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즈윈(紫云)
【명혜망】어떠한 모순속에서도 대법제자는 응당 선량함을 나타내야 하는데 이런 선량함은 쉽게 업신여길 것이 아니며 그것의 위력은 거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법중에서 수련해낸 경지의 체현이며 대법과 연결되여 있기 때문이다. “선한것은 우주의 특성이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의 표현이며, 또한 대각자들의 기본 본성이다. 때문에 한 수련자는 반드시 선을 수련해야 하며 진, 선, 인 우주특성에 동화되여야 한다.” (《선을 알기쉽게 말하다》)수련하지 않는 가족들이 당신이 정말로 하나의 좋은사람이라고 할때, 당신의 일언 일행에서 당신이 체현해낸 선량함을 보았을때 이 자체가 바로 가족들에게 대법을 실증한 것이 아닌가?
외부에 대한 모순이나 가정내에서의 모순이던지를 막론하고 대법제자의 일언 일행은 주변의 사람에 대해 모두 영향이 있으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서 판단하고 있다. 자신이 잘했다면 홍법진상에 일으킨 작용은 꼭 좋을 것이며 만약에 잘하지 못했다면 일으킨 작용도 반대로 좋지않을것이다. 그러나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반드시 잘해야할 책임이 있다.
나와 남편은 98년도에 법을 얻었으며 두 딸애가 있다. 수련을 하기 전에는 평소에 집에서 내 말이면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며 남편은 나와 고집을 부린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가 내가 맡고 있기에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되어갔다. 또한 남편의 매월 봉급도 제때에 나한테 “보고”해야 했다. 나와 남편이 수련을 시작한 후에도 나는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했으며 그저 남편에 대한 “요구”를 느슨하게 했을 뿐이며 전처럼 그렇게 “엄하게” 하지 않았다.
남편의 동생과 여동생이 자비(自费)로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조건이 매우 어려웠다. 나와 남편의 사업은 모두 괜찮은 편이며 월급도 적지 않다. 남편은 여러번 나한테 경제상에서 동생들을 돌봐주자고 했으나 번마다 내가 퇴박을 주군했다. 나의 이유는 충분했는데 집을 산 대출도 아직 값지 못했고, 두딸의 교육비와 키우는데 드는 비용 모두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매우 컸으며 남편의 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와도 거리가 매우 가까왔다. 남편은 또 동생들을 우리집에 와서 있게 하자고 했다. 이러게 되면 얼마간의 지출도 줄일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잠재의식 속에 있던 것이 본능적으로 반대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남편의 제의를 거절했다. 또한 남편에게 당년에 나도 어떻게 고생스레 공부를 했으며 이렇게 지나오지 않았는가 하면서 남편에게 정을 내려놓으라고 했으며 동생에 대해 근심하지 말라고 했으며 동생들도 마땅히 고생속에서 단련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날 나는 은행에서 온 청구서를 정리하다가 연속 몇개월간 남편의 통장에서 매달 400딸러가 지출되는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내가 모르고 있는 정황이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것은 꼭 남편이 나몰래 동생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결국은 이것으로 하여 남편과 한바탕 싸우고 말았다. 이리하여 내 마음 속에는 동생들에 대한 미움만 가득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은행통장에서 2000딸러가 적어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남편한테 물었다. 남편은 동생들에게 차 한대를 사주었다고 했다. 나는 당장에서 머리가 터지는 것만 같았다. 또 남편과 한바탕 싸웠다. 남편은 내가 분노하여 질책하자 문을 차고 나가버렸는데 일주일 동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말에 있은 한차례 단체법공부에서 나는 남편이 어떻게 잘못했으며 내가 어떻게 위축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굳어진 얼굴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자연히 많은 “동정”을 받았다. 어느날 저녁 나는 법을 일찍이 얻은 노동수와 전화상으로 교류하게 됐다. 그때 나는 아직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으며 남편이 나에 대해 매우 무책임 하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도 여자가 남편에게 시집갔으니 남편은 응당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데 어찌하여 문을 차고 그냥 나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 고 했다. 이 노수련생은 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사실 모든 모순이 모두가 나한테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의 남편을 동정한다고 하면서 사부님께서 한 남자로서 자신의 아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러나 아내도 응당 현숙해야 하며 그저 표면적으로 남한테 보이게만 해서는 안된다, 책임은 남자가 해야할 뿐만이 아니라 역시 여자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말문이 막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속으로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얼굴이 가려워 또 정에 의해 동수들 앞에서 이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심지어는 법리를 찾아내어 자신이 어떻게 옳았다고 했다.
이것은 1년 전의 일이다. 지금 이 일을 말하자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다. 그때는 모순 속에서 진정 자신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는 자기 자신이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 지를 의식하지 못할 적에 더구나 그러했다. 자신을 찾는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늘 내려놓는가 내려놓지 않는가 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심지어는 다음번에 다시 제고 할 것인가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자면 큰 결심을 내려야 하며 속인의 득실로 고만한 것들을 내려놓았는가 내려놓지 않았는가를 가늠할 것이 아니라 혹은 먼저 어느정도 내려놓은다 음 다시 보자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집에서 결책권과 경제권을 독점하고 있었으며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적 없었으며 마치 이 집에서 내가 사장인 것 같이 생각되었고 남편은 그저 반드시 나한테 복종해야만 되는 “비서”처럼 생각됐다. 나는 각종 이유로 남편이 동생들을 도와주는 것을 반대했지만 친정집 사람에 대해서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도와줬으며 또한 때가 되면 꼭꼭 집에다 돈을 부쳐주군 했다. 그러면서도 남편한테 알려준 적이 없었다. 내 머리 속에는 남편과 시집사람들은 나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그 동생들이 아무리 곤난하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도 나에 대해 말한다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편과 충돌이 발생한 후 근본상 나 자신을 찾아 보려하지 않았으며 되려 남편이 이집을 생각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시동생들 마저도 너무 과분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으며” 내가 “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나 자신의 변이된 것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며 내가 “고생스레 쌓은 ”이 가정의 이익이 충격을 받게 되어 일어난 것이며 자신의 집착으로 하여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집착들은 심지어 잠재의식 속에 모두 있다. 파내지 않았을 때 몰랐는데 파낼수록 두려웠으며, 몇년간 나 자신이 도대체 수련을 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사실상 가정의 모순 속에서 제일 놓기 어렵고 제일 부딪치기 싫은 것이 개인 감정과 체면이다. 사람이 속인 중에서 형성된 옳다고 여기고 있는 가짜 이치, 속인중에서 형성된 여러가지 논리적 사유 등등의 각개 방면에 모두가 이러한 것들이다. 미시적인데서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하나하나의 큰 산이 아닌가? 이러한 큰 산들이 모두가 공동한 내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私”이다.
1년 전 나 자신의 이러한 표현들은 지금 도덕표준이 미끄러져 내려온 속인사회에서 말한다면 매우 예사로운 일이며 가능하게 많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찾을수 있다. 그러나 대법의 표준으로 가늠한다면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다. 나는 자신에 존재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됐다. 내가 결심을 내리고 꼭 이런 좋지못한 것들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자신의 생명이 대법에 의해 깨끗하게 정화되는 감을 느꼈으며 그 한순간에 나는 진정으로 수련의 내포와 신성함을 체험하게 됐다.
나는 남편에게 자신의 이전에 한 행위에 대해 사과했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대법제자가 응당 있어야할 자태로서 남편과 시동생들을 대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진심으로 그들을 관심하고 도와주었으며 일언 일행으로부터 자신이 잘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중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든지간에 이전처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으며 되려 마음이 더욱 개운해 졌다. 나는 내가 전에 비해 순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 가정은 부드러운 분위기에 충만돼 있을 뿐만 아니라 두 딸애도 이렇게 부드러운 분위기속에서 철이 들었으며 서로지간에 더는 놀이감 같은 것을 가지고 다투지 않고 서로 상대를 생각해 주고 있다. 남편도 나에게 전에 비해 더욱 살뜰하게 대하고 있다. 나는 이제야 비로서 무엇이 “불광이 널리 비추니 례의가 원명하도다”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됐다.
자신의 일언 일행을 모두 잘했을적이면 많은 말을 하기보다 났다. 왜냐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진행한 그 일언일행은 진상을 체현했기 때문이다. 시동생들은 우리들의 언행에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감수하게 됐다. 천천히 대법은 그들의 마음 속에 뿌리가 내렸다. 지금은 그들도 대법 중의 한 사람으로 됐다.
문장완성 : 2004년 8월 12일
문장발송 : 2004년 8월 15일
문장갱신 : 2004년 8월 15일 8:23:07 PM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8/15/816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