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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관념을 제거하자

글 / 신천(辛辰) 미국

【명혜망 2004년 7월30일】지난 주 DC 법회 기간중에, 나는 동수 한 명에게 한 소규모 활동의 정황을 물었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중요한 수련생들은 모두 국회에 가서 진상 알리기를 하고 있으며, 우리 이 2등급 수련생들이 곳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그녀의 말은 비록 농담이었지만 반영된 문제는 오히려 마땅히 주의를 일으켜야 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대법 속에서의 수련자인데 언제 등급이 나왔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이런 등급관념이 수련생들 사이에 아주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 반영된 것은 또 비교적 엄중하므로 주의하게 되었다.

한 수련생이 일부 지역 혹은 항목 협조자의 관기(官氣)가 비교적 중하여 의견이나 비평 등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나는 이 문제는 어느 협조자 한 수련생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 것은 수련생들 속에서 존재하는 등급관념에도 관계가 있다고 느끼었다.

이런 등급관념이 생기면 우리 정체 속에서 인위적인 알력이 생기게 된다. 비교적 선명한 것은 지역, 항목협조자, 책임자 혹은 어느 비교적 능력 있고 각 항목의 활동 속에서 아주 활발한 “명인”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며 그들을 “영도” “우두머리” “권위”등으로 여기게 된다. 하여 또 두 가지의 비교적 극단적인 태도가 생기게 된다.

하나는 이 부분 수련생에 대한 의지, 숭배, 맹목적인 복종, “권위”등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심리이다. 어떠한 일에 부딪쳐도 이런 수련생들이 가서 조직하기를 기다리며 그들의 의견과 결정에 대하여 생각 없이 가서 행하게 된다. 이런 수련생이 어느 방면에서 잘 하지 못함을 발견하였을 때 또한 선의에 따라 문제를 지적하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그들이 아주 헌신하였다는 생각에 차마 비평하지 못하며 어떤 이는 체면 때문에 말하기 쑥스러워하며 어떤 이는 남의 미움을 사게 되어 나중에 배척당할까 봐 감히 말하지 못하는 등등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한차례 대형활동을 거행하려고 하였지만 자금 처리상에서 아주 큰 문제가 존재하였다. 많은 수련생들이 부동한 의견이 있었으나 협조자를 찾아가 반영하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보편적으로 존재한 심태는 이러했다. “나는 단지 보통 수련생이므로 XXX의 결정을 질의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협조자 역시 보통 수련자로서 역시 착오가 생길 수 있는 것으로서 문제를 고려할 때 또한 전면적이지 못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주의하게 된 문제를 모두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일을 잘 협조할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이러한 관념은 정법 중의 일부분 수련생들의 주동성과 책임감을 아주 큰 정도로 억제한다. 협조자, 책임자의 어깨 위에 책임을 과도하게 내리눌러 그들로 하여금 다망한 일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하여 법공부하고 연공할 시간마저 없게 하는데 오랫동안 지속되면 개인수련에서 문제가 쉽게 나타나게 된다.

그 외 이런 등급관념은 일부 수련생들로 하여금 책임자에 대하여 떠 받치고 아첨하게 하여, 인위적으로 일종 득의 양양하며 스스로 즐거워하게 하며 남보다 우월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내가 잘 알고 있는 한 수련생은 일할 때 아주 침착하며 자신에 대한 요구도 아주 엄격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러한 환경 속에 처하면서 자아에 대한 집착을 키우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어떤 책임자는 원래 이 방면에서 조금 집착이 있었는데 이러한 집착은 그들의 제고에 더욱 불리하다. 이런 정황 하에서 어떤 때 또 틈을 타게 되며 본래 면할 수 있는 어려움을 그들에게 가져왔다.

우리가 책임자의 관료 기질이 심하다고 지적할 때 바로 자신이 이러한 기풍을 조장하였다고 반성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동수에 대하여 똑같이 대하였는가? 여러분들이 모두 진정으로 수련생을 책임지는 마음상태로 책임자를 관심하며 그들을 “관리”로 여기지 않을 때 그들은 마땅히 또한 더 이상 “관료 기질”이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셨다. “사실 나는 가장 높은 누구를 선택하여 책임자로 선정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중생은 같은 것으로, 나는 중생에 대하여 당신이 그보다 낫다느니 그가 그녀보다 낫다느니 하는 것이 없다. 나는 이 사람이 집단 사업을 이끈 경험과 열정이 있는지 만 본다. 나는 바로 이런 약간의 생각뿐인 것으로, 이 사람이 잘 수련할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비로소 그더러 책임자로 되게 하는 이러한 생각이 없다. 한 속인이 수련을 시작하여 줄곧 원만까지 이 과정에 어떻게 수련했고 원만할 수 있는지는 모두 수련자 자신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한다”(《2003년 애틀란타 법회에서의 설법》) “대법제자들의 책임자는 실은 단지 하나의 협조자이고 연락인이며 한 전달인(傳達人)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그들을 사부님처럼 대하지 말라. 그처럼 큰 희망을 걸고 당신들 수련의 의지로 여기고 무슨 일이든 그가 반드시 다 잘 해야 한다고 여기지 말라.”(《아태지역 수련생회의에서의 설법》)”

나는 협조자와 책임자가 있음은 단지 우리가 효과적으로 정법일을 잘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분담에 불과하다고 이해한다. 누가 누구보다 중요하거나 혹은 누가 마땅히 누구보다 더 잘 한다 등의 문제가 없다. 우리는 자신의 “특수심”과 등급관념을 제거하면 책임자와 협조자의 부족한 곳에 대하여 늘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등급관념은 기타 방면에서도 반영되어 나오는 바, 법을 얻은 시간이 짧고 길고, 일하는 능력이 크고 작고, 연령, 속인사회 속에서의 지위 등등으로서 모두 등급을 나누는 지표가 된다. 이런 관념과 집착은 우리가 법리상에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반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고 배우는 것은 동일한 한 부의 대법이다. 수련은 사람마음을 직접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 속의 표면현상을 보지 않는다. 똑같은 순정한 마음으로 “높은 기술”적이고 대규모의 활동을 조직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예를 들어 전단지를 배포하는 간단한 일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우리가 원만을 향해 나아갈 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실 것은 똑같은 영예이다.

문장완성:2004년 7월 29일
문장발표:2004년 7월 30일
문장갱신:2004년 7월 31일 24:42:50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30/8062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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