수련은 고생스러운 것이며 대법을 실증함에 사악이 더욱 사악한 곳에서 능히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중생의 왕일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나는 이미 얼굴에 온통 눈물이었다.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부님의 마음과 우주대궁에 대한 홍대한 자비에 대해 우리는 어찌 그 끝없는 부처님의 은혜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모든 문제를 사부님은 이미 법에서 다 이야기 하셨다. 실속 있게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정말 걸어 나오기 힘들다.
어머니에게서 나는 자기의 많은 문제점을 보아냈다. 어떤 것은 제일 기본적인 문제이다. 진정한 생사 앞에서 나는 사람인가, 신인가? 견정하게 사부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전법륜≫중에서 사부님이 말씀하신“어떤 사람은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사상업에 의해 나쁜 일을 하는데 이 사람은 아예 안 된다. 떨어지고 만다.”의 상태인가? 어떤 일도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것 만큼 엄숙한 것이 없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기를 진정한 수련자로 여기고 천백년이래 뼈 속까지 형성된 사람의 관념을 버리고 있는지. 만약 이 정도에 도달하면 수련의 길에서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한다.
어머니는 점점 몸에서 반응된 상태를 내려놓지 못했다. 법학습과 발정념도 일깨워줘야 하고 어떻게 교류해도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나는 그에게 2년 전에 내가 단식한 체험을 말해주면서 정념만 견정하면 꼭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좀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퇴원한지 11날이 되어서 아버지는 집에 많은 사람을 불러놓고 어머니가 입원하게끔 타이르게 했다. 마지막에 어머니는:“딸의 말을 듣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정념을 발했다. 사람들이 가고 나서 나는 어머니에게 나는 엄마를 대법제자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자기를 진정 수련인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이것은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고 했다.“생사란 큰 소리쳐서 될 일이 아닌지라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진상이 보이노라”(≪심자명 ≫)이 경문은 엄마가 요즘에 자주 외우는 경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정말 도달했냐고 물었다. 나는 점점 흑수들의 험악한 심보를 보아냈다. 그것들은 바로 엄마의 정신(正信)과 정념, 그리고 사상이 점점 바르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의심을 쌓게 훼멸 시키려는 최종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누그러진 엄마를 보고 나는 혼자에게 어떻게 하면 엄마의 정념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꼭 견지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정말 막다른 골목에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격과 비록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끝내 타협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사부님께 죄송하고 대법에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부축임으로 엄마는 차에 올랐다. 이 어수선한 장면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 이 사이에 더욱 잘 하지 못한 나를 원망했고 어떤 공든탑이 무너진 느낌이 몰아쳤다. 나는 스스로에게 꼭 정념을 견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병원에 들어가고부터 정념이 아주 약해졌다. 나는 그에게 비록 병원에는 들어왔지만 이것은 절대 사부님이 관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했다. 사부님은 그런 비뚤게 걸었던 제자를 포함하여 매 한명의 제자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절대 어떤 바르지 못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며, 이 모든 것은 모두 흑수가 강압적으로 우리에게 가한 박해이다라고 했다. 그것들은 바로 엄마의 正信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반드시 견정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어야 하며 자기가 대법제자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후부터 엄마는 설법을 듣고 정념을 발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것이 사악의 박해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하다 보니 신체의 각종 증세는 점점 엄중해 졌고 생각도 점점 속인과 혼동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되면 집에 가서 다시 연마하겠다고 했다. 바로 이런 사람 마음에 사로잡혀 흑수의 박해를 가중시켰다. 그 사이에 한번은 생명도 위협을 받았는데 혼자서는 의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수혈하고 단백질을 맞아도 반응이 없다고 했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안다. 그분과 교류를 통해 엄마도 왜 그런지 알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태가 그로 하여금 정념도 견정하고 싶고 또 속인의 수단도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즉 한 손으로는 부처님을 잡고 놓지 않고 한 손으로 사람을 잡고 놓지 않는 격이다. 이렇게 그는 끊임없이 흑수들에 의해 틈을 타게 했다. 바로 그때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징조들이 나타나 나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안전을 고려하여 나는 집에 있는 몇몇 동수들을 찾아 그들에게 마난속에 있는 어머니를 부탁하고는 병원문을 나섰다.
여기까지 흑수들의 일체 사악한 배치는 이미 앞에서 다 드러났다. 흑수들은 똑똑히 알고 있는바, 만약 이번에 엄마가 능히 걸어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한차례 아주 유력하게 법을 증실하고 진상을 알리는 기회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목숨을 걸고 교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고 나쁜 일을 하면서 일체 이용가치가 있는 속인들을 조종하여 집착을 견주고 어떤 말을 하게 함으로써 동요하게 만들어 마음이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본다.“우리는 예를 들겠다. 낮은 층차의 수련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란 아주 어렵다. 스승이 어떤 모양인지 당신은 똑똑히 보지 못할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높고도 큰 대신선이 온 것을 보게 될 것이다.이 대신선은 당신을 두어 마디 칭찬해 준 다음 당신에게 무엇을 좀 가르쳐 주는데, 당신이 가졌으면 당신의 공은 곧 난잡하게 된다.”(≪전법륜 ≫)다른 공간의 그런 흑수들은 바로 그런 “정과를 얻지 못한 대신선”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정념만 강하다면 그것들을 부정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 지역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노년 동수 한 분이 몸에 엄중한 병업의 증상이 나타나 가족들은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했는데 간암으로 진단되었다.링거를 맞을 때 그는 갑자기 자기가 대법제자라는 생각하고 병이 없으므로 단번에 링거 주사를 뽑아내고 퇴원을 요구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죽어도 안 된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마음을 아주 확고히 먹은 그를 보고 어쩔 수 없었다. 후에 다시 가서 검사를 받게 했는데 아무런 증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정말 믿기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이 말씀하신“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이 사이에 동수의 정념은 물론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체로 말하면 역시 많은 누락이 표출되었다. 마난속에 있는 수련생을 보고도 마비된 상태이고 동수의 부족함을 보고 그리 자비롭지 못하거나 흑수의 박해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이것이 모두 우리 자신의 아주 엄중한 문제이다. 수련생이 마난에 부딪혔을 때 물론 그의 집착이 있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를 이 속에서 수련하고 동수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대하고 성심 있게 도움을 주고 일깨워주면 체현된 법의 위력은 인류사회의 표면 공간이든 다른 공간이든 모두 하늘땅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내가 이 문장을 쓰고 있을 때 타 지역 수련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동수의 유방에 큰 구멍이 생겨 매일 고름을 흘리고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암 말기라고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수련생은 죽어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싫어했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도 자기가 파룬궁 수련자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념이 이미 아주 약해진 것이다. 현지 책임자는 반복적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고 다른 동수들도 도움을 주었는데 어떻게 해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고 직장에서는 그녀를 세뇌반에 보낼 생각을 했다고 한다. 수련생이 이 일을 폭로하려고 해도 본인은 동의하지 않았고 이것은 낡은 세력의 배치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이 지경에서도 깨닫지 못한 그녀를 보고 책임자는 속수무책이여 이 동수에게 물었다고 한다. 수련생은 그에게 엄마의 일을 얘기해주면서 사실 이 일의 관건은 수련생이 바르고 바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 일에서 정념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라고 말해주자 이 책임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동수 몇 명을 불러 연속 고 강도의 정념을 발하여 사악을 제거했다고 하는데 연속 10몇 시간의 정념을 발했다고 한다. 표면공간에 체현된 효과가 어떠하든 지를 불문하고 최소한 이런 정체적으로 악을 제거한다는 견정한 마음이 사악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라≫에서 “정념 과정 중에서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악인이 폭행을 멈추지 않으면 정념을 중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악이 수련생을 하루라도 박해하면 이런 정체적으로 악을 제거하는 정념을 끊이지 말아야 한다.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병업으로 수련생을 교란하고 심지어 동수의 육신을 앗아가는 파괴 현상은 점차 적어질 것이다.
나는 이런 체험을 얻었다. 즉 동수들이 이 일에서 하나의 기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우리가 수련생을 돕고 있지만 사실상 자기를 돕는 것이고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다. 사악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은 그것들이 대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사악을 제거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자기의 일이 아닌가? 우리가 책임을 다 할 일이 아닌가? 그 사악을 제거함으로써 쌓은 위덕은 우리 자신의 위덕이 아닌가? 어느 한가지 일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기점부터의 흐릿한 인식이 아마 다른 동수들로 하여금 정체의 작용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아직 마난속에서 소극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동수들이 빨리 깨우치고 빨리 깨우칠 수 있기를 일깨워 주고 싶다. 이것은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일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세간의 어떤 작은 법을 얻고서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우리 이 우주의 근본 대법을 얻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은 또 무슨 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또 무슨 이유로 사존님이 주신 일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즘 들어 사이트에서는 수련생이 병업으로 엄중하게 교란받는 보도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그래서 나는 빨리 엄마의 이 사례를 쓰자고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악을 폭로하고 수련자들이 흑수의 사악한 본질을 더욱 똑똑히 알아내고 좀 더 주동적으로 근처 동수들을 돕고 이와 동시에 자기가 법을 수호하고 악을 제거하는 위대한 책임을 다하자는데 있다.
우리 함께 하나의 금강불파한 정체로 형성되어 위대한 불법이 우리 대법제자의 몸에서 체현되게 하자. 그리고 우리 함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구도중생하는 정법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하자.
이상은 개인의 체득이다. 타당하지 않은 부분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梅≫로 이 문장을 결속 지으려고 한다.
매 화 원곡
탁세(濁世)에 핀 청련 같은 매화 억 만송이
그 자태 찬바람에 더욱 어여뻐라
연일 내리는 눈비(雪雨)는 신의 눈물이요
부처의 눈물이라네
매화 돌아와 피어나기 바라네
세상사 집착에 미혹되지 말고
정념을 견정히 하거라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름은
오로지 이 한 차례 위함이어라
2003년 1월 28일
문장완성 : 2004년 7월 14일
문장발표 : 2004년 7월 15일
문장갱신 : 2004년 7월 15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15/7941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